〈 72화 〉 라플라스의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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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도 낮에는 시험관에 있는 세포가 성장하는 걸 관찰하고, 밤에는 꿈속에서 수련하는 걸 반복하길 몇 주나 지났다.
그 사이에 커다란 시험관에 옮겨진 세포는 점점 분열하여 사람의 형상을 가지기 시작했고, 거기에다가 어떤 약물을 투여한 뒤 하루가 지나자 순식간에 성인 인간의 모습을 갖추었다.
하지만 이건 영혼 없는 육체, 비유하자면 프로그램이 아직 들어가지 않은 로봇이나 마찬가지이다.
이제 이걸 다른 층에 있는 마법사들에게 보내면 영혼을 옮기는 실험을 실시하겠지.
방금처럼 비유하자면 마법사들은 영혼이라는 프로그램을 옮기는 단자 역할이다.
시험관에서 영양액을 빼내고 나서 힘없이 쓰러진 육체를 들어 올리는 연구원들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서아를 바라봤다.
웃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슬퍼 보이는 애매한 표정을 지은 그녀가 천으로 덮인 채로 스테인리스 카트에 올려진 것과 아직 시험관에서 성장 중인 세포들을 번갈아 봤다.
"표정이 왜 그래. 잘하면 오늘 바로 끝날 수도 있잖아?"
"그렇긴 하지. 연구자로서 대단한 성과에 기쁘기도하고, 일주일 전부터 계속 쪼아대던 소리를 오늘만이라도 듣지 않을 수 있다는 게 행복해. 그런데 계속해서 무언가 선을 넘은 듯한 느낌이 들어."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 금기라도 된다고 생각하나?"
"연구윤리만 생각해도 이미 늦긴 했지만."
서아가 너무나도 인간적인 것일까.
아니면 내가 몸이 변하면서 많은 것이 비틀려진 것일까.
이제는 이해하기 힘든 그녀의 감성적인 눈빛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자, A부터 E까지 총 다섯 명 확인했고…. 혹시 신입 중에 마법사가 궁금한 사람?"
이제는 하나뿐인 그녀의 동기가 대충 포스트잇에다가 알파벳을 적어 일일이 붙인 후 다른 연구원들에게 물어봤다.
그러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었고 그중에서 다섯 명이 뽑혀 각각 하나씩 카트를 맡게 되었다.
자신이 심부름에 자원한 걸 알아챈 녀석들은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늦었다.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 선배 앞에서 뭐라고 할 수 없던 그들은 결국 카트를 끌며 복도를 통해 마법사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나도 어떤 과정을 통해 영혼을 옮기려는 생각인지 궁금해 서아에게 잠시 따라가겠다고 말하고 재빨리 뒤를 쫓아가 카트에 올라탔다.
그리고 편안하게 누워서 육체의 완성도를 살펴보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이전에 봤던 간부가 특별했던 건지 나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마법사들을 지나쳐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넓은 방 전체에다가 마법진을 그려 둔 게 있었다.
중앙에 제단이 두 개가 있는 거로 봐서 아무래도 이곳이 영혼을 옮길 의식장으로 보였다.
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마법진의 구조를 천천히 관찰하다가 밖에 있던 마법사들이 카트 하나를 끌고 이쪽으로 오는 게 느껴졌다.
선두에 카트를 끌고 오는 화려한 장식이 수놓인 로브를 입은 사람과 뒤따라 오는 평범한 로브를 입은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에 하얀 옷을 입은 일반인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사람은 카트에 눕혀져 있는 육체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었고 이번 실험의 첫 번째 희생양인가 보다.
마치 죽은 것처럼 가만히 누워 있는 자신의 복제 인간을 힐끗 보던 사람은 의식장으로 들어오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의 결말이라도 예측한 듯이.
그가 왼쪽 제단에 눕고, 복제 인간을 오른쪽에 눕힌 후 마법사들은 각자 정해진 자리라도 있는 건지 일정한 간격으로 규칙적으로 서 있었다.
화려한 로브를 입은 마법사가 제단 앞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자 저기 위쪽에 있는 유리창에서 빛이 새어 나오며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한 명은 이전에 봤던 간부였고, 다른 한 명은 휠체어에 탄 노인이었다.
이외에도 다른 기척이 좀 느껴지긴 했지만 유리창을 통해 보인 이들은 둘 뿐이었다.
간부가 무언가 확인이라도 하는 듯이 둘러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기에 장난삼아 그의 어깨 위로 이동했지만, 그는 태연하게 마법진을 확인하고는 실행하라는 듯이 손짓했다.
그러고는 태연하게 옆에 있는 노인과 대화하려 하기에 앞발로 툭툭 치면서 방해했다.
"야, 야야. 무시하냐?"
"이번 실험은 일전에도 들으셨겠지만 원래 육신에서 영혼을 꺼내 다른 육신으로 옮기는 실험입니다."
"나도 잘 알고 있네. 지난 기간 동안 진행한 실험은 모두 실패였지만 우리 회사에 많은 이익을 주었지. 하지만 이젠 실패해선 안 되네."
"당연하죠. 회장님의 건강을 저희가 최대한 악화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게 변하지 않는 이상 시간만 늦추는 셈이죠."
"이 새끼가 무시하네? 좀 있다가 보자."
내가 이렇게 말하자 간부의 안색이 안 좋아졌지만 관찰력이 뛰어난 게 아닌 이상 알아차리긴 어려울 거다.
"지난 십 수년은 어떻게 버텨 왔지만… 음? 자네 안색이 좋지 않군. 혹시 무언가 탈이라도 났나?"
"아닙니다. 그저 이번 실험이 실패하면 어쩔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이 첫 번째 실험인데 성공한다면 그거야 좋겠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는 이상 그럴 리가 없겠지."
"그래도 회장님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자원자도 많으니까요."
"실험값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니까. 그들도 계속해서 회사를 이끌어 갈 나를 위해 죽는 것이니 기뻐할걸세."
노인의 헛소리를 들으며 서아가 욕한 이유를 이해한 나는 잠시 창밖을 봤다.
어느새 중간 단계로 접어든 의식을 살펴보니 규칙적으로 선 마법사들이 동시에 주문을 영창 하는 게, 마치 오페라 같았고, 그 소리를 들은 노인도 하던 말을 멈추고는 의식장을 바라봤다.
화려한 로브의 마법사는 영창을 하면서 천천히 왼쪽에 누워 있는 남자를 향해 손을 뻗었고, 희끄무레한 영혼이 그의 몸에서 서서히 분리되기 시작했다.
이윽고 육체와 완전히 분리된 영혼을 이번에는 다른 육체에다가 집어넣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무언가에 고정이라도 된 것처럼 잘 움직이지 않는 영혼을 강제적으로 집어넣으려다가 결국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의식을 진행하고 있던 마법사가 당황해하며 누워 있던 남자의 뺨과 어깨를 툭툭 쳐가며 일어나라고 말해 봐도 이미 영혼이 사라진 그가 일어날 가능성은 없었다.
두 구의 살아 있는 시체는 결국 카트에 실려 의식장 밖으로 나가게 되었고 다음 자원자가 들어오게 되었다.
실려 나가는 인간이었던 것을 바라보는 눈빛이 전혀 자원한 느낌이 들지 않았지만 결국 제단에 눕게 되었다.
이어서 진행된 네 번의 실험도 당연히 실패로 끝났고, 마법사들은 고쳐 나가야 할 것들을 메모하며 서로 대화를 나눴다.
계속해서 실험을 바라보던 노인도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역시 첫 실험이라 그런지 실패로군. 그래도 매일 다르게 하면서 하다 보면 성공하겠지."
"무엇이든지 그런 법이니까요."
"저 복제 인간은 충분히 만들어지고 있는가?"
"예. 외부 연구원들이 힘내주고 있습니다."
"그렇군. 아무튼 내일부터는 보고서를 통해 받을 테니 최대한 빨리 주게나."
"예. 그럼 안녕히 들어가십쇼."
"어휴 드디어 가네 저 늙은이."
저 뒤에 서 있던 비서가 끌고 가는 휠체어를 보며 한 마디 내뱉으니 간부도 공감되는 건지 웃음을 참고 있었다.
문이 닫히고 기척이 멀어지자 크게 웃은 그는 내게 말을 걸었다.
"하하하—! 휴우. 그나저나 위대한 분께서 의식장에 있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만든 결사단인데 무슨 상관이야."
"고양이 모습으로 계신 데다가 오랫동안 관여하시지 않으셨으니까요."
"만들었을 때부터 오늘날까지 계속 지켜보긴 했다만."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후로도 계속 지켜보기만 하실 예정이십니까?"
"혹시라도 거슬리는 녀석이 있으면 치울 건데 괜찮겠나?"
"그런 어리석은 자는 사라져도 괜찮습니다."
"그럼 됐군."
이제 눈치 볼 것 없이 마음껏 다닐 수 있게 된 나는 서아에게 돌아가기로 했다.
"아, 그런데 너는 이름이 어떻게 되지? 맨날 간부라고 부를 수도 없잖나."
"제 이름은 박수현입니다. 평범하죠?"
"그렇군. 그럼 난 이만."
내게 거의 직각으로 허리를 숙이는 그를 뒤로하며 서아가 있을 연구실로 이동하니 표정이 썩어가는 그녀가 보였다.
근처에서 피 냄새도 나는 거로 봐서 무슨 일이라도 있던 거 같은데.
"왜 그렇게 표정이 썩어 있냐."
"그냥 세상이 씨발 개 같아서."
"실험에 실패해서 그래?"
"그런 건 상관없어. 근데… 이건 아니지."
뭐라고 한마디 했다간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아서 잠시 등을 토닥여주니 다른 방에서 서아와 같이 표정이 썩 좋지 않은 연구원들이 아이스 박스를 들고는 나가고 있었다.
하얀 가운의 끝자락에 빨갛게 피가 묻은 거로 봐서는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아무리 영혼이 빠져나갔다고 해도 살아 있잖아. 그런데 싱싱하니까 빨리 적출해서 아이스 박스에 담으라고? 우리가 무슨 횟집 사장인 줄 알아?"
"자자, 일단 참아. 나중에 죽이던 뭘 하던지 마음대로 하면 되잖아?"
"그래도…."
서아의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눈이 그렁그렁해지자 저기서 한숨을 내쉬던 그녀의 동기가 다가와서 티슈 몇 장을 뽑아줬다.
"에휴, 이제는 우리한테 해부까지 시키네. 참 알뜰한 새끼야. 안 그래?"
"그러게 말이다. 킁!"
"그놈의 돈이 뭔지. 아무튼 후배들도 있는데 울지 말라고. 쟤네들도 참고 있는데 너가 울면 어떻게 느끼겠어."
"눈물이 나오는 걸 어떻게 막아."
"그건 그렇지. 난 눈물샘이 매마른 건지 감정이 매마른 건지 그냥 씁쓸하기만 하다. 아무튼, 나머지는 방에 가서 울라고."
서아의 등을 팡 치면서 일어난 그녀는 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며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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