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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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자들의 장기자랑을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온 서아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를 죽였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저녁도 먹지 않은 채로 잠든 그녀의 머리맡에서 눈물 자국이 남은 얼굴을 쳐다보다가 앞발을 이마 위에 올렸다.
오늘 같은 날은 쉬게 해 줄 수도 있지만, 악몽이나 꾸지 않으면 다행이니 주도권을 가진 이쪽에서 직접 조정을 해 줘야겠다.
나도 똑같이 눈을 감고 잠시 집중하니 갑작스레 소음이 들려왔다.
이상함에 눈을 뜨자 평소에도 봤던 서아의 꿈속에 있는 집이었다.
매일 꿈속에 들어갈 때마다 직접 집을 만드는 게 귀찮아서 기본값으로 설정해 둔 방이었지만 오늘은 뭔가 기묘하다.
서아가 방에 없는 거야 평소에도 같은 방에서만 공부하기 싫다고 다른 방을 찾아 돌아다닌 적도 있으니 익숙했다.
하지만 평소엔 들어 보지도 못한 소리가 계속해서 귀를 파고들고 있었다.
그렇게 시끄럽진 않지만 새벽에 잠들기 전 들려오는 시걔 소리처럼 불쾌한 느낌이었다.
작은 동물의 발소리와 찍찍거리는 소리가 아무래도 쥐인 거 같은데 왜 꿈속에 쥐가 있을까.
나는 한 번 앞발을 휘둘러 벽에다가 발톱 자국처럼 구멍을 냈지만 안에 돌아다니는 생명체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거슬리는 소리가 계속 나기에 들리는 방향에다가 계속 앞발을 휘둘러도 무엇 하나 없었다.
그냥 무시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하며 방을 나와 복도를 걸으며 서아를 찾기로 했다.
곰 인형으로 가득한 방은 섬뜩하다며 쓴 적 없지만 혹시 몰라 살펴봤다.
오늘따라 시끄럽게 끼이익거리는 녹슨 경첩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여기저기 곰 인형이 놓인 방에 들어가도 서아는 없었다.
곰 인형으로 가득 찬 거대한 바구니 안에 있을까 싶어서 주문으로 뒤집어도 나오는 건 여러 크기의 인형들 뿐.
그래서 다른 방을 찾으러 나가려고 문을 향해 몸을 돌리자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뭐가 움직였나 살펴보니 방 안의 모든 곰 인형이 나를 보고 있었다.
게다가 눈으로 박혀 있는 검은 구슬 안에 무언가 탁한 것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게 다시 고개를 돌린다면 바로 내게 달려들 것만 같았다.
물론 그래 봤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라 무시하고 밖으로 나오자 예상 그대로 달려드는 기척이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는 곰 인형의 감촉은 천이 아니라 살가죽 같았고 안에서 튀어나온 것들은 솜이 아닌 내장과 핏덩어리였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지금 상황을 보면 아무래도 서아가 악몽을 꾸는 걸 테니까.
벽 속에서 들려오는 쥐 소리도 방금 내게 달려든 곰 인형도 그 때문이겠지.
아무리 내가 꿈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 기반은 서아의 것이니 정신이 불안정하고 악몽을 꾸고 있다면 평소에는 보지 못한 것들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빨리 찾아서 이 귀찮은 악몽을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 부지런히 발을 움직인 나는 식당에서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열 명은 앉을 수 있을 정도로 긴 식탁의 가운데에 앉아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무언가를 기다리던 서아는 들어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게 어서 오라면서 옆에 있는 의자를 당겨 주는 그녀를 무시하고 그대로 식탁보로 덮인 식탁 위에 올라가니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이 의자를 다시 넣었다.
평소라면 깔끔하게 새하얀 식탁보가 난장판이 되어서는 검붉은 자국으로 넘쳐났다.
식탁 위에서 뭐라도 도축했나 불평하면서 최대한 깨끗한 부분에 앉아 서아에게 말을 걸려고 했지만 주방에서 투명한 사람 같은 게 뚜껑으로 덮인 접시를 들고 이쪽으로 왔다.
그녀는 그걸 보고도 이상한 걸 느끼지 못한 건지 태연하게 투명한 누군가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윽고 접시가 식탁에 올려지고 뚜껑이 열리자 그 안에는 두개골로 만들어진 그릇과 그 안에 담긴 부글거리는 수프였다.
보라색의 부글거리는 그것은 마치 독극물처럼 보여서 서아가 숟가락을 들기 전에 바로 쳐 냈고, 쏟아지자 부식하며 식탁을 녹여 버린 수프는 바닥마저 뚫어 버렸다.
"아, 뭐 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왜 저런 걸 먹으려고 해?"
"저런 거라니. 밥 씨가 얼마나 정성껏 끓인 건데. 게다가 고기도 덩어리가 커서 얼마나 맛있어 보였는데."
"뭐?"
보라색투성이여서 고기로 보이는 건 전혀 없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SAN치가 떨어진 데다가 악몽이라는 특수성까지 더해져 이런 상황까지 다다른 모양이다.
물론 악몽도 꿈이니 저런 거 먹는다고 죽지 않겠지만 제 정신력만 깎아 먹는 일인데 내가 두고 볼리가 없지 않은가.
툴툴대며 두개골 그릇에 남은 약간의 수프라도 한입 하려고 서아가 숟가락을 넣자 검게 변색된 걸 보고는 아예 불태워 버렸다.
오늘 힘들었는데 꿈속에서라도 밥 하나 제대로 못 먹냐며 내게 말하지만 나는 무시했다.
서아는 그동안의 학습을 통해 볼이라도 꼬집으려고 한다면 냥냥펀치가 날아오는 걸 배워서 부들거리는 손을 감추며 참고 있었다.
잠시의 침묵이 지난 후 다시 찾아온 투명한 밥 씨라는 녀석이 또다시 그릇을 내려 두고 뚜껑을 열자 보인 것은 피가 흥건한 생고기였다.
무딘 칼로 몇 번을 내리친 건지 살점은 너덜너덜했고 뼛조각이 붙어 있었다.
그걸 포크로 찍고 나이프로 힘껏 썰어넘기는 서아를 보다가 잠시 눈을 감아 꿈에서 빠져나왔다.
"에휴. 사람이 죽는 건 좀 익숙해졌다는 녀석이 이 모양이라니. 이를 어째야 할까…."
나는 창밖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며 저 멀리서 자고 있을 하윤이와 저택에 있을 이브를 떠올렸다.
시간이 약이라고 실험이 끝나고 좀 지나면 괜찮아지긴 하겠지만 나와 서아의 목표를 위해선 너무 오래 걸릴 게 뻔하다.
하지만 한 시대에 문장을 새긴 사람이 두 명 이상인 것도 어색하고 모두 여자라는 게 뭔가 그런 느낌이 든다.
"흠…. 아니, 그건 아닌가. 처음 문장을 받은 녀석은 남자였으니까."
나의 첫 사도라고 할 수 있는 제사장.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그의 갈색 눈동자를 통해 하윤이가 그의 후손인 것도 알아차렸었지.
이후로도 내게 문장을 받으러 온 후손들이 대부분 남자였다는 걸 생각하면 그리 어색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시대는 변화하고 있으니까.
"근데 이건 예시가 잘못된 거 같은데…."
귀찮으니까 넘기기로 하자.
문장과 관련해서는 예전에 하윤이에게 허락을 받았으니 언제든지 상관없겠지.
물론 지금 새겨줘 봐야 마법사들이 눈치챌 게 뻔하니 나중에 해야겠지만.
나는 원래 하려고 했던 정신 안정화 주문을 간단하게 걸어두고는 다시 꿈속으로 돌아갔다.
눈을 뜨자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어떤 동물의 것인지도 모를 생고기를 입에 반쯤 넣은 서아의 당황스런 얼굴이 보였다.
어떻게 운이 좋았던 건지 뼛조각이 붙어 있던 부분은 아니었지만 입과 코에서 느껴지는 피비린내와 알아차리지 못했던 저택의 이상한 점이 이제서야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물고 있던 고기를 뱉으면서 헛구역질을 하는 그녀는 벽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막았다.
"웁, 우웨엑!"
"이제 좀 정신 차리겠냥?"
평소 그녀가 싫어하던 말투로 물어봐도 전혀 대답이 없는 걸로 봐서는 많이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서아가 밥이라고 불렀던 요리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지만 그곳엔 투명한 누군가가 존재할 뿐이었다.
그녀가 봤던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피가 덕지덕지 묻은 앞치마에 마찬가지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거대한 식칼을 든 투명 인간이 서 있었다.
'…뭔가 많이 달라졌다?'
원래라면 그릇만 둥둥 떠다니는 걸로 보이던 게 이제는 요리사처럼 보일 정도로 무언가 많이 추가됐다.
그 투명한 요리사는 거대한 식칼을 높이 들고—
"오, 이런."
정신 차리지 못하는 서아를 반으로 갈라버리려 하기에 주문으로 그녀를 잡아당겼다.
—콰직!
그녀가 앉아 있던 나무 의자는 간단히 박살 났고, 강제로 잡아당겨지면서 목이 졸린 그녀가 기침을 하며 눈빛이 서서히 돌아왔다.
"콜록콜록! 으, 도대체 뭐가 일어난 거지…."
"넌 지금 악몽을 꾸고 있는 거다. 내가 방금 주문으로 안정시키긴 했지만 저들이 순순히 물러나지는 않을 거 같군."
나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 이게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모르겠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해도 될 일이다.
앞발 한 번만 휘두르면 간단하게 끝나겠지만 좋은 생각이 든 나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처음에는 짜증 났지만 괜찮은 기회인 거 같네."
"무슨 기회!"
"네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아볼 기회. 벽 속에서 나는 소리는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모양이니 괜찮은 시련이겠어."
"시련이고 뭐고 그러다가 죽으면 어떡해?!"
"여기서 죽는다고 실제로 죽지는 않아. 너 혹시 만화 같은 거 보고 그렇게 생각했냐?"
"무서운 이야기는 그게 국룰이잖아."
서아가 무언가 말하려고 하기에 '그게 뭔데 씹덕아'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먼저 행동한 녀석이 있었다.
걸리적거리는 의자를 치우면서 어느새 다가온 주방장이 식칼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서아가 죽음을 직감하며 눈을 감길래 그대로 내버려 둘까 싶기도 했지만 공평한 시작을 위해 손을 써 주기로 했다.
우선 보호막으로 식칼을 막아 내고 나서 주문으로 녀석을 붙들은 다음 벽에다가 처박아줬다.
사람 모양으로 벽에 박힌 그를 보며 서아에게 정신 차리라고 툭툭 치자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움직이지 못하는 요리사를 보며 이대로 끝내면 되는 게 아니냐고 묻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금방 있으면 풀려날걸?"
"그러니까 빨리 끝내면 되잖아?!"
"네가 끝내야지. 내가 시련이라고 말하지 않았어?"
"아니 그게 무슨—"
—으직!
서아의 말은 벽을 부수며 간단하게 나온 요리사로 인해 끊기고 말았다.
"하아. 끝나면 보상 같은 거라도 있어?"
"특별히 오늘은 휴식으로 해 줄게."
"내일까지."
"그래."
"좋았어. 이제야 힘이 솟는구만."
생기 있는 눈으로 돌아온 그녀는 거대한 식칼을 든 그것에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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