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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74화 (74/154)

〈 74화 〉 악몽

* * *

주문으로 붙잡았을 때 감촉이 느껴진 걸로 봐서는 저 투명한 요리사는 분명 실체가 존재한다.

하지만 억지로 벽에서 빠져나오면서 뾰족한 나무 조각이 많이 튀었는데도 생채기 하나 없는 게 많이 튼튼한 모양이다.

침착하게 주문을 영창 하는 서아를 향해 달려오는 그것은 식칼을 높이 들어 그대로 내리찍었다.

간신히 만들어낸 보호막에 식칼은 튕겨져 나갔지만 눈을 질끈 감으며 움츠러드는 게 아직 멀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방금 내게 자신만만하게 말한 서아는 어디 갔는지 몸이 얼어붙은 채로 아무것도 못하는 그녀가 보였다.

"야, 뒤에 내가 있는데 뭐 해."

"눈앞에서 나한테 칼을 휘두르는데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서아는 조심스레 눈을 떠보지만 불똥을 튀기며 보호막에 부딪히는 식칼에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면서도 떨리는 손을 내미며 천천히 마력을 움직이려 들지만 이러다간 한 세월은 걸릴 듯하다.

그냥 개입할까 싶었지만 저게 식칼을 내리치는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고, 벽 속에서 들려오는 쥐 소리도 점점 작아져서 이대로 내버려 둬도 괜찮아 보였다.

결국 서아가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눈을 떴을 때 투명한 요리사는 이미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있었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해명이라도 하라는 것처럼 눈빛을 보냈다.

"네 정신 상태가 개판이니 꿈도 개판이 된 게 아니냐."

"그럼 걔는 왜 사라졌는데?"

"내가 방금 정신을 안정시켰으니 악몽의 잔재는 사라지는 게 당연하지."

"그럼 내 휴가는?!"

"완전 쫄아가지고는 사라질 때까지 눈도 못 뜨던데 당연히 없지."

"…역시 그렇겠지?"

서아도 자기 모습이 꼴불견이었던 걸 알았는지 별말 없이 순순히 인정했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부서졌던 벽과 의자, 그리고 녹아내렸던 식탁을 복구시켰다.

그러고 나서 의자에 앉아 반대편에 앉으라고 고개를 까딱이자 멀뚱히 서 있던 서아가 다가와 앉았다.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하고 전투 부분은 간단하게 넘겼는데 그래도 잘했다. 내 눈이 너무 높아졌던 거겠지."

"나는 오늘까지도 실험만 하던 사람인데 당연하지. 도대체 눈이 얼마나 높은 거야?"

"주먹으로 보호막을 간단하게 부수는 여고생이라던가, 누가 검으로 베어 죽이려고 해도 눈 깜짝 안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

"놀랍게도 있단다."

"여기가 무슨 여고생 한 명이 특수 부대원 두 명과 전투력이 같은 애니메이션도 아니고 그게 가능해?"

"가능은 하지."

지구에 대 마법사 부대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특수 부대라도 간단하겠지.

그래도 내가 수업할 때 스치듯이 말했던 보호막의 중요성을 기억해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머리가 반으로 쪼개졌을 테니까.

"아무튼 내일은 휴가 없다."

"내일이라면… 혹시 오늘은?"

"악몽까지 꿀 정도로 정신이 피폐했으니 오늘은 봐주마. …잠깐, 어차피 안정화 주문으로 괜찮아졌잖아."

"에이, 내뱉은 말을 번복하면 안 되지. 근데 그 정신 안정화 주문은 어떻게 쓰는 거야?"

"그럼 오늘의 수업은 이거로 대체하마."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문을 가르치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

다음날 아침 개운하게 일어난 서아의 일상은 똑같았다.

약물로 성장시킨 복제 인간을 마법사들에게 보내고 실패한 것들은 모두 처리하는 것.

어제와 다른 점이라면 주문 덕분에 악몽을 꾸지 않는다는 점일까.

매일 같이 실험체를 보내고, 해부하고, 가끔씩은 퇴사당한 후배들도 같이 처리하길 일주일.

드디어 성공한 사람이 두 명 나왔다.

솔직히 하루에 다섯 명씩 골로 보내면서 하다 보면 감이 잡히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지.

드디어 의식이 있는 채로 실험실로 돌아온 두 명을 반기는 연구원들은 일단 그들을 병원에서 볼 수 있는 침대에 눕혔다.

"실험은 성공한 거 같은데 저건 뭐 하는 거냐."

"이제야 영혼을 옮기는 건 성공했지만, 새로운 육체에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고 다른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빠르게 성장시킬 때 사용하던 약물에 문제라도 있나."

"그건 우리도 모르지. 책에 있던 걸 따라 하면서 약간의 변형만 가했는데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어떻게 알아."

"정말 귀찮겠군."

"내 후배들이 도맡아서 하겠지만 말이야."

멀찍이 떨어져서 조용히 박수만 치던 서아는 실험체들이 누워 있는 방의 건너편으로 가서 매직 미러를 통해 잘 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환자복을 입고 벽에 걸려 있는 TV를 보는 그들은 얼핏 보기엔 편안해 보였다.

그러나 내 눈엔 보인다.

마치 치수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괴로워하는 영혼들이.

저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죽게 되겠지.

작은 옷을 어거지로 입다 보면 찢어지는 것처럼 육체에 하나둘씩 문제가 생길 것이고, 그것들을 약물의 부작용이라 착각한 연구원들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거다.

그러면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니 조금만 손을 써야겠다.

"저 둘, 머지 않아 죽겠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겉보기엔 멀쩡해 보일지 몰라도 내 눈엔 보여."

"도대체 뭐가 보이는데?"

"괴로워하는 영혼. 저 육체와 잘 맞지 않아서 이리저리 날뛰고 있는데 말이야."

"그럼 무슨 방법이라도 없어? 너라면 알고 있을 거 아니야."

"일단 병실로 들어가자."

감시실에서 나온 서아는 문틀에 기대어 후배들이 제 할 일을 다 하고 나갈 때까지 기다리다가 문을 잠갔다.

딸깍하는 소리는 생각보다 커서 TV 소리에 묻히지 않았고, 온갖 기계에 연결된 그들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봤다.

그리고 뭐 하는 거냐고 묻길래 나는 바로 수면 주문을 먹여줬다.

손가락질하며 치켜 든 팔이 내려가고 쓰러지듯 잠든 그로 인해 반대편에 있던 사람이 당황해했지만, 이미 늦었다.

"이거로 둘 다 재우는 건 됐네. 현실에서 처음 써 보는 주문은 어때?"

"눈에 보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그래서 어떻게 하면 치료할 수 있어?"

"네가 한번 해 볼래?"

"난이도가 쉽다면."

"요즘 유행하는 걸로 비유하자면, 우산 모양의 달고나 뽑기보다 훨씬 더 어려운 정도일까."

"달고나가 요즘 유행해?"

"아, 야근하느라 너는 못 봤구나."

간단한 문화 생활조차 누리지 못하다니.

앉아 있던 서아의 머리를 위로하는 의미로 살짝 쓰다듬어 주고는 기절하듯이 잠든 녀석의 위로 올라갔다.

이들은 영혼과 육체에 괴리가 있기 때문에 둘 중 하나만 손봐주면 된다.

하지만 육체를 건드렸다가 어디 하나 촉수라도 달리면 안 되므로 영혼 쪽을 건드려야겠다.

"한 번 어떻게 하는지 느껴볼래?"

"응? 어떻게?"

"여기 손을 대고 마력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확인해 봐."

나는 서아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영혼을 세공하기 시작했다.

마치 반지에 맞지 않는 보석을 여기저기 깎아내는 것처럼 작업하고 나니 시간이 꽤 지나 있었다.

그동안 집중하면서 눈도 떼지 않은 서아에게 어땠냐고 물어보니 대답이 참 가관이었다.

"어땠냐고? 모르겠는데. 처음엔 그래도 따라 할 수 있을 거 같았는데 가면 갈수록 너무 복잡해가지고 이해를 못하겠다."

"어차피 얘는 끝났고 저기 하나 남았는데 무슨 상관이야."

"내일 똑같은 사람이 올 수도 있잖아?"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그렇게 말하고 나서 다른 녀석에게도 똑같이 영혼을 세공했고, 서아의 남은 업무를 마무리하고 나서 우리는 방으로 돌아왔다.

"아이고, 오늘도 참 힘들었다."

"오늘 수업은 자습이다."

"오! 웬일이래?"

"넌 몰라도 상관없어."

나는 마치 고등학교 교사처럼 자습하라고 말한 뒤 서아의 방을 나와 위층으로 향했다.

익숙한 기척과 마력을 쫓아 걷다 보니 건물의 맨 위층의 호화로운 방까지 도달했다.

이런 방과 어울리지 않게 유명 패스트푸드 점의 햄버거를 먹던 결사단 한국 지부의 간부, 박수현은 나를 보자 눈이 크게 뜨였다.

그리고 사레가 들렸는지 기침을 하면서 마시던 콜라를 뿜고 말았다.

기도와 콧속 점막을 자극하는 탄산에 괴로워하는 그를 위해 주문을 써 주자 감사하다고 말하며 티슈로 입가를 닦았다.

"콜록, 여파가 좀 오래 남네요. 그런데 제 집까지는 어떤 용무로…."

"요즘 하는 실험, 너무 대충하는 거 아니야?"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한 연구를 돕는 것도 그렇고, 다른 분들은 자기가 할 연구 때문에 바쁘다고 해서 대부분 신입 마법사입니다."

"네가 나서면 금방 해결될 연구 아닌가."

"그렇긴 하지만 저는 썩은 물이 맑은 물을 더럽히는 게 싫습니다. 제 딴에는 우리나라의 경제 대부분을 책임진다고 말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많거든요."

"그 늙은이가 거슬리긴 하지. 하지만 다른 방법도 있지 않나."

"어떤 방법 말씀이십니까?"

나는 벽 한쪽을 전부 차지하는 거대한 창문을 통해 보이는 서울의 야경을 구경하다가 대답했다.

"그 늙은이의 복제 인간에다가 주문으로 여러 가지를 해 두면 편해질 텐데 말이지."

"저도 그 마음은 굴뚝 같지만 제약이 있습니다. 일단 국가와의 계약으로 사회를 어지럽힐 일은 하면 안 됩니다."

"그 정도는 이해한다. 그 대신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늙은이—회장과 맺은 계약입니다."

"어떤 계약이지?"

"결사단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테니 불로불사에 대한 연구를 해 달라더군요. 물론 자신의 몸에 어떠한 위해나 제약도 가하지 않는 방향으로요."

"교활하군."

"장사꾼이 늙었으니 그럴 만도 하죠."

그는 한숨을 내쉬며 내 옆에 앉아서 함께 야경을 구경했다.

"그렇다면 내가 손을 써 주도록 하마."

"예?"

"그런 귀찮은 계약은 힘으로 파기하면 그만이다.내일부터는 빠르게 진행하도록 하지."

"네. 알겠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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