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의식
* * *
요즘 실험실의 분위기는 북적거리며 많이 활발했다.
지난번의 성공 이후로 대부분의 실험체가 정상적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들을 수용할 방이 모자라서 안 쓰는 방을 청소하느라 연구원들만 더 피곤해졌지만 표정은 나아졌다.
하지만 서아는 내가 잠시 나갔다 들어온 날 이후로 갑작스레 늘어난 성공률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까지 대단한 비밀도 아니고 물어본다면 제대로 대답해 줄 건데 내 앞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연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신경 쓰지 않고 오늘 들어온 실험체 다섯의 상태를 살펴봤다.
저번에 내가 했던 것들보다는 모자랐지만 금방 죽을 거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늙었을 때 남들보다 더 고생하는 정도일까.
계속해서 몸을 갈아탈 사람에겐 그다지 신경 쓰일 부작용은 아닐 거다.
영혼과 육체의 괴리감에서 오는 부작용은 해결했으니 남은 건 성장시키기 위해 투여한 약물인데 이것도 괜찮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밀 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일반인과 별 차이가 없었고, 오히려 이전 육체보다 더 건강했다.
사실상 태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이니 깨끗한 상태일 거다.
황사나 매연으로 오염받지 않은 폐, 야외로 나간 적이 없어 자외선도 쐰 적 없는 피부, 이외의 기타 등등.
오히려 이전 육체와 같으면 그게 더 이상할 거다.
이건 알고 싶지 않았지만 장 내부에 새균도 없어서 대변에서 악취가 나지 않는다나.
체내에 잔류하는 약물도 없어서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고 서아는 말했다.
보고서가 작성되어 올라간다면 회장이라는 늙은이도 안심하고 자신의 몸을 제단 위에 올리겠지.
그게 자신의 최후일 것도 모른 채로.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서아가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폭소했다.
"갑자기 왜 웃어?"
"지루했던 나날이 이제서야 끝나가니 기쁘지 아니한가?"
"그런 말투는 도대체 어디서 배워오는 거야? 그래도 그건 나도 동감이네. 너한테 배운 주문으로 매일 악몽도 꾸지 않고 멀쩡했지만 뭔가 꺼림칙했거든."
"뭐가?"
"멀쩡히 숨 쉬는 사람의 배에다가 메스를 갖다 대도 아무런 반응 없이 눈 뜨고 있는 모습을 보면 섬뜩하면서도 불쌍했거든. 근데 주문을 쓰면 그런 감정이 갑자기 싹 사라지니까 내가 싸이코패스가 된 느낌이었지."
"그래도 넌 그런 마음을 느끼지 않았느냐."
내가 서아의 가슴팍을 앞발로 쿡쿡 찌르며 그리 말하자 그녀가 볼을 붉히며 내 꼬리를 잡으려고 했다.
"읏, 요 음란한 고양이가!"
"그건 네 머릿속에 음란 마귀가 자리한 게 아닐까?"
여느 때와 똑같이 서아의 손을 피하면서 놀려댄 나는 도망치는 척 건물의 최상층으로 향했다.
기척을 숨기고 마치 어딘가의 흑막처럼 창밖을 보며 와인을 홀짝이던 그에게 다가가니 어떻게 발견한 건지 뒤돌아서 내게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라니아 님."
"이런, 기척을 숨기고 왔는데 들켰네."
"창문에 비쳐서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뭐 하는 건가. 무슨 영화에 나올 법한 흑막처럼."
"라니아 님도 그렇게 느끼셨습니까. 다른 결사단 분들도 제가 이러면 어딘가의 흑막 같다면서 웃었습니다."
그가 실눈을 뜬 채로 입가를 가리면 자그마하게 웃자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 이건 와인이 아니고 주스입니다. 높은 자리에 앉았다고 업무 시간에 음주하면 안 되니까요."
정말 생긴 것과는 다르게 성실한 사내다.
저번에 회장과 같이 있을 때는 예의상 눈을 뜨고 있었지만, 평소에는 수련한다고 눈을 감은 채로 상시 마법을 사용하면서 지낸다.
저러니까 젊은 나이에 간부까지 올라왔겠지.
"그래서 네 보고서를 받은 회장의 반응은 어떤가."
"기뻐했습니다. 연구원들의 보고서가 긍정적이라면 바로 실행하겠다더군요."
"너무 순탄하게 흘러가는군. 미끼가 너무 달콤했던 모양이야."
"계약서만 믿고 그러는 게 분명합니다."
"나라는 재해는 상정하지도 못 했겠지."
어찌 예상할 수 있을까.
재밌겠다고 개입한 나를.
덕분에 그는 결사단을 위한 꼭두각시가 될 것이다.
그가 제단에 스스로 오를 날이 너무나도 기대된다.
***
그날 밤 나는 슬슬 때가 된 거 같아 서아에게 문장을 새겨 주기로 결심했다.
침대에 누워 폰을 보던 그녀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꾸욱 누르자 마사지라도 해 주는 줄 알고 자세를 바꿔 엎드렸다.
"뭐 하냐."
"응? 마사지 해주려는 거 아니었어? 괜히 기쁘다 말았네."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이야기다."
툴툴대며 자세를 원상태로 바꾼 서아는 폰을 내려 두고 내게 물었다.
"중요한 거라니. 혹시 내 복수에 관한 거야?"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내가 예전에 말한 제자 이야기 기억나나?"
"당연하지. 내가 셋 째라며?"
"그래. 지금까지는 다른 마법사들이 알아볼 수도 있어서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이제는 때가 되었지."
"얼마나 엄청난 건데 그래?"
"사실 네가 만났던 마법사들은 한 명을 제외하면 전부 쭉정이라 망설일 이유도 없었지만."
"엥."
솔직히 저번에 의식장에서 돌아다녔는데도 날 발견하지 못했던 걸 생각하면 내가 문장을 새겨놔도 못 알아볼 거다.
박수현의 말로는 대부분이 신입이라지만 너무한 거 아닌가.
주머니에서 송곳이 찌르고 나오는 것처럼 두각을 나타내는 녀석은 하나도 없이 일반인이나 뒷담하는 한심한 것들 뿐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아닌 소수의 마법사들, 특히 의식장에서 화려한 로브를 입었던 그 녀석도 내가 어슬렁거리는 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전부 본 건 아니지만 한국 지부를 이끌어 갈 인재가 너무 부족한 거 같아 슬프다.
내가 만들어낸 인재가 하나 더 추가될 예정이긴 하지만 잘 해낼 수 있을까.
"이걸 한다면 앞으로 연구원으로서 살기는… 상관없겠네."
"괜찮아. 어차피 나는 적당히 먹고 살면서 노는 게 꿈이었거든. 제대로 놀고 싶은데 일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직장을 때려치지도 못 해서 답답했어."
"그럼 시작하마."
"뭘 하는지 설명 안 하고?"
"곧 알게 될 거다. 눈은 절대 뜨지 말고."
나는 마력을 일으켜 견고한 성벽을 쌓는 것처럼 주변을 막았다.
매우 일부라고 해도 본체가 현현하는 것은 재능 없는 자라고 해도 근처에 있다면 느낄 수 있을 테니까.
혹시라도 눈을 뜰까 싶어 양쪽 앞발로 서아가 눈을 뜨지 못하게 조치한 후 침대 아래에서 기어 나온 촉수를 천천히 움직였다.
괜히 공포감을 줄 수도 있으니 곧바로 심장으로 직행시키자 서아가 반응했다.
"윽, 뭔가 차가운 게 몸을 통과한 느낌인데."
"조금만 기다리면 끝난다."
"빨리 끝내, 읏!"
목소리가 점점 이상해지며 볼이 빨개지는 걸 무시하며 촉수를 좀 더 빠르게 움직이니 문장은 금방 새길 수 있었다.
가쁜 숨을 내뱉는 서아는 부끄럽다는 듯이 팔로 눈을 가리고는 휙— 등을 돌렸다.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냐."
"이상한 소리 냈잖아."
"그런 거는 신경 쓰지 말고, 뭔가 변한 거라도 느껴지나?"
"변한 거?"
한 번 마력을 순환시킨 서아는 집중하며 무언가 바뀐 걸 찾아보려고 했으나 눈을 찌푸리더니 벌떡 일어났다.
"전혀 모르겠는데."
"그야 당연하지. 이건 그런 용도가 아니거든."
"그럼 도대체 왜 한 거야?!"
"그건 나중에 알게 될 거라니까. 하나 알려줄 수 있는 건 이제 마법을 사용할 때 마음껏 해도 돼."
"그건 왜?"
"내가 말했었지. 마법 중에서는 위험한 것들도 있다고."
"응, 잘못하면 미치광이가 될 수 있다며?"
"그런 걱정은 이제 끝이야. 그게 네 정신력을 소모하는 걸 막아줄 거거든."
"그렇구나. 하아암—"
그러고 보니 곧 잘 시간인데 문장을 새기느라 많이 피곤해졌나 보다.
아직 배울 것들이 한참 남았지만 오늘은 쉬게 해 줄까.
오늘 서아의 꿈은 행복했다.
***
몇 주 후.
회장이 보낸 유전자로 만들어낸 육체가 드디어 완성됐다.
그 늙은이는 기뻐하며 하루라도 빠르게 의식을 하길 원했고, 드디어 오늘 그의 삐뚤어진 소망이 이루어 질 것이다.
거대한 의식장, 그 가운데에 서 있는 박수현과 그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내가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저기 보강된 마법진 위에는 신입 마법사들이 도열해서 서 있었고, 이윽고 휠체어에 탄 노인이 정장을 입은 사내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들어왔다.
미리 오른쪽 제단에 눕혀져 있던 육체를 바라보는 그의 탐욕스런 눈빛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젊을 때는 참 멀쩡하게 생겼는데 말이야."
'그러게 말이에요. 곱게 늙지 못해서 저리 된 게 분명합니다.'
대놓고 면전에서 뒷담을 하던 우리는 늙은이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오늘의 의식… 반드시 성공할 수 있겠지?"
"당연하죠. 제가 나섰으니 실패는 전혀 없습니다."
"믿음직스럽군. 김 비서, 자네는 저쪽에서 보고 있게나."
"예, 회장님."
정장을 입은 비서는 그를 부축해서 제단 위에다가 올려 두고는 문 가까이로 가서 제단을 바라봤다.
그러자 박수현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서는 위압적인 목소리를 냈다.
"그럼 지금부터 의식을 시작하겠다."
——.
모두가 동시에 주문을 영창하며 마력을 마법진에다가 불어넣자 어두우며 차가운 빛이 의식장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진행되자 회장의 몸에서 영혼이 나왔고, 그의 영혼이 옆에 있던 육체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붙잡았다.
그와 박수현이 연결된 실을 찾아 끊어내자 영혼이 당황스러워하는 게 보였지만 그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빠르고 정확하게 양 손목과 발목, 머리와 심장에다가 주문을 새겨넣자 저항이 점점 약해지더니 결국, 내게 굴복했다.
그걸 이제 다른 육체에다가 집어넣으려고 하는데 아래쪽에서 소음이 들려왔다.
—탕!
어째서 총소리가 들려오는 것일까.
나는 일단 영혼을 집어넣는 작업을 마무리하며 아래로 내려가려고 했으나 엄청난 마력 파동이 이곳을 덮쳤다.
"으윽!"
"우와앗!"
신입 마법사들은 강력한 파동으로 인해 몸의 힘이 풀린 건지 대부분이 풀썩하며 쓰러졌다.
"불청객들과… 제가 모르던 마법사가 있군요."
"총소리가 들렸는데 이 녀석과 관련된 거 같구나."
"일단 당신, 알고 있는 걸 전부 불어야 할 겁니다."
"대체 무슨 소리— 윽, 으아아!"
저기 있던 무언가 알고 있을 비서에게 박수현이 손짓하자 머리를 감싸며 쓰러졌다.
그러고 나서 다시 일어난 비서의 눈은 초점이 없었고, 무언가 질문하려고 그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다시 한번 소음이 이곳을 덮쳤다.
—콰아앙!
그와 함께 익숙한 마력이 느껴졌다.
'이건… 하윤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