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평범한 여고생(?)
* * *
내가 녀석들을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무의식적으로 일으킨 마법.
피아를 가리지 않고 공격한 덕분에 내가 만들어 둔 보호막이 전부 깨져나갔지만 다행히도 나와 친구는 무사했다.
인간의 형체는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그저 고기 덩어리가 된 비서와 경호원들은 깨져나간 공간의 틈으로 조금씩 빠져나가며 사라지고 있었다.
저 너머로 이글거리는 눈동자와 날카로운 이빨이 보였지만 기분 탓이겠지.
속이 엉망진창이 된 걸 느끼면서 올라오는 피를 되삼키며 뒤에 있던 친구가 멀쩡한지 확인하니 그녀는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야, 괜찮— 욱, 우웨엑!"
당황해하며 어딘가 다친 거라도 있는지 급하게 살펴보려다가 속이 불타오르는 것 같은 느낌에 무릎이 휘청이면서 계속해서 삼켰던 피가 다시 역류했다.
마치 내가 수도꼭지라도 된 것처럼 계속해서 토하다 보니 피가 너무 빠져나갔는지 어지럼증과 함께 이명이 들려왔다.
삐—
그와 함께 어떤 속삭임이 들려왔다가 무언가가 가로막듯이 끊어졌다.
이러다가는 정말 죽겠다 싶어서 친구의 팔을 잡고 서서히 수복되고 있는 복도를 바라보니 지원이라도 불렀던 건지 다른 경호팀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웁, 우욱!"
피가 낭자하고 벽에는 금이 가서 이상한 풍경을 보여주는데 태연히 있을 수가 없겠지.
하지만 금방 정신 차린 저들은 품에서 권총을 꺼내 나를 겨눴다.
'이제는 마력도 다 떨어졌는데….'
나는 탈력감으로 가득 찬 몸을 간신히 움직여 양손을 내려다 봤다.
내가 토한 피인지 저기 있는 사람이었던 게 터지면서 내게 튄 피인지 구별도 안 갈 정도로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이대로 쓰러져 있기만 해도 시체처럼 보일 것처럼 창백했지만 내가 너무 성급했던 모양이다.
어떻게 살아가나 싶었는데 결국 죽는 운명인 걸까.
점점 흐릿해지며 감기는 눈꺼풀에 순응하며 그저 빠르게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콰직!
총성이 이렇게 이상했던가.
방금 연구실에서 들었던 건 귀가 멍멍할 정도였는데.
죽일 거면 빨리 죽일 것이지 왜 이리도 질질 끄는지 답답했던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깨진 벽 너머의 우주 공간으로 보이는 곳에서 새하얀 팔이 튀어나와 권총을 아작낸 것이다.
그다음으로 나온 것은 아직 어려 보이는 여자였다.
하지만 생긴 것과 다르게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휘둘러진 팔은 머리 두 개 정도는 더 커 보이는 경호원을 벽으로 처박아버렸고, 공간의 틈에 끼어 버린 그는 믹서기에 고기가 갈리는 것처럼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다.
동료의 죽음에 위험하다고 느꼈는지 빠르게 총구를 돌린 그들이었지만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다.
저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마력.
원래 내가 가졌던 것과는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탕!
총성이 울리자 그녀가 표정을 찌푸리기에 혹시 어디 다친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기우였다.
그녀가 손을 피자 경호원들의 손에 쥐어져 있던 권총이 그 위로 모여들었고, 그대로 주먹을 쥐자 권총이 뭉쳐져서는 구체가 되었다.
"괴, 괴물…!"
"어서 도망쳐!"
그걸 보자 그들은 기겁하며 도망치려 했지만 복도는 투명한 무언가에 막힌 것처럼 누구도 통과시켜 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이판사판으로 덤벼드는 경호원들을 한 명씩 주먹 한 방으로 모두 제압한 그녀는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어? 왜 나한테 다가오지?'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걸까.
방금까지 한 일이라곤 나쁜 새끼들을—
'아. 좀 규모가 큰 마법을 쓰긴 했는데 그거 때문인가.'
덕분에 나는 지금 죽을 거 같지만 그 이전에 저 아이한테 맞아서 죽을 거 같았다.
일단 고양이가 올 때까지 시간을 끌자.
걔라면 어떻게든 해결…하겠지?
"저, 저기! 넌 누구야?"
"난 이하윤, 평범한 여고생이야. 당신은?"
'방금까지 경호원들을 간단하게 제압했으면서 무슨 소리야!'
"나는 한서아야. 저기… 나는 저 나쁜 녀석들한테 죽을 뻔한—"
"당신이 세 번째구나."
"응?"
"안녕. 그러니까… 사매?"
나는 아무래도 어처구니없는 스승을 가졌나보다.
***
오늘은 토요일.
주말의 시작이며 대부분의 사람에게 있어 단비와도 같은 날이다.
이런 날에 평일 동안 쓴 에너지를 자면서 보충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친구들과 옷을 사러 가기로 약속했다.
지하철을 타고 약속 장소에서 친구와 만난 나는 먼저 점심을 먹고 가게를 찾아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쿠웅.
일반인이라면 느낄 수 없는 마력의 파동.
그것이 미세하게나마 땅을 타고 여기까지 흘러왔다.
잠시 눈을 감고 집중해서 기감을 늘리니 발원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민아야."
"응? 왜?"
"잠깐 좀 갔다 와야 할 곳이 생긴 거 같아."
"혹시 그쪽 일이야?"
"응."
내가 그리 말하자 민아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어서 가라고 말했다.
일단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돌아다니다 보니 금방 아무도 없는 뒷골목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단검은 없지만, 그 좌표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
저번에 흑마법사 녀석을 조용히 처리하기 위해 넘어갔던 공간.
그곳을 이용해 마법의 발원지로 이동할 거다.
저번에 신 님이 고양이로 나타났을 때는 당황스러우면서도 좋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이 수상했다.
인간의 몸이 더 편할 텐데도 기어이 고양이의 몸으로 나타나서는 유희를 하러 내려왔다고 말했다.
'덕분에 나야 좋았지만.'
아무래도 이브의 경우처럼 어쩌다 보니 문장을 새겼겠지.
다시 한번 기감을 퍼뜨리자 문장이 새겨진 사람의 마력이 폭주해 상태가 위험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사람에게 다가가는 사람들까지.
어떻게 생각해도 그리 호의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나는 저번에 단검으로 공간을 갈라 지정된 좌표로 이어 붙이던 감각을 떠올렸다.
지금은 단검이 없지만, 그런 것쯤이야 주먹으로 해결하면 된다.
오른손에다가 마력을 모아 벽을 향해 후려치자 벽에 금이 가더니 무너지는 게 아닌 유리창이 깨져 나가는 것처럼 공간이 깨졌다.
그 너머로 보이는 곳을 향해 들어가니 저 위쪽으로 가만히 있는 신 님이 보였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굳이 말은 걸지 않고 다른 문장의 기척을 찾아 뛰다 보니 금세 내가 깨트리지 않은 공간이 보였다.
그 틈 사이로 검은 정장의 누군가가 권총을 들고 있는 거로 봐서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나는 재빨리 손을 뻗어 권총을 잡아서 으깨니 플라스틱이 간단하게 부서지는 게 손에 느껴졌다.
그대로 공간의 틈을 넘어 권총의 주인을 가볍게 때리자 엄청난 비명과 함께 벽에 부딪치더니 틈에 끼어서 갈려 나가고 말았다.
"끄아악!"
"아."
실수로 힘 조절을 제대로 못 했다.
마지막으로 싸웠던 기억이 그 짜증 나는 흑마법사 녀석이었는데 그때는 아예 전력으로 때렸었으니.
그나마 닿기 직전에 힘을 빼서 산산조각이 나지는 않았지만 결국 죽고 말았다.
권총을 들었으면 일반인에서 약간 강한 정도라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지금부터 잘하면 된다.
나는 감았던 눈을 뜨자 초고속 카메라라도 돌린 것처럼 모두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빨라진 거지만.'
그동안 했던 경험들.
양아치라던가 반인반어의 괴물을 때려잡았을 때의 힘을 떠올린다.
어느 정도로 때려야 죽지 않을지 시뮬레이션을 마친 나는 사고의 가속을 멈췄다.
그러자 모두 빠르게 나를 향해 총구를 돌렸지만 보통 납탄 따위로는 보호막을 뚫을 수 없다.
그저 내 귀만 시끄럽게 하겠지.
—탕!
바로 귀 옆에서 폭죽을 터뜨리는 것만 같은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눈을 찌푸린 나는 그냥 죽여버릴까 생각했지만 벌을 주는 건 나중에 판단하고 나서 해도 충분할 터이다.
'그래도 시끄러운 건 싫으니까.'
마력을 움직여 저들이 들고 있는 총을 전부 내 손바닥 위로 가져온다.
그리고 그걸 한 점으로 뭉쳐 고물 덩어리로 만들자 전의라도 상실한 건지 도망치려고 들었다.
"괴, 괴물…!"
"어서 도망쳐!"
어림도 없지.
신 님의 제자, 그러니까… 뭐라고 불러야 할까.
'아무튼 죽일 생각을 했으면 죽을 각오도 했어야지.'
이곳은 막다른 복도이니 저쪽에다가 보호막만 만들어도 빠져나가진 못했다.
보이지 않는 벽을 두들기며 죽고 싶지 않다고 울부짖던 저들은 결국 자포자기한 건지 내게 덤벼들었다.
물론 배나 턱에다가 살짝 주먹을 갖다 댔더니 알아서 기절했지만.
여기 쓰러진 사람들이 공간의 틈에는 닿지 않았나 확인한 후 나는 저기 거의 쓰러져 가는 언니에게 다가갔다.
뭔가 두려워하는 표정인데 내가 저 사람들을 전부 쓰러뜨려서 그런 걸까.
그렇다면 일단 자기소개를 해서 딱딱하게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봐야겠다.
"저, 저기! 넌 누구야?"
"난 이하윤, 평범한 여고생이야. 당신은?"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당황한 듯이 입을 벌렸다가 다시 표정 관리를 했다.
"나는 한서아야. 저기… 나는 저 나쁜 녀석들한테 죽을 뻔한—"
"당신이 세 번째구나."
"응?"
"안녕. 그러니까… 사매?"
그 말을 듣자 서아 언니는 표정을 숨길 생각도 못 하고 당황했다는 걸 그대로 보여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