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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80화 (80/154)

〈 80화 〉 여행

* * *

결사단의 도서관, 누군가가 본다면 마법계의 아카식 레코드라 부를 수 있는 이곳은 다양한 지식이 기록되어 모여 있다.

서아가 연구하기 위해 가져갔던 인조 인간의 제조법이 담긴 책도 연금술의 한 갈래에서 나온 책이고, 내가 의도한 방향은 아니지만 흔히들 말하는 흑마법도 많이 기록되어 있었다.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조금만 깊이 파고들면 인신 공양은 기본인 마법이 왜 여기 있는가 싶지만 아무래도 내 영향을 많이 받은 모양이겠지.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냐하면….

"생각보다 책이 좀 많다?"

수백 년 동안 모아온 책은 바벨탑을 쌓아도 남을 정도로 많았다.

저걸 읽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책이 늘어날 게 분명하니 이곳은 니알라토텝이 말한 진실을 찾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삼아야겠다.

그렇다면 생각나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그건 바로—

"여행을 가자고요?"

"여행이 아닌 답사지만 일하는 건 나 혼자일 테니 너에게는 여행이 맞겠지."

"아싸!"

—현장 답사이다.

요즘 이런저런 일로 정신이 힘든 서아와 그녀의 친구는 물론 최근 들어 몇 번밖에 못 본 듯한 저택의 이브와 에반, 제임스까지 함께 가기로 했다.

혹시나 싶어 하윤이에게도 물어봤지만 학교에 가야 한다고 해서 안타깝게도 하윤이와는 같이 가지 못했다.

물론 방법이야 있긴 하겠지만 무슨 소감문을 써 오라니 해서 귀찮다고 방학이 되면 가겠다고 말했다.

결국 남자 둘과 여자 셋, 그리고 고양이 하나의 기묘한 모험이 시작되었다.

"일단 처음 행선지는 미국이다."

"미국이면 나쁘지 않네. 아닌가?"

"치안은 잘 모르겠지만, 웬만한 일은 동행하는 녀석이 해결해 줄 거다."

"누구랑 같이 가길래 그래요?"

"일단 너랑 네 동기… 이름이 뭐지?"

"이서현."

"걔랑 저번에 내가 말한 이브와 에반, 제임스가 있네."

"나머지 둘은 누군데?"

"한 명은 너보다 뛰어난 마법사고, 한 명은… 글쎄다."

요즘 결사단에서 지내서 그런지 누구나 마법을 쓰는 거 같아서 제임스의 존재감이 더욱 희미해지는 것만 같았다.

걔도 옛날에는 딥 원들 뚝배기도 부수고 다녔는데 말이지.

저번에 이브와 에반이 대련할 때 이후로 본 적도 없어서 뭘 하고 다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보면 내가 만든 첫 시나리오의 주인공이기도 한데 후발 주자에게 가려져서 이제는 완전히 공기나 마찬가지다.

"일반인인데 좀 강하지."

"내 선배님인 평범한 여고생처럼?"

"아니, 하윤이랑 비비지도 못 하는데. 그래도 너랑 네 친구 지키기엔 충분해."

"서현이라니까."

"아무튼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만 예약하면 말해."

"엥? 내 돈으로 가?"

"그럼 누구 돈으로 가는데."

"아니, 뭐, 결사단의 창시자라는 분께서 조금만 힘을 써도…."

이 녀석이 처음에는 말실수라도 한 번 하면 죽을죄를 지었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요구한다.

내가 바라던 모습이긴 하지만 너무 건방지게 변한 느낌인데.

"그럼 박수현에게 말하렴. 결사단에 내가 나타나면 난리가 날 텐데 네가 가야지."

"으엑. 그 사람은 분위기가 좀 그런데 그냥 그 사람한테 말 한마디만 하면 안 돼요?"

"안 된다냥."

"아 정말—!"

서아가 싫어하는 말투로 장난스레 대꾸해주고 뻗어오는 손을 피해 저택으로 이동하자 눈앞으로 이브의 얼굴이 보였다.

그래서 고개를 숙여 보자 공부라도 하고 있었는지 펼쳐져 있는 두꺼운 마도서를 내가 깔고 앉아 있었다.

생긴 모습을 행동이 따라가는 걸까.

갑자기 허공에서 고양이가 나타나 깜짝 놀란 이브는 옆에 있던 내 화신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봤다.

"깜짝이야! 갑자기 왜 고양이가…."

"나다."

"네?"

"정확히는 내 세 번째 화신이지."

"안냥."

"안녕…하세요?"

"오늘 아침부터 잘 주무셨냐고 인사 받았는데 지금 또 받는구나."

"읏! 이렇게 놀리기 있어요?"

"하하, 미안하구나. 그러고 보니 이런 약속을 했었지."

나는 마력을 움직여 인형을 만들어냈다.

"자, 분명히 화신을 만들 때마다 인형도 하나씩 만들어 주기로 했었지?"

"우와…. 그걸 기억하고 계셨네요."

"당연하지. 누구와 관련된 일인데."

이브는 내 손 위에서 마력이 움직이며 실처럼 짜여나가는걸 보며 감탄하더니 완성된 인형을 껴안고는 침대로 향했다.

그러고는 이전에 만들었던 인형들 옆에다가 장식해 두고는 다시 의자로 돌아왔다.

"그런데 고양이 모습으론 왜 나타나신 거예요?"

"아, 맞다. 우리 여행가기로 결정했다."

"정말요?"

"그럼 내가 거짓말이라도 할까?"

"아니요!"

이브는 오랜만의 외출에 기쁜 모양인지 눈을 반짝이며 날 쳐다보고 있었다.

'오랜만이 아니라 저택에 오고 나서는 처음인가?'

원래는 역사 공부 겸으로 결사단을 만드는 여정을 함께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내가 예상치 못한 위협이 이브에게 다가가기라도 할까 봐 망설였다가 이제서야 외출을 하게 되었다.

"일단 여행 장소는 미국이다."

"이예에에— 에? 미국이요?"

"네 고향도 미국이었지. 하지만 어지간히도 땅이 넓으니 다른 지역은 다른 느낌이 나지 않겠느냐."

"그건 그러네요."

그러고 보니 이전에 생각했던 실험이 떠올랐다.

"그럼 공부 열심히 하려무나. 일정이 정해지면 우린 몸만 챙기면 되니까."

"네에—."

나는 잠시 어떤 화신으로 움직일지 삐걱거리다가 세 번째 화신으로 방을 나왔다.

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 문을 열자 펑범한 방이 나타났다.

평범한 침대와 옷장, 책상과 그 위의 무언가 흐릿한 게 떠다니는 병까지.

바로 이전에 하윤이를 울렸던 그 녀석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책상 위로 올라가 병을 흔들어 보니 절규하는 영혼의 얼굴이 보였다.

—끼에엑!

코르크를 통해 녀석의 비명이 흘러나왔지만 멀리 퍼지지 못하고 금방 사라졌다.

결사단에서 노닥거리는 동안 이 녀석이 존재하는지 확인했어야 했는데 깜빡하고 말았다.

"이번에 여행이라도 가면서 겸사겸사 확인하면 되겠지."

만약 동일 인물로서 존재한다면 병 안에 감금된 영혼을 풀어내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도 확인할 거다.

나는 다시 병을 툭 쳐서 영혼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며 동시에 수복되도록 두고는 방을 나왔다.

에반과 제임스에게도 여행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

여행 당일.

나는 세 번째 화신으로 서아의 어깨에 올라타 공항의 검색대를 통과했다.

뒤이어 온 그녀의 동기—이름이 아마 서현이었을 거다—도 무난하게 지나서 비행기 시간을 기다렸다.

"왜 굳이 어깨 위에 올라타서 떨리게 만들어?!"

"재밌으니까. 심장 고동이 귀에 들릴 정도였어."

"이이익!"

나와 서아가 투닥거리며 싸우는 걸 그동안 간단하게 마법을 배운 서현이 구경하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출발 시간은 어느새 가까워졌고 창가에 앉은 서아의 무릎에 앉은 나는 창밖을 구경했다.

아스팔트로 길게 깔린 활주로.

덜컹거리던 비행기는 점점 속력을 높이며 비행을 시작했고 잠깐의 부유감과 함께 평생 함께할 거 같았던 지상과 잠시 이별했다.

저 아래의 공항이 점점 작아지며 비행기는 정해진 경로를 따라 이동을 하기 시작했고, 서아와 서현은 각자 준비해온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이 본다면 무슨 오래된 책이라도 읽나 생각하겠지만 신비에 발을 들인 사람이라면 기겁을 할 거다.

그도 그럴게 지금 읽고 있는 게 신화서니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첫 장을 펼치고 몇 구절만 읽어도 정신력이 팍팍 깎여나가며 좋게 미치거나 나쁘게 미치는 게 대부분이겠지만 서아는 내 문장 덕분에 끄떡 없었고 서현도 저번에 나의 일부를 보고 나서 약간이지만 내성이 생겼다.

혹시 복도를 걷다가 호기심에 힐끔 쳐다보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건 그 사람의 책임이니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애초에 서아가 만일에 대비해 평범한 책으로 보이도록 환각을 덧씌워서 그럴 일도 없겠지만.

'칫.'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이 안에 의사는 없냐고 묻는 장면을 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내가 툴툴대면서 서현이 묻는 질문에 간간이 대답하며 가만히 있자 서아가 수상하게 생각했는지 나에게 질문했다.

"혹시 무언가라도 꾸미는 건 아니겠지?"

"내가 뭘."

"장난꾸러기인 네가 가만히 있다는 게 너무 수상해."

"내가 무슨 어느 마을의 사신도 아니고 매일 사건을 일으킬리가 없지 않으냐. 서현아 안 그러냐?"

"어, 나는 그, 뭐라고 해야—"

"끅, 커허억!"

"꺄아악! 아빠!"

나와 친구 사이에서 서현이가 고민하고 있던 와중 저 건너편에서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다급한 발소리도 들려오더니 이윽고 내가 원했던 대사가 들려왔다.

"여기 승객 분들 중에 의사분이나 간호사분이 계신가요!"

승무원 두 명 중 한 명은 계속해서 쓰러진 사람을 살펴봤고, 다른 한 명은 어딘가로 달려가더니 이윽고 방송이 들려왔다.

[승객 여러분 중 의사나 간호사분이 계시다면—]

이후로도 영어로 방송을 한 번 더 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와 함께 온 승무원이 쓰러진 사람에게 다가갔고 의사처럼 보이는 이가 그를 진찰했다.

"…역시라고 해야 하나."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만."

"사건을 몰고 다니는 고양이 씨."

"냥냥펀치 마렵게 할래?"

"미안."

"쿡쿡쿡. 가끔 보면 나보다 오래 지낸 친구처럼 투닥거린다니까."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후 서아와 서현은 잠들었고, 나는 잠시 창밖을 보다가 꿈으로 들어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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