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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82화 (82/154)

〈 82화 〉 여행

* * *

그날 새벽, 서아와 서현의 꿈을 연결해 공부를 이어 나가던 나는 불평불만을 듣게 되었다.

"아니! 여행까지 왔는데 이렇게 공부를 해야겠어?"

"네가 아직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겠냐. 게다가 서현이도 같이 해서 공부 시간은 거의 절반으로 줄었는데 문제라도?"

"그럼 이론 수업만 하지. 왜 갑자기 전투 훈련이야?"

"내일, 아니 오늘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주변 구경 좀 하다가 저녁 식사를 하고 35구역에 갈 예정이다."

"35구역이면… 좀 유명한 곳 아닌가?"

"나도 TV에서 봤는데."

"근데 그게 전투 훈련이랑 무슨 상관이야?"

35구역에 간다는 말을 듣자 많이 유명한 건지 둘은 반응을 보이다가 의문을 표했다.

"TV에선 무슨 음모론이 나왔지?"

"외계인이 UFO를 타고 오간다던가 그런 이야기?"

"게다가 미국 정부에서 군사 기밀 지역이라고 못 박아서 역으로 더 이상하게 생각하더라고요."

"너희들은 배운 게 있으니까 신화 속 생물은 알고 있겠지?"

"…설마?"

"그 설마가 맞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외계인이 실험실로 쓰는 장소가 그곳에 있지."

그렇게 내가 35구역의 비밀을 말하자 모두 놀랐다는 듯이 입을 벌리며 깜짝 놀랐다.

애초에 결사단에서 5년 정도를 연구하며 지냈으면서 그거 하나 예상치 못한 게 더 이상할 정도인데.

하지만 매일 음모론만 생각하며 살리는 없을 테니까 그러려니 했다.

"녀석들이 호의적으로 다가올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거기 35구역을 지키는 경호 업체 직원들은 사람 아니야?"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들인데 굳이 건들 필요는 없지 않느냐."

"…맞는 말이네."

"이외에도 같이 연구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그들은 안 건들고 있지."

"건들면 정부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실험체들은 기웃거리며 몰래 잠입한 녀석들로도 충분했나보지."

나는 이전에 관찰했던 녀석을 떠올렸다.

원래라면 삼엄한 경계로 인해 들어가지 못했겠지만 내가 약간 손을 써가지고 들어갔던 거로 기억한다.

안에서 이상하게 개조당한 실험체들을 보다가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미고도 하나 사살해 버려서 결국 통 속의 뇌가 되었지.

이후로는 명왕성으로 끌려갔을 텐데 어떤 상태일지 궁금하긴 하다.

고문이라도 당하고 있지 않을까.

"아무튼 혹시라도 싸울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렇게 하는 거지."

"내가 나설 일이 있기는 할까?"

"그래도 저번처럼 꼴사나운 모습은 안 보일 수 있겠지."

"응? 꼴사나운 모습이 대체—"

"우왁! 우와악! 그만!"

"그건 말이다. 저번에…."

"멈춰!"

예전에 서아가 악몽을 꿨을 때를 떠올리며 미소를 짓자 부끄러운 모양인지 서아가 비명을 질러가며 내가 말하려는 걸 막았다.

이러다간 삐져가지고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할 거 같아서 말하지 않기로 약속까지 했지만 계속해서 입이 근질거렸다.

서아가 꿈에서 깰 때까지 공부는 무사히 진행되었고 아침이 밝았다.

***

우리들은 거리를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를 구경했다.

어제의 결사단원은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곳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만 아는 맛집도 소개시켜주며 무난하게 이끌어갔다.

그렇게 저녁까지 즐겁게 돌아다닌 일행 중에서 이브는 기대된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제 슬슬 35구역으로 가자는 거겠지.

"이봐. 자네는 35구역에 대해 아는 게 있나?"

"예? 어, 자세히는 모르지만 외계 생명체가 자리 잡은 곳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미 정부에서도 자세히 파고들지 말라고 했거든요."

"그럼 좋은 경험이 되겠군."

"네?"

"일단 호텔로 돌아가지."

이곳은 길거리는 물론이고 골목에도 사람이 하나둘은 있어서 마법진을 그리기엔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다행히도 그다지 멀리까지 나오지 않은 우리는 빠르게 돌아갈 수 있었고, 나는 좌표를 떠올리며 마법진을 그려 나갔다.

걸리적거리는 침대도 약간 옆으로 치운 다음 여러 명이 올라갈 수 있도록 크게 마법진을 그려 낸 나는 빨리 올라오라고 말했다.

서아의 어깨 위에 앉아 모두 올라왔는지 확인한 나는 바로 마력을 불어넣어 35구역 근처의 숲으로 이동시켰다.

벌레 우는 소리로 가득한 숲에 우리들이 나타나자 침묵과 함께 수풀에서 무언가 부시럭거리며 도망치더니 다시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네비게이션이라도 된 것처럼 방향을 알려주며 빨리 가라고 재촉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지역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안에서는 방탄복을 입은 경비 업체 직원들이 두 명씩 짝지어서 순찰을 돌고 있었고 그 루트에는 빈틈 같은 게 거의 보이지 않았다.

"우와아. 경비가 참 살벌하네."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음…. 저길 보면 철조망에 용접된 흔적이 보이는데 최근에 몰래 들어간 사람이 있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저렇게 삼엄해진 건가."

"그럼 우린 어떻게 들어가지?"

서아가 그렇게 말하자 나는 가만히 서 있던 결사단원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그녀는 당황해하며 왜 자신을 보냐고 물었다.

"저, 저는 왜 쳐다보시는…."

"아니, 뭐, 저기에 단체로 환각이라도 걸 수 있나 생각해봤지."

"두 명에서 많게는 다섯까지는 가능할 거 같은데 아무래도 저 정도의 규모면 제단은 물론이고 오래 걸릴 거 같은데요…."

그녀가 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목소리가 낮아지기에 나는 재빨리 그녀를 위로해줬다.

"괜찮다. 어차피 저들 전체에게 환각을 걸 생각은 없었으니. 저기 순찰을 돌고 있는 두 명에게만 걸어도 충분할 거다."

"그걸로 충분해요?"

"무엇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다르지. 기웃거리는 사람을 보여준다던가 하면 지원을 부를 거다."

"아하."

"그럼 저기 보이는 녀석들에게 하겠습니다."

그녀는 눈을 감고 거의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주문을 외우더니 일 분도 안 돼서 완성시켰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움직이던 손전등의 빛이 다급하게 움직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경계를 서고 있던 직원들이 왔다.

"약간 시간을 벌었으니 빨리 들어가자꾸나. 잘못하면 방금 환각으로 보인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까."

"저 철조망은 어떻게 해야 하지? 우린 공구 같은 것도 없고, 마법을 쓰면 들킬 거 같은데."

"그건 제가 맡도록 하죠."

내가 철조망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게 만들까 고민하고 있을 때 에반이 나섰다.

그는 검지 손가락 끝에 자그마한 불꽃을 만들더니 조심스레 철조망에다가 갖다 댔다.

그러자 새하얀 불꽃에 닿은 철조망이 순식간에 빨갛게 물들더니 녹아내렸고, 어느 정도 반복하자 간단하게 지날 수 있을 정도로 구멍을 만들어냈다.

그 구멍을 통과해 지하 연구소로 들어갈 입구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던 우리는 방금 일어났던 소란이 잠잠해진 걸 느꼈다.

모여 있던 빛들이 흩어지며 원래의 루트로 다시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두 줄기의 빛은 이쪽으로 향했다.

이러다간 들키겠다 싶어서 빠르게 움직이다가 갑자기 제임스가 자세를 낮추더니 빠르게 그들에게 다가갔다.

순식간에 그들의 뒤로 도달한 그가 한 명의 뒷목을 손날로 쳐 기절시키고, 다른 한 명은 팔로 목을 졸라 경동맥을 압박했다.

그러자 뇌로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의식을 잃은 그를 천천히 내려 둔 다음 그들의 어깨에 달려 있던 손전등의 전원을 꺼버렸다.

이걸로 시간은 벌 수 있을 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경비들의 부재를 알아차릴 터.

그 전에 빠르게 입구를 찾아야 한다.

'입구가 분명히 이 근처였는데.'

이전에 봤을 때는 여러 명이서 지키고 있어서 찾기 간단했었다.

설마 이전의 그 녀석 때문에 입구를 잘 찾지 못하도록 하려고 분산해서 있는 건가.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

나는 저기 기절해 있는 둘에게 주문으로 목줄을 채웠다.

그러자 일반적인 사람처럼 양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서는 게 아니라 마치 무언가가 그들을 공중으로 끌어당긴 것처럼 일어선 그들은 이성 하나 없는 눈동자를 움직이며 움직였다.

"연구실까지는 그냥 들어가도록 하자꾸나."

"무슨 방법이라도 있어요?"

"저기 저들을 따라가면 된다."

마치 자기 서식지로 돌아가는 비둘기처럼 연구실로 돌아가는 경비원들을 발견한 일행은 내 말에 안심하며 그대로 따라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손전등도 켜지 않고 가는 그들을 발견한 다른 경비원들이 방금 전의 침입자인 줄 알고 다가왔다가 동료인 걸 알아차리고는 뭐 하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나는 대답으로 그들을 기절시켰고, 겸사겸사 손전등도 같이 망가뜨려주며 나아가다 보니 숨겨져 있던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수고했다는 의미로 그 둘도 같이 기절시켜 주고는 잠겨 있던 문을 간단히 열고 들어가자고 말했다.

"드디어 35구역의 실체를 두 눈으로 볼 수 있겠네."

"다른 경비원이 오기 전에 빨리 들어가기나 해라."

소리 없이 들어간 우리들은 조심스레 문을 닫으며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전에 봤던 복도와 별다를 게 없는 곳을 천천히 나아가니 실험실을 찾을 수 있었고, 그곳에는 역시나 이상하게 변한 인간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상반신만 남아서 서로 연결된 두 남성이라던가, 살색 슬라임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그냥 고깃덩이로 보이지만 살아 숨 쉬는 무언가에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걸 본 일행들은 끔찍한 실험에 헛구역질을 하거나 표정이 완전히 굳었고, 특히 제임스의 표정은 압권이었다.

이전의 딥 원들의 의식이라도 떠오른 건지 미고를 만난다면 금방이라도 죽여 버릴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게까지 후회하고 있는 그를 다시 그때로 되돌려 보낸다면 어떤 행동을 보일까.

너무나도 궁금해서 참을 수 없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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