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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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로 육체를 개조당해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미고의 발달된 의학 때문에 죽지도 못 하는 그들이 불쌍하다면서 일일이 영원한 안식을 선물하며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이 연구실은 도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CCTV 같은 것도 하나도 없었고, 우리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으며 나아갈 수 있었다.
'그동안 침입자도 좀 있었을 텐데…. 이런 인체 실험은 기록도 남기지 않겠다는 건가?'
어차피 미고는 카메라에도 잡히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귀찮은 방해가 들어오지 않아서 난 좋지만.
아무튼 비명을 지르려는 건지 몸을 부들거리던 입이 없는 고기 덩어리나 통 속의 뇌 등을 전부 죽여가며 더욱 깊이 들어가다 보니 순찰을 돌고 있던 미고를 만날 수 있었다.
저번에 봤던 것과는 다르게 번개총을 가지고 있던 녀석은 우리를 보자마자 바로 번개를 발사했다.
눈을 가리는 섬광과 함께 뒤늦게 들려오는 우렁찬 소리가 귀를 때려오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 일행 중 한 명에게도 닿는 일은 없었다.
내가 미리 말해 둔 미고의 특징과 그것이 들고 다니는 무기에 대한 설명을 들은 에반이 미리 보호막을 영창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마법사가, 그것도 번개를 막을 정도의 실력자가 이곳을 찾아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미고는 재빨리 뒤돌아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내 밑에서 배운 마법사의 저주가 그리 만만할 리가 없으니까.
경직이라도 된 것처럼 움직이던 자세 그대로 꼿꼿이 굳어서 괴상한 동상처럼 되어 버린 그건 들고 있던 번개총을 떨어뜨렸다.
아직 연구원 기질을 버리지 못한 서아와 서현이는 그대로 다가가 번개총을 주워 이리저리 살펴보며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건지 궁금해했고, 그 사이에 제임스는 슬그머니 미고에게 다가가 주먹으로 머리를 내려쳤다.
그러자 인터넷에 나도는 밈처럼 머리가 움푹 패이며 조용해진 그것은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시체는 사라지겠지만 그래도 길을 막고 있으니 옆으로 치우고 복도를 쭈욱 나아가니 또 다른 미고가 나타났다.
물론 그 녀석도 방금 녀석과 똑같이 조용해졌고, 우리는 실험실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무언가 복잡한 기계 장치와 커다란 모니터, 그리고 그 아래에는 움직일 수 있는 카메라와 스피커가 있었다.
이곳까지 오는데 다른 통로는 없었으니 여기까지 오면서 죽인 미고가 이 실험실에서 생활하는 전부이거나 다른 곳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이 이상으로 죽여댄다면 미 정부에서도 가만히 있을 거 같지는 않다고 뒤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결사단원이 있기에 죽일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이게 무슨 장치인지 궁금해하는 서아가 책상에 있던 서류를 가져와 읽으면서 기계 장치를 조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모니터가 켜지면서 사람의 형상을 보여줬다.
갈색이 섞인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전형적인 평범한 서양인의 얼굴이 나타났고, 그 얼굴은 잠시 후 눈을 뜨더니 입을 열었다.
"히익! 제발 날 원래대로 돌려줘!"
역시나라고 해야 할지, 이 사람은 미고가 만든 통 속의 뇌 중 하나였다.
화면 속의 그—라고 해야 할지 이제는 뇌 밖에 남지 않은 사람—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자 아래에 있던 카메라도 그에 따라서 움직이며 실험실 안에 있던 우리들을 촬영했다.
그것이 전기 신호로 변해 저기 기계 속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뇌로 전달되자 실험복도 입지 않고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함께 있는 우리들을 구해주러 온 사람이라고 여긴 건지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서는 누구나 알아차릴 법한 기쁨이 담겨져 있었다.
"오, 신이시여! 드디어 제 기도가 닿았군요!"
"당신은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나요?"
"어… 저는 평범하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저를 납치하지 뭡니까?!"
'거짓말이군.'
외계 생물의 정체와 비윤리적인 실험실의 정체를 알리기 싫은 미 정부는 그렇게 남들의 눈에 띄는 짓은 하지 않았을 거다.
분명히 35구역 근처를 기웃거리거나 몰래 들어왔다가 잡힌 녀석이겠지.
이젠 간도 남지 않았지만 간 크게도 태연하게 거짓말을 한 이 녀석을 어찌할까 생각했다.
'뇌 밖에 남지 않은 녀석을 가지고 뭘 할 수 있을까.'
그냥 다시 전원을 끄고 이대로 나가 버린다면 이 녀석은 다시 악몽 속으로 빠져들 거다.
그걸 아는 우리 일행들은 이대로 가지 않고 저 녀석에게 영원한 안식을 선사하겠지만.
"혹시 여기 연구원들이 무언가 하진 않았나요?"
"그 새— 아니, 그 자식들이 저 처럼 생긴 인형을 가지고 불태우지 뭡니까?! 하마터면 깜빡 속을 뻔했죠!"
"인형이요?"
"예.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었는지 피부에 난 털 하나하나까지 일일이 만들었다니까요!"
"그렇군요…."
이건 저번에도 봤던 수작이었다.
이젠 되돌아갈 몸도 없지만 계속해서 부정하고 있는 거겠지.
"제가 당신을 자유롭게 만들어 드릴게요."
"오오! 무슨 방법이 있습니까?"
서아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돌아왔고, 에반이 앞으로 나섰다.
"저, 저기요?"
그 모습에 불길함을 느꼈는지 다급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나왔지만 에반의 주문이 더 빠르게 완성되었다.
그의 손에서 파직거리던 번개가 기계를 강타하자 대부분의 회로를 태우면서 스피커와 카메라는 물론 다른 기계 장치도 완전히 망가트렸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그것은 내부에 숨겨져 있던 통 속의 뇌마저 감전시켰고,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완전히 익혀 버렸다.
이후로도 실험실에 무언가 남지 않았는지 확인한 다음 우리는 호텔로 돌아왔다.
***
다음날 아침은 모두 분위기가 안 좋길래 오늘 하루만 즐기도록 내버려두고, 그다음날.
나와 일행들은 아침부터 첫날에 결사단원이 말해줬던 딥 원들이 교배 실험장으로 쓴다는 마을로 왔다.
오늘의 목적은 제임스에게 과거의 기억을 상기시켜 주며 나중을 위한 씨앗을 심어두는 것.
그걸 되새기면서 마을의 풍경을 살펴봤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건물 하나 없는 그 마을의 가장 높은 건물은 다름 아닌 교회였다.
하지만 교회하면 떠오르는 십자가는 어디 갔는지 첨탑에는 커다란 종만 달려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저곳이 다곤 밀교를 섬기는 장소겠지.
바닷가 쪽으로는 그나마 암초가 적은 쪽으로 자그마한 항구를 만들어 놨고, 그곳에는 커다란 배가 두 척 있었다.
그리고 바다 저 너머로 커다란 섬이 보이는 게 지도나 인터넷에서는 무인도라고 나왔지만 당연히 저곳은 혼종이 살고 있는 곳이 분명했다.
예전 같았으면 이 마을에서 살아도 충분했겠지만, 교통과 통신이 발전한 요즘은 옷 밖으로 보이는 비늘만 찍혀도 세상이 난리날 테니까.
여행객 따위는 몰래 슥삭해 버릴 수도 있지만 그것도 요즘은 어려울 거다.
금방 경찰이 들이닥쳐서 정체가 탄로날 수도 있으니까.
결국 19세기 중반부터 한정된 마을 주민들로 교배할 수밖에 없던 딥 원들의 전초기지인 마을에는 아직 혼종의 징후가 나타나지 않은 젊은이들만이 살아가고 있었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마을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제임스는 특히나 경계를 하며 마을 사람들이 언제 돌변하나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지만 당연하게도 그들은 평범하게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저 바다 아래에 있을 늙은 꼰대 딥 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들도 현대를 살아가는 인물이다.
자신이 조금만 특이할 뿐이지 다른 사람들과 같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외부인이 찾아왔다고 해서 특히 배척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물론 저 아래에서 명령이 오고, 섬에서 지내던 혼종들이 찾아온다면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안전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건들면 민감한 부분이 있었다.
그건 바로 저 멀리 있는 섬.
바깥의 사람들이 본다면 열의 열 명은 전부 괴물이라고 외칠 법하게 생긴 혼종들이 사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런 벌집을 일부러 건드렸다.
"저 섬에 한 번 갈 수는 없을까요?"
"저기엔 독사도 있고 많이 위험해서 가시면 안 돼요."
"제가 연구하러 온 학자거든요. 방호복도 있으니까 만약 다친다고 해도 제가 책임질게요."
엄청난 팔 근육과 햇빛을 받아 자연스럽게 탄 피부를 가진, 나 선원이요—하고 말하는 듯한 사람을 잡아서 계속 저 섬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당연히 그는 거절하며 우릴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끈질기게 달라붙는 덕분에 점점 인내심이 바닥나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얼굴이 완전이 붉어진 그가 큰 소리를 내려고 입을 열려고 하자 제임스는 그의 입을 틀어막고 한쪽 골목으로 끌고 갔다.
주문을 통해 미리 사람이 오지 않도록 한 에반은 혹시 몰라 골목 너머가 보이지 않도록 가렸고 그 안에서는 찰진 타격음이 여러 번 들려왔다.
그제서야 섬으로 보내주겠다는 말이 들려왔지만, 어차피 넘어갈 방법이야 넘쳐나는 우리에겐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결사단원이 음산하게 주문을 외우며 머릿속을 읽는다니 어쩌고 말했지만, 그러다간 백치가 된다는 이브의 말에 시무룩해하면서 다시 돌아왔다.
제임스의 심문으로 우리가 아는 진실을 제외하고도 흥미로운 사실을 말한 그는 완전히 포박되어 재갈까지 물린 후 골목에 남겨지게 되었다.
"자, 그럼 이제 저 섬으로 넘어가자꾸나."
이번에도 마법진을 그려 섬 안으로 이동하니 무언가가 이상했다.
날씨의 변덕이라기엔 이상할 정도로 맑은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가득 찬 것이었다.
이윽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 섬에는 폭풍우가 불기 시작했고, 나는 저 바다 아래에서 마법을 쓰고 있는 딥 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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