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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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는 다급하게 골목으로 들어갔지만 상황은 이미 끝나 있었다.
남성은 상반신이 완전히 으깨진 채로 하반신만이 척추를 약간 드러낸 채로 나뒹굴고 있었고, 여성은 결국 미쳐 버렸는지 눈앞에서 쇼고스가 식사를 하고 있는데도 히죽히죽거리면서 웃고 있었다.
여성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쇼고스는 실망스러웠는지 남은 하반신을 한 번에 삼킨 후 빠르게 여성을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뒤에서 뛰어오던 에반이 그걸 보자마자 바로 번개 화살을 날렸고, 그거에 맞은 쇼고스는 잠시 움찔거리더니 부글거리던 눈동자들을 이쪽으로 돌렸다.
쇼고스가 의태하고 있던 인간의 모습을 버리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자 에반은 정신력이 급격히 감소하는 걸 느낀 건지 눈을 꼭 감으면서 옆에 있던 제임스의 눈도 가렸다.
그러면서 괴로움에 찬 소리를 내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두통이 찾아온 모양이다.
일인분은 할 수 있는 마법사가 하나 빠졌지만 아직까진 상황이 괜찮았다.
이브가 보이지 않는 손을 만들어 쇼고스를 최대한 멀리 밀어내며 손을 꽉 쥐어 압축시키려 들었지만, 오히려 그것은 손가락 사이로 점액질의 몸을 빼내어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 사이에 서현이가 수면 마법으로 미쳐 버린 여성을 잠재워 뒤로 빼냈고 서아는 보호막을 여러 겹 만들어서 쇼고스가 최대한 다가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어둠 속에서 녹색 빛을 내뿜으며 빠르게 다가온 그것이 보호막을 유지하고 있던 서아를 그대로 으깨버리려 달려들자 보호막이 간단하게 깨지고 말았다.
당황한 서아는 깨진 보호막을 복구하기 위해 주문을 외우다가 혀를 씹었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다가 정신을 차렸는지 다시 고개를 올렸지만 이미 늦었다.
쇼고스가 한 번 몸통 박치기를 할 때마다 보호막은 유리창을 망치로 내리치는 것처럼 간단히 깨져나갔고 더 이상 둘의 사이를 가로막는 방해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브는 서아를 지키기 위해 다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쇼고스를 멀리 보내려고 했지만, 어떻게 보기라도 한 건지 높이 뛰어서 간단하게 피하고는 그대로 서아를 뭉개버리려고 했다.
"으아아! 외계 슬라임이 날 죽이려 한다!"
서아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뒤로 구르며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했고, 그 노력에 응답해서 나는 한 끗 차이로 피할 수 있도록 서아를 약간 당겨 줬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뒤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에반이 서 있는 자리까지 바닥에 금이 갔고 서아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최대한 뒤로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쇼고스가 그걸 가만히 지켜볼리가 없었고 녹색의 파도가 곧 서아를 덮쳤다.
얼마나 뒤로 물러가던 한 번에 덮쳐서 죽여 버리겠다는 듯이 자신의 몸을 넓고 높게 늘린 쇼고스가 겁먹은 서아의 표정을 음미하며 천천히 다가가던 그때 작은 불씨가 갑작스레 나타났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만 같던 불씨가 천천히 날아가 쇼고스에게 닿자 갑자기 덩치를 불리면서 불길을 날름거렸다.
뒤에 있던 에반은 그 일격으로 대부분의 마력을 소진했는지 지친 기색이 한가득이었다.
모든 것을 불태우려는 탐욕스러운 불길은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쇼고스의 덩치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다.
벽이나 바닥에 점액질의 몸을 비비면서 불을 끄려고 시도했지만, 그 모습은 괴로워서 그런 것이 아닌 거슬려서 그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에반이 대부분의 마력을 쓴 주문은 쇼고스의 육체를 게걸스럽게 불태우려 들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나마 서아가 도망갈 시간을 벌어줬다는 점은 약간의 성공이라고 봐야 할까.
이제서야 다리에 힘이 돌아왔는지 간신히 일어선 서아가 멀뚱히 구경만 하고 있던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야! 좀 도와줘!"
"말할 힘이 있는 걸 보면 아직 괜찮은 거 같은데?"
"야! 너 진짜!"
"도와주면 안 돼요?"
이번엔 이브까지 가세해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서아는 괴롭히는 맛이 각별해서 청개구리처럼 대했지만, 이브는 그 반대라서 함부로 대하기가 힘들었다.
이제는 가세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쇼고스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있을 때 갑자기 저쪽 골목 끝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 그림자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생명체를 보고도 태연하게 다가왔고, 주문을 한 마디도 외우지 않고 쇼고스를 멈춰 세웠다.
그러고는 가지고 놀듯이 이리저리 던지다가 한 점으로 압축시키더니 무언가 기억났다는 듯이 압축하던 걸 풀었고, 거의 죽어 가던 쇼고스는 조금씩 움찔거렸다.
"아, 죽여서는 안 됐죠."
"…당신은 누구죠?"
싸움에 끼어들지 못하고 뒤에서 구경만 하던 결사단원은 갑자기 나타난 강력한 마법사를 경계하며 정체를 물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두려움과 의문이 섞여 있었고, 아무래도 결사단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이었나 보다.
'무언가 익숙한 기척인데….'
예전에 봤던 거 같은 느낌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문의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가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별의 지혜 교단을 이끄는 헨리라고 합니다."
"뭣, 별의 지혜 교단?!"
"하하, 두려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 목적은 이미 달성했으니 이제 결사단과 척을 질 필요도 없지요."
신부복을 입은 그는 여유롭게 웃으며 뒤에 있던 결사단원을 안심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그는 안타까워하면서도 할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오늘 노리시던 목표를 제가 어부지리로 잡아버리긴 했지만,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도록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가. 감사를 표하지."
"무얼요."
"자, 잠깐만요! 어째서 위대하신 분께서 저 위험한 자와…?"
내가 별의 지혜 교단을 이끄는 자, 니알라토텝과 태연히 대화하자 깜짝 놀란 그녀는 의문을 품었다.
그동안 결사단을 방해해온 단체의 수장과 이미 안면이라도 튼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자세한 내막을 말해봤자 그녀의 머릿속만 아득하게 만들 뿐일 테니까 나는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나는 저기서 부글거리는 속도와 녹색 안광이 약해진 쇼고스에게 다가가 기억을 추출해냈다.
그리고 저번과 마찬가지로 한입에 삼키자 그동안 경험했던 기억들이 홍수처럼 밀려 들어왔다.
인간의 언어가 아닌 올드 원의 언어를 사용하던 쇼고스에게서 태어난 녀석은 어느 정도 성장하자 인간들이 사는 곳으로 향했다.
안타깝게도 올드 원의 손으로 탄생한 개체가 아닌 그것의 자식이라 그런지 엄청나게 먼 과거까지는 볼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쳐도 꽤나 긴 시간이었다.
인간들의 사이에서 지내던 순간의 기억들은 대부분 틀이 비슷했다.
과거에는 적당한 신분을 꾸미고 어떤 마을에 들어가서 먹음직한 사람을 유인해 죽였고, 현대에는 번듯한 이름까지 가지고는 적당한 회사까지 다니면서 사람들을 사냥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표정을 음미하듯이 바라보며 신체의 말단을 천천히 으깨 비명 소리를 마치 오페라처럼 듣는다.
인간들과 함께 살 때는 그것뿐이라서 다시 머나먼 과거로 기억을 되돌렸지만 바닷속을 유영하며 지내다가 남극에서 재미 삼아 어떤 생명체를 잡아먹는 것이 몇 번 보였다.
그러나 그 생명체는 특별한 부속지라던가 쇼고스에게 저항하는 장면은 없었고, 그저 뒤뚱거리면서 괴상한 소리를 내지르며 도망다니는 모습만 볼 수 있었다.
결국 이번에도 허탕을 치게 된 나는 특이한 맛의 기억 덩어리를 뱉어 마찬가지로 소각해 버렸다.
사실 나는 이렇게까지 다급하게 진실을 찾아다닐 필요는 없었다.
기이한 상황 속으로 일반인들을 떨어뜨리고 그걸 구경하며 재밌게 보내다가 가끔씩 기억날 때마다 찾아다니는 것도 가능했다.
내 본체가 지내는 방도 이전에는 비좁은 방이었지만 이제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어져서 지내는데에는 나쁘지도 않았다.
그러나 궁금증만은 참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길래 니알라토텝이 직접 와가지고 알려 준 걸까.
나는 여전히 미소 지은 채로 가만히 서 있는 그를 바라봤다.
"원하시는 것은 찾으셨는지?"
"실망스럽게도 없더군."
"그렇다면 조언을 하나 해도 괜찮겠습니까?"
"조언?"
"호주에 가면 열쇠 정도는 찾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호주인가.
나는 야생 동물들의 천국을 떠올렸다.
"그곳에서 흔적을 찾으셔야 할 겁니다."
"흔적?"
그가 말하는 흔적이 무엇인지 물어보려고 다시 그를 쳐다봤을 때는 신기루처럼 사라져 있었다.
이번에도 내게 의문만 남긴 채로 사라진 니알라토텝을 욕하면서도 나는 일단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에반은 물론이고 이브와 서아도 마력을 많이 썼을 테니까.
곧 저녁이 가까워지기도 했으니—
"응?"
"왜 그래요? 불길하게."
"아니, 벌써 밤이 되었군."
분명 저녁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긴 했었지만, 시간이 벌써 그렇게 지난 건지 붉던 하늘이 검게 변했다.
인간들이 알아봤자 좋을 건 없으니 쇼고스의 시체를 마저 처리하고 호텔로 도착하자 에반은 침대에 눕더니 바로 곯아 떨어졌다.
나머지 일행들도 저녁을 때우더니 금방 잠에 들었지만, 단 한 사람만이 고민에 빠진 듯이 멍하니 있었다.
제임스는 이번에도 제대로 나서지 못한 것에 자책하며 이러니까 과거에도 사람들을 지키지 못했다며 혼잣말로 자조했다.
쇼고스는 자신들의 창조주인 올드 원조차 이겼는데 제임스가 나설 수는 없었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약해진 마음으로 파고들기 쉬운 법이다.
일단 간단하게 떡밥부터 던지도록 할까.
물고기가 미끼를 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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