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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87화 (87/154)

〈 87화 〉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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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서아가 마법사들에게 복수(물리)를 하고 있을 때, 제임스는 저택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딥 원 주술사를 한 번에 죽일 수 있을지, 그 이전에 지원이 오지 못하도록 모든 이들을 암살할 수 있을지.

물론 그런 고민이야 탈출할 방법 앞에선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마법에 조예가 있거나 물속에서 호흡을 할 수 있지 않은 한 바다 저 아래에 있는 동굴에서 탈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그래서 이브와 에반을 찾아가 마법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뛰어난 전투 센스에 비해 마법에 대한 이해력이라곤 하나도 없는 그는 마력이니 뭐니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고 결국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그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다.

자신이 마법을 쓸 줄 모른다면 남을 시키면 되는 일이 아닌가.

사람이란 완벽할 수 없는 법이다.

물론 제임스가 마법을 사용하도록 만들려는 건 사람이 아니라 딥 원이지만 말이다.

잠시 그의 머릿속으로 마법에 대해 아는 듯한 일행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고개를 저었다.

혼종을 쓰러뜨리고 나서 추측하던 모습을 보면 신화 생물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것이 마법을 잘 쓴다는 의미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택의 서재에 도착한 제임스는 고문법이 담긴 옛 책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이브의 정신 건강에 있어 그다지 좋은 책은 아니니 나중에 없에야겠다.'

어째서 저런 책이 서재에 존재하는지가 의문이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다른 고문법을 구상하는 그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한 손으로는 책을 넘기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펜을 들고 종이에다가 자신이 떠올린 효과적인 고문법을 적어 내리던 제임스의 표정은 무덤덤해 보여서 누군가가 상황을 알고 있더라면 매우 소름 끼쳐 했을 거다.

손톱 아래를 바늘로 쑤신다던가 아예 들어내는 고전적인 고문부터 비늘을 하나하나 떼어낸다는 딥 원 하나만을 노린 고문까지 다양한 것들을 적던 그는 책에 삽화된 다양한 고문 기구들을 잠시 쳐다봤다.

이런 기구들을 쓴다면 더욱 효율적으로 도움을 받을 지도 모르겠지만, 바다 아래에 이런 기구가 있을지부터가 의문이기도하고 만들기 조차 어려울 거다.

이 페이지들은 쓸모없다는 판단으로 기구가 필요한 것들은 전부 넘기다 보니 책 한 권은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책을 덮고 고문법을 적은 종이를 바라보던 그가 무언가 고민하고 있기에 그의 생각을 읽어보니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었다.

딥 원을 잔혹하게 고문한다면 같이 있던 일행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남들이 전부 죽는 걸 지켜볼 바에는 그런 시선을 받는 게 낫다고 그는 판단을 내렸다.

제임스의 의지가 충만해지는 걸 지켜보다가 나는 다른 일이나 하러 발길을 옮겼다.

이번 미국 여행에서 쇼고스를 상대하다가 만난 니알라토텝이 했던 조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호주에 가라고 했었지.'

물론 이번엔 혼자만 갈 생각이다.

서아와 서현이는 결사단에 적응하느라 바쁠 테고, 제임스는 희망을 품은 채로 계획을 다듬어가느라 바쁠 것이다.

이브와 에반은 이번 여행으로 만족한 느낌이었고, 하윤이는 지금 수학여행을 왔는데 분위기가 기묘해가지고 나중에 연락하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하윤이가 간 곳이 분명 과거에 영천현이라던 곳이었던가.

괴력난신을 풀어두고 나서 재밌는 구경을 했었던 곳으로 기억에 남아 있었다.

만일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살펴봐도 괜찮겠다.

***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척박한 사막 위를 누군가가 걷고 있었다.

척박한 환경과 어울리지 않게 검은 정장을 입은 그를 모래바람이 반기며 달려들었지만 의문의 남성이 손을 한 번 스윽 휘두르자 거짓말처럼 금방 잠잠해지고 말았다.

나는 이런 곳에서 니알라토텝이 말한 진실을 찾을 수 있을지가 걱정되었다.

이곳으로 당당하게 발을 옮긴 침입자에게 벌을 내리겠다는 듯이 다시 휘몰아치는 모래바람을 다시 잠재운 나는 걸음을 바삐했다.

보이는 생물이라곤 전갈이나 뱀처럼 이곳에 적응한 동물 뿐인 사막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하던 내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그건 바로 진주빛의 특이한 생명체가 집게발로 든 총을 가지고 허공에다가 난사를 하는 모습이었다.

이전에 봤던 미고의 번개총과는 다르게 생겼지만 섬광이 번쩍이며 마찬가지로 번개를 발사하자 무언가 투명한 것이 그걸 맞고 경직되더니 투명화가 풀렸다.

점점 실체를 드러내며 그 모습을 보이던 와중 환상은 풀렸고, 마치 신기루처럼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바로 이스의 위대한 종족과 날아다니는 폴립이다.

'하지만 저것들을 내가 지구에다가 풀어둔 기억은 전혀 없는데.'

이건 혹시 니알라토텝이 준비해 둔 안배인 것일까.

내가 정해진 장소에 도착하면 환상이 보이도록 장치를 했다거나.

하지만 이곳에는 특별히 마법의 흔적이나 인위적으로 마력이 움직였던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건 원래 크툴루 신화에서 나오는 지구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가라는 뜻일까.

아니면 이스의 위대한 종족을 소환해 질문하라는 뜻일까.

시간의 비밀을 밝혀내어 위대한 종족이라는 칭호를 받은 그들이라면 진실에 대해 알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은 정신만을 옮겨다니는 이들이라 방금 봤던 환상 속의 생명체를 소환한다고 쳐도 그게 이스의 위대한 종족일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시도는 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마력을 끌어올려 잠시 시야를 넓혔다.

그러고는 시공간 너머에서 방금 봤던 생명체를 강제로 끌고 오자 무언가 충격을 받은 건지 모래밭을 뒹굴었다.

혹시 넘어오는 과정에서 무언가 피해 받은 것이라도 있는 걸까.

잠시 동안 부들거리던 그것은 집게발이 아닌 다른 한 쌍의 팔 같은 것으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것의 눈에는 이지적인 느낌이 아니라 나를 경계하는 듯한 본능적인 느낌만이 가득했다.

실망감에 잠시 푹신한 모래밭에 누워 그것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관찰하던 나는 그냥 돌려보내기로 했다.

비틀린 시공간에 삼켜진 그것이 제대로 돌아간 걸 확인한 나는 실망스런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는 그저 한숨만 푹 내쉴 뿐이었다.

'그냥 저택에 돌아가서 제임스나 괴롭힐까.'

아직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지 못했겠지만 오히려 좋다.

자신의 일행들이 죽어가는 걸 보면서 점점 무너져가는 그의 정신을 본다면 지금 이 기분이 풀릴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점점 죽음에 무감각해져가면서 다음 계획을 세우다가 그걸 자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말이다.

나는 모래가 묻은 정장을 툭툭 털면서 저택으로 돌아왔다.

언제나처럼 나를 반기는 최상층의 방.

책상에는 여전히 비명을 지르는 영혼이 담긴 병이 있었다.

미국 여행을 가면서 몰래 이브가 머물었던 병원을 살펴봤더니 명부에는 닮았거나 비슷하게 생겼던 여자아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혹시 몰라 앓고 있는 병이라던가 부모님이 같은 아이는 있지 않을까 살펴봤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결국 허무하게 끝난 실험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고통받고 있는 녀석은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저 녀석을 보면 이전에 찾아왔던 하윤이와 죽었던 친구가 떠오르는데.'

일전에 서아가 지하에서 마법을 펼친 이후 갑작스레 나타난 하윤이의 기척을 생각해 보면 찾아오는 거 정도야 간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고도 눈 깜빡 안하며 죽은 친구를 안은 채로 눈물만 흘리던 걸 보면 무언가 숨겨진 것이 있는 게 분명했다.

물론 직접 다그칠 생각까지는 없고, 하윤이가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지만 말이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의 비명소리가 작아지도록 코르크를 조금 더 세게 누른 다음에 방을 나왔다.

아직까지도 서재에 틀어박혀서는 온갖 책을 읽으며 계획을 수정해나가던 제임스는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책만 계속 읽었다.

그런 그를 위해 가까이 다가가 어깨를 톡톡 두드렸지만, 저녁 식사는 넘기겠다는 말만 하고는 다시 입을 닫았다.

이런 괘씸한 녀석을 위해 끔찍한 환상이라도 보여줄까 싶었지만, 어차피 금방 그가 겪을 일이기에 넘어가기로 했다.

"이봐, 제임스."

"저녁은 나중에… 어라?"

"내가 집사로 보이나? 제임스."

"죄송합니다. 책을 읽는 데 집중하느라 몰랐습니다."

"계획을 세우는 건 좋지만, 직접 행동으로 나서봐야만 알 수 있는 것도 있는 법이지."

"그 말은?"

"지금 바로 시작하지."

제임스는 당황해하며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듣기 싫었던 나는 빠르게 마법을 펼쳤다.

이전과는 다르게 컨테이너 안에서 묶인 채로 시작하도록 환각을 펼친 나는 밧줄로 그를 꽁꽁 묶었다.

그러고는 이전과 똑같이 시작하도록 기절시킨 후 주변에 다른 인물들을 만들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깨어난 남성이 비명을 지르며 꿈틀거렸고, 다른 사람들도 그것에 반응하여 컨테이너 안이 소란스러워지는 걸 구경했다.

잠시 후 깨어난 제임스는 자연스럽게 밧줄을 풀어내고는 다른 이들도 풀어줬고, 당연하다는 듯이 내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자, 이곳에서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리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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