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 외전 기묘한 수학여행
* * *
손짓으로 계속 흐뜨려도 계속해서 뚫어져라 쳐다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무시하고 숙소로 들어갔다.
녀석은 벽 너머는 볼 수 없는 건지 콕콕 찌르는 듯한 시선이 사라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이 전에 정했던 조대로 모여서 열쇠를 받아가라 말했고, 얼마 있다가 열쇠를 가져온 민아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리가 이틀 동안 지낼 방으로 향했다.
열쇠 고리에 걸려 있는 카드에 적힌 호실을 찾아 복도를 걷다 보니 금방 방을 찾을 수 있었고, 잠겨져 있던 문을 열고 들어가 카드를 꽂고 불을 켰다.
방에는 세 명은 넉넉히 앉을 정도의 소파와 낮은 선반 위에 TV가 놓여져 있었고, 다른 방에는 침실로 쓰라는 건지 아무것도 없이 개어진 이불 여러 겹이 장롱 안에 들어 있었다.
거실이라고 볼 수 있는 방에는 커다란 창문과 그걸 가리고 있는 커튼이 있었지만 다른 친구가 그걸 걷어 버렸고 또다시 집요한 시선이 나를 향했다.
이젠 손짓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옆방에다가 이불이나 깔고 누워서 폰이나 봐야겠다 생각하고 있을 때 커튼을 연 친구가 약간 몸을 떨면서 입을 열었다.
"으으, 얘들아. 여기 좀 추운 거 같지 않아?"
"응? 이제 곧 가을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춥지는 않은데?"
"그래? 그럼 난 이불이나 덮어야겠다."
간접적인 시선만으로도 저렇게 오한에 떠는데 그대로 내버려 뒀다가 누군가에게 접근한다면 큰 사고가 일어날 게 분명했다.
게다가 저 산에는 뱀 한 마리만 있는 게 아니다.
지금 날카로운 시선의 주인인 커다란 뱀 한 마리와 그것의 형제인지 새끼인지 크기가 다양한 것들이 우글거렸다.
작게는 새끼손가락만한 것부터 크게는 팔뚝보다도 더 굵은 것들까지.
수학여행이면 분명히 선생님들끼지 사전 답사를 왔을 게 분명하고, 담력 훈련을 위해 저 산에 위험한 건 없는지 샅샅이 조사했을 거다.
그때는 공격하지 않고 그대로 보내줬다는 뜻은 크게 두 가지일 터.
선생님인 걸 알고서 나중에 올 학생들을 기대하며 순순히 보내줬다거나 원래부터 일반인은 공격하지 않는다거나.
전자는 어떻게 동물 따위가…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 정도로 쌓인 마력을 보면 평범한 동물은 아닐 거다.
할머니도 젊었을 때는 망령 뿐만 아니라 원한이 서린 영물도 찾아가서 한풀이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덩치가 거의 송아지만큼 커다란 두꺼비였다는데 분노에 찬 목소리에 다리의 힘이 풀릴 뻔했다고 했었지.
그 말은 즉 슨 전설에나 나올 법한 지성을 가지고 말까지 하는 동물도 어딘가에는 있다는 뜻이다.
저기서 열렬하게 나를 쳐다보는 뱀이 그럴 가능성이 높고.
그러나 저기 산에 틀어박혀 사는 뱀이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을 보고 한눈에 선생님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동네방네 나 선생이오 광고하고 다니면 모를까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까 전자는 패스.
그렇다면 후자인 일반인은 건들지 않는다는 건데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인정하기 싫지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봤을 때 나를 평범하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이었다.
"꺄아악!"
옆방에 이불을 꺼내러 간 친구가 비명을 지르더니 털썩하며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혹시 뱀이라도 나타난 건가 싶어 다급하게 방으로 들어갔지만,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상상도 못한 녀석이었다.
거열형으로 뜯겨져나간 사지를 얼기설기 꿰맨 곳에서 검게 썩은 피를 줄줄 흘리는 녀석이 장롱 안에서 누워서는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어째서 내가…."
"시끄러."
꿈에서 처맞은 거로는 만족스럽지 못한 건지 나에게 별점 하나를 주려고 직접 찾아온 녀석에게 서비스를 주기로 했다.
나는 유구한 예절 주입기, 주먹을 들어 녀석의 얼굴을 힘껏 쳤다.
한 번 더 죽기 직전까지 가면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이해하겠지.
반쯤 녹아 있는 얼굴이 곤죽처럼 변할 때까지 도망치지 못하도록 목까지 잡아둔 다음 계속해서 때리자 녀석의 거세게 저항하던 팔도 이젠 움찔거릴 뿐이었다.
오래 묵은 산삼이 좋다고, 원령도 그와 마찬가지인 걸까.
이전의 흑마법사보다는 아니지만 적당히 단단해서 때리는 맛이 각별했다.
그냥 이대로 성불시켜 버릴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축 늘어진 그의 입에서 새어 나온 자그마한 소리가 나의 생각을 바꾸었다.
"뱀 새끼들… 용서하지 못한다…."
"뭐?"
뱀 새끼라면 혹시 저 산에서 똬리를 튼 녀석을 말하는 걸까.
"설마 저 산에 있는 것들 말하는 거냐?"
"복수할 것이다…."
"아, 진짜."
혹시나 싶어서 물어봤지만 원한에 사로잡혀 이지조차 없는 녀석이 답할 리가 있겠는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수습하는 것뿐이다.
꿈에서의 만남으로 인해 이 방으로 찾아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대로 뒀다가 다른 방에도 나타난다면 큰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자칫 잘못했다간 뱀의 시선을 느낀 망령이 칼부림을 일으킨다면 발견한 사람은 아마 죽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뱀을 죽이기 전까지는 간단하게나마 봉인을 해야 안심하고 돌아다닐 텐데….'
신 님께 배운 주문들은 대부분이 공격을 위한 것들이었다.
할머니는 아무리 사람을 해친 악령이라고 해도 함부로 그 존재 자체를 소멸시켰다간 천벌을 받는다고 걱정했지만, 그걸 들은 신 님은 그저 한바탕 웃기만 했었다.
그래도 나중에 쓸 일이 있을 터니 배워 보긴 하라고 해서 배웠는데 그걸 지금 사용하게 되었다.
원래는 작은 항아리와 하얀 천, 새끼줄과 그것에 묶어둘 부적도 필요했지만, 이 녀석은 내가 적당히 패서 얌전하게 만들었으니 야매로 만들어도 충분할 거다.
나는 버스에서 받았던 생수병에 담긴 물을 싱크대에다가 버린 후 망령을 안에다가 담았다.
그러고는 뚜껑을 돌려서 꽉 닫은 다음 그 위에다가 조그마한 마법진을 그렸다.
할머니에게 배웠던 봉인할 때 쓰는 부적을 약간 변형해서 네모난 종이에 그리는 것을 동그란 두껑 위에 축소해서 그린 것이다.
한자로 봉인 두 글자를 쓰자 틈 사이로 흘러나오던 진득한 원한도 사그라들었고, 혹시 몰라 좀 더 견고하게 만들어두니 어떤 퇴마사가 오더라도 안에 들어 있는 망령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할 거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혹시 크기가 맞지 않아서 페트병이나 망령, 둘 중 하나는 찌그러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망령이 병의 크기에 맞게 작아져서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새 망가졌던 얼굴은 원래의 일그러진 형태로 돌아왔고, 녀석은 의식이라도 잃은 것처럼 고개를 숙인 채로 조각처럼 가만히 있었다.
변태가 아닌 이상 남의 가방까지 뒤져서 안에 든 생수병을 가져갈리가 없으니 병은 집에서 챙겨 온 작은 크로스백에다가 넣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기절해 있는 친구를 위해 이불을 깔아 눕히고는 얇은 이불을 덮어줬다.
장롱에 있던 망령은 그다지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가 없을 테니 그녀의 이마에다가 손가락을 대고는 기억을 지워 버렸다.
나중에 일어난다면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겠지만, 피곤해서 그런 게 아니냐고 하면 알아서 납득하겠지.
나는 망령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높은 저 뱀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다.
원래 같았으면 내일의 담력 훈련은 무사히 끝났겠지만, 내가 망령과 엮이면서 저 뱀도 많이 흉폭해진 모양이다.
녀석이 하던 말을 생각해 보면 뱀에게 무언가를 당해가지고 죽은 듯한데 그렇다면 뱀이 저렇게 나오는 게 이상하다.
무작정 증오를 품고 사람에게 해코지하는 유해 동물이 아니라면 아마 서로 한 방씩 주고받은 것이 분명했다.
하나는 동물이고 하나는 사람이니 내가 누구의 편을 들지는 자명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언제 퇴치를 해야 할지가 문제인데….'
내일은 숙소 외부로 나가 돌아다닐 예정이기 때문에 여유 시간이 많지 않다.
체험을 마치고 돌아오면 1시간 정도의 자유 시간 이후로 장기자랑 같은 걸 하는 레크리에이션 시간이고 그 직후 담력 훈련을 한다.
아프다고 변명해서 빠져나가려고 해도 내가 평소에 보인 게 있어서 선생님이 간단하게 속아넘어가지 않을 거다.
결국 취침 시간 직후가 적당한 시간대일 텐데 만아는 몰라도 다른 친구가 언제 잘지 걱정이었다.
귀신에게 시달리던 걸 주먹 한 방으로 해결한 이후 동경한다는 듯한 눈을 반짝이며 따라다니는 걸 그대로 두다 보니 어느새 친해졌었지.
그러다 보니 민아는 내가 귀신과 관련된 걸 해결하러 간다고 해도 이해했다.
자신처럼 괴로움을 겪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기에 그런 거겠지.
수학여행을 왔으니 밤을 새면서 친구들과 노는 건 상관없지만, 이 방으로 다른 애들까지 끌고 오지 말고 그냥 얘 혼자만 다른 방으로 갔으면 좋겠다.
나는 복도에서 저녁 시간이라며 나와서 줄 서라고 말하는 반장의 목소리에 기절했던 친구를 깨웠고, 그녀가 기억의 공백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기도 전에 빨리 가자고 등을 떠밀었다.
인솔하는 선생님을 따라 계단을 내려와 1층에 도착하니 뷔페가 있었고, 커다란 접시에는 각양각색의 맛있는 요리들이 푸짐하게 조리되어 있었다.
곧 있을 전투를 위해 든든하게 배를 채운 나는 방에 도착하고 나서 주문들을 만들고 겹치며 저장해 두며 기대하고 있는 심장을 조금 진정시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