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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90화 (90/154)

〈 90화 〉 외전 ­ 기묘한 수학여행

* * *

나는 챙겨 왔던 감자칩을 와그작 씹으면서 손바닥 위를 굴러다니는 찬란한 빛깔의 구슬들을 바라봤다.

하얀색에서 노란색으로, 붉은색이었다가 파란색으로 변하는 구슬은 내가 '별'이라고 부르는 주문의 집합체이다.

말 그대로 별처럼 육안으로 보일 정도의 마력이 뭉쳐져서는 그 위를 안정화 주문으로 한 겹 감싸고 있었고, 수많은 마법진이 또 그 위를 덧씌우고 있었다.

안정화 주문을 해제하는 순간 마법진이 게걸스레 마력을 삼킨 직후 정해진 주문을 뱉어내는 이것은 결사단이 생기기 전, 평화롭던 동네를 어지럽히던 교단들을 상대할 때 많은 도움이 됐었다.

간도 크게 자기들을 건드렸다며 나타난 녀석들이 내 모습을 보자마자 어이없어하며 내가 던진 별도 신경 쓰지 않고는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아보려 했었지.

물론 그 결과는 처참했지만.

어떤 주문의 조합이 좋은지 실험양으로 자원했던 그들은 순식간에 숯덩이로 변하게나 얼음 조각상, 온몸이 부패한 시체, 혹은 뼈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기까지 했다.

결국 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폭발과 화염 주문으로 도배하듯이 만들어 낸 별은 단 하나만으로도 교단의 건물을 간단히 파괴할 수 있었고, 주문에 휩쓸리거나 무너지던 건물에 깔린 이들을 제외한 흑마법사들은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날 쳐다봤었다.

눈치가 빨랐던 한 녀석은 그들을 자기 세력에 흡수해서 몸집을 불리고는 알아서 설설 기었는데 요즘은 뭐 하는지 모르겠다.

결사단이 생기기 전에는 교회로 위장하고는 지들끼리 의식이나 벌이고 그랬는데 걔도 결사단에 들어갔을까.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만.'

과거의 인연, 그것도 친구 같은 게 아니라 갑과 을의 관계였을 뿐이니 별로 신경 쓰이진 않았다.

산을 무너뜨릴 생각은 아니기에 예전 것보다는 적은 마력을 압축했지만 여전히 엄청난 위력을 내포한 별은 손바닥 위를 구슬처럼 굴러다니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벗어나겠다는 듯이 빛을 뿜으며 안정화 주문이 삐걱거리는 거 같았지만, 아마도 터지지는 않을 거다.

양쪽 소매에다가 별을 넣은 나는 어두컴컴해진 밖을 살펴봤다.

구름이 달을 가려 지상을 비추는 빛이라고는 우리가 머무는 숙소의 불빛 뿐일 텐데, 저기 깊은 산속에서 노란 달 한 쌍이 여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동물의 감인지 슬슬 내가 나가려고 준비를 하니 커다란 뱀 녀석의 눈빛에 경계심이 가득해졌다.

나는 이제서야 주제를 파악한 건지 코웃음을 치며 망령이 봉인된 페트병을 가지고 창문을 열었다.

민아는 이미 잠들었고, 다른 친구는 복도에서 선생님의 발소리가 안 들릴 때 몰래 다른 방으로 갔기에 잘 놀고 있을 거다.

아마 이 방으로 돌아오지 않고 수다나 떨다가 깜빡하고 잠들어 버리겠지.

"아, 맞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을 보고 선생님이 찾아올지도 모르니 불까지 끈 나는 베란다로 나와 창문을 닫았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하나 같이 대부분의 방이 불이 켜진 채로 작게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혹시 창밖을 보는 사람은 없을까 걱정했지만 창가에 비친 그림자는 없었다.

안심하고 난간을 뛰어넘어 내려온 나는 산을 올라가면서 마력의 실을 퍼뜨렸다.

나무 기둥과 나뭇가지를 타고 점점 옆으로 퍼져나가는 실은 기하학적인 문양을 그려내며 숙소 근처를 감싸는 형태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빠르게 수인을 맺자 실은 마치 성벽처럼 견고해졌고, 앞으로 몇 시간 동안은 큰 폭발이나 화재가 일어나도 숙소 쪽에서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거다.

여름의 끝자락에 다다라서 밤에는 쓸쓸했지만, 그런 추위와는 다른 한기가 흘러오는 곳을 쫓아 달리다 떨어진 나뭇잎 사이에 숨어 있던 작은 뱀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입을 크게 벌려 독니를 번뜩이며 나를 물 것처럼 달려들던 녀석은 안타깝게도 나에게 잡히고 말았다.

"음… 머리가 세모꼴이면 독사였나?"

예전에 봤던 TV 프로그램에서는 머리가 둥근 독사도 있다고 해서 주의하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물론 지금은 내 야식…이 아니지만.'

—뿌드득!

손에 힘을 줘서 뼈를 으스러뜨려도 녀석은 고통스러워하면서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여서 내 팔을 물려고 들었다.

그래서 머리와 몸통을 완전히 분리시켜 던져 버렸는데도 꿈틀거리면서 움직였다.

비위를 상하게 만드는 광경에 눈을 찌푸린 나는 재도 남기지 못하게 소각해 버렸다.

정밀하게 조정했지만 혹시라도 주변에 불씨는 남기지 않았을까 확인한 나는 다시 산을 올라가려다가 귀를 때리는 노호성을 들을 수 있었다.

"네놈이 감히—!

쩌렁쩌렁 산 전체에 울려 퍼진 직후 사방에서 무언가 기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수십 쌍은 되어 보이는 노란 안광이 동시에 모두 나를 쳐다봤고, 마치 내가 빈틈을 보이기를 바라는 것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두려움에 떠는 눈빛이 아닌 사냥감을 쳐다보는 눈빛에 약간 짜증 난 나는 망령이 들어 있는 페트병의 봉인은 신경 쓰지 않은 채 뚜껑을 뜯어 버렸다.

그러자 뒤에 있던 몇몇 뱀들이 달려들었지만,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검을 뽑은 망령이 한 번에 목을 베어 버렸기 때문이다.

뱀에게 복수한다고 말했으니 등을 찔릴 걱정은 하지 않고 소매에 들어 있던 별을 하나씩 양손에 쥔다.

그리고 딱밤을 튕기는 것처럼 뱀들이 뭉쳐 있는 곳에다가 하나씩 날려서 안정화 주문을 해제하자—

"퍼엉."

—!

미리 보호막을 펼쳐두어 상처 하나 없는 나는 처참하게 터져 나간 나무와 여기저기 널브러진 뱀들의 사체가 보였다.

그나마 멀리 있던 것들은 몸이 터져 나간 채로 불완전하게나마 형태가 남았지만, 별에 가까이 있던 것들은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나무도 가까이 있던 건 재가 되거나 거대한 숯덩어리가 되었고, 다른 것들도 두꺼운 기둥이 쓰러져 있었다.

거기에 불까지 붙어서 잘못했다간 큰 산불로 번지겠지만, 내일 있을 담력 체험을 민아가 기대하고 있었기에 불꽃은 전부 손바닥 위로 모았다.

'이쪽 뱀들은 전부 처리했는데 얘는 어떨려나.'

나는 풀어둔 망령이 잘 싸우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뒤를 돌았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목이 잘린 수많은 뱀.

그리고 어디서 꺼낸 건지 활로 달려드는 뱀의 머리를 정확히 맞췄다.

팔이나 다리가 물리면 역수로 들고 있던 검으로 내려찍던 그는 고통이라고는 느끼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애초에 망령이지.'

선비 같은 차림새와는 다르게 막싸움도 아니고, 그저 기계처럼 뱀을 죽인다는 행위만 반복하던 녀석을 구경하다가 문득 뒤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이제 슬슬 최종 보스가 나타날 시간이긴 하지.'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뒤를 돌자 커다란 뱀이 어둠 속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주변에도 노란 눈이 여러 쌍이 보이는 게 아무래도 모든 뱀을 이끌고 찾아온 모양이다.

—샤아악!

녀석이 위협하듯이 소리를 내자 뒤에 있던 망령이 멈칫하더니 뱀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누린내는! 네놈이구나!"

"너는! 형제를 죽인 원수!"

거의 굵기가 통나무보다 굵은 뱀과 망령은 서로 싸우느라 나와 거리가 멀어졌고, 남은 뱀들은 슬금슬금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 설마 나 짬 처리 당한 거야?"

중간에 나오는 잡몹 러시를 처리하고 나오는 최종 보스.

그걸 빼앗기자 나는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빨리 끝내자."

내가 말한 것이 신호라도 된 건지 뱀들은 모두 동시에 달려들었고, 나는 소매에 들어 있던 별들을 모조리 흩뿌렸다.

"별의 노래."

합장을 해서 안정화 주문을 해제하자 별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엄청난 빛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나를 둘러싼 공기를 없애긴 했지만, 땅이 흔들리는 것으로 봐서는 숙소에 있던 사람들까지 느낄 정도였다.

내가 만든 결계는 빛과 소리가 넘어가지 않는 용도이기에 땅 밑으로 전달되는 진동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그냥 지진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겠지.'

밤사이에 나무는 부러지고, 폭발한 흔적이 잔뜩 생겼지만 터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을 텐데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이럴 때는 든든한 뒷배가 있어야 편할 텐데 말이다.

'잠깐… 지금 서아 언니, 자고 있으려나?'

이전에 만들었던 좋은 인연이 떠올랐다.

서아 언니면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을 무시하지 않겠지.

나는 주머니에 넣어 둔 스마트폰을 꺼내 이전에 교환했던 전화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약간의 신호음 이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서아 언니! 아직 안 잤어요?]

[연구원에게 잠은 사치야.]

[네?]

[너도 이과지? 너는 웬만하면 대학원은 가지 마라.]

[대학원은 대학생이 잘못하면 가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무슨 일이야? 너네 수학여행 갔다며?]

[네. 오긴 왔는데 조금 문제가 생겨서….]

[…네가?]

서아 언니는 나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오해했는지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답했다.

[저는 멀쩡한데 자연은 멀쩡하지 못하죠. 아하하.]

[그거 때문에 전화 걸었구나?]

[혹시 안 되나요?]

[잠깐만 연락 좀 돌려볼게. 생명의 은인인데 어떻게 무시하겠어?]

[그럼 조금 있다가 연락할게요. 아직 한 마리 남아가지고.]

—뚝.

전화를 끊은 나는 슬슬 싸움이 끝나가는 그들에게 향했다.

어찌나 산속 깊숙이 들어온 건지 숙소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망령은 뱀의 몸통에 허리가 으스러졌는데도 검으로 상처를 내려 노력했지만, 비늘이 원체 단단한 건지 원한의 차이인 건지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었다.

"네놈! 네놈이…!"

"허, 아무것도 아니었군."

—우드득!

망령을 한 차례 더 감싸 이번에는 온몸을 으스러뜨리고는 땅바닥에 버리자 이번에는 입으로 검을 물고 뱀에게 기어갔다.

"하! 바닥을 기는 게 내 형제를 죽인 녀석에게 어울리는구나."

"절대… 용서치 않겠다."

"네. 거기까지."

마무리하려고 한 건지 무언가를 준비하던 뱀은 갑자기 나타난 나를 쳐다 봤다.

"사술을 부리던 여자구나. 허구한 날 찾아오던 무당 년은 아닌 모양인데."

"무당? 할머니가 무당이긴 하지만 나는 아니지."

"원래 같았더라면 여태까지 남았던 이 녀석만 죽였겠지만… 내 자식들을 죽인 너도 용서치 못한다!"

"나도 짜증 나는 유해 조수는 사양이거든!"

녀석은 입에서 무언가 액체를 뱉었고, 독인가 싶어서 뒤로 피하자 앞에 설치된 보호막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망령의 녹아든 얼굴을 떠올려서 피했는데 생각보다도 위력이 심상치 않았다.

나는 숨겨둔 마력을 서서히 주변에 퍼뜨리면서 녀석의 눈을 바라봤고, 뱀도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마법을 완성하는 건 볼 수 없다는 건지 재빠르게 달려드는걸 뛰어서 피한 후 그대로 드러난 머리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머리를 보호할 다리도 없으면서 그렇게 달려드면 쓰나!"

—쾅!

땅에 처박혀 잠시 기절한 녀석에게 올라타 계속해서 머리를 때리다 보니 발작이라도 하는 것처럼 몸을 마구잡이로 뒤흔들었다.

"우와앗!"

머리에 타고 있는 나를 나무에다가 부딪혀서 떨어뜨릴 생각인지 뱀은 나무를 향해 머리를 휘둘렀지만, 난 이미 빠져나와 있었다.

스스로 자해를 한 뱀은 이제 분노로 가득 찬 건지 노랗던 눈이 이제는 붉게 변했다.

"엥? 뭔가 게임에서 본—"

몇 배는 빨라진 속도로 달려드는 뱀을 간신히 피한 나는 계속해서 마력을 퍼뜨리며 녀석을 살펴봤다.

완전히 정제된 살기와 마력.

아무래도 진심으로 싸우려는 모양이었다.

나도 슬슬 육체를 마력으로 강화할까 싶었지만, 하이라이트를 위해 참기로 했다.

대신 기다란 나무 막대를 주워 마력을 불어 넣고는 검처럼 뱀을 향해 겨누자 다시 한번 녀석이 달려들었다.

녀석의 주둥아리를 후려치며 계속해서 공격을 막자 화가 머리끝까지 난 건지 이제는 막대기를 물고 나와 힘 싸움을 하려고 들었다.

"으윽, 이제 슬슬 내가 본심을 낼 거 같은데!"

"네놈! 지금 날 기만하는 것이냐?!"

"야! 빨리 안 일어나면 내가 죽인다!"

"그게 무슨—"

"이제야 정신을 차렸소. 미안하오."

—푸욱!

뱀의 머리를 관통한 검이 그대로 위로 쭈욱 올라가더니 완전히 두 동강을 내버렸다.

단말마조차 내지 못한 녀석은 그대로 쓰러져 싸늘한 사체로 변했고, 그 위에서 내려온 망령은 내게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이전에는 미안했습니다. 분노와 원한만이 제 눈을 가려서 무고한 사람마저 다치게 만들 뻔했군요."

"그래. 상대가 나여서 다행이었지."

"그리고… 직접 끝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 복수를 도운 것 또한 감사드립니다."

"아니, 뭐, 정신 못 차렸으면 내가 처리하려고 했지."

"후후."

망령의 뜯겨나간 사지를 얼기설기 이어 붙인 흔적과 녹아내린 얼굴이 말끔해지면서 원래대로 돌아왔고, 녀석의 몸이 점점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저는 아무래도 지옥에 떨어지겠죠."

"나는 잘 모르겠네. 지옥 같은 건 믿지 않아서."

"그렇다면 저는 당신의 앞길이 꽃길이길 빌겠습니다."

"고마워."

선비가 사라지자 나는 다시 서아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직접 온 언니와 다른 결사단 분들은 뱀의 사체를 보고는 눈을 반짝이더니 다른 흔적들도 처리하고는 떠났다.

"…피곤하네."

곁에서 제대로 복원하는지 확인하던 나는 결계를 이루던 마력의 실을 흐뜨리고는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민아가 깔아둔 건지 미리 깔려진 이불에 누워 잠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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