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 깊은 해저 속
* * *
노크 소리를 듣고 나온 녀석의 턱을 쳐서 기절시키고 안에 있는 두 명도 마저 제압하는 데에는 1분 조차 걸리지 않았다.
기강이 해이해서 그런지 휴게실이라서 그런지 총기도 근처에 두지 않고 TV나 보던 그들은 밧줄에 묶인 채로 저기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방을 수색하기 시작한 우리는 다곤 밀교에 대한 책이라던가 여러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고, 저기 반대편에 있는 것처럼 회색으로 대충 칠해진 철문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일행들은 탈출구—사실은 무기고—로 보이는 문을 발견하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입안이 씁쓸했다.
저 문 건너편은 탈출구로 이어진 곳이 아니라 무기만 보관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이걸 말한다면 내가 납치범과 한패라고 의심 받을게 뻔하기 때문에 나는 입에 테이프라도 붙인 것처럼 입술을 떼지 못했다.
경찰에 제출할 증거물이라며 온갖 것들을 가방에다가 쑤셔 넣은 에밀리아는 성큼 걸어가 손잡이를 잡아서 돌렸고, 문을 반쯤 열자 눈을 크게 뜨며 행동을 멈췄다.
나를 제외한 일행 모두는 무슨 일이냐며 그녀에게 다가갔다가 문 너머의 광경을 보고 함께 굳었고, 나는 그런 그들이 정신 차리도록 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이게… 뭐야…?"
"…이런."
"이곳이 탈출구가 아니라고?"
"여러분 일단 진정하세요."
이전처럼 발광석이 없는 길 쪽으로 가자고 말할까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그건 오히려 절망감을 부추길 것 같아서 넘기기로 했다.
대신 내 직업을 특수 부대원으로 속였으니 그걸 이용해야겠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구조 상으로는 이곳이 가장 가능성이 높았는데…."
"아직 방법이 있습니다."
"방법이요?"
"그게 뭐죠?!"
내가 그렇게 말하자 일행들 모두가 나를 어떻게 할 것처럼 다가왔고, 내가 진정하라는 듯이 제스쳐를 취하며 심호흡하라고 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상태가 약간은 나아진 거 같았다.
"이건 기밀이라서 일반인들에게 말하면 안 되는데…."
최대한 목소리를 낮게 깔며 경고하듯이 말하자 일행들도 긴장한 건지 내가 무슨 말을 꺼내는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한설 씨라면 알고 계실 거 같은데 저희들을 납치한 이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예?"
"그게 무슨 소리예요? 한설 씨는 그걸 어떻게 알고요?"
"제가 설명할까요? 아니면 한설 씨가?"
"저들에 대해서는 제가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제가 말하도록 하죠."
그는 이걸 말해야 하나 고민하는 건지 한숨을 내쉬다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하아아…. 여러분들 인어에 대해 아시죠?"
"인어 공주요? 하반신이 물고기인데 왕자에게 반해서 목소리를 잃는 불쌍한 캐릭터."
"뭔가 많이 축약된 거 같지만, 그것의 반대를 생각해봅시다."
"반대요?"
"네. 상반신이 인간에 하반신이 물고기라면 그 반대는 무엇일까요?"
"상반신은 물고기에 하반신이 인간?"
"정답입니다! 하지만 온몸이 비늘로 덮여 있고 못생긴 생선을 더 못생기게 만든 것처럼 생긴 역겨운 생물이지만요."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그동안 제임스 씨가 쓰러뜨린 건 전부 인간이잖아요…."
한설 씨는 그걸 듣자마자 저기 구석에 밧줄로 묶여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더니 옷을 들춰 보면서 무언가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이리로 오라고 손짓을 하더니 혼종 경비의 비늘이 돋아난 피부를 보여줬다.
"짜잔. 이것들은 인간이긴 해요. 그 절반만."
"절반만…."
"그런 거 있잖아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신과 인간이 교미해서 반신이 탄생한다던가."
"그럼 사람과 괴물이… 우욱!"
"구와악!"
다들 끔찍한 상상을 했는지 헛구역질을 하면서 표정이 썩어들어갔고, 딥 원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나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상상해 버려서 속이 메스꺼워졌다.
금방이라도 속을 게워낼 것 같았지만, 인내심을 발휘해 참은 나는 계획을 설명하기에 앞서 다른 것들을 알려주기로 했다.
"끔찍한 상상은 빨리 넘기도록 하고요. 제가 여러 곳에 파병을 나가면서 일반인은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게 뭔가요?"
"세상엔 마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죠."
"…네?"
"손에서 벼락이 나간다던가, 인신 공양을 해서 힘을 얻는다던가 말이죠. 그렇죠, 한설 씨?"
"예, 뭐. 저는 그쪽으로 전공을 안 골라서 잘 모르지만, 간단한 주문은 몇 개 외워두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주문을 외우자 그의 검지 손가락 위에 동그란 불꽃이 피어올랐다.
"담배 필 때 라이터 없으면 쓰는 주문이에요."
"그건 마력 낭비라고 보는데 말이죠."
"허, 하하하. 오늘 정말 미쳐 버릴 것만 같은 하루네요. 우리를 납치한 사람은 사실 괴물인데다가 마법까지 실존하다니."
"저도 마찬가지네요…."
갑자기 쏟아지는 정보의 물살에 정신이 휩쓸린 건지 혼란스러워하는 일행들이 내 말에 집중할 수 있도록 나는 헛기침을 했다.
"크흠! 아무튼 제가 이렇게까지 알려지면 위험한 비밀을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혹시 그건가요?"
"…그게 뭔가요."
나처럼 망원경을 통해 의식장을 확인한 그라면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은 볼 수 있었을 거다.
"저희들이 여기 올라오기 전에 저랑 제임스 씨가 망원경으로 거길 확인했었잖아요."
"거기에 뭐라도 있나요…?"
"네. 혼종… 그러니까 딥 원과의 혼혈이 아닌 진짜. 옷을 입은 거로 봐서는 주문까지 쓸 줄 아는 주술사랑 바닥엔 마법진까지 새겨져 있었죠."
"그걸 보고도 저희에겐 아무런 말도 안 했어요?!"
"아니, 저는 마법 전공이 아니라니까요. 게다가 대학원생이 아니면 마법진 스윽 훑어보는 거로 어떤 건지 몰라요."
"일단 에밀리아 양은 진정하세요."
"제가 진정하게 생겼어요?!"
"솔직히 저도 혼란스럽습니다."
윌리엄이 진지한 어투로 말하자 씩씩거리며 흥분했던 에밀리아도 점점 이성을 되찾아갔다.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아무튼 설명은 계속해주시죠."
"어…. 원래 설명은 제임스 씨가 하시던 거 아닌가요?"
"아, 맞다. 크흠! 저희가 가 본 곳 중에 탈출구가 없다면 결론은 단 하나죠. 마법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마법진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죠? 여기 한설 씨도 마법은 잘 모른다는데."
"그걸 위해 방금 계획을 떠올렸는데—"
"잠깐만요."
내가 딥 원 주술사를 제압해서 강제로 마법을 쓰게 만든다는 계획을 말하려고 할 때, 한설 씨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중간에 말을 끊어서 죄송한데 잠시 할 말이 있습니다."
"네. 일단 말해주세요."
"저는 확실히 마법은 겉핥기로 실용적인 것만 배우고, 지금은 신화 생물들을 전공하고 있지만, 그래도 마법진은 사용할 줄 압니다."
"그 말은…?"
"어디로 이어졌을지는 모르지만, 마력만 충분하다면 가능합니다."
"으음…."
그의 말에 나는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신뢰할 수 있는 한설 씨에게 맡겨서 어디로 이어졌는지도 모르는 마법진을 사용하느냐.
또는 고문으로 굴복시킨 딥 원 주술사에게 강제로 시켜서 수상한 손길에다가 몸을 맡기느냐.
전자는 다른 기지로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후자는 전자에다가 최악의 수가 추가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자가 더 낫겠네.'
수많은 고민 끝에 탄생한 고문법들을 순식간에 파기한 나는 양손으로 그의 어깨를 짚으며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딥 원 주술사를 제압하는 게 아닌 사살해야 하는 나는 일행이 열어둔 무기고로 들어갔다.
나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 총기들이 가득하지만 그 말은 아무리 오래되었어도 잘 망가지지 않고 많이 쓰인다는 뜻이었다.
지금 메고 있던 총기를 내려 두고 최대한 멀쩡해 보이는 녀석을 들어 탄창까지 갈아 끼운 나는 구석에 있는 탄약통도 하나 챙겼다.
'만약 다른 기지로 이동되었을 때도 생각해야 하니까.'
휴게소에서 나온 나는 녀석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아서 저격수처럼 엎드렸다.
일단 한 발로 저격을 시도해 보고, 실패한다면 난사하기로 결정한 나는 심호흡을 하며 떨리는 손을 진정시켰다.
가늠쇠를 일자로 두고 머리를 노리던 나를 생선 대가리가 여러 개로 나타난 환각이 방해했지만, 아직 아물지 않은 혀를 다시 깨물어서 정신을 일깨웠다.
그리고 숨을 들이마셨다가 참아서 내 몸이 미동조차 하지 않았을 때 방아쇠를 당기자—
—탕!
단 한 발의 탄환이 흐리멍덩한 눈알 사이를 꿰뚫고 뇌를 헤집었다.
동굴에 울려 퍼지는 우렁찬 소리에 당황한 두 명의 혼종 경비들은 엄폐도 하지 않고 무작정 총성이 들린 곳으로 달려오다가 저격당한 주술사를 발견했다.
그들은 이게 정녕 현실인지 부정하는 것처럼 쓰러져서 피와 뇌수를 흘리는 녀석에게 다가가더니 어깨를 흔들며 무언가를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까지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독순술도 배우지 않아서 저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시답잖은 소리일 게 분명했다.
이후 또다시 두 번의 총성이 울려 퍼졌고, 의식장에는 세 구의 시체가 만들어졌다.
"후우우…."
그제서야 긴장이 풀린 나는 참던 숨을 내쉬었다.
"백발백중이네요."
"다행입니다. 만약 팔이나 다리에 맞았다면 저희가 역으로 당했겠죠."
"…마법사에 대해서 잘 아시나 보네요."
그야 당연했다.
허구한 날에 대련하는 이브와 에반의 심판을 돕는 게 나였으니까.
그렇기에 마법사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고, 한 번에 죽이지 못한다면 즉시 보호막을 만들어서 총알을 막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주문을 외우기 전에 난사해서 바람구멍을 여러 개 만들어 주려 했지만, 일격에 죽었으니 이제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일단은 내려가도록 할까요?"
이번에는 위험하지 않게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 우리는 의식장에 새겨진 마법진 위로 올라갈 수 있었고, 피로 더럽혀진 것만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멀쩡했다.
"혹시 피가 묻었다고 못 쓰는 건 아니겠죠…?"
"에이, 설마. 설마?"
"으음…."
마법진을 살펴보던 한설 씨의 표정이 심각해지자 일행의 표정도 함께 심각해졌고, 그의 답변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모두 침묵에 빠졌다.
"괜찮습니다. 마법진을 그린 흔적이 남아 있거든요. 피는 그냥 닦으면 되고."
"휴우!"
안심한 나는 걸치고 있는 모포를 벗어서 피를 닦는 걸 도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