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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97화 (97/154)

〈 97화 〉 기어오는 혼돈

* * *

—끼요옷!

임무를 완수한 닌자가 울부짖더니 펑 터지면서 사라졌다.

제임스가 발버둥 치는 걸 지켜보던 나는 한 번만 더 해볼까 생각했지만, 더 이상 진행했다가는 그의 정신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질 것이 분명했기에 참아야만 했다.

탈출하지 못하도록 특수한 조건 아래에서 괴물을 보낸다던가 마지막에는 닌자를 난입시켜 몰살해 버리는 건 꽤나 재밌었다.

'이것이 유열인가?'

참지 못한 웃음소리가 입술 사이로 빠져나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자는 것처럼 눈을 감은 채로 있던 제임스가 그걸 듣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일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풉, 큭큭."

"음?"

그러던 와중 내 목소리와는 다른 고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브라면 밑에서 자고 있을 시간이기도하고, 애초에 느낌 자체가 달랐다.

나보다도 더한 유열로 가득 찬 웃음이라고 해야 할까.

목소리의 주인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숨어 있는 한 인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그림자를 향해 손을 뻗자 팔꿈치 부분까지 팔이 사라진 것처럼 다른 공간으로 넘어갔다.

이후 손을 더듬거려서 목덜미 부근을 잡은 후 잡아당기자 여자아이가 튀어나왔다.

새하얀 피부와는 대조되게 검은 눈동자와 머리카락, 검은 드레스를 입은 어떤 인간이 보더라도 귀엽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것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한 마력과 기척은 결코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긴 도대체 무슨 일로 온 거지? 니알라토텝. 그 모습은 또 뭐고."

"유열의 향기가 나서 중간부터 직관했지. 이 모습은… 네가 소중히 여기는 장난감이 전부 여자라서?"

"장난감이라니. 소중한 제자다만."

"푸흐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걸로 알게."

"너는 할 게 없나? 여기까지 찾아와서 구경이나 하고."

"장난감이 없어졌거든. 대체제를 찾아보려고 해도 이전보다 크게 재미도 없고, 저 지구는 네 거잖아? 그 불덩어리 거였으면 그냥 빼앗는 건데."

불덩어리라면… 크투가를 말하는 걸까.

살아 있는 불꽃, 모든 불과 번개의 정령들의 신.

역시나 니알라토텝과는 사이가 좋지 않나보다.

"사실 제안이 있어서 찾아온 거기도 해."

"제안?"

"내가 저기에서 놀 수 있게 허락해준다면, 진실에 관한 힌트를 줄게. 그리고 너도 혼란스러운 상황은 좋아하잖아?"

"나를 너처럼 변태 같은 성향을 가진 것처럼 말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정확히는 적당한 고난과 그걸 극복하는 주인공일까. 난 그것보단 방금처럼 닌자 몰살이 더 재밌지만, 뭐, 주인의 의견을 따라야겠지."

"이미 허락이라도 받은 것처럼 말하는군. 힌트나 말해라."

"문을 찾아라."

"문?"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니알라토텝은 이미 떠나 있었다.

아마 허락을 받았으니까 지구로 향했겠지.

"…문이라."

일반적인 문을 말한 것은 아닐 거다.

그렇다면 어떤 통로에 대해 말하는 것일까.

'그럼 저번에 호주로 가라고 했던 건 뭐였지?'

그곳에서 얻은 수확은 위대한 이스의 종족에 대한 것뿐이었다.

'아니, 수확이라고 할 만한 것도 아니었지.'

그저 이스의 위대한 종족이라면 알지 않을까—같은 추측일 뿐.

그렇다면 어떤 존재에 관한 은유인 것일까.

니알라토텝을 기어오는 혼돈이라고 부른다던가, 크투가를 살아 있는 불꽃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뭐, 나중에 알아보도록 해야겠군."

남아나는 게 시간인데 굳이 성급하게 굴 필요가 있겠는가.

일단 여기 죽은 것처럼 잠든 녀석이나 방에다가 두고 오자.

나는 의자에 널브러져서 악몽을 꾸고 있는 제임스를 마법으로 들어 올렸다.

끙끙대면서 얼굴을 찌푸린다던가 가끔씩 미안하다고, 전부 내 잘못이라고 작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모양이다.

정신력이 낮아졌으니 저항하기도 어려울 테고, 그동안 환각에서 겪은 일까지 추가됐는지 그의 입에서 괴물이라던지 닌자를 욕하는 말도 나왔다.

그래도 나중에 전부 회복한다면 정말 과거로 보내서 해결하도록 시켜봐야겠지.

인간이란 시련 앞에서 무너지다가도 결국엔 일어서며 반짝이는 법이니까.

앞으로의 모습을 기대하며 계단을 내려온 나는 제임스를 침대에다가 던져두었다.

그러고는 여전히 악몽 속에서 허우적대는 그를 바라보다가 지구로 향했다.

니알라토텝이 출발한 후 별로 시간은 지나지 않았지 않았지만, 그 이명을 생각한다면 어떤 혼돈을 불러올지 모른다.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익숙한 사무실, 그리고 서류와 씨름하는 한 여인이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나무와 모피로 만들어진 구조물—캣타워가 보였고, 다시 고개를 든 순간 서아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다른 곳에 집중하는 동안 세 번째 화신은 정해진 알고리즘대로 일반적인 고양이처럼 행동하도록 내버려 뒀는데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서아는 꼬리나 휘적휘적 흔들면서 가만히 누워 있던 화신이 갑자기 이상하게 행동한 걸 보고 내가 찾아온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오, 뭔가 오랜만이네?"

"이 캣타워는 뭐냐."

"아니, 평소에는 고양이처럼 행동하도록 해 놓고 갔으면서 뭔 소리야. 덕분에 우리 집에 깨진 컵만 몇 개인지 알아?"

"그건 네 사정이고. 아무튼 뭔가 들어온 소식 같은 건 없나?"

"이런 연구직에 들어오는 정보가 별거 있겠어? 가끔씩 도는 소문이라면 모를까. 차라리 전투부나 정보부로 가는 게 나을 걸."

"그럼 됐다. 근데 너는 요즘 뭐하고 지내냥?"

"여느 때처럼 실험이나 하면서 지내고 있지. 아, 며칠 전에 하윤이가 수학여행 갔을 때 이야기 들었어?"

"간다는 건 들었는데."

"그게 말이야. 어느 날 새벽에—"

서아의 이야기는 이랬다.

갑자기 전화가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커다란 뱀이랑 무너진 산 좀 복구해 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부랴부랴 찾아갔더니 무슨 산사태라도 일어난 것처럼 산이 무너져 있고, 나무는 불에 그을리다 못해 숯처럼 변한 것도 있더라고 말했다.

가장 압권이었던 것은 죽었는데도 불길한 기운을 풍기던 거대한 뱀의 사체였고, 그건 지금 실험실로 옮겨졌다고 했다.

망가진 산은 다행히도 결사단에 있는 뒤처리 담당자들이 알아서 복구했다고 했다.

가끔씩 사고 치는 흑마법사를 처리하고 난 뒤에는 흔적이 남기 때문에 그렇다.

그들이 말하길 이 정도로 엄청난 규모는 처음 본다고.

"그래서 무슨 실험을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좋은 게 들어왔단 말이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까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좀 찔렸는데 하윤이 덕분에 살았어."

"흐음, 그 뱀의 사체를 가지고 실험하겠다는 건가."

"응. 흔히들 영물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어떤 방식으로 탄생하는지 알아보려고. 찾아보면 도서관에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따라가면서 점점 새로운 걸 시도해보는 법이니까."

"그래. 그나저나 그 뱀은 내가 아는 녀석일지도 모르겠군."

"엑. 설마 친해?"

"아니. 그저 예전에 한 선비와 싸우던 걸 구경했을 뿐이다. 정확히는 그 뱀의 형제나 자식이었겠지."

독으로 인해 눈이 먼 선비는 자신을 걱정하던 이를 살해했다가 결국 거열형으로 죽고 말았다.

형을 집행당할 때에도 자신이 뱀에게 묶인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 참 웃겼었지.

그게 아직까지 남아서 하윤이를 귀찮게 했다는 게 흠이지만.

"아무튼 아직까지 혼란스러운 일은 없다는 거지."

"어.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그다지 큰일은 아닐 거다. 아마도."

"아마도? 그럼 좀 찝찝한데."

"어차피 네가 나서봤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기껏 해야 몰려오는 물살에 저항하며 버티는 것뿐이겠지."

나는 니알라토텝이 할 법한 일들을 떠올려봤다.

사람들을 선동하여 혼란을 부추긴다던가, 과학자들에게 위험한 무기의 설계도를 건네준다던가, 아니면 자신이 이끄는 교단으로 무언가를 저지른다던가.

마지막 것은 결사단이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나머지 두 개는 어려울 것이다.

'뭐, 그래도 대놓고 앞에 나서서 일을 벌이진 않겠지.'

본래 공포란 무지에서 오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 어째서 번개가 떨어지고 죽음이 찾아오는지 몰라서 그것들을 두려워하며 숭배한 것과 마찬가지로 숨겨진 괴물들과 끔찍한 의식들도 그렇다.

인터넷에서 어떤 섬의 사람들이 인신 공양을 한다고 그러면 그저 얼굴만 찌푸리면서 잔혹함에 혀를 내두를 뿐일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섬으로 여행을 갔는데 아무도 모르는 누군가가 살고 있었다면?

섬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벽에 그려진 인신 공양의 벽화와 그것의 흔적을 발견하고, 마지막에는 이곳에 온 여행객들이 그 제물이란 걸 알아차리게 된다면?

그곳을 탈출하기 위해 뒤를 돌았다가 괴한과 마주쳤을 때 공포심은 최고에 다다를 거다.

'오, 생각해 보니까 좋은 시나리오네.'

마음속 한 켠에다가 저장해 둔 다음 다시 생각을 이어 나갔다.

'어차피 일어날 혼란을 미리 막는 건 귀찮기도 하고 어려울 거다.'

그렇다면 현재진행 중인 것들을 막아야겠지.

그걸 위해 쓰일 등장인물들을 떠올리던 나는 오랫동안 보지 않은 듯한 이를 떠올렸다.

존 왓슨과 마틴 브라운.

탐정과 대학생 콤비라서 만나긴 어려울 테니 존 왓슨만이 활약하겠지만, 만일 미국에서 사건이 벌어진다면 엄청난 의뢰금으로 출장이나 보내야지.

겸사겸사 그동안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한 이브도 맡겨두고.

나는 니알라토텝이 어디서 무엇을 할지 생각하면서 캣타워에 깔린 부드러운 모피에 몸을 맡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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