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빛나는 부등변다면체
* * *
미국 미시건주, 디트로이트 어딘가의 폐건물에서 한 사내가 빛나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나무 상자 안에는 푸른색 비단으로 감싸진 붉은 보석이 있었고, 마구잡이로 깎여진 보석의 단면에 비치는 것은 그걸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
어느 면에서는 평범하게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길거리가 보였고, 딥 원 주술사가 손에서 번개를 내뿜는 장면이나 촉수가 달린 괴물이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장면도 있었다.
그걸 황홀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사람의 뒤로 건물에 굴러다니던 쇠 파이프를 들고 다가온 한 부랑자는 무방비한 그를 향해 손에 든 것을 힘껏 휘둘렀다.
—깡!
그러나 둔탁하게 두개골이 깨지는 소리가 아닌 쇠와 쇠가 부딪힌 듯한 소리가 건물에 울려 퍼졌고, 부랑자는 쇠 파이프가 투명한 무언가에 막혀서 휜 것을 보고 경악했다.
겁에 질린 그는 재빠르게 도망치려 들었지만, 자신을 방해한 것에 분노한 흑마법사에게서 도망칠 정도로 빠르지는 못했다.
꿈틀거리던 어둠이 움직여서 그가 나가려던 출입구와 깨진 창문까지 막아 내자 붉은 보석이 내는 빛만이 그 안을 밝힐 뿐이었다.
그조차도 흑마법사가 눈을 떼자 점점 사그라들더니 완전한 암실이 되었고, 어둠에 가로막혀 밀실이 되었는데도 스산한 바람이 그들을 멤돌았다.
—으흐흐흐흐.
이윽고 들려오는 음산한 웃음소리에 한 명은 비명을 지르고, 한 명은 기뻐하며 괴상한 단어로 울부짖었다.
"오오오! 어둠에 깃드는 존재시여! 저에게 무한한 지식을!"
"그게 도대체 무슨, 끄, 끄아악!"
현재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부랑자는 무슨 헛소리냐며 물어보려 했지만, 온갖 관절이 꺾여져 나가는 듯한 고통에 입을 열 수 없었다.
—으득, 우드득.
아니, 실제로 꺾이고 있었다.
어둠 속의 스산한 바람은 그 비명에 만족스러웠는지 흑마법사를 향해 손을 뻗었고, 이어서 광기와 기쁨에 찬 낮은 웃음소리가 죽어 가는 그의 귀에 들려왔다.
"흐흐흐, 그래! 이것만 있다면!"
"이것만 있다면?"
—화르륵.
갑자기 생겨난 티끌만한 불티가 어둠 속을 밝혔고 어둠에 깃드는 자는 그 존재를 감추고 말았다.
들어오던 지식이 갑자기 끊긴 흑마법사가 방해꾼이 누군지 알기 위해 어둠을 거두자 수많은 마법사들이 건물을 포위한 채로 대기하고 있었다.
"무, 무슨? 설마… 결사단인가?!"
"쥐 새끼 같은 녀석.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을 거 같았냐?"
"투항한다면 끔찍한 고통은 없을 거다."
"하! 새로운 마법을 사용할 실험체가 알아서 들어오는군!"
결계로 막혀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 치열한 전투는 당연하게도 결사단의 승리로 끝났고, 마력이 고갈되어 정신력까지 끌어다 쓴 흑마법사는 폐인이 되어 끌려나갔다.
그 보고서를 받은 미국 지부의 간부는 한국 지부에서 온 연락에 물고 있던 시가를 재떨이에다가 걸쳐두고 한숨을 쉬었다.
"허어, 위대하신 분께서 해결사를 보낼 것이니 결사단은 테러의 예방과 수습을 맡을 것? 미쳐 버리겠군."
백악관에서는 대통령뿐만 아니라 다른 높으신 분들도 빨리 해결하라고 난리인데 하필이면 같은 간부도 아닌 매우 높은 분께서 나서지 말라고 하시니 머리가 아파진 모양이었다.
그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자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머리카락이 빠져나갔고, 허탈한 듯이 웃으면서 바닥에 떨어진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
어째선지 미국의 어떤 탈모인이 괴로워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나는 고개를 들어 나를 껴안고 있던 이브를 바라봤다.
존이 이상하게 쳐다볼까 봐 일반인에게도 보이도록 조정한 나는 인형인 척 가만히 있느라 매우 고역이었다.
수상한 일이라서 빠르게 처리하려고 한 건지 우리들은 하루가 지나고 나서 바로 공항으로 가고 있었다.
의뢰금으로 받은 것들 대부분을 은행에 가서 입금하고, 나머지 금액들을 달러로 환전해온 존은 티켓에 적힌 시간을 바라보더니 빨리 가자며 손을 건넸다.
그걸 멀뚱히 바라보던 이브는 손을 잡기 싫었던 건지 코트 자락을 붙잡고 탑승 장소로 걷기 시작했다.
혼잣말로 작게 의뢰를 잘못 받았다며 후회하던 그는 비행기에 올라타 잠들기 직전까지도 구시렁거렸고, 의자를 뒤로 젖혀서 수면 안대를 쓰고 나서야 좀 조용해졌다.
존의 숨소리가 일정해져서 잠에 든 걸 확인한 우리들은 그제서야 대화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같이 갈 사람을 잘못 고른 거 아니에요?"
"말은 이렇게 해도 일은 제대로 할 거란다. 이 녀석은 뼛속까지 탐정이니까."
"그렇게 말한다면 뭐라고 할 말이 없는데…."
"어차피 미국에 도착하면 정신 없어질 테니 괜찮겠지. 자, 너도 미국까지 가는 동안 자거라."
"네에."
옆에 잠든 존처럼 수면 안대를 쓴 이브는 금세 잠들었고, 나도 미국으로 갈 때까지의 시간을 스킵해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공학에서 택시를 타고 메모에 적힌 주소를 따라서 간 곳은 높은 빌딩이었다.
정말 이곳이 맞는지 몇 번이고 주소를 확인하던 존을 뒤로하고 자연스레 건물 안으로 들어간 이브는 안내 데스크에 있는 안내원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번에 여행 왔을 때 보고 또 보네요!"
"오, 이브구나! 이번에도 여행 왔니? 요즘 테러 때문에 분위기가 좋지 않은데."
"아뇨. 오늘은 그… 뭐랄까. 사건을 해결하러 왔다고 해야 할까요?"
"응?"
"안녕하십니까. 의뢰를 받고 온 존 왓슨이라고 합니다."
이브가 태연하게 안내원들과 대화하는 걸 보고 어이없어하는 것도 잠시, 정신 차린 존은 그들에게 다가가서 자기소개를 했다.
"음, 그렇군요. 잠시만요. …미리 지시가 내려온 게 있었네요. 금방 정보부장에게 내려오라고 하겠습니다."
"정보부장? 여긴 대체 무슨 회사길래…."
"쉬잇. 존 아저씨, 알면 많이 위험할걸요?"
"왠지 알 거 같기도 하네."
불길한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그는 괴로워하면서도 결국 받아들인 모습이었다.
마치 그의 태생인 영국의 날씨처럼 우중충한 분위기의 존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걸 본 나는 이브에게 귓속말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달라고 부탁했고, 그 대상이 누구인지 확인했다.
[마틴 브라운]
존은 사건을 끝마치고 나서 함께 술이라도 마시려는 건지 그가 전화 받기를 기다렸지만, 몇 번을 걸어도 수신음만 들려올 뿐이었다.
"혹시 미국에 사시는 분에게 전화하신 건가요?"
"네. 얘가 이렇게까지 전화를 안 받는 사람이 아닌데…."
"그럼 잠시만 제가, 아! 케이트 씨! 마침 딱 맞춰서 오셨네요!"
"하아, 일이 끝나도 일이야…. 안녕, 이브."
"안녕, 케이트 언니!"
전혀 들어 본 적도 없는 이름이기에 누구인가 얼굴을 봤더니 저번에 미국에 왔을 때 여행 가이드를 맡았던 결사단원이었다.
직급이 높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한 부서의 부장을 맡을 정도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요? 여기 이브 옆에 있는 수상한 아저씨는 누구고."
"아저씨라뇨."
"아저씨 맞잖아요.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아, 그래. 제 친구가 전화를 안 받아서요."
"미국 어디에 사는 친구죠?"
"어디 보자…. 미국 동부의—"
존이 말한 장소를 들은 정보부장—케이트는 잠시 폰으로 전화를 걸더니 무언가를 확인하고는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위험하게 됐네. 그 당신 친구가 사는 곳이 하필이면 테러 장소와 가깝거든."
"뭐라고요? 잠깐, 그럼 여기가 정부 기관입니까? 그걸 어떻게 아시는 거죠?"
"아니, 뭐, 그건 당신도 잘 알 거 같은데. 코트 안에 있는 그 권총만 봐도 말이야."
"…!"
권총의 정체를 들킨 그는 흠칫거리며 그녀와 거리를 벌리더니 금방이라도 코트에서 총을 꺼낼 것처럼 행동했지만, 케이트는 위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듯이 양팔을 들어 올리면서 괜찮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권총 하나 정도야 애교지. 그 위에 새겨진 마법을 보면 평범한 마법사가 만든 건 아닌 거 같지만."
"이건 어떻게 알았죠? 입구에 금속 탐지기도 없는데."
"내가 왜 정보부장을 달았겠어? 이 정도는 해야 가능하지."
"우와! 저번에 봤을 때는 허당 같았는데 대단해요!"
"아하하. 높으신 분 앞에서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단다."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하며 웃은 그녀는 빨리 가자며 이브를 바라보다가 안겨 있는 나와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표정이 굳은 그녀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빠르게 주차해 둔 차로 뛰어갔고, 존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물론 브라운이 걱정되어 그런 의문은 금방 사라졌지만 말이다.
케이트가 결사단 건물 앞으로 가져온 차에 탄 우리들은 그녀의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이봐, 당신 이름이?"
"존 왓슨. 영국에서 탐정을 하고 있네."
"탐정? 그럼 마법사에 대해서 아나?"
"대충은. 이래 봬도 이상한 일에 많이 휩쓸려봤다고."
"그래.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는 테러는 모두 흑마법사들의 소행이야."
"무슨 단합이라도 한 건가?"
"글쎄. 우리가 알아낸 사실은 그들이 모두 붉은 보석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주는 지식을 위해 테러를 벌였다는 거지."
"보석?"
"응. 옛 고서에 기록된 이름은 '빛나는 부등변다면체'야. 거기에 적힌 정보와 똑같거든. 어떻게 여러 개가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케이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점점 세게 엑셀을 밟기 시작했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존과 이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그저 안전 벨트를 메며 도착할 때까지 사고가 나지 않기를 빌 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