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빛나는 부등변다면체
* * *
"일단, 그 권총 좀 잠시 빌려줄래요?"
"여기."
존에게서 권총을 건네받은 케이트는 총신에 새겨진 마법을 살펴보더니 탐구심에 가득 찬 표정을 보여줬다.
"흠, 오호. 이게 이렇게 해서… 이런 방식이구나. 이야, 이거 새겨 준 사람, 아니, 새겨 주신 분이 누구셔?"
"좋은 인연은 아니야."
"그래?"
실린더까지 확인한 케이트는 다시 권총을 넘겨 주더니 말을 이어갔다.
"시간이 많았으면 새겨진 마법이 얼마나 정교한지 강의라도 했겠지만, 언제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니까 계획만 말할게."
"빨리 말해."
"마법으로 추적하지 못하면 뭐겠어? 물리적으로 추적해야지."
"뭐? 지금 지도로 장소나 추려서 일일이 찾아보자는 거야?"
"아니. 마침 좋은 도구가 있잖아?"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존이 들고 있는 권총을 가리키자 그는 설명을 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얼굴 찌푸리지 마. 그 권총에 새겨진 마법, 네가 원하는 것을 맞출 수 있도록 하는 거지?"
"그래.…잠깐, 설마?"
"브라운이 맞도록 발사된 총알을 따라가면 되는 거야. 어때?"
"발상은 좋은데 만약 잘못 맞아서 다치면 어떻게 하려고."
"그걸 막기 위해서 총알이 적당히 느려지도록 마법을 쓰면 끝."
"허."
존은 상상을 초월한 계획에 잠시 망설이는 듯싶었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계획이 없었는지 결국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허락을 받자 마자 그에게서 총알을 반쯤 빼앗아오듯이 가져온 케이트는 바늘 같은 걸 꺼내서 천천히 마법을 새기기 시작했다.
숨을 참아 최대한 손이 떨리지 않도록 하며 거의 5분 가까이를 소모한 그녀는 이마에서 흐르는 한 줄기의 땀 방울을 소매로 훔치며 삼킨 숨을 내뱉었다.
"후우, 드디어 다 했네. 처음 하는 거라 오래 걸리긴 했지만 작동은 제대로 할 거야."
"좋았어. 그럼 지금 당장—"
"아니, 아직 하나 더 남았거든. 추적 마법은 새겼으니까 나머지는 이브 몫이야."
"네?"
가만히 구경이나 하던 이브는 갑작스레 떠넘겨진 일에 놀란 것처럼 보였다.
"언니가 방금 식당에서 쓴 거랑 이것까지 해서 마력을 거의 다 소모해서 그래."
"아하."
"잠깐, 이 아이가 마법을 쓸 수 있다고?"
"당신 그것도 몰랐어? 식당에서 강도를 넘어뜨린 것도 이브 작품인데."
"하아… 이제서야 의뢰가 이해되는군."
"집중할 거니까 조용히 해주세요."
잠시 후 완성된 총알을 받은 존은 약실에다가 넣은 후 손가락을 방아쇠에 걸쳤다.
"일단 차에 타시죠?"
"아, 맞다."
하마터면 뛰어서 총알을 쫓아갈 뻔한 일행들은 다행히도 푹신한 시트에 앉아서 추격할 수 있었다.
마치 예광탄과 같이 마력을 꼬리처럼 달고 다니는 총알은 일반적인 것보다 느릿하게 날아가고 있었지만, 특이하게도 그 속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자그마한 납 덩어리를 쫓은지 몇십 분 정도 지났을 무렵, 길거리의 분위기가 역변하기 시작했다.
빛이 들지 않는 골목이라던지 하수구에서 넘실거리던 어둠이 꿈틀거리면서 주변을 잠식하더니 점점 마을 전체를 삼켜 버렸기 때문이다.
돔 형태로 솟아오른 어둠은 햇빛을 완전히 차단해 버렸고, 방금 켠 전조등을 제외하면 주변에 빛을 내는 것들은 없었다.
게다가 흑마법사의 소행인지 빛은 일정 범위 바깥으로 뻗어나가지 못했고, 나는 흑마법사가 단단히 준비했다고 느꼈다.
물론 케이트 입장에선 일거리가 하나 더 추가된 것뿐이지만 말이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니. 하지만 내겐 악몽이나 마찬가지야. 하아, 서류 올라오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거 같군."
"수고하게."
"그나마 좋은 소식이라면 추적 마법이 걸린 총알이 멈췄다는 것일까."
"그럼 빨리 그 장소로 가야지!"
"그러고 있어!"
—부아앙!
케이트가 엑셀을 더 세게 밟자 계기판의 바늘이 150을 가리켰고, 관성으로 인해 뒤로 밀려나는 것을 느끼면서 바깥을 살펴봤다.
전조등에서 나오는 빛이 비추는 범위를 제외한 모든 곳이 어두컴컴해서 가끔씩 가로수나 소화전에 돌진할 뻔했지만, 엄청난 운전 실력으로 피해나가면서 어떤 건물에 도착했다.
아직 건설 중이었는지 여기저기에 철근이 드러나 있거나 추락사 방지용으로 안전망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안에서는 톤은 다르지만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아무래도 흑마법사가 니알라토텝의 화신인 어둠에 깃드는 자를 소환한 모양이었다.
사람들의 두려움에 찬 비명이 들려오다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멈추더니 이윽고 들려오는 흐느낌에 일행들은 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끈적이는 어둠 속에서 이브가 주문을 외우자 그녀의 손바닥 위에 별 무리 같은 빛이 생기더니 주변을 밝히며 뻗어나갔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밧줄에 묶인 채로 건물 안을 거의 가득 채운 사람들이었다.
의식이 시작된 곳으로부터 가까운 사람들이 먼저 제물로 선택되는 것인지 1층에 있는 사람들은 무사했지만, 브라운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점차 비명 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에 다급해진 존은 계단을 찾아 올라갔고, 케이트와 이브도 그 뒤를 따라 올라갔다.
어느 순간부터 주변에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여러 관절이 꺾여진 시체들로 가득한 층을 지나 최상층에 도달하자 검은 로브를 입은 흑마법사가 있었다.
이브가 손에 있는 빛무리에다가 마력을 쏟아부어 점차 밝게 만들자 꿈틀거리는 어둠을 밀어내며 주변을 밝혔다.
어둠에 깃드는 자는 빛에 닿자마자 사라졌고, 황홀경에 빠져 있던 흑마법사는 갑작스레 밀려드는 지식이 끊긴 것에 분노했다.
"감히, 감히! 진리를 향한 나의 발걸음을 방해해!"
"개소리하고 있네. 인신 공양이 금지된 지 수백 년은 지났어."
"지식의 탐구를 막는 조약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 그러니까 넌 오늘 죽는 거지."
"하! 과연 그럴까?!"
흑마법사가 손을 휘두르자 주변에 있던 어둠이 꿈틀거리더니 가시처럼 솟아나서 일행들을 공격했다.
존은 그걸 피하며 방아쇠를 당겼지만, 보호막에 튕겨져 나가거나 어디선가 튀어나온 촉수에 가로막혀 별 쓸모는 없었다.
"우와앗!"
기둥을 부수고 나타난 촉수는 존을 뭉개버리려 했지만 타이밍 좋게 나타난 보호막 덕분에 그는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손에 들린 빛무리를 아예 공중에 띄워 어둠이 차지하는 면적을 최대한 줄인 이브는 다음 주문을 준비하며 주변을 살폈다.
"마을 전체를 계속해서 어둠으로 감싸려면 마력이 많이 들거예요. 그렇다면—"
"그래. 분명 아래에 있는 제물로부터 마력을 뽑아내고 있는 거겠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그들을 일일이 풀어 주기 전에 우리가 먼저 당하겠는데."
"주문을 유지하는 마법진을 부수거나, 마력을 끌어오고 있는 매개체 자체를 없애야지."
"매개체?"
"저기 로브 입은 음침한 녀석 말이야."
"전자가 쉽겠군."
어느새 안전한 이브 곁으로 온 존은 케이트의 설명을 듣더니 흑마법사의 발밑에 있는 마법진을 확인했다.
"저걸 어떻게 부수지?"
"공사장이니까 폭약 같은 건 없을까?"
"여긴 건설 중이지 철거 중이 아니잖아!"
"좀 조용히 해주실래요?"
주문을 완성시킨 이브는 흑마법사를 보호막 채로 들어 올려 기둥을 향해 던져 버렸지만, 그는 어둠에서 솟아난 촉수를 이용해 간단히 자신을 붙잡았다.
"큭, 크하하! 발버둥은 거기까지냐?"
"아직 마지막 하나가 남았거든요?"
"그럼 어디 한 번 보여봐라."
"에잇!"
'응?'
저번에 서아가 했던 것처럼 엄청난 규모의 마법이라도 일으킬 거라 생각했던 나는 기대하고 있었다.
던져지기 전까지.
—푸확!
흑마법사는 인형이 던져지자 무언가 내장된 마법이라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촉수로 후려쳤고, 당연하게도 나를 이루고 있던 벌레들은 잠시 흩어지고 말았다.
나는 도저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인형처럼 꾸며진 모습이 아닌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이브, 이게 대체 뭐 하자는 거니."
"감당하지 못할 만한 상황이 오면 해결해주실 거라면서요."
"아니, 그, 이 정도면 그래도…."
"그게 네 마지막 발악인가? 흐음, 확실히 그렇게 말할 만하군."
"…에휴."
푸흐흐.
어디선가 니알라토텝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녀석도 이 상황이 참 재밌나 보지.'
허공에서 지팡이를 꺼낸 나는 그대로 흑마법사를 겨눴다.
"모든 것은 부패하리라."
"저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뭣?"
그는 무언가 방비라도 해 둔 건지 자신만만했지만 내가 노린 것은 그가 아니었다.
흑마법사의 발밑에 있던 마법진은 점차 검게 변색되며 녹아 없어졌고, 그와 함께 마을을 감싸고 있던 어둠도 마찬가지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이럴 수는 없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충분하고말고요!"
"큭!"
자신의 무기나 다름없던 어둠이 사라지는 것에 당황한 흑마법사는 멍하니 있다가 이브의 마법에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아저씨!"
"아아, 그래!"
—타앙!
때를 노리고 있던 탄환은 그의 발목을 꿰뚫었다.
"끄윽! 아직, 아직이다!"
"뭐가 아직까지인데?"
—빠악!
어느새 가까이 다가간 케이트는 그의 얼굴을 힘껏 걷어찼다.
"크악!"
"내가! 너 때문에! 처리해야 할! 서류가! 얼마나 늘었는지 알아?!"
울분에 찬 그녀의 폭력은 흑마법사가 숨이 넘어가기 전까지 계속되었고, 보다 못한 존은 그녀를 말리러—가아니라 자기도 합류했다.
여기까지 먼지가 흩날릴 정도로 패는 걸 구경하는 나는 인형 상태로 돌아온 채로 이브에게 안겨 있었다.
"슬슬 제지해야 하지 않겠니. 이곳 말고도 아직 남은 데가 몇 곳 있을 거란다."
"그래야겠네요."
로브 너머로 파랗게 멍든 피부가 보이는 흑마법사를 힐끔 쳐다본 이브는 열심히 다리 운동을 하는 둘에게 다가 갔다.
"저기요? 저기요!"
"왜 그래 이브. 너도 참여할래?"
"아뇨. 이제 슬슬 수습해야죠. 누구 지인이 있어가지고 여길 우선적으로 찾아오긴 했지만, 아직 남은 곳이 얼마나 있는데요."
"쩝, 어쩔 수 없네."
안타까움을 삼킨 케이트는 결사단에 전화를 걸더니, 금방 이곳으로 대기하고 있던 결사단원들이 모여들었다.
두 명은 간헐적으로 움찔거리는 흑마법사를 구속한 후 들 것에 눕혀 끌고 갔고, 다른 이들은 건물 곳곳에 남은 마법진 같은 것들을 찾아서 전부 제거했다.
이윽고 찾아온 경찰에게 연방수사국 신분증을 보여 준 케이트는 안에 실종자들이 있다며 그들에게 맡기고 이곳을 떠날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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