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빛나는 부등변다면체
* * *
또 다른 현장으로 향하는 차 안은 분위기가 영 좋지 않았다.
브라운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려는 존을 일이나 빨리 끝내려는 케이트가 강제로 끌고 왔기 때문이다.
"사람 확인하는데 얼마나 걸린다고."
"그동안 사람도 죽어 가고, 서류도 늘어가거든?"
"요즘 시대에 그런 것들은 다 전산화하지 않나?"
"반출되면 위험한 내용을 퍽이나 전산화하겠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 말싸움을 하는 사이 도달한 두 번째 마을 또한 분위기가 이전 마을과 비슷했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고, 모든 집은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커텐이 쳐져 있는 둥 마치 아무도 없는 마을에 온 것만 같았다.
"이곳도 분위기는 마찬가지네."
"빨리 해결이나 하고 다른 곳으로 가자고."
슬슬 해가 기울어져서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는 게 보였고, 케이트는 가지고 놀던 수정구를 다시 주머니에 넣은 후 탐문을 하러 어떤 집으로 향했다.
혹시 의심이라도 받을까 봐 이브와 존을 대동하지 않은 그녀는 이전에 브라운의 부모에게 했던 것처럼 연방수사국 신분증을 보여 준 후 안으로 들어갔다.
십 분 정도 지나고 나니 정보를 다 얻은 건지 누군가의 배웅을 받으며 나온 그녀는 차로 돌아와 수정구를 꺼냈다.
"그런데 왜 굳이 탐문 같은 걸 하는 거지? 마법으로 바로 찾을 수 있는 거 아닌가?"
"추적 마법이 여타 공격 마법 같이 주문만 외우면 끝인 줄 알아?"
"마법엔 문외한이여서 미안하게 됐군."
케이트는 마치 수정구를 쓰다듬는 것처럼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주문을 외우더니 섬세하게 마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실종자로 보이는 사람의 모습이 안에 보였고, 이전처럼 방해받아서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휴, 다행히도 이번엔 간단하게 됐네. 쫓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그냥 초짜라서 그런 건지 몰라도 아무런 방비도 안 했어."
"우리에겐 좋은 일이군."
"그럼 간다."
조용한 마을에 커다란 엔진 소리가 울려 퍼지며 케이트는 마법으로 찾아낸 좌표를 향해 떠났고, 우리들은 금방 사람이 보이지 않는 폐건물에 도착할 수 있었다.
"흑마법사들은 아무래도 건설 중인 건물이나 폐건물을 좋아하는 거 같아."
"그건 나도 인정."
"아무래도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려는 거겠죠?"
"아무튼 빨리 끝내고 쉬러 가자. 이제 거의 밤이야."
어느새 주황색에서 검푸른색으로 변한 하늘은 점점 더 어둡게 변하며 지상을 완전히 어둠으로 감싸고 있었다.
저기 멀리에 방금 우리가 있었던 마을은 가로등이 켜지며 사람이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빛은 있었지만, 이곳에는 그 어떠한 광원도 보이지 않았다.
이브가 주문을 외워 손 위에 불꽃을 만들어서 주변을 밝힌 후 천천히 올라가자 보이는 것은 납치된 사람들과 흑마법사로 보이는 이였다.
지금 의식을 시작하려고 했던 것인지 주변에 핏자국은 보이지 않았고, 빛나는 부등변다면체가 든 보석함을 들고 있던 사내와 금방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갑작스레 찾아온 불청객에 놀란 그는 어중간한 자세로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큭, 나를 막으러 온 거냐? 하지만 너희들은 나의—"
"스킵."
—타앙!
진부한 말을 듣기 싫었던 건지 존은 빠르게 방아쇠를 당겼고, 보호막이라던지 아무런 방비도 해 두지 않았던 흑마법사는 무릎에 총을 맞고 말았다.
"끄아악! 너희들은 매너도 없는 거냐?!"
"싸움에 매너는 무슨 매너야. 애초에 인신 공양이나 하려던 새끼가 말은 많아가지고."
"빨리 옮기기나 하자고."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흑마 아저씨는 경비병이 되지 못하겠지만요."
"그게 무슨 소리냐."
"존 아저씨는 게임도 안 해요?"
피를 흘리던 흑마법사에 앞에 도착한 이브는 마법으로 그를 기절시켰고, 빨리 끌고 가자고 말했다.
"잠깐만. 좌표만 문자로 보내면 애들이 알아서 처리할 거야."
그러면서 케이트가 어디론가로 문자를 보내자 금방 멀리서 차 여러 대의 헤드라이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에 갔던 건물이랑 멀리 떨어진 곳 아닌가? 의외로 금방 빠르게 오네."
"그게 아니라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을 거야. 나나 다른 정보부 애들이 아니면 흑마법사 위치는 찾지 못하니까."
"…잠깐. 그럼 네가 찾은 다음 좌표만 보내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랬으면 편했겠지만 쟤네들은 전투부가 아니거든. 여기 귀여운 아가씨의 데뷔기도하고."
이브를 한 번 쓰다듬은 그녀는 차 키를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면서 차로 돌아갔다.
슬슬 밤이 깊어져가므로 근처에 잡아둔 숙소에 묵은 일행은 일찍 자고 새벽부터 다시 활동하기로 했다.
***
아직 해가 뜨지 않았지만 서서히 밝아지는 하늘을 바라보는 우리 앞에는 후즐근한 로브를 입은 흑마법사가 하나 있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무릎에 총을 맞은 그는 이브의 마법에 기절한 채로 결사단으로 끌려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의 임팩트가 너무 강했나? 왜 다들 총 한 발에 전부 쓰러지는 거지."
"아무래도 흑막이 마구잡이로 뿌려서 그런 거겠지. 만약 우리들의 눈을 피한 녀석들에게 주어졌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걸?"
"첫 번째로 만났던 녀석 이야긴가?"
"그렇지."
잡담이나 하면서 기다리던 케이트는 수습하러 온 이들이 도착하자 흑마법사를 넘겨 주고 납치된 제물들이 몇 명인지 알려 줬다.
그러고는 다음 목적지로 향했지만… 추적하고 제압하는 데만 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잡것들이었다.
"너희들을 지식의 제물로, 끄아악!"
총을 맞거나….
"의식을 방해한 대가는, 커헉!"
마법에 당하거나….
"네놈들 따위 아무것도 아니, 꾸에엑!"
아니면 그냥 주먹에 처맞는 등 이딴 것들이 주운 빛나는 부등변다면체가 불쌍해질 정도였다.
"이번 마을이 마지막이었던가?"
"그래. 이거로 미국을 혼란스럽게 만들던 테러도 마무리짓는 거지."
어느덧 한 명밖에 남지 않은 흑마법사를 찾기 위해 실종자가 발생한 마을로 향하던 와중 나는 저기 멀리 어떠한 벽을 볼 수 있었다.
선이 겹치고 겹쳐져서 면으로 보일 정도로 복잡한 결계가 이 근방 전체를 커다랗게 감싸고 있던 것이었다.
드디어 시련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마지막에 와서야 나타난 것에 기뻤던 나는 당연하게도 이브나 케이트에게 말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들이라면 통과하는 순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어?"
"어라?"
"둘 다 왜 그래?"
"방금 결계 같은 걸 통과한 느낌이었는데."
—끼익.
케이트는 브레이크를 밟았고, 차량이 멈추자 마자 내려서는 뒤쪽으로 뛰어갔다.
그러고는 결계 가까이 다가가서 손을 뻗자—
"아얏!"
—파지직!
마치 나가는걸 막아 내려는 것처럼 반발력과 함께 약간의 정전기가 그 손을 밀어냈다.
케이트를 따라서 나온 이브와 존도 그 광경을 보고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서 똑같이 시도해봤고,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가 탈출하는 것을 막는 결계.
일행들은 마치 새장 같은 이곳에 갇히고 말았다.
"젠장. 나도 이 결계는 관측하지 못했는데."
"이거 큰일 난 거 아닌가?"
"나도 알아. 일단 근처에 대기하고 있을 애들한테… 연락을 해야 하는데."
[통화권 이탈]
안타깝게도 결계에는 전파를 막는 기능이라도 있는 것인지 스마트폰의 화면에는 통화가 불가능하다는 선고가 내려져 있었다.
"쯧. 연락이라도 가능하면 바깥에서 결계를 어떻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결계 너머로도 잘 보이니까 우릴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미안하지만 대기하는 장소는 여기 근처가 아니야."
"그럼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은 한 가지네요."
"그래. 모든 일의 원흉을 조지는 것."
그렇게 이 결계를 설치했을 흑마법사를 잡기 위해 일행들은 다시 마을을 향했다.
몇십 분 정도가 지나서 도착한 마을은 이전 것들과 확연하게 분위기가 달랐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모두 미소가 걸려 있었고, 한 블럭마다 뒷마당에서 고기를 굽고 케이크를 나눠먹으며 파티를 하는 집이 하나 이상은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오히려 기괴함을 만들어냈고, 일행이 탄 차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의 고개가 이쪽으로 향하면서 기괴감은 공포로 바뀌었다.
"이렇게 기분 더러운 마을은 처음이네…."
"저러다가 우리에게 달려들까 봐 무서울 지경이군."
"게다가 입꼬리만 올라가 있지. 눈은 웃고 있지 않아요."
"이곳에 자리 잡은 흑마법사가 얼마나 정신 나갔는지 알겠어."
케이트는 천천히 운전하면서 안개만이 일렁이는 수정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결계에 들어오고 나서 부터 스마트폰과 마찬가지로 먹통이 된 그것은 아무리 마력을 불어넣어도 변함없었다.
"이러다간 시간만 낭비하겠는데. 무언가 뚜렷한 단서 같은 거 없어?"
"음…. 아! 존, 옆자리에 서류 더미 있지?"
"그런데. 무슨 특별한 거야?"
"아니, 방금 탐문한 곳의 실종자 명단."
"실종자면 전부 어딘가에 묶여 있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마을의 규모에 비해 돌아다니는 사람이 너무 많아."
"확실히 그렇기는 하군…."
존은 그제서야 창밖을 확인하다가 누군가와 눈이라도 마주쳤는지 금방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서류철에서 몇십 장의 종이를 꺼낸 후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흐음…. 스티브, 밥, 딜런이라. 알파벳 순서로 정렬이 안 됐네?"
"닥치고 읽기나 해."
"그래. 어디 보자. 어라?"
"무슨 일인데?"
"바깥에 저기 걸어가는 사람, 여기 있는 스티브랑 똑같이 생겼는데?"
"뭐라고?"
그 말을 들은 케이트는 존으로부터 서류를 건네 받더니 거기에 붙어 있던 사진과 바깥의 사람들을 대조해나갔다.
그러더니 차를 세운 후 바로 걸어가고 있는 스티브에게 다가 갔다.
"저기요? 연방수사국의 케이트 수사관입니다.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
그녀는 신분증을 보여주면서 그에게 협력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그는 입꼬리를 내리지도 않고 그저 그녀의 옆을 지나치려고 했다.
"저기 잠시만, 이런 씨발?"
그 모습이 마치 도망치려는 것처럼 보여서 그의 어깨를 잡은 케이트는 무언가 이상한 것이라도 느꼈는지 욕설을 뱉으면서 손을 뗐다.
그러자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고, 차에 있던 이브와 존도 이상함에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에요?!"
"이 녀석… 어깨를 살짝 만졌는데 차가웠어. 움직일 때 삐걱이는 느낌도 들었고."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러니까 이미 죽었다고."
"예?"
케이트가 그렇게 말하자 갑작스레 마을의 분위기가 정반대로 변했다.
파티를 하던 뒷마당에서 들려오던 노랫소리가 갑자기 뚝 끊기고, 사람들의 미소는 울상으로 변했다.
마치 가면이라도 바꿔 쓴 것처럼 순식간에 표정을 변화시킨 그들은 이윽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