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최후
* * *
거대한 땅덩어리가 우주 공간을 부유하고 있었다.
공전하고 있던 은하수와 별들은 새로운 손님의 출현에 흥미롭다는 것처럼 반짝였다.
흑마법사는 갑작스레 변한 상황에 당황스러워하며 웃는 사람들을 움직여 자신을 보호하려 들었지만, 살아 있던 죽어 있던 가리지 않고 뭐든지 부패시키려 드는 검은 역병 덕분에 그녀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견고한 성벽 같았던 결계는 내가 삼키면서 일어난 충격으로 인한 건지 넝마처럼 변해 버려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웃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꺼먼 고름처럼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말았다.
아무리 시체를 일으켜 세운다고 해도 점액질 덩어리에 가깝게 변해 버린 것은 조종하지 못 하는지 흑마법사의 얼굴엔 낭패한 기색이 가득했다.
하지만 진정한 재앙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드드드드드!
그녀가 서 있던 대지가 고통에 떠는 것처럼 진동하기 시작했고, 가장자리 부분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속도는 현저히 느리긴 했지만, 몇 시간만 지나도 밟을 수 있을 땅이 사라지리라는 건 확실했다.
"보아하니 마을 전체를 지식을 위한 제물로 바쳤구나. 그럼 어디 한 번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 구경이나 할까."
"크읏! 그래, 인질을 잡는다면—"
"인질을 잡겠다고요? 이번엔 좀 힘들 텐데."
"저 녀석들만 없으면 할 만 하겠지."
"그래도 조심해. 숨겨둔 수가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르니까."
"이, 이이이익! 그래! 내가 너희들에게 진정한 마법을 보여주마! 너희들의 뼈와 살을 분리하고, 이곳을 당당하게 나가겠다!"
그렇게 말하면서 흑마법사가 들고 있던 지팡이로 강하게 땅을 내리치자 운 좋게 부패하지 않은 웃는 사람들과 집 안에 있던 사람들까지 그녀의 곁에 모여들었다.
그 사이에는 일행을 하루 묵게 해준 집주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뭐, 어째서 살아 있는 그 사람이?"
"아하하, 그야 당연히 여행자들을 낚기 위한 미끼지. 내가 기억을 온전하게 살려서 만드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내가 말했지. 어떤 수가 있을지 모른다고."
집에서 나온 사람은 각자 샷건 같은 총기를 들고 있었고, 일제히 발사해가며 일행을 견제했다.
흑마법사는 아까처럼 물량 공세가 힘들어져서 그런지 웃는 사람들을 달려들게 내버려 두지 않고 그녀의 앞을 지키도록 만들었다.
빗발치는 총알에 보호막을 친 이브는 손바닥 위로 마력을 모으며 주문을 외웠고, 존과 케이트는 공격하는 이들을 하나라도 죽여나가며 불리한 상황을 바꾸려 노력했다.
그러나 아직 살아 있는, 세뇌당한 사람들을 죽이면 금방 웃는 사람으로 되살아나 기계적으로 방아쇠를 당길 뿐이었고, 뒤에 있는 흑마법사를 노리려고 하면 족족 막히고 말았다.
곡선으로 궤적을 그려 나가며 주문을 외우는 그녀를 향해 총알이 나아가도 중간에 있는 고기 방패가 가로막아 대신 맞았고, 눈에 보이지 않을 공기의 칼날도 간단하게 막아 냈다.
땅을 움직여 가시처럼 찌르려 해도 발구름 한 번에 원상태로 돌아오며 몇 번은 예상치 못한 흑마법사의 마법이 보호막을 뒤흔들었다.
이윽고 그녀의 주문이 완성되며 대지는 또다시 울부짖기 시작했다.
"저, 저게 뭐지?"
"저건—"
땅이 갈라지며 솟아오른다.
주변에 있던 집들은 무너지고 아스팔트 아래에 있던 흙이 뭉치며 형체를 이루었다.
마치 인간의 상반신을 닮은 그것은 산처럼 거대했고, 어깨 위에는 흑마법사가 올라타 있었다.
"지금은 좀비나 만들며 영생을 꿈꾸고 있었지만, 타락하기 전의 나는 흙을 조종하며 무생물에 의지를 불어넣는 마녀. 자아, 나의 전력을 한 번 상대해 보거라."
"이렇게나 거대한 골렘이라니…."
"저거 상대할 방법은 있는 건가?"
거대한 기둥이 움직였다.
서서히 위로 올라가던 그것은 일행을 비추는 별빛을 가로막더니 덩치와는 맞지 않는 속도로 빠르게 내리쳤다.
그 충격에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며 마을에 남았던 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허? 운이 좋았나 보구나. 이 공격에서 살아남다니."
어느새 공처럼 둥글게 변한 보호막이 거인의 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안에 있던 존과 케이트는 너무 어지러워서 그런지 구역질이 나오려는 걸 참고 있었지만, 이브는 가만히 서서 주문을 외우고만 있었다.
두 번은 놓치지 않는다며 거인을 움직인 흑마법사는 충격의 여파로 일어난 흙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렸지만, 보호막은 멀쩡하게 굴러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이, 이이이! 나를 놀리고 있구나! 그렇다면 발을 디딜 대지 자체를 없애겠다!"
"아뇨. 이제 그럴 수 없을 거예요."
"뭐라고?"
이브의 손바닥 위에는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마치 별 같은 구체가 둥둥 떠 있었다.
"그깟 조그만 거로 무엇을 하겠다는 게냐?!"
"뭐, 경험해 보시면 아시겠죠. 에잇!"
그렇게 말하고 이브는 작은 별을 흙의 거인의 어깨 위에 있는 흑마법사를 향해 집어던졌다.
그녀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모습에 코웃음을 치면서 보호막을 짓뭉게려고 했지만, 중간에 날아가던 별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
마치 죽음을 맞이하는 별처럼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면서 흙의 거인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다행히도 녀석이 뻗고 있던 팔에 보호막이 어느 정도는 가려져서 별 피해를 받지 않은 일행들은 커다란 크레이터가 만들어진 폭발의 중심지를 향해 걸어갔다.
"끄으으…."
"엄청나게 질긴 생명력이군."
그 아래에는 팔 부분이 시꺼멓게 타들어간 흑마법사가 있었다.
폭발 도중에 거인을 이루던 흙으로 피해를 어느 정도 막아 낸 것으로 양팔만 희생해서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이다.
"이제 완전히 제압한 거 아닌가? 이브, 우리 언제 이 공간을 나갈 수 있을까?"
"글쎄요. 제가 한 주문은 그런 게 아니라서요."
"그게 무슨 소리지?"
"이봐. 말을 조심히 하라고. 우린 지금 위대하신 분의 곁에 있으니까."
"허어? 그게 뭔 개소리야?"
"흘흘흘…. 아둔한 자로구나…."
마치 갓 태어난 새끼 사슴처럼 다리를 부들거리는 흑마법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존을 비웃었다.
"그 아이가 한 주문은 아마… 강림 주문이겠지."
"강림?"
"어떤 존재를 불러낸다는 거야. 주로 그레이트 올드 원이나 아우터 갓이 그 대상이지."
"그건 또 뭔데?"
"간단히 설명해서 엄청 쎈 존재예요."
"그럼 네가 강림시킨 존재가 누군데?"
"저를 구원해주신 분이세요."
"무슨 소리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걸."
존은 별이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찌푸렸다.
"게다가 이런 광경은 어디선가 본 듯한 기분이 들어."
"그래요? 저는 도시에서 자라가지고 잘 모르겠지만, 시골이라면 별 무리로 가득한 밤하늘 정도는 보이지 않나요?"
"아니, 시골 같은 곳에서 본 게 아니라… 분명 창문 너머로…?"
"헛소리는 거기까지 하고, 이 늙은이는 어찌할게냐?"
"그야 당연히 뭐, 죽이던가 기억을 백지화하던가 하겠죠?"
"끔찍하구나."
흑마법사는 고개를 저었다.
"악행에 대한 업보로 받아들이시죠?"
"악행? 지금 악행이라고 한 게냐? 그 선과 악은 대체 누가 나누는 거지?"
"사람들의 사회적 합의로요."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진정으로 자신들이 선하기에 나눌 수 있는 건가?"
"어, 음, 여기서 그런 철학적인 질문을 하시면 곤란한데."
"이 세상은 선과 악으로 가를 수 있는 이분법적인 것이 아니다. 세상은 절대 흑과 백으로 나눠어지지 않아."
"예. 그렇고말고요. 아무튼, 나머지 이야기는 결사단에 가셔서 하시죠."
그렇게 말하며 케이트는 흑마법사를 무력화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다.
"멈춰요!"
"응? 왜 그래, 이브?"
"그래. 이 세상은 흑도 백도 아닌 회색이지. 마치 혼돈처럼 말이야."
씨익 웃은 그녀는 석탄처럼 변해 버린 팔을 움직이며 합장을 했다.
그러면서 떨어진 그을음이 꿈틀거리면서 발밑에 마법진을 만들더니 흑마법사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에게서 지식을 부여받았을 무렵부터 이미 깨달았었다. 영생이란 어차피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그게 무슨 소리지?"
"나는 알면 안 될 것을 알아버린 게야. 분명 그것이 재미 삼아 건네준 것이겠지."
"그러니까 대체 무슨 말이야!"
"잘 듣거라. 이 세상은 다시—"
—푸확!
그렇게 무언가를 말하려던 흑마법사를 마법진이 찢어발겼다.
마치 말해선 안 될 비밀을 말하려고 했던 대가를 받은 것처럼.
그녀가 터지면서 흩어진 피와 살점은 마법진 근처를 둘러싸는 또 다른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점차 빛이 새어 나오더니 어떤 존재가 튀어나왔다.
—■■■■■!
그것은 다리가 셋이고 머리가 있을 자리에는 촉수가 대신하고 있는 거인이었다.
마치 이성이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듯이 행동하는 녀석이 휘두른 촉수에 당할 뻔한 일행을 구한 나는 이제 개입하기로 했다.
이브가 상대할 상대는 흑마법사들 뿐이지 니알라토텝의 화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거인을 원래 있었을 곳인 은가이의 숲으로 돌려보내며 슬슬 상황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부스러졌던 대지를 모아 처음에 집어삼켰던 모양처럼 되돌린 후 그 위에 공중에 떠 있는 일행들을 올려 두었다.
그러고는 마을을 원래 있던 자리로 보내며 이브의 곁에 인형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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