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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106화 (106/154)

〈 106화 〉 후일담

* * *

내가 다시 돌려보낸 폐허가 된 마을을 둘러다보며 일단 일행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했다.

흑마법사가 만들어낸 흙의 거인이 일으킨 파괴 행위로 대부분의 집들이 만신창이가 된 것은 물론이고, 케이트의 차 역시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그녀의 주머니에 들어 있던 스마트폰은 무사해서 어떻게든 근처에 있던 결사단원에게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저기 멀리서 오는 여러 대의 검은 승합차가 한 갈래 길을 따라 내려왔고 금방 마을로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그들이 놀란 표정을 하며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궁금해하는 듯해 보였지만, 너무나도 피곤했던 케이트는 차 시트에 몸을 눕히고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간단하게 설명하더니 곧장 잠들고 말았다.

피해를 수습하러 온 결사단원들은 도저히 복구할 만한 규모의 피해가 아닌 상황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그나마 멀쩡한 시체들과 완전히 녹아내린 검은 점액질을 정리했다.

그러면서 마을의 중앙에서 약간 떨어진 곳, 풀 같은 건 한 포기도 자라나지 않은 채 그을음으로 가득한 작은 동산이 있었다.

그건 바로 이브의 마법으로 파괴된 흙의 거인의 흔적.

결사단원은 원래의 지도를 보면서 여기에 왜 동산이 있는지 의아해하면서도 주문을 이용해 원래의 모습으로 복구해나갔다.

이대로 놔둔다면 알아서 마무리하리라 생각한 나는 시선을 떼고 다른 것에 집중했다.

바로 흑마법사가 남긴 유언.

분명히 그녀는 '이 세상은 다시'라고 말하다가 몸이 순식간에 팽창하면서 터져 버리고 말았다.

말해선 안 될 비밀을 말하면 자동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금언의 저주가 떠올랐지만, 그 정도로 실력 있는 흑마법사라면 자신에게 심어진 주문을 못 알아챌리가 없었다.

물론 알아차리는 것과 그걸 해제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걸 말하려고 할 때까지도 얼굴에서는 두려움이라고는 한 점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살아와서 표정 연기에 능숙해진 것이 아니라면 알아차리기도 전에 살해당했다는 것이 된다.

흑마법사가 마지막에 만들었던 마법진은 분명 니알라토텝의 화신인 은가이 숲의 거인을 소환하는 것이 분명했지만, 그녀가 말을 끝마칠 때까지 발동되지 않을 터였다.

그렇다면 내가 있는 공간에 몰래 들어와서 수작을 부렸다는 뜻인데, 그것이 가능한 존재는 아직까진 하나밖에 없었다.

"니알라토텝."

"푸흐흐. 불렀어?"

"흑마법사를 터뜨려 죽인 건 네 짓이겠지?"

"어머, 지금 가련한 소녀를 의심하는 거야?"

"웃기는 농담은 거기까지 하고.."

그렇게 말하자 소녀의 모습으로 나타난 니알라토텝은 미소 지었다.

"응. 내가 한 짓이야."

"어째서 그런 거지. 혹시 그녀에게 '진실'이라도 말한 건가?"

"하는 행동이 재밌기도 했고, 가장 많은 제물을 바쳤거든. 그래서 재미 삼아 한 번 알려 줬더니 잠깐이지만 실성하다 싶이 웃더라고."

"그런데 그녀가 말하는 걸 막은 건 이유가 뭐냐."

"그걸 듣는 순간 이야기는 끝을 향해 달려갈 테니까. 내가 막을 틈도 없이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지?"

끝을 향해 달려간다는 건 도대체 무슨 뜻인 걸까.

세상의 종말?

"네가 우려하는 배드 엔딩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건 다행이군."

"내가, 아니, 우리가 바라는 것은 별거 아니야."

"그게 뭐지?"

"이야기를 완성시켜 주었으면 해. 존의 친우인 브라운이 살아 있는지, 제임스는 과연 역경을 이겨 내고 성장할 수 있는지. 그거 이외에도 여러 가지 말이야."

"전에는 재미없다고 하지 않았나?"

"이젠 나도 등장인물이니까. 재밌는 일을 잔뜩 만들 예정이라고?"

앞으로 있을 많은 혼란을 기대하는 것인지 더욱 밝은 미소를 지은 니알라토텝은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혼란스럽게 하는 말만 잔뜩 하고 가는군."

기어오는 혼돈.

그 이명과 걸맞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궁금한데.'

도대체 진실이 무엇이기에 막아 낸 것일까.

'이 세상은 다시… 반복된다?'

혹시 내가 최근 하지 않았던 리셋을 말하는 걸까.

이 세상이 무한 루프를 한다고 듣는다면 절망에 빠질 사람도 있긴 할 거다.

하지만 그 사실이 과연 연명의 욕망을 버릴 정도로 커다란 절망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게다가 나는 리셋할 때마다 무언가를 추가해 왔다.

니알라토텝이 그런 사실은 쏙 빼놓고 이야기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현저히 낮다고 본다.

"애초에 리셋한다는 건 나도 아는 사실인데 그럴 리가 없겠지."

이야기의 끝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여기서 더 이상 추측해나갔다간 안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복잡해진 머리나 진정시킬 겸 나는 지구를 바라봤다.

어느새 근처 마을로 도착한 일행이 숙소를 잡아 자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의식을 이브가 껴안고 있는 역병 의사로 돌리며 시간을 빠르게 돌렸다.

바깥에선 새의 노랫소리가 들리며 아침 햇살이 창문을 비췄고, 일행은 모두 일어나 채크아웃을 하고 아침을 먹으러 식당을 찾았다.

이번에는 플래그를 세우지 않아서 그런지 강도 같은 이들이 나타나지 않은 평화로운 곳에서 든든하게 식사를 마친 이들은 결사단 미국 지부로 향하기로 했다.

케이트가 끌고 온 차는 파손되었으므로 다른 결사단이 가져온 차를 타고 고속도로에 오른 그녀는 네비게이션을 보며 엑셀을 밟았다.

거친 엔진음을 내며 빠르게 달리는 차는 몇 시간 만에 존이 처음에 왔던 건물에 도착했고, 아직 할 일이라도 남았는지 일행은 로비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이 험난한 의뢰도 끝이네."

"그래? 난 이제 시작인데."

"책상 위에 서류로 탑이라도 쌓았대요?"

"그런 사진이 온 건 아니지만… 아마 그러지 않을까?"

"너도 고생이 참 많군."

눈앞에 서류의 산이 어른 거리기라도 하는지 우울해하는 케이트의 어깨를 존과 이브가 각각 토닥여줬다.

"그런데 나는 의뢰금을 어떻게 받아야 하지? 이브야, 너는 뭐 아는 거라도 있니?"

"글쎄요?"

"위에서 별 이야기는 없었는데."

그러고 보니 존의 의뢰금을 깜빡했다.

서프라이즈로 에반에게 시켜서 서류 가방을 배달시킬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그냥 그의 앞으로 이동시키기로 했다.

허공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검은 가방이 일행의 앞에 있는 탁자에 떨어지며 둔탁한 충격음을 냈다.

"우왁! 깜짝이야."

"뭘 이런 거로 놀라요?"

"전조가 있었잖아."

"아니. 나는 마법사가 아니라니까?"

"아, 그걸 깜빡했네. 사흘 동안 같이 다니다 보니 착각했어."

"에휴…. 난 일단 의뢰금이나 확인해야겠네."

존이 서류 가방을 열자 보이는 것은 두꺼운 종이 다발들이었다.

그걸 하나씩 세어가면서 처음에 말했던 금액과 비교하더니 그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띄면서 가방을 다시 닫았다.

"허, 돈을 얼마나 받은 거야?"

"7만 파운드."

"많이 받았네."

"솔직히 대부분이 생명 수당인 느낌이지만 말이야."

"그래. 오, 드디어 왔다. 어이! 여기야!"

케이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누군가를 보고는 이쪽이라면서 팔을 크게 흔들었다.

금세 이쪽으로 온 그는 그녀에게 서류철을 건네주더니 금방 떠났고, 케이트는 받은 것을 존에게 줬다.

"자, 여기 첫 번째 사건의 실종자 명단. 사망자와 부상자, 생존자는 각각 표시되있고."

"고맙군."

"나는 솔직히 그냥 올라가서 보여주고 싶었지만—"

"알아. 외부인은 출입 금지인 거."

"사실 이것도 결사단원 이외의 사람에게 보여줘서는 안 되지만… 너는 선택 받았으니까."

"……."

존은 옆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서류를 읽었다.

A부터 Z까지 알파벳 순서로 나열된 이름 사이에서 M으로 시작하는 이름을 찾아 눈을 움직이던 그는 금방 브라운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여기 있군.…휴우. 다행히도 사망은 아니야."

"그거 정말 다행이네."

"그런데 부상자로 표시됐네요?"

"음, 찰과상과 타박상, 그리고 뼈에 금이 갔다니. 게다가 미약한 정신 질환까지?"

"사람들로 건물을 빽빽이 채웠으니까 말이지. 탈출하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어?"

"그렇겠지. 찰과상은 아무래도 밧줄 때문인 모양이고. 하지만 정신 질환은 대체 어째서지?"

케이트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손에서 수정구를 굴렸다.

"상황이 좋지 않긴 했어. 사람의 정신력은 그다지 강하지 않거든."

"하지만 브라운도 나와 비슷한 일을 겪었는데."

"위에서는 사악한 존재가 소환되고, 이어서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함께 끔찍한 소리가 들려오는데 이 정도면 약과지."

"이 정도가?"

"다른 사람들 보면 정신 병원에 입원된 사람들도 많다?"

"…진짜로군."

"그럼 멀쩡한 사람들은 전부 아래층에 있던 사람들인가 보네요."

"그렇지."

브라운의 생존 확인을 한 존에게서 서류철을 반쯤 뺏어오듯이 가져온 케이트는 그걸 옆구리에 끼며 일어섰다.

"읏챠. 그럼 이제 헤어질 시간이네."

"많이 힘들었지만 재밌었어요."

"나는 재미없었다."

"에이, 제가 보기엔 앞으로도 여러 번 겪을 거 같은데요?"

"부디 네 안목이 틀리길 빌어야겠군."

"그럼 이브, 안녕. 탐정 나으리도 마찬가지고."

"케이트 언니 다음에 또 봐! 다음에 여행 오면 다른 곳도 소개해 줘야 해요!"

"왜 너도 나랑 같이 가는 것처럼 말하는 거냐. 아무튼, 처음에 제 무리한 부탁을 들어 줘서 감사합니다. 케이트 씨."

존은 케이트와 악수를 하고는 이브의 머릿결을 쓰다듬고 건물을 떠났다.

나는 그런 그를 바라보다가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럼 우리도 돌아갈 때구나."

"네."

"위대한 존재시여.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그래."

이윽고 저택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면서 이브와 나는 발을 디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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