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정신병원
* * *
커다란 사건도 하나 마무리했으니 당분간 재밌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국으로 돌아간 존을 관찰하는 중에 브라운에게서 온 문자를 보게 되었다.
[M : 오늘 드디어 팔에 한 깁스를 푸네요]
[J : 오, 그럼 이제 게임도 제대로 할 수 있겠네]
[M : 그렇죠]
[M : 그리고 정신병원에 가서 의사와 상담만 하면 끝이에요]
[J : 거기 별로 안 좋다고 하지 않았어?]
[M : 어쩔 수 없죠]
[M : 저희 동네 근처에 있는 곳이 거기 밖에 없는데]
[M : 그리고 마을에서 많이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자연 환경도 괜찮고요]
무언가 불길함이라도 느꼈는지 존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면서 침음을 냈다.
"으음…. 왜 이렇게 불길하지?"
[J : 첫인상은 별로였다면서]
[M : 그렇긴 했죠]
[M : 면회온 사람이 자기 동생은 멀쩡하다면서 난동을 피운다던가]
[J : 그게 사실이었다면?]
[M : 에이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런 짓을 벌이겠어요?]
[M : 그거로 고소당하면 병원 망할걸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정신병원이라니.
아무리 봐도 어떤 일이 벌어질 만한 공간이다.
[M : 아무튼 몇 시간 후에 문자해요]
[M : 아 그러고 보니 영국은 그때 새벽이던가?]
[J : 아직은 아니야]
[J : 그곳이랑 5시간 정도 차이니까 밤이겠지]
[M : 의사가 부르네요]
그렇게 브라운에게서 오는 문자는 잠시 멈췄다.
그러는 사이 존은 인터넷에 들어가더니 항공편을 살피기 시작했다.
내게 받은 의뢰금이 많아서 그런지 취소하는데 드는 비용도 신경 쓰지 않고 내일 미국으로 가는 티켓을 예약했다.
그러고는 브라운에게서 문자가 올 때까지 정신 사납게 손가락으로 계속해서 책상을 치며 인터넷 서핑을 했다.
약 두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알림이 오자 존은 빠르게 창을 열었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다급하게 쓴 듯한 문장이었다.
[M : 존, 의사가 저를 입원시켜야 한다고 해요]
[M : 분명히 며칠 전에 의사가 그런 말을 꺼냈을 때는 부모님이 헛소리말라고 했는데]
[M : 오늘은 뭔가 달라진 것처럼 고개만 끄덕거렸어요]
[J : 젠장]
[J : 거기 빠져나올 수 있겠어?]
[M : 일단 상담실 같은 곳은 나왔는데 간호사가]
그것을 끝으로 문자가 올라오지 않았다.
분명 아래에는 메시지를 작성 중이라고 나오고 있지만, 누군가에게 잡혀서 폰을 놓쳤는지 몇 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존이 초조해하며 오늘 밤에 가는 티켓이라도 찾으려고 했지만 금방 알림이 왔다.
—띠링!
[M : 방금 보낸 문자는 잘못 보낸 거예요]
[M :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존]
방금 왔던 문자와는 상반되는 내용.
존은 지금 자신과 문자하고 있는 사람이 정말로 브라운인지 확인하려고 질문을 했다.
[J : 마틴, 내 성씨가 뭐였지?]
[M : 네? 그런 건 왜 물어봐요?]
[J : 내가 치매라도 왔나 봐]
[M : 그럼 가까운 병원에 가보세요]
[J : 그래서 내 성씨가 어떻게 되더라?]
[M : 신분증이라도 찾으세요]
계속해서 답변을 피하는 상대방은 결국 무시하기로 결정했나보다.
이후 존이 문자를 보내도 아무런 답을 하지 않자 그는 주먹으로 세게 책상을 내리쳤다.
—쾅!
"젠장!"
분노에 찬 목소리로 욕을 하며 옷걸이에 걸려 있던 코트를 걸쳐 입은 그는 안주머니에 든 권총을 확인하며 사무소를 나섰다.
윗층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무슨 일이냐며 묻는 질문에 애써 미소를 지으며 아무런 일도 아니라고 말한 존은 재빨리 그의 집으로 향했다.
금방 허름한 집에 도착한 그는 옷가지 등을 가방에 넣으며 짐을 싸더니 침대에 걸터앉았다.
"후우… 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이번에도 부디 늦지 않기를…."
그렇게 말하며 마치 신에게 기도하는 것처럼 양손을 살포시 감싼 그는 침대에 누워서 억지로 잠들었다.
—삐비비빅! 삐비비빅!
한 여섯 시간 정도 지난 후, 존이 설정한 알람이 울렸다.
아직 해도 떠오르지 않은 어두운 시간에 깨어난 그는 간단하게 양치와 세안을 마친 후 가방을 챙겨 집을 나왔다.
이런 새벽에 다니는 택시가 없어서 오랜만에 보는 차를 꺼내더니 시동을 걸었다.
아무도 없어서 조용한 거리의 한구석을 자그마한 엔진음이 채워가며 존은 공항을 향해 떠났다.
점점 하늘이 밝아오며 푸르게 물들어가던 하늘에 주황빛의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자신을 반기는 듯한 밝은 햇살에 눈가를 가리던 그는 주차를 마치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예약했던 표를 끊고 검사까지 마친 그는 금방 비행기에 올라타 애매하게 푹신한 시트에 몸을 맡겼다.
나는 그런 그가 미국에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빠르게 돌렸다.
***
푸른 바다 위를 날아가던 하얀 점이 영국 옆의 커다란 대륙에 도달하기까지는 내게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승객이 내릴 쯤에 빠르게 흐르던 시간을 원래대로 만든 나는 다급히 공항에서 뛰어다니는 존을 찾을 수 있었다.
빠르게 자신의 짐을 찾아 밖으로 나온 그는 곧바로 택시를 불렀고, 어떤 주소를 말하며 최대한 빨리 가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택시가 가는 도로가 이상했다.
분명 브라운이 감금된 정신병원으로 가는 길과는 방향이 달랐던 것이다.
택시 기사가 돈을 더 받으려고 저러는 걸까 생각하던 나는 존이 도착한 곳을 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곳은 바로 며칠 전에 그가 이브와 찾아온 결사단의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마주해서 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던 로비의 안내원은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는 안내 데스크로 다가온 존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머, 존 왓슨 씨 아닌가요?"
"네, 허억, 그렇, 후우, 습니다."
"일단 잠시 진정 좀 하세요."
안내원은 숨이 가쁜 그를 위해 물을 건네줬고, 그걸 한숨에 들이마신 존은 심호흡을 하며 심장을 가라앉혔다.
"당신은 분명 며칠 전에 영국으로 돌아가시지 않았나요? 분명 위에서 내려온 전달 사항은 그것뿐이었는데."
"네. 이번엔 개인적인 일로 찾아왔습니다. 저번에 그, 아시죠? 제 친구."
"아, 그 테러에 휘말리신 분이요?"
"걔가 무슨 일에 또 휩쓸린 모양이어서요. 혹시 여기도 아는 게 있지 않은가 해서. 그리고 가능하다면 도움을 좀 받으려고요."
"그렇군요. 그럼 케이트 씨에게 바로 연락을 보내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그녀가 앞에 놓인 컴퓨터로 문자를 보내더니 금방 엘리베이터로 케이트가 내려왔다.
"오, 탐정 양반. 이렇게 빨리 보게 될 줄이야."
"제 사정은 들으셨죠?"
"응. 사실 여기가 흥신소도 아니고 무작정 찾아오면 안 되는데, 여기 제인 양이 선심 쓴 거다?"
"감사합니다."
"뭘요. 만약 사건이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저희가 처리해야 하는 일이기도 한 걸요."
안내원, 제인은 미소 지으며 답했고, 손가락으로 차키의 열쇠 고리를 돌리던 케이트는 빨리 가자고 말했다.
"한시가 바빠 보이는데 그렇게 여유부려도 괜찮겠어?"
"아, 맞다. 그럼 전 가 볼게요! 제인 양, 감사합니다."
"저도 행운이 있기를 빌게요."
미리 건물을 나왔던 케이트는 금세 차를 가져 왔고, 존이 타자마자 바로 엑셀을 밟았다.
쏜살처럼 달려서 순식간에 도로를 가로지른 차량은 어느새 한적한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우와악! 위치도 모르면서 무작정 밟으면 어떡해!"
"내가 왜 위치를 몰라? 며칠 전에 같이 갔으면서."
"아, 맞다."
씨익 웃으면서 입에다가 담배를 물은 케이트는 간단하게 주문을 외워 검지 손가락 위로 불꽃을 만들어냈다.
그걸로 불을 붙인 후 손가락을 휘휘 움직이며 잔상으로 남는 빛의 궤적을 구경하다가 꺼버렸다.
"스읍— 후우…. 몇 시간 만에 피니까 맛있네."
"거, 나도 불 좀 빌려주지."
"안 돼. 사실 추가로 하려던 게 있거든."
그녀는 주문을 몇 마디 외우며 담배 연기를 내뱉더니 꿈틀거리던 회색 연기가 어떤 형체를 만들어냈다.
그 모습은 마치 사지가 결박된 채로 침대에 묶인 듯한 모습이었다.
"이건…?"
"수정구를 쓰려면 좀 마력이 많이 들거든. 게다가 들킬 가능성도 있고."
"그럼 이 마법은 어떤데."
"지금 내가 찾고 있는 사람의 모습만 간단하게 보여 주지. 그래도 아직 죽지는 않은 모양이네."
"미국 시각으로 어제 오후에 잡혔으니까 말이지."
"아무튼 우리가 테러로 바빠졌을 때 이런 일을 벌이다니."
케이트는 반쯤 피운 담배를 우그러뜨리면서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앗 뜨거."
"괜찮나?"
"주문 쓰면 몇 분이면 나아. 그래도 이런 습관은 고쳐야 하는데."
옆에 있는 재떨이에다가 손을 탁탁 털은 그녀는 데인 부분을 후후 불어가며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붉었던 피부가 점점 원래대로 돌아오면서 괜찮아졌다.
"그런데 너 바쁘지 않았던가? 책상 위에 보고서로 산을 쌓았다면서."
"겨우 그 정도로 힘들어하기엔 많이 해봤지. 높은 곳에 앉으려면 속독을 배우거나… 여유 시간을 포기하는 수밖에는 없으니까."
"그런가. 그래도 이번엔 장소를 알고 있어서 편하네."
"그러게. 저번에는 총알을 쫓아간다고 작게 마법진까지 새겼었는데 말이야."
바람이 새는 듯한 웃음소리를 내며 케이트는 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더니 엑셀을 더욱 세게 밟았다.
"어, 나야. 지금 전투부는 여유롭지? 어, 수습할 애들은 나중에 보내. 주소는 지금 보낸다. 그럼 끊어."
—뚝.
"지금 어디에다가 전화한 거야?"
"내 밑에 애들. 이번 사건은 댁이 손 쓸 일도 없을 걸?"
"그 전투부라는 살벌한 이름은 뭔데?"
"말 그대로 전투 마법사가 있는 부서지. 솔직히 거기 부장은 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강할걸? 내가 저번에 좀비들한테 둘러싸였을 때 말했잖아."
"그 사람이었으면 전부 죽이고 이미 나왔다고?"
"그래. 그리고 주소를 보니까 말이지…."
"응?"
"우리랑 좀 연관된 곳이더라고. 주로 백지화된 흑마법사를 가두는 곳이거든."
"허어, 그런데 그런 짓을 벌여?"
"병원장이 미쳤든, 어떻게 기억이 남은 흑마법사가 수작을 부렸던가 했겠지. 다들 이제 끝이지만."
그렇게 말한 케이트는 거의 200에 가까워지는 계기판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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