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숲의 의식
* * *
일단 정신병원에서 혹시라도 지켜보고 있을 눈을 피하기 위해 산길을 타고 내려온 둘은 대기하고 있던 검은 승합차들을 볼 수 있었다.
내려오던 차를 발견하자 안에 타고 있던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모두 내렸고, 존은 그 모습에 바짝 긴장해서 코트 안의 권총을 잡았다.
하지만 케이트가 태연하게 내려서 그들에게 다가가자 안심한 그도 문을 열고 내렸다.
"수고 많으십니다. 정보부장님."
"오, 네가 왔어? 그럼 그 사람도 여기 온다는 소리인데."
"저희 부장님은 지금 근처의 다른 임무를 수행 중입니다. 원래는 저희 1팀 전체가 맡고 여기는 2팀이 오기로 했는데 굳이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하긴, 웬만한 일이면 그 사람 혼자서도 전부 해결할 수 있겠지."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전투부장에 대해 떠올리는 듯한 모양새였다.
"일단 차량은 모두 숨겨 놓고 걸어서 이동하자. 내가 밑에 애들한테 감시하라고 전했으니까 아직은 여유롭게 해도 괜찮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독수리 7, 8은 각각 차량을 이동, 은폐한 후 다시 이곳으로 올 것. 만약 우리가 이곳에 없다면 정보부의 지원을 받아 전투 현장으로 바로 이동할 것. 알았나?"
"예!"
"그럼 바로 실시하도록."
명령을 받은 이들은 곧바로 차 키를 받은 후 운전을 해 길을 따라 내려갔다.
전투부원들은 마치 딴 짓도 안 하면서 그저 동상처럼 서 있기만 할 뿐이었고, 케이트는 심심해서 그런지 주머니에서 꺼낸 수정구를 굴리며 시간을 죽였다.
그렇게 몇십 분 정도를 기다리자 그녀에게 연락이 왔고, 정신병원의 후문 쪽에서 불빛이 보였다.
바로 여러 명의 인원이 브라운과 다른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을 들것에 눕혀두고 어디론가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감시하고 있던 정보부원들도 그걸 발견했던 건지 케이트의 표정이 심각해졌고, 그녀는 전화를 끊자 마자 곧바로 가자며 손짓했다.
마침 차량의 은폐를 마치고 돌아온 전투부원까지 시간에 맞게 돌아왔고, 그들은 어둑한 밤길을 성큼성큼 걸어 다녔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횃불을 들고 어디론가로 향하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선두에는 하얀색의 의사 가운을 걸치고 안경을 쓴 중년의 남성이 보였다.
아무래도 병원장으로 보이는 그의 뒤로는 마찬가지로 하얀 옷을 입은 건장한 젊은이들과 몇몇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행렬에 있었다.
그들을 미행하며 소리 없이 따라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고대에나 사용했을 법한 오래된 의식장에 도착했다.
돌을 깎아 바닥을 만들고, 기둥을 세우고, 사람이 열 명은 넘게 올라갈 수 있을 만한 제단까지 있는 그곳에는 신비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병원장이 제단 위에 올라서서 나무 가면을 쓰고 사람 키 만한 기다란 지팡이로 바닥을 두들겼다.
—둥. 둥. 둥.
그러자 돌과 나무가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아닌 북을 치는 듯한 소리가 의식장에 울려 퍼졌다.
병원장이 그러는 사이 함께 왔던 이들은 데리고 온 브라운과 다른 환자를 제단 위에 눕혀둔 후 기둥 사이에 있는 화로에다가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제단 주변을 일정한 속도로 빙빙 돌면서 괴상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정해진 형태 없이 몸을 기괴하게 꺾으며 마구잡이로 팔을 휘두르는 모습을 누군가가 본다면 경련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런 현장의 중앙에 있는 병원장은 여전히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치며 하늘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점점 시간이 지나며 그들의 춤사위에는 열기가 깃들며 동작이 빨라졌고, 그 영향인지 달을 가리던 구름은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다.
그리고 보름달이 의식장을 비추자 병원장이 세게 지팡이를 내리쳤다.
—쿠웅!
그러자 바닥에 쌓여 있던 먼지가 요동치며 들썩였고, 춤을 추던 이들은 자세 그대로 멈추더니 양팔을 들며 무언가를 찬양하는 듯한 자세로 바꿨다.
달은 그에 응답하듯이 더욱 차가운 빛을 발산하며 응답했고, 병원장의 주문이 의식장 전체에 낮게 깔렸다.
"———"
"지금이 적기인 모양인데?"
"돌격해."
그걸 지켜보고 있던 케이트는 마법을 준비하고는 대기하고 있던 전투부원에게 돌격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들이 뛰쳐나가면서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나자 병원장이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어둠 속에서 작렬한 여러 줄기의 번개가 순식간에 의식장에 있는 이들에게 도달했다.
—두웅!
그러나 병원장이 지팡이를 한 번 내리쳐서 만든 보호막에 간단히 막히고 말았다.
"막아라!"
그가 손을 뻗으면서 명령을 내리자 간호사로 보이는 이들은 몸을 날렸고,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은 천천히 움직이며 주문을 외웠다.
"칫, 우리가 백지화한 흑마법사도 쓰는 모양이네."
"그게 가능한가?"
"어떻게든 백지화를 피했던가, 저기 저 녀석이 자기 꼭두각시로 만들었나보지!"
"그럼 나도 참전해야…."
"아직 괜찮아. 벌써부터 수세에 몰렸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날뛰는 환자들을 제압하기 위해 몸을 키운 간호사가 달려오는 모습은 위압감 그 자체였지만, 마법사들은 움츠려들지도 않고 빠르게 주문을 외우며 육탄전을 펼쳤다.
육체의 질량으로 상대를 찍어누른 후 입을 틀어막으려는 걸 마법사는 한끗 차이로 피하며 빈틈으로 주먹을 찔러넣었다.
"윽!"
간호사들은 맞을 때마다 외마디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려들었다.
그들은 그저 의식장에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는 것처럼.
마치 성벽처럼 침입자들을 막아서는 그들의 뒤에서 마법이 날라왔다.
엄청난 한기를 내뿜는 커다란 얼음의 창이, 그와 상반되는 푸른빛의 불꽃이 마법사들을 집어삼킬 것처럼 다가왔다.
교묘하게 간호사들을 피하며 그 상대만 노리는 마법은 그대로 죽음을 안겨다 줄 것만 같았지만 전투부원의 선택은 간단했다.
똑같이 강력한 마법으로 대응하는 것.
얼음의 창에는 불꽃으로, 거대한 불덩어리는 엄청난 양의 물로.
"물이 없는 곳에서 이 정도의 마법을 쓰다니!"
"잠깐, 그거 어디서 들어 본 거 같은데."
"신경 쓰지마."
그걸 구경하던 케이트는 감탄하면서 치열해져가는 싸움을 계속해서 지켜봤다.
마법이 파훼 되고 나서 다시금 마법사들을 막아서던 간호사들은 누적된 고통에 점점 무릎에 힘이 빠지는 게 보였다.
제단에서 멀뚱히 보고만 있던 병원장은 그 모습에 혀를 차더니 호통쳤다.
"돌아와라! 이 쓸모없는 것들!"
그러자 어디서 힘이 난 건지 간호사들은 재빠르게 의식장 안으로 들어섰고, 마법사들도 그를 따라서 쫓아갔지만 넓어지는 보호막에 밀려나고 말았다.
"어디서 온 방해꾼인가 했더니 결사단에서 온 건가!"
"그래. 우리들의 눈을 피해 이런 짓을 벌이다니. 간이 많이 커졌는지 확인해 주마."
"흐하하! 너희들은 절대 날 이기지 못할 것이다!"
"저, 병원장님? 제 머리가, 끄, 끄아아악!"
간호사들은 결사단에서 왔다는 말에 긴장하다가 갑작스레 두통을 호소했다.
그러더니 그들의 머리가 마치 끓어오르는 것처럼 꿈틀거리더니 갑작스레 터졌다.
새하얀 두개골과 머리 가죽이 회색 돌바닥에 흩어지며 간호사들의 머리에는 거대한 뇌가 자리하고 있었다.
"우욱. 저건 좀 역겹구만."
"윽, 설마 신문에 나왔던 그 사건이…?"
"하, 도대체 언제부터 준비했던 거야?"
뇌가 거대화된 간호사들은 어기적거리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일어서 있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병원장이 지팡이를 내리치자 허공에서 불덩이가 생겼다.
가히 사람 한 명은 거뜬히 삼킬 만한 크기의 그것은 마법사의 수에 맞게 일곱 개가 생성되어 빠르게 날라왔다.
"큭! 산개하라!"
임시 대장을 맡고 있던 마법사가 명령을 내리자 모두 불길을 날름거리던 화염구를 피했다.
그러나 아무리 도망쳐도 계속해서 따라오는 불덩이는 결국 하나씩 이들을 삼키고 말았고, 모든 마법사들이 불에 휩싸인 채로 쓰러졌다.
"크하하! 나는 최강이다! 너희들은 연결된 우리들을 절대 이기지 못해! 그래, 시체도 남기지 않고—"
하지만 병원장은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거대한 빛의 기둥이 의식장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쿠르릉!
단 한 번에 의식장을 감싸던 보호막을 깨뜨린 번개와 함께 나타난 것은 근육질의 사내였다.
다른 전투부원과 마찬가지로 로브를 입었지만, 그 덩치 때문에 로브가 망토처럼 보이는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표정을 굳혔다.
"뭐냐. 너희들, 지금 피곤하다고 자는 거냐!"
그러더니 마법에 피격당해 쓰러진 자신의 부하를 보고 꾸짖었다.
"아이고, 부장님. 이게 다 기만 전략이라니까요. 죽은 척하기 몰라요?"
"압도적인 힘으로 쓰러뜨리면 될 것을, 굳이?"
"에휴, 이래서 내가 부장님이 싫다니까."
쓰러져 있던 마법사들이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로브에 붙은 불을 탁탁 털었다.
보호막이 깨진 충격에 휘청거리던 병원장은 그런 모습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무, 무슨! 분명히 나의 위대한 마법으로 쓰러졌을 텐데!"
"에이, 겨우 그 정도로 쓰러니면 전투부 1팀은 들어오지도 못하죠. 게다가 이 로브에 얼마나 많은 술식이 중첩됐는데."
"말도 안 된다! 이이이! 그렇다면 나도 전력을 다하겠다!"
"호오, 흥미롭군."
"부장님? 지랄하지 마세요."
"아니, 왜. 방금 끝내고 온 임무도 별 재미도 없었단 말이야."
"그럼 댁 혼자서 처리하시던가."
"그래. 맡겨만 둬라."
전투부장은 마치 장난감을 기대하는 듯한 표정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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