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숲의 의식
* * *
그가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에 자신을 얕본 거라고 생각한 건지 분노한 병원장은 지팡이를 세게 내리쳤다.
그러자 땅에서 굵은 가시들이 빽빽하게 자라나면서 전투부장을 노렸지만, 그가 발을 한 번 구르자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산이 요동치며 만들어졌던 가시들도 부스러졌다.
"큭, 그렇다면 이건 어떠냐?!"
이번엔 병원장이 지팡이를 높게 들어 휘두르자 그 횟수만큼 사람의 머리보다 큰 화염구가 생성되었다.
그제서야 그는 싸울 맛이 나겠다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고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염구를 하나씩 부수면서 서서히 속력을 높여갔고, 그의 주먹은 뜨거운 열기로 붉게 물들긴 커녕 멀쩡하기만 했다.
"이, 이게, 괴물, 괴물이다!"
"사람에게 괴물이라니. 거, 너무 섭섭하구만."
"그래. 저 로브 때문인 게 분명해! 이 비겁한 녀석!"
"허. 댁의 마법이 너무 약해가지고 그런 걸 왜 핑계를 대고 그래? 그런 댁을 위해 한 가지 가르침을 주도록 하지."
물론 살아남는다면 말이지—라고 조용히 속삭이며 그는 잠잠히 있던 체내의 마력을 점차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요한 바다에 갑작스레 폭풍이 들이닥치는 것처럼 엄청난 마력의 격류가 공간에 휘몰아쳤다.
병원장은 그에 경악하며 재촉하듯이 지팡이를 내리쳤고, 뒤에 있던 뇌가 거대화된 환자가 작은 입으로 주문을 속삭이자 커다란 얼음 창이 공중에 생성되었다.
"모든 것을 불사르는 불꽃이여—"
전투부장은 그에 대응하듯이 공중에 자그마한 불티를 만들어냈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만 같은 그것은 미약한 빛을 내며 가만히 있었지만,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몸집을 불려가며 그 덩치를 키웠다.
순식간에 사람 몇 명은 가볍게 꿰뚫을 만한 불꽃의 창이 만들어졌고, 병원장의 지시로 날아오던 얼음의 창을 깨부수고 의식장의 보호막을 두들겼다.
—쿠우웅!
"흠. 보호막 하나는 단단하게 잘 만드는 모양이네. 박수라도 쳐줄까?"
"지금, 날 우롱하는 거냐?!"
"아니, 칭찬하는 거라니까."
그는 가볍게 박수를 치다가 빠르게 날아오는 얼음의 단검을 뛰어서 회피했다.
병원장은 빗나간 것에 혀를 차면서도 지팡이를 두들기며 다음 주문을 준비했고, 전투부장은 그 모습에 매정하다면서 불평했다.
한편 뒤에서 그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존은 아예 자리를 잡고 앉은 케이트와 다른 전투부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거 끼어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에이. 괜찮아."
"저희 부장님이 성격은 저래도 일 처리는 확실하게 끝내요."
"그래도 이번 현장은 산속이여서 다행이다? 만약 도시였으면 너네들이 더 고생했을 텐데."
"그러게요. 보는 사람도 없으니 결계를—"
"잠깐."
갑작스레 케이트가 말을 끊더니 하나밖에 없는 산길을 돌아봤다.
"왜 그러십니까?"
"사람들, 아니, 환자들이 이쪽으로 온다."
"갑자기?"
"혹시 흑마법사도 있습니까?"
"지금 확인 중이야…."
그녀가 주문을 외우자 마력으로 이루어진 구체가 그녀의 눈이 있는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빠르게 산길로 날아가더니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체는 증발하듯이 사라졌고, 다시 눈을 뜬 케이트는 입을 열었다.
"내 기억 속에 있는 흑마법사는 없어."
"그럼 일반인이거나 잔챙이라는 거네."
"너희들은 낄 거야? 너네 부장은 오히려 좋아할 거 같은데."
"상황 보면서 행동해야겠죠. 솔직히 저희들이 없어도 혼자서 쓰러뜨릴 게 눈에 선한데."
산길을 따라 올라오는 환자들은 모두 이지를 잃은 것처럼 비척거리며 걸어왔다.
전투부장도 그 기척을 느꼈는지 주문을 쳐 내는 와중에도 고개를 돌려서 확인했고,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무시당한 병원장만 길길이 화낼 뿐이었다.
"내 마법은 신경 쓸 가치도 없다는 거냐!"
"아니, 잠깐 어떤 손님이 왔는지 확인한 건데."
"네 오만도 이제는 끝이다! 나의 진정할 힘은 이제부터 발휘될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기대하는 눈으로 의식장으로 향하는 환자들을 막지 않고 보내는 전투부장의 눈은 매우 반짝였다.
"자라나라! 그리고 연결되라! 거대한 뇌는 곧 초월을 향한 초석이 될지어니!"
"초월? 헛된 꿈을 꾸는구만."
"과연 그럴지는 결과가 일러줄 것이다!"
보호막이 펼쳐진 의식장 안으로 들어간 환자들은 모두 갑자기 의식이 깨어나며 고통에 찬 신음을 지르더니 머리 가죽과 두개골이 갈라지며 같은 절차를 밟았다.
그러더니 거대화한 뇌에 혈관 같은 것들이 자라면서 마력의 선이 주변의 다른 이들과 연결되더니 모두 하나가 되어 병원장과 이어졌다.
"그래. 한층 높아진 시야! 그리고 전능감은 마약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지!"
"쓰읍…. 이건 선을 많이 넘었는데."
"무슨 소리지? 이들도 기뻐하고 있다. 초월을 향해 한 걸음을 했으니."
"정보부장! 이건 되돌릴 수 있는 건가?"
"그건 다른 부서한테 맡겨봐야지."
"그럼 일단 저 녀석부터 조져야 한다는 이야기로군."
전투부장이 한 번 도약하자 순식간에 보호막까지 도달했고, 주먹을 휘두르자 간단하게 깨뜨렸다.
그러고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마법들을 전부 분쇄하며 병원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쯧. 결국 민간인도 휩쓸리고 말았네."
"저렇게 되면 전부 끝 아닌가?"
"사람을 저렇게 만들 수 있으면, 그 반대도 가능하겠지. 자세한 건 모두 연구부에다가 맡겨야겠지만."
"연구부?"
"말 그대로 연구하는 부서지. 간단히 연금술사를 생각하면 편해."
케이트는 그렇게 말하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나야. 응? 아직 안 끝났지. 그래, 전투부장이 직접 나서고 있어."
"약 5분 내로 끝날 거라고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 들었지? 5분 안에는 끝난데. 어, 근데 문제가 하나 있다. 민간인들이 휩쓸려서 말이야. 신체 변형까지 일어나서 아무래도 연구부에서 수습을 좀 해 줘야겠는데."
전화 너머로 무언가 항의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간단히 무시한 케이트는 통화를 끊고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보호막 안에서 마구잡이로 지팡이를 두들기는 병원장과 주문으로 대응하는 전투부장이 있었다.
그가 주먹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보호막이 흔들리며 금이 갔고, 날아오는 마법들은 손으로 쳐 내거나 똑같이 마법으로 파훼하면서 대처했다.
"으랏챠—!"
—쨍그랑!
결국 보호막이 박살 나면서 병원장은 천천히 뒷걸음질 치다가 결국 멱살을 잡히고 말았다.
"이, 이이이! 어째서 주문이 발동되지 않는 거냐?!"
"그거? 아아, 내가 연결된 거 전부 끊어 버렸거든."
어느새 서로를 이어 주던 마력의 선은 깔끔하게 전부 잘려 나가 있었다.
"이럴 수는 없다! 나의, 나의 비원이 이렇게 허망하게 끝날 리가…!"
"안타깝게도 그렇게 끝나게 되었수다. 그래서 저 사람들은 어떻게 되돌려야 하나?"
"…죽여라."
"뭐?"
"저렇게 된 이상 되돌리는 방법 따위 없다."
"헛소리 하지 마시죠? 서로의 뇌를 연결해서 연산 속도를 늘리는 방법은 획기적이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주문도 모르는 머저리 씨."
"큭!"
병원장은 발버둥을 치며 최대한 벗어나려고 노력했지만, 거목처럼 단단한 그의 팔에서는 벗어날 방법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축하해요. 병원장, 아니, 이제는 환자가 될 예정이구나."
"으아아! 안 돼!"
"저희들이 당신의 뇌를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백치가 될 거예요. 많이 고통스럽겠지만… 뭐, 잘 어울리는 벌이네."
"근데 이 녀석은 어떻게 하지? 흑마법사였으면 사지를 부러뜨렸을 텐데."
"아까 잠시 그랬으니까 흑마법사로 쳐주죠."
"뭐? 잠깐—"
—우득! 우드득!
병원장이 뭐라고 하려 했지만 전투부장의 행동이 더 빨랐다.
시끄러운 비명이 들리지 않도록 침묵 마법으로 입을 완전히 다물게 한 다음, 두꺼운 손으로 먼저 팔을 잡더니 그대로 힘을 세게 줬다.
그러자 팔은 엄청난 소리를 내며 마치 캔처럼 찌그러지고 말았다.
반대쪽도 마찬가지로 만들어 준 후, 허벅지는 많이 두꺼워서 그런지 마법으로 부러뜨렸다.
그렇게 사지를 모두 박살 내고 나서 침묵 마법을 해제하자 병원장은 죽어 가는 목소리로 신음 밖에는 내지 못했다.
"끄어어…."
"정신력이 나약하네. 다른 녀석들은 죽이겠다고 노려보던데."
"애초에 마법도 잘 모르던 무지렁이였으니까."
케이트는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제단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저기 멀리 있는 존에게 이쪽으로 오라며 손짓했다.
그제서야 그는 이곳에 온 목적이 떠올랐는지 제단 위에 누워 있는 브라운을 향해 뛰어갔다.
주문으로 인해 잠들어 버린 것인지 시끄러운 전투가 있었는데도 그는 눈을 감은 채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브라운을 깨우기 위해 존이 몇 번 뺨을 때리자 그가 볼이 빨갛게 변한 채로 부스스 일어났다.
"으음… 뺨이 왜 이렇게 아프지? 어, 존?"
"마틴. 어디 몸이 이상하지는 않아?"
"뺨이 타오르는 것처럼 아픈데."
"어, 음, 그거 말고."
"머리가 약간 아픈 정도?"
"서, 설마?!"
"그 설마는 아닐걸요."
의식 때문에 브라운의 뇌가 거대해지는 건 아닐까 착각하는 존의 옆으로 케이트가 나타났다.
"아무래도 정신 계열 주문으로 인한 모양이네요."
"어… 누구세요?"
"연방수사국의 케이트 수사관입니다."
"FBI요?!"
"네. 오늘 일어난 일은 최대한 잊는 편이 좋을 겁니다."
"예…. 그런데 뒤에 로브를 입은 분들은…?"
"…수사관입니다."
케이트는 무리수를 던졌다!
"아무리 봐도 아닌 거 같은데요."
브라운은 전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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