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포말하우트
* * *
으슥한 골목.
누더기 같은 옷을 입은 사내가 로브를 입은 괴한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허억, 허억."
"거기 서라!"
"저리, 꺼져!"
사내는 갑작스레 멈춰서더니 입으로 불을 뿜었고, 빠르게 앞서 달려오던 한 괴한이 그것에 명중하고 말았다.
"크아악!"
"괜찮아?! 이런 젠장!"
"잡히면 넌 독방행이다!"
"잡을 수 있으면 말이지!"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불을 내뿜어 위에 있던 실외기를 떨어뜨려 길을 막았다.
하필이면 떨어지는 위치가 화상을 입어 괴로워하고 있던 괴한들의 동료가 있던 자리였고, 그들은 동료를 구하고 날라드는 쇳조각과 플라스틱 파편을 피하느라 결국 그를 놓치고 말았다.
이후 골목을 몇 번 돌아 혹시 모를 추적을 따돌린 그는 큰길거리로 나왔다가 갑작스레 흉통이라도 느낀 것인지 가슴을 부여잡고는 무릎을 꿇었다.
"끄으, 끄으윽…."
"어, 괜찮으세요?"
그걸 본 한 시민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조심스레 다가왔고, 사내는 엄청난 통증에 제대로 들리지 않는 것인지 대답하지 못했다.
"거기 검은 티셔츠에 모자 쓰신 분! 119에 전화 좀 해주세요!"
시민은 걱정 반 흥미 반으로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을 지목해 119에 연락할 것을 부탁했다.
그러고는 사내를 잠시 눕혀두려는 것인지 어깨에다가 손을 댔다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으앗 뜨거! 무슨 열이…?"
"…마."
"뭐라고요?"
"나 한테, 다가오지, 말라고!"
자신을 걱정하는 시민에게 소리친 사내의 모습은 이상했다.
입고 있던 옷은 어째선지 검게 변색되어가며 무언가 타는 냄새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코를 쥐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에게 가까이 있었던 시민은 볼 수 있었다.
붉은 균열이 사내의 가슴팍으로부터 올라와 목을 타고 점점 얼굴까지 침식하는 모습을.
그의 눈동자가 검은색에서 붉은색으로, 그리고 황금색을 넘어 거의 흰색 가까이 변하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이들도 그의 몸에 있는 붉은 균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끄아아—!"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
사내의 안에 있던 불꽃은 갑갑하다는 듯이 순식간에 팽창하며 그 몸집을 불려 나갔고, 이는 곧 폭발로 이어졌다.
—퍼어엉!
마치 폭탄이라도 터뜨린 것처럼 엄청난 굉음과 함께 불꽃은 여기저기로 퍼져나가며 사람들을 집어삼켰고, 폭발의 여파로 건물의 기둥이 파괴되면서 지지대가 사라지자 붕괴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한국사에 21세기 최악의 테러로 기록될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
지난번 정신병원에서의 사건 이후 지구에서의 시간으로 몇 달이 지났다.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지 뇌가 거대화된 피해자들은 모두 어떻게든 약간의 부작용과 함께 정상으로 돌아왔다.
환자들은 완전 기억 능력을 얻는다던가, 뇌가 서로 연결되며 기억이 뒤죽박죽 섞인다던가, 잠시 인간의 경지를 초월하면서서 자폐증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가족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입원당한 사람들이었기에 별 의심을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최근 들어서 마법 단체가 사건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져서 그렇다.
예전 같았으면 딥 원이 주기적으로 사람들을 납치해서 인신 공양만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다른 사건도 많이 일어났다.
가장 기억에 남는 큼직한 사건은 역시 니알라토텝이 뿌린 빛나는 부등변다면체로 인한 사건이다.
인상적인 데뷔라도 하겠다는 것인지 미국 동부에다가 거의 백 개는 넘게 뿌려진 그것은 결사단에 의해 회수되며 하나를 제외하고 전부 봉인되었다.
다음은 지금 한국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무슨 불의 교단이라니 대충 지은 듯한 이름의 교단이 자기들 실험체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말았다.
물론 이건 결사단에서 조사한 내용이고, 민간인들은 사회에 불만을 가진 테러리스트가 일으킨 자폭 테러로 알고 있다.
하윤이가 요즘 학교도 그렇고 분위기가 흉흉해서 제대로 놀지도 못한다는 불평을 듣고 서아를 만나러 갔다가 들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요즘 그 교단을 찾느라 인원들이 차출됐다고?"
"그래. 연구진들은 덕분에 많이 곤란스럽지만, 그 밑에 있는 애들은 지겨운 실험도 잠시 안녕이라면서 기뻐하더라."
"진전은 어떠냥?"
"폭발 사고가 일어난 곳으로부터 반경 1KM를 샅샅이 조사하고 있긴 한데… 별 소득은 없지."
서아는 비커에 담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창밖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테러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는 사회의 톱니바퀴가 가득했다.
"쯧. 하필이면 잡은 녀석이 잘려 나가도 상관없는 말단이었으니까."
"그렇군."
"교단은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모르겠고, 단서도 없으니 추적할 방법도 없고."
"나는 직접 나서지는 않겠다만, 도우미라도 하나 붙여줄까?"
"도우미?"
"그래."
서아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떠올리는 듯한 눈치였다.
"음…. 그런 사람이 있어?"
"뭐, 그냥 써먹기 편한 노예처럼 생각해라."
"사람에 대한 취급이 영 아닌데."
"괜찮다."
나는 그동안 별로 출연이 없었던 한 인물을 떠올렸다.
번개 계열과 화염 계열의 마법을 주로 쓰는 에반.
그의 심장에 든 불씨가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불의 교단의 추적은 몰라도 상대하는데 도움은 될 것이다.
"그럼 지금 당장 데려오도록 하마."
"뭐?"
내가 천장을 바라보자 서아와 서현도 똑같이 고개를 올렸다.
그리고 저택과 이곳을 잇는 문을 만들어내자 이불을 덮고 있던 에반이 비명을 지르며 떨어졌다.
"우와악!"
—콰당!
허리부터 제대로 떨어진 그는 등에다가 손을 갖다 대며 고통을 호소했다.
"아이고, 내 허리…!"
"이게 뭐여."
"도우미지."
나는 한쪽 눈을 윙크하며 에반이 덮고 있던 이불만 방으로 돌려보낸 후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아직까지도 정신 차리지 못한 그의 머리 위로 마도서를 가져왔다.
"으겍."
"불경한 자가!"
"무슨 헛소리야."
"한 번은 해 보고 싶었어."
두꺼운 마도서의 갑작스런 기습에 정수리를 허락한 에반은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이딴게… 도우미?"
"이래 보여도 마법 실력 하나는 너보다 나을 거란다."
"윽, 난 연구진이니까 그다지 싸울 필요는 없거든요."
서아는 툴툴거리면서 기절한 에반을 끌고 비어 있는 소파에다가 옮겼다.
"그럼 수고해라냥."
"응? 어디 가게?"
"난 따로 돌아다닐 생각이다. 운이 좋다면 나중에 만나게 되겠지."
나는 그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로 이동했다.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빽빽하게 글이 적힌 노트와 벽에 붙여진 사고 현장의 사진이었다.
하윤이가 직접 갔던 것인지 신문에는 올라오지도 못할 숯처럼 변해 버린 사람들이 적나라하게 찍혀져 있었다.
노트에는 현장에 대한 추측 뿐만이 아니라 뒷골목에서 고열로 인해 녹아내린 쇳조각과 파괴된 실외기에 대한 정보도 적혀 있었다.
내가 그걸 흥미로운 눈으로 읽으며 집중하고 있을 때, 갑자기 방문이 열렸다.
거의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부드럽게 열린 문으로 들어온 사람은 방의 주인인 하윤이었다.
"응? 신 님. 무슨 일이세요?"
"흐음, 요즘 일어난 사건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구나."
"네. 덕분에 분위기가 뒤숭숭해져서 주말에 있던 약속이 전부 사라졌거든요. 그래서 대신 조사나 하려고요."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천천히 노트를 읽어나갔다.
"신 님도 혹시 관심이 생기셨어요?"
"그래. 서아도 일 때문에 조사하고 있거든."
"서아 언니도요?"
"우리가 교단을 제대로 찾는다면 만날 수 있을 거다."
"그러겠네요."
하윤이는 그렇게 말하더니 책상 서랍을 열어 청동 단검을 꺼냈다.
그걸 품 안에다가 넣고는 침대 아래에서 무슨 상자를 꺼내더니 안에 들어 있던 운동화를 신었다.
"마침 나가려고 했는데 잘됐네요."
"창문으로 나갈 게냐?"
"부모님이 알면 혼나니까요. 그럼 빨리 어깨에 올라타세요. 아니면 안아드릴까요?"
하윤이는 마치 후자를 바라는 것처럼 바라봤지만, 갑갑하게 꽉 껴안기는 건 질색이기에 바로 어깨에 올라탔다.
"칫. 그럼 내려갑니다."
그렇게 말하며 창틀에다가 한쪽 발을 걸쳤을 때, 투명화 마법이 주변을 감싸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후 한 번 도약을 하자 순식간에 정문 가까이에 도달했고, 발밑에다가 마력의 발판을 만들어 감속하며 내려온 하윤이는 골목길에서 투명화를 해제했다.
그리고 근처 역으로 가서 전철을 타고 사고가 일어난 현장으로 향했다.
몇십 분에 걸쳐 폴리스 라인이 쳐지고 중장비들이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를 들어 올리는 장소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보였다.
어떤 이들은 앞에다가 하얀 국화를 내려 두고 명복을 빈다던가 꺼이꺼이 울부짖으며 누군가의 이름을 소리 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옆에는 촬영을 하거나 음모론을 이야기하며 어그로를 끄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 주변 사람들에게 제지당했다.
하윤이는 그런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젓더니 골목으로 들어가며 다시 투명화를 사용했다.
가끔씩 경찰들이 돌아다니며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을 아직도 찾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가져갈 만한 것들은 먼지 뿐이었다.
조금만 더 외곽으로 가면 인지 저해의 주문이 새겨진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조사하며 분주히 돌아다녔다.
그들의 중심에는 익숙한 인물, 실눈이 매우 수상한 결사단 한국 지부의 간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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