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 포말하우트
* * *
끈적한 어둠 속을 유영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검은 종이에다가 하얀 물감을 마구잡이로 뿌린 듯한 배경이 눈에 들어왔다.
지구의 바깥, 우주.
인간의 고향인 창백한 푸른 별은 어디 갔는지 전혀 보이지 않은 채로 나는 혼자서 쓸쓸하게 이곳을 떠돌고 있었다.
그저 멍하니 반짝이는 별들이나 관찰하며 나를 이끄는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다 보니 어느새 특이한 곳에 도착했다.
대규모의 먼지 디스크가 항성 주변에 존재하며 그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행성이 하나 보였다.
"여긴… 포말하우트?"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낯선 이름이 무의식적으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지만, 아름다운 광경에 정신이 팔려 의문을 품지 못했다.
항성에 가까울수록 뜨거운 열로 인해 하얗게 물든 먼지들과 점점 멀어지며 붉어지는 그라데이션이 아름다웠다.
그렇게 가만히 있던 와중 갑작스레 엄청난 빛이 주변을 감쌌다.
"우왓! 뭐야?!"
나는 당황스러움에 팔을 휘적이며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지만 눈에 전부 담기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불꽃 만이 보일 뿐이었다.
"으음…. 누구냐, 나의 본거지까지 찾아온 필멸자는… 음?"
"허미, 시벌."
"호오, 이전에 내가 힘을 불어넣어 준 녀석이로구나."
그런데 불꽃은 나를 발견하더니 놀랍게도 말을 했다!
게다가 점점 압축되더니 어설프지만 인간과 비슷한 형상마저 취했다.
물론 넘실거리는 불길이 마치 촉수 같았고, 눈이 있어야 할 위치에는 새하얀 불꽃 한 쌍이 고고하게 불타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지? 아무리 봐도 네 녀석의 실력이면… 흠? 마법의 흔적이로군."
"저도 왜 제가 여기 있는지 모르겠는데요."
"호오, 하하하! 아무래도 네 주인은 너의 심장에 자리 잡은 걸 알아차린 모양이구나."
"어, 그럼 큰일 아닙니까?"
"그랬다면 네놈은 이미 소멸되었겠지."
저 타오르는 불꽃 덩어리 녀석은 다행이라는 듯이 호탕하게 웃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간담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그다지 바라지도 않았던 힘을 받았다가 까딱 잘못했으면 죽을 뻔했다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위대한 존재께서 네 녀석을 이곳에 의중이 무엇인가인데."
"뭔가 여기로 오기 전에 도우미라는 말을 들은 거 같기도 한데요…."
"짐작 가는 것이 하나 있군."
"뭔데요?"
"언제부턴가 지구에 간섭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위대한 존재께서 허락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으나…."
"했으나?"
"■■■■텝이 먼저 무언가를 하고 있더군. 나는 그 녀석을 방해하기 위해 대가를 받고 힘을 빌려 줬지."
무슨 텝?
마치 뇌가 듣기를 거절하는 것처럼 저 불꽃이 누군가의 이름을 말하자 노이즈가 낀 것처럼 들렸다.
"그럼 아무래도 제가 그 녀석들을 잡기를 원하는 모양인데요."
"그러한가. 그렇다면 도움을 주지."
그가 그렇게 말하자 뭔가 가슴이 뜨거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다.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심장 속의 불꽃이 덩치를 키우고 있었다.
"윽! 잠깐만요!"
"무슨 소리냐. 네 실력에 맞게 늘려주고 있거늘."
"아니, 말이라도 하고, 으윽!"
"흠, 아직도 이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가…."
"허억, 흐으윽."
"심장에 있는 불꽃으로 나의 부하를 부릴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언을 남기지. 밤하늘에서 쓸쓸히 빛나는 별, 나의 본거지, 포말하우트를 찾아라."
그 말을 끝으로 그가 손가락처럼 보이는 것으로 내 가슴팍을 툭 치자 나는 엄청난 속도로 이동했다.
저기 멀리서 반짝이던 새하얀 점이 선으로 변하며 마치 온 우주가 늘어난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허억—!"
그리고 눈을 뜨자 내가 있는 곳은 새카만 우주가 아닌 왠 소파 위였다.
"아니, 이게, 여기가 어디지?"
방금 경험했던 것을 꿈이라고 치부하더라도 분명 나는 잠들려고 침대에 누웠을 텐데.
"오, 이제서야 일어났네."
"…응?"
그렇게 허겁지겁 소파에서 일어나자 보이는 것은 비커에다가 커피를 따라서 마시는 익숙한 여인들이었다.
밤이라도 샌 것인지 눈 아래로 거뭇한 다크서클이 보이는 그녀는 저번에 함께 미국에서 여행을 했던 서아라는 사람일 것이다.
"오랜만이네요. 이름이 에반이었던가?"
"아, 네. 반갑습니다. 당신은 서아 씨였죠? 옆에 있는 분은 서현 씨고."
"안녕하세요."
"그런데 제가 왜 여기에…?"
"기억 안 나세요? 침대에 누워 있다가 떨어진 거 같았는데."
"아!"
드디어 기억났다.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수련을 마치고, 정신적으로 힘든 제임스와 상담을 한 뒤에 자려고 누웠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느껴지는 부유감과 함께 느껴지는 허리의 극심한 고통.
다음으로는 무언가로 머리를 얻어맞아서 기절했었지.
내가 도대체 무엇에 맞았는지는 어지러운 머리를 진정시키고 다시 서아 씨를 바라봤을 때 알 수 있었다.
"저기… 그 마도서는?"
"아, 이거요? 당신을 여기 보낸 고양이가 함께 떨어뜨린 거요."
그건 바로 내가 쓰는 마도서였다.
한 손으로 간신히 잡을 만큼의 두께와 무게, 검으로도 베이지 않는 단단한 커버는 그것 자체로 훌륭한 흉기였다.
"그래서 제가 여기 있는 이유는 뭔가요. 무슨 일인지 추측은 되지만."
"아, 그걸 설명 안 했네. 저희가 요즘 불의 교단이라고 말썽꾸러기들을 찾으러 다니고 있거든요?"
"불의 교단?"
그 이름을 듣자 심장의 불꽃이 잠시 일렁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쪽에서 무슨 실험을 했는데, 하필이면 탈출한 실험체가 터져서 죽어버려서요."
"설마?"
"네. 하필이면 번화가에서 터져가지고 인명 피해가 어마어마하거든요. 쯧, 그딴 실험을 하는 것도 빡치는데."
"도대체 무슨 실험이기에?"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현장의 흔적을 살펴본 결과로는 체내에다가 불 같은 걸 마구잡이로 쑤셔 넣은 모양이예요."
"불꽃을…?"
그녀의 말을 듣자 내 심장 안에 있는 불꽃도 순식간에 폭주할 것만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
하지만 녀석은 마치 나와 한 몸인 것처럼 은은한 열기만 발산하며 존재감을 알릴 뿐이었다.
"그래서 에반 씨는 어떤 도움을 주실 수 있죠?"
"일단 장소 하나만큼은 알 것도 같아."
"장소요?"
"그래. 분명 하늘에서 쓸쓸히 빛나는 별, 포말하우트를 찾으라고 했어."
"포말하우트요? 잠시만요."
그녀는 내 말을 듣더니 컴퓨터로 무언가를 검색하는 듯했다.
"흐음, 가을에 보이는 별이라네요. 마침 지금도 가을이고."
"그럼 별이 잘 보이는 곳을 찾으면 되겠네."
"솔직히 어디 산에 올라가거나 어두운 곳에만 가면 다 그러지 않아?"
"명당 같은 곳이 있겠지. 물론 그런 곳들은 모두 유명한 관광지겠지만."
"그럼 유명한 곳을 제외하고 전부 조사해야 하나…. 시간 낭비가 엄청나겠네."
둘이서 하는 말을 듣다가 나는 어떤 방법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잠깐만요. 무언가 찾을 방법이 있을 거 같은데…!"
"오, 뭔데요?"
"분명 아까 실험체의 몸에다가 불꽃을 넣는다고 했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추측하고 있어요."
"그럼 저에게도 방법이 있습니다."
방금 꿈속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분명 심장에 있는 불꽃으로 자기 부하를 부릴 수 있을 거라 했지.'
나는 심장 속의 불꽃을 손바닥 위로 끌어온다는 느낌으로 집중했다.
체내의 마력을 움직이는 것과는 다른 감각으로 뜨거운 불길이 심장에서 점점 팔을 타고 올라오는 듯한 감각이 들더니 마침내 탁구공 만한 불꽃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손바닥 위로 옮기는 것은 성공했지만, 이걸로 어떻게 그 녀석의 부하를 불러와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피부 가까이 있으면서도 아무런 열기도 안 느껴지는 하얗게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는데 서서히 움직이더니 약간이지만 커져서 그렇다.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서아 씨와 서현 씨도 그걸 보더니 깜짝 놀란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인간. 어떻게 정령신의 힘을 가지고 있는가."
"뭐?"
"정령신?"
"위대한 존재. 살아있는 불꽃, 우리들 위에 군림하는 정령신."
"그 거대한 불꽃이?"
"무례함!"
내 손바닥 위의 녀석은 화를 내면서 날뛰었지만, 자그마한 모습인지라 그다지 위협적이기는커녕 귀엽다고 느껴졌다.
"정령이라고…?"
"뭔지 아세요?"
"네, 뭐…. 결사단에도 계약한 사람이 희귀하지만 몇 명 있거든요."
"이곳에서 친구들의 기척, 느껴진다."
"그런데 그런 정령들은 모두 말은 못했거든요. 혹시 격이 높은 정령이 아닐까요?"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저는 모르겠는데."
마치 공처럼 손바닥 위에서 통통거리는 불의 정령은 내 시선을 느꼈는지 몸을 돌렸다.
"그래서 인간. 어째서 정령신의 힘을 가졌는가."
"나도 무작정 받아가지고 모르겠는데."
"신기함. 따라 한 것 아님. 정말로 위대한 존재의 것."
"잠깐만. 따라 했다는 게 무슨 뜻이야?"
정령이 하는 말을 듣던 서아 씨는 이상함이라도 느꼈는지 녀석에게 질문했다.
"인간들 따라 한다. 위대한 존재의 불꽃. 그리고 심장에 넣는다."
"심장에… 넣어?"
"서아야. 이거 아무리 봐도 맞지?"
"그런 모양이네."
정령을 소환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지만, 덕분에 불의 교단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나머지는 그들을 추적하는 방법일 텐데….
"그럼, 혹시 심장에 따라 한 것을 담은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가능."
"다행이다. 그럼 바로 갈까요?"
"사람 한 명만 더 부르고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어디론가로 연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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