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포말하우트
* * *
그렇게 서아 씨의 연락을 받고 찾아온 사람은 수상하게 실눈을 뜬 사람이었다.
뭔가 평소에는 잠잠히 있다가 갑자기 눈을 뜨면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본래의 힘을 드러낼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그녀가 부른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마법사가 분명할 텐데 어째선지 마력은 티끌 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말은 즉 슨 일반인이거나 날 뛰어넘는 실력을 가졌다는 뜻이겠지.
"아, 간부님도 오셨네."
"중요한 소식이 있다고 바로 달려왔죠."
"간부?"
"음? 당신은 누구시죠? 외부인은 들어오지 못하도록 조치를 해 두었을 텐데."
"그쪽은 에반이라고 해요. 으음… 그러니까 저희 도우미?"
"예? 아하, 전화로 말한 그 사람인가 보군요."
서아 씨는 아무래도 전화를 걸면서 시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정령에 관해 이야기한 모양이다.
나는 잠시 눈동자를 굴려서 손바닥을 바라봤다.
심장의 불꽃이 이렇게까지 늘어난 건 처음인지라 바깥으로 꺼내는 데에 집중을 요구했다.
그래서 다시 안으로 돌려보내며 정령은 어디론가로 사라졌지만, 무언가 보이지 않는 얇은 끈 같은 것이 연결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심도 깊은 대화는 나누지 않았지만 계약이 이미 완료된 것일까.
"그래서 정령으로 불의 교단을 추적할 수 있다고요?"
"아, 네. 아마도 가능할 겁니다. 제가 아니라 정령이 하는 거라서 제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럼 바로 출발하죠? 서현아, 너도 갈래?"
"간부님까지 있는데 큰일이라도 나겠어? 자, 여기 네 지팡이."
"땡큐."
서아 씨는 서현 씨로부터 검은색 일색인 지팡이를 건네받더니 수수하면서도 금실로 자수가 들어가서 화려한 로브를 위에 걸쳤다.
그러고는 출발하려는 것처럼 문손잡이에 손을 뻗다가 나를 보고는 멈칫했다.
"…그런데 에반 씨는 보호구 같은 건 없어요?"
"네? 보호막만 치면 되는 걸 굳이…?"
"기습당하면 어쩌려고요."
"괜찮습니다. 어서 가기나 하죠."
서아 씨가 날 걱정했지만, 심장의 불꽃이 늘어난 영향인지 감각이 많이 확장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걸을 때의 구둣 소리가 마치 천둥처럼 들리기도하고, 남의 시선이나 인기척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나와 연결된 정령이 내가 위험에 빠진다면 알려줄 것만 같은 확신이 들었기에 보호구는 거절했다.
우리들은 일단 사고가 일어난 현장으로 먼저 가려는 건지 건물을 나오자 마자 대기하고 있던 차를 타고 어디론가로 향했다.
한국은 처음인지라 건물에 빼곡히 달린 간판이라던가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모습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현장에 도착해 있었다.
저기 멀리에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듯한 사람들의 파도가 보였지만, 우리가 내릴 곳은 여기가 아닌지 약간 우회해서 몇 분 정도를 더 갔다.
인기척이 잘 느껴지지 않는 골목의 입구에 도달해서 차에서 내리자 로브를 입은 한 인물이 나타나서 고개를 숙였다.
눈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후드를 뒤집어쓴 그는 옆에 있던 간부에게 무언가 보고를 하더니 다시 수색을 하려는 건지 골목으로 돌아갔다.
"그럼 이제 시작합시다."
"아. 알겠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심장에 있던 불꽃을 손바닥 위로 옮겼고, 정령과 연결된 실 같은 것을 흔들자 불이 일렁이더니 덩치가 커졌다.
"인간. 왜 부름."
"이 불꽃 있잖아."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명치를 쿡쿡 찌르며 말을 이어갔다.
"이거 따라 한 사람들, 지금 찾을 수 있겠어?"
"가능."
"오오, 신기하네요."
불의 정령은 자신을 따라오라는 것처럼 내 손바닥 위에서 벗어나더니 어느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복잡한 골목길을 계속해서 걷는 동안 간부와 서아 씨는 무언가 궁금한 것이 많았는지 정령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궁금한 게 있다. 다른 정령과 다르게 너는 어떻게 말을 하는 건가?"
"나. 위대한 존재의 부하. 으뜸 정령임. 엣헴."
"격이 높은 모양이로군. 그럼 위대한 존재는 누구지?"
"살아있는 불꽃. 우리들 위에 군림하는 정령신. ■■■."
"인간의 구강 구조로는 발음하기 어렵다 못해 불가능할 정도로군."
"크쑤가? 으음. 최대한 따라 해 보려 해도 이러네."
언제 들어 본 듯한 이름이 귀에 들려오자 머릿속에서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오늘처럼 누군가에게 강제로 그림 속으로 던져져서는 고생했던 끔찍했던 추억이.
기어 다니는 벌레 덩어리와 최후의 싸움에서 주문을 외우면서 무아지경의 상태로 빠졌을 때, 나는 그 거대한 불꽃을 만났었다.
그리고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말을 하고는 선물이라고 해야 할지 심장에다가 무슨 불꽃을 넣어줬지.
내가 그걸 떠올리자 마치 숨 쉬는 걸 의식하는 것처럼 심장의 불꽃의 은은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고, 그와 함께 집중하느라 둔해졌던 감각이 일깨워지면서 아래쪽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음? 뭐지?"
"왜 그래요?"
"정령아, 혹시 아래에 따라 한 사람들이 있어?"
"정답이다. 인간. 어떻게 알았음?"
"그냥 느껴지더라."
대충 대꾸하면서 지하로 내려가는 길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나는 이상하게 많이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래에 있으면 어떻게 가야 하지? 근처에 하수구 통로라도 있나?"
"마법을 쓴다면 들킬 텐데."
"저기 쓰레기 더미가 수상하지 않아요?"
"저기? 확실히 이런 뒷골목까지 와서 쓰레기를 버리고 간다는 게 이상하긴 하네."
"근처에 문 같은 건 안 보이니까 일단 확인해볼까요?"
우리들은 대충 접혀져 있던 종이 박스와 페트병, 이외에 갖가지 잡동사니들을 치우자 검게 칠해진 문이 보였다.
거기의 손잡이를 당기자 내려갈 수 있는 사다리가 있었고, 적이 있을지도 모르니 간부가 먼저 내려가기로 했다.
높이가 있어 보이는 데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뛰어내린 그는 거의 소리 없이 착지하고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우리들에게 내려오라며 손짓했다.
"레이디 퍼스트."
"어머, 고마워요."
혹시라도 밖으로 나갔던 적들이 돌아올까 봐 여자 둘을 내려보낸 나는 조용히 착지할 자신이 없어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문을 닫고는 빠르게 손발을 움직여 금방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에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앞을 보자 2m도 되지 않는 높이의 지하 통로가 있었다.
주황빛을 뿜는 전등은 오래된 것인지 점멸해가며 어두운 이곳의 분위기를 더욱 음산하게 만들었지만, 여기엔 그런 것 따위를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갈림길 없이 한쪽으로 쭉 나 있는 길을 따라서 걷다 보니 우리는 금세 어떤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까지 오는 통로와는 다르게 콘크리트 기둥이라던지 있는 것으로 보아 건물 아래인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넓은 방에는 로브 대신 은박지를 뒤집어쓴 것처럼 보이는 방열복을 입은 사람이 두꺼운 장갑을 끼고는 커다란 불더미를 만지고 있었다.
그가 이곳에서 실험을 담당하는 사람인지 우리들의 인기척을 느끼고는 불에서 손을 떼고는 헬멧을 벗고 땀을 닦으며 이쪽을 돌아봤다.
"이제야 실험체 하나 잡아 온 거야? 하여간 요즘 기강이 해이해져서… 어?"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군."
"치, 침입—"
—콰앙!
그가 우리들이 들어온 걸 알리려고 했지만, 간부가 먼저 움직여서 그의 머리를 벽에 처박는 게 더 빨랐다.
그런데 저 정도 충격이면 머리가 토마토처럼 터지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어떻게 기절만 시켜서는 멀쩡하게 살려 뒀다.
방금의 소음으로 안에 있던 인원들이 밖으로 나오며 무슨 마법을 쓰려고 했지만, 그들을 맞이하는 건 단단한 주먹이었다.
발달된 감각으로 인해 높아진 동체시력으로 조차 그의 신형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는데 저들의 눈에는 마치 순간 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
—빠악! 퍽! 와장창!
녀석들은 안에서 실험체들을 관리하는 역할인 건지 주문을 외우는 속도조차 달팽이처럼 느려서 유효타를 내지도 못하고 모두 기절했다.
"…이 녀석들, 너무 약한데?"
"그냥 간부님이 센 거 아니예요?"
"에이, 평범한 여고생보다 약한 걸."
"……."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일단 사람들을 구할 시간이다.
나는 저들이 나왔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한쪽 면이 철창으로 만들어진 감옥에 한 명씩 사람이 같혀 있는 걸 발견했다.
"괜찮으세요?!"
"으으…. 또 나한테 뭘 하려고."
"전 당신들을 구하러 온 사람입니다."
"에반 씨?"
"서아 씨, 빨리 이분들을 풀어드리고—"
"아뇨. 저희들은 빨리 다른 곳으로 가야죠. 저 사람들은 수습할 사람들이 올 예정이에요."
"하지만 사고가 일어나면 큰일 아닙니까?"
"그럼 정령한테 물어보세요. 저희들은 다른 곳들도 찾아다녀야 하니까 빨리 해야해요?"
그렇게 허락을 받은 나는 감옥 안에 있는 사람 주변을 뽈뽈 날아다니며 구경하는 듯한 정령에게 다가가려 했다.
중간에 철창만 없었으면 말이다.
"열쇠는… 뭐, 상관없나."
마법을 사용해 자물쇠를 녹여 버리려던 나는 심장 안에 있는 쓸모 있는 것을 떠올리고는 잠시 멈췄다.
그러고는 검지 손가락 위로 새하얀 점을 만들어낸 후, 점을 선으로 늘려내서는 천천히 움직여 봤다.
마치 고정된 칼날처럼 까딱거리는 손가락을 따라가는 불꽃의 선을 자물쇠를 향해 휘둘렀다.
—땡그랑!
그러자 단단히 잠겨 있던 자물쇠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붉게 물든 단면을 보여줬다.
나는 걸고리에 걸쳐져 있던 잔해도 마저 치운 후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
사지가 침대의 기둥에 묶여서는 심한 짓이라도 당했는지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정령아, 혹시 이 사람 안의 불꽃을 빼낼 수 있을까?"
"잘 모름. 시도해 볼 것."
"가능할까?"
"저 불꽃. 위대한 존재의 것의 열화판. 너무 약함."
정령의 말을 들은 나는 자신감이 붙었다.
내 심장 속의 불꽃도 이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데 그 열화판인 것들은 별것도 아니겠지.
그리 생각하며 일단 그의 가슴팍 위에다가 손바닥을 올려봤다.
그러고는 잠시 집중하자 피부 아래에 일정 주기로 박동하는 심장과 그 안에 난폭하게 열을 발산하는 불길이 느껴졌다.
그것에게 살살 손을 뻗으며 마치 늑대의 털을 쓰다듬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처음엔 넘실거리며 툭툭 쳐 냈지만, 가면 갈수록 저항하는 느낌이 줄어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얌전해진 불길을 최대한 안전하게 뽑아내자 손바닥 위로 야구공만한 불꽃이 보였다.
그걸 손으로 쥐어서 파괴한 후 누워 있는 사람의 안색을 살펴보자 이제야 좀 괜찮아졌다.
나는 그를 구속하고 있는 구속수도 없애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튼튼하게 묶여 있어서 나중에 수습하러 올 사람에게 맡기기로 했다.
"아직 남았지."
옆방에 있을 사람들도 치료하기 위해 나는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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