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 포말하우트
* * *
벌써 세 번째 비밀 연구소를 습격한 나는 감금되어 있던 사람들의 심장에서 불꽃을 추출했다.
이걸 하면 할 수록 무언가 새로운 감각이 생겨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기 멀리 골목길에서 담배를 피려고 라이터를 쓰면서 생기는 불티와 자그마한 불꽃, 건물 내부에서 켜진 가스레인지.
그리고 옆방에서 내게 뽑히길 기다리는 격렬하게 타오르는 녀석까지.
나는 일단 내 손바닥 아래에서 날뛰는 녀석을 살살 달래며 조심스레 꺼냈다.
그러고는 이전처럼 팍 쥐거나 하지 않고 약간만 손을 털자 얌전히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얌전해졌다고 해도 불꽃은 불꽃.
그걸 빼내는 과정에서 극심한 작열통을 느꼈을 사람은 거의 발광을 해가며 몸을 비틀어가느라 엄청난 소음을 만들었다.
'옆에 있는 마지막 사람이 불안감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제는 움직이는데 익숙해진 심장 속의 불꽃을 얇은 실처럼 꺼냈다.
그리고 자물쇠를 그어낸 후 안으로 들어가자 무언가 매캐한 냄새가 풍겼다.
마치 무슨 고기를 태우다 싶이 구운 듯한 냄새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내려 묶여 있는 사람을 살펴봤더니 무언가 상태가 이상했다.
그동안 내가 빼낸 불꽃들은 심장 한가운데에 동그랗게 있거나 한두 명 정도는 심장 전체에 퍼져 있었지만, 이렇게 전신으로 퍼져 있는 건 처음 봤다.
게다가 마치 식어서 굳은 용암에 금이 간 것처럼 붉은 균열이 목을 타고 얼굴까지 침범하고 있었다.
일단 빠르게 조치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가까이 다가갔더니 그의 사지와 연결된 구속구인 가죽 스트랩이 보였다.
원래 같았더라면 묶여 있는 손목 부근이라던가 침대 다리와 연결된 부분이 약간 헤져 있을 뿐이었겠지만, 어째선지 까맣게 그을려져서는 탄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설마 심장 속의 불꽃을 무작정 사용하다가 이렇게 된 건가?'
그렇다면 전신에 저런 식으로 퍼져 있는 게 말이 된다.
우리가 들어와서 감시하는 인원이 밖으로 나간 동안 탈출하기 위해 손목 부분의 구속구를 태워 버리려고 했겠지.
하지만 혈관이 말 그대로 불타는 듯한 고통에 기절해 버렸을 거고.
그의 심장이 한 번 박동할 때마다 몸에 난 균열에서 붉은빛이 점멸했다.
마치 금방 터질 것만 같은 폭탄처럼.
나는 이곳으로 오면서 봤던 사고 현장을 떠올렸다.
추모하는 사람들의 행렬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건물이 무너졌고 그걸 치우던 중장비를 보면 폭발의 규모는 엄청날 것이다.
게다가 이곳은 지하.
만약 이 사람이 여기서 터진다면 건물 하나는 가뿐하게 무너뜨릴 것이 분명했다.
"후우… 일단 진정하자."
마치 사신이 목에다가 낫을 갖다 댄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심호흡을 하며 떨리는 몸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손바닥 위로 야구공만한 화염구를 만들어내고는 정령과 연결된 끈을 흔들었다.
한편 반대쪽 손은 그의 심장이 있을 부근에다가 올려 두고는 몸 전체에서 날뛰는 불길을 최대한 얌전히 만들려고 노력했다.
"윽! 왜 이리 뜨거워?!"
뜨겁게 달군 철판에다가 손을 댄 것처럼 엄청난 열이 올라왔다.
화염 마법을 주로 다루느라 열기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손바닥이 붉게 변할 정도로 엄청났다.
나는 금세 나타난 정령에게 어떻게 방법이 없냐고 물어봤다.
"정령아, 이거 어떻게 진정시킬 수 없을까?!"
"불꽃, 너무 흥분했다. 그러기 전에 인간의 몸, 못 버팀."
"그럼 강제로 해야 한다는 거네."
그동안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불꽃이 얌전해지도록 어르고 달랬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시간이 아니다.
나는 그의 체내에 있는 불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마력을 뿌려봤다.
그러자 마치 모닥불에 휘발유를 뿌린 것처럼 마력을 게걸스레 먹어치운 녀석은 덩치를 불려 나가려 했다.
덕분에 균열이 더욱 커지며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뜨거운 빛이 새어 나왔지만 어떻게든 통제해 폭발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내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듯이 요동치는 불길은 몸 밖으로 나오려고 발버둥 쳤다.
나는 그런 녀석을 억지로 한곳으로 뭉쳐 내며 뽑아낼 준비를 했다.
만약 심장으로 모은다면 엄청난 열기로 익어버릴 터.
그러므로 어떡하나 생각하다가 왼손에다가 모으기로 했다.
죽는 것보다는 한쪽 팔이 불구가 되는 편이 나을 테니까.
그렇게 정령의 도움까지 받으며 왼손으로 불꽃을 모으자 균열이 점점 사라져갔다.
오직 한쪽만 제외하고.
이제는 완전히 숯처럼 변해 버린 팔은 불꽃을 빼 버리자 완전히 검게 변했다.
기절해 버려서 고통은 느끼지도 못 했을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나는 손바닥 위를 쳐다봤다.
이전에 빼낸 것들보다 몇 배는 더 큰 화염구가 넘실거리며 금방이라도 모든 것들을 재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듯이 일렁거렸다.
계속 손을 털어봐도 사라지지 않고, 이대로 꽉 쥐어서 없애버릴까 싶었지만 심한 화상을 입을 것만 같았다.
물론 그동안 물집도 잡혀보고 그랬지만, 이 정도의 열기라면 피부 아래에 근육까지 닿을 것이었다.
"정령아, 이거 어떡하지."
"불 끄는 방법, 모름?"
"응?"
불을 끄는 방법.
태울 물질을 없애거나 산소를 차단하거나 온도를 낮추면 자연적인 불은 조건을 맞추지 못해 저절로 꺼질 것이다.
하지만 이건 마법으로 만들어진 특수한 불꽃.
연소에 필요한 요소들을 모조리 없앤다고 하더라도 오랬동안 불타오르다가 사라질 것이다.
"음…."
"친구, 무엇을 고민?"
"이게 마법으로 만들어졌을 텐데 어떻게 꺼야 하는지 문제야."
"마법? 마법은 더욱 강한 마법으로 상쇄 가능."
"아, 그 방법이 있었네. 하지만 난 냉법이 아닌데."
어차피 이렇게 고민해봤자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니 일단 나가야겠다.
간부인 그라면 나보다 더 실력이 좋으니까 해결책이 있겠지.
나는 내 손바닥 위의 화염구의 열기로 반쯤 녹아내린 철창을 완전히 녹여 버리며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다 끝냈냐며 반기던 서아 씨와 간부가 당황스러운 눈빛을 보내왔다.
"아하하, 그게, 상황이 이렇게 곤란해졌네요."
"좀 많이 불안정해 보이는데요?"
"그 말 그대롭니다. 일단은 제 통제 아래에 있긴 한데, 언제 벗어날지 모르겠네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서아 씨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간부의 뒤에 숨었다.
"…서아 씨? 왜 제 뒤에 숨으세요."
"고기 방패로 쓰게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가 한 번 손짓하자 손바닥 위에 있던 불꽃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정팔면체의 얼음이 열기를 가두며 엄청난 냉기를 내뿜었고, 나는 갑작스레 손이 시려워지면서 그걸 바닥에 떨어뜨렸다.
"앗, 차거!"
"—대부분의 마법엔 통달했으니까요. 그리고 갑자기 마법을 쓴 건 죄송하게 됐습니다. 하마터면 동상을 입을 뻔했네요."
간부는 미안하다며 사과하더니 손가락을 까딱 움직여서 떨어졌던 불꽃을 가둔 얼음을 주웠다.
얼마나 온도가 낮은 것인지 바닥에 있었던 시간이 일 분이 넘지 않았는데도 벌써 서리가 껴있었다.
"흐음. 확실히 버거울 만하네요. 일단 이건 결사단으로 보내겠습니다."
"연구라도 하게요?"
"뭐, 일단 끌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에반 씨가 계속해서 여기 있을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러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일단 지상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사다리를 올라 신선한 공기가 폐를 가득 채우는 감각을 만끽하는 와중에 갑자기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지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서너 개의 불꽃이 급격하게 타올랐다가 사그라지는 느낌.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당황해하고 있으니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그 전화의 주인은 간부.
그가 통화를 받더니 잠시 표정이 굳었다가 다시 풀어졌다.
"으흠, 그렇군요. 마침 제 눈에도 몇 명 보입니다. 대부분은 잡아들이고, 나머지 하나는 추격조를 꾸려서 미행하도록 하세요. 그럼 끊겠습니다."
뚝.
그가 그렇게 말하고 앞을 쳐다보기에 나도 그쪽을 봤더니 도망치고 있던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건지 무작정 달려오던 그들은 갑작스레 발을 멈춰 세웠다.
"큭! 이곳에도 결사단이 있다니! 이쪽도 이미 당한 건가."
"그 말은… 당신들이 불의 교단이란 소리군요. 그 로브만 봐도 알겠습니다마는."
확실히 그의 말대로다.
붉은색의 로브 위로 주황색과 노란색으로 불꽃 같은 자수를 넣은 게 불의 교단이라고 광고라도 하는 거 같았다.
이쪽도 세 명이고 저쪽도 마찬가지인지라 우리를 상대하려는 걸까 생각했지만, 그들은 겁쟁이인 모양이었다.
곧바로 등을 돌리고 뜀박질을 하려는 것을 보아하니 말이다.
물론 그 시도는 간부가 손을 휘저어 사람의 키보다 두 배는 더 높은 얼음의 벽을 만들어내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빠져나갈 길은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황.
그들은 미리 준비했던 마법을 발동시키며 우릴 공격하려 했다.
그중 한 명의 머리가 빙벽에 처박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콰앙!
분명 몇십 분 전에도 비슷한 장면을 본 거 같았지만, 일단은 내게 날아오는 마법에 집중해야 한다.
불의 교단이라는 이름답게 그곳 소속의 마법사들 전체가 화염 계열을 쓰는 건지 축구공만한 화염구가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이 정도면 우리끼리 알아서 처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간부는 마법사들을 패고 있었다.
나는 똑같은 마법으로 맞설까 생각하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저 화염구를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침 방금까지 비슷한 경험도 했겠다.
나는 날아오는 화염구를 달래는 것이 아닌, 명령하는 것처럼 마력을 움직였다.
그러자 갑자기 허공에 멈춘 그것은 내 손짓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염구를 썼던 마법사는 그걸 보고는 경악하다가 미처 피하지 못한 간부의 주먹을 맞고 기절하고 말았다.
원래 같았으면 주인에게 돌려주려고 했지만, 이미 기절했으니 손을 휘저어서 화염구를 없애버렸다.
다행히도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저항하지 않아서 간단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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