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포말하우트
* * *
그렇게 간단하게 제압된 녀석들은 그들이 입고 있던 로브를 찢어서 포박당했다.
그러고 나서는 손짓 한 번 만으로 빙벽을 해제한 간부는 기절한 이들을 겹겹이 쌓아 놓고는 그 위에 걸터앉았다.
나는 그걸 바라보다가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던 하윤이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젠 어쩔게냐?"
"그렇게 귀여운 몸으로 무슨 옛날 사람 같은 말투는 쓰지 말라니까."
하윤이는 그렇게 툴툴거리면서도 골목 이곳저곳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향연을 감지하며 어느 한쪽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마치 일부러 놓쳐준 듯한 불의 교단의 꼬리가 있었다.
그들은 쫓아오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다음 입고 있던 로브를 완전히 불태우고는 차를 타고 급히 떠났다.
잠시 후 마찬가지로 로브를 벗고 골목에서 나온 결사단원들은 택시를 부르더니 번호판과 차량 종류를 본 것인지 일단 밟아달라고 했다.
애매한 시간대여서 그런지 차가 별로 없는 도로 위에서 추격전이 벌어졌다.
왼쪽으로 꺾고 오른쪽으로 꺾고, 한 번은 길을 잘못 들었던 건지 유턴까지 하며 어딘가로 향하던 차는 뒤에서 쫓는 택시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인지 속도를 높여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걸 본 결사단원들이 택시 기사에게 재촉하려나 싶었는데 갑자기 여기서 내려달라 말하더니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시켰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어 계속해서 지켜보니 그들은 커피를 받자 마자 결계를 펼쳐 남들의 관심을 차단하고는 어디론가로 연락을 걸었다.
그러자 아래에서 들려오는 수신음.
아무래도 놓쳐 버린 걸 보고하려는 모양인지라 관심이 팍 식어 버렸다.
나는 감시하던 눈을 없애고 눈꺼풀을 들자 내 얼굴을 가만히 구경하던 하윤이의 얼굴이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심연처럼 깊은 눈동자와 그 안에서 반짝이는 새하얀 별들.
밤하늘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아름다움이다만….
"왜 그렇게 뚫어져라 보니?"
"너무 귀여워서요. 배 좀 만져 봐도 돼요?"
"어허."
마치 이미 허락이라도 받은 것처럼 곧바로 다가오는 손을 살살 쳐 낸 나는 아래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흠, 그렇군요. 차량 번호판이라도 알아냈으면 괜찮습니다."
"혹시 추적조가 실패한 건 아니겠죠?"
"미행에는 실패했지. 애초에 실험실에 앉아서 연구만 하던 사람들이니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았고."
그는 그렇게 말하며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었다.
"예. 접니다. 지금 CCTV로 차량 하나만 수색 가능합니까? 테러 사건의 주동자입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처음엔 난처해하더니 테러라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하겠다고 말했다.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인 만큼 해결한다면 진급은 따놓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겠지.
금방 차량의 위치를 파악하고는 주소를 알려 준 그는 경찰을 대기시켜야 하냐고 물었지만 수현은 위험할 수도 있으니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저쪽은 곧바로 출발할 모양인데, 하윤이 너도 저기에 함께 하겠느냐?"
"굳이? 어차피 도망친 따까리한테 하나 붙여둔 게 있거든요. 서아 언니 서프라이즈나 한 번 할래요."
"그래. 그럼 바로 출발하자."
결사단원이 없는 골목으로 내려온 하윤이는 근처에 있는 지하철역으로 가서 노선도를 확인했다.
그러면서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목적지를 찾은 건지 곧바로 계단을 내려갔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의자 좌석에 기대어 앉은 하윤이는 만화나 보면서 시간을 죽여갔다.
***
간부를 따라 골목을 나오자 검은 승합차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창문까지 검게 색이 입혀져 있는 차량은 밤에는 전혀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옆에 있던 서아 씨는 무슨 연예인이라도 타냐고 말했지만, 안에 있던 로브를 입은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갔다.
안이 그대로 보인다면 누구라도 납치범이 타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아무튼, 그런 사람들 사이에 앉아서 곁눈질로 실력을 한번 가늠해봤다.
최대한 감춘다고는 했지만 약간씩은 새어 나오는 마력.
앞좌석에 앉은 간부 보다는 마력의 컨트롤이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입이 빠를지도 모르니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겠지.
이외에도 단단해 보이는 근육과 평소에도 단련하는 것처럼 보이는 강인한 육체는 마법사가 아닌 스포츠 선수처럼 보였다.
'하긴,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근접전에 들어서는 순간 끝이지.'
평소에 골방에 틀어박혀 연구나 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체력이 있겠는가.
주문을 외우느라 입을 움직일 힘은 있겠지만 그것뿐이리라.
실력 파악은 이쯤 하고 나는 창문 밖을 구경했다.
건물들로 이루어진 숲을 가로지르는 차량들.
저택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을 마음껏 보며 나름대로 즐기는 와중 차량이 갑자기 멈춰 세워졌다.
도착했나 싶었지만 내 눈에는 높이 솟아오른 건물들이 잔뜩 보였다.
"설마 여기예요?"
"마지막으로 불의 교단의 차량이 도착한 곳이 여기라고 하네요."
"헐. 사람들도 많은 도시에 떡하니 있을 줄이야."
"일단 어떻게 할지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그는 층층이 불이 켜져 있는 빌딩을 스윽 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원래 같았더라면 정보 수집을 먼저 하겠지만…. 오늘 당장 도망갈지도 모르는 일이니 바로 진입하겠습니다."
"안에 외부인이 있으면 어떡하죠?"
"모두 제압합니다. 일단 결계부터 준비하죠."
"예!"
그들은 로브에다가 마력을 불어넣더니 승합차를 나와 건물 주변을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분주히 준비했다.
하지만 지나가던 사람들은 거기에 시선 하나 주지 않고 그대로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무슨 인식 저해 같은 마법인가?'
마음 한구석에서 호기심이 올라왔지만 지금은 작전 중이니 쓸데없는 말은 삼가기로 했다.
그렇게 결계를 설치하는 걸 구경하면서 언제 올라가나 생각하고 있을 때 이쪽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보였다.
운동복 반바지에 후드티, 거기에다가 신기하게 어깨에 고양이를 올려 둔 여자였다.
아직 어린 티가 빠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학생으로 보이는데 눈동자의 방향이 이상했다.
마치 결계를 설치하는 게 신기하다는 듯한 눈빛…?
'설마 불의 교단의 사람인가?'
성급히 감각을 기울여 확인하자 그녀에게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그 자리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이런!'
너무 뚫어져라 쳐다본 탓인지 그녀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눈동자가 약간 내려와서 내 가슴팍을 바라봤다.
그러더니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게 내 심장 속의 불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녀는 어깨 위에 앉아 있던 고양이에게 무언가 속삭이더니 좀 더 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 싶어서 천천히 마력을 움직이며 싸울 준비를 하는데 서아 씨가 이쪽을 바라봤다.
"어, 하윤아!"
"서아 언니!"
그리고 저기 수상한 사람을 아는 것인지 이름을 부르는 것 아닌가?
나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일단 움직이던 마력을 흩트리며 그녀들을 바라봤다.
"여기는 무슨 일이야?"
"요즘 테러 때문에 분위기가 안 좋잖아요?"
"어, 응. 그렇지."
"정확히는 사고인가?"
"엥? 어떻게 알았어?"
"주말에 잡힌 약속이 덕분에 사라져가지고 좀 조사를 했죠."
하윤이라고 하는 학생은 닿는다면 베일 것만 같은 시선으로 빌딩을 올려봤다.
"그 원흉을 찾아서 족치려고 돌아다니다가 서아 언니가 하는 거 구경 좀 했죠."
"어? 난 너 안 보였는데."
"저도 기척은 못 느꼈는데 말이죠."
저기서 마법사들을 지휘하고 있을 간부가 어느새 찾아와서는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그가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누는 걸 보면 안심해도 괜찮겠지.
나는 차에서 내려 저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오, 에반 아저씨도 있었네요."
"음? 나를 알아?"
"저 기억 안 나요? 저번에 저택에도 놀러 갔었는데."
"저택…?"
분명히 언제 한 번 저택으로 누군가 초대받은 일이 있었다.
이브와 어울리느라 대화는 제대로 나눈 적이 없었지만, 분명히 그때의 분위기는 풋풋한 소녀의 느낌이었을 텐데.
하지만 지금은 노련한 마법사의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그녀의 나이의 배는 되어 보이는 사람이 보일 만한 것이었다.
분위기 하나만으로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구나—생각하며 나는 말을 이어갔다.
"분위기가 많이 변해서 알아차리지 못했네요."
"그래요? 저는 잘 알아보겠던데. 물론 불꽃은 처음 보지만."
"아하하, 사연이 많이 길어서 지금은 설명하지 어렵겠네요."
"결계 모두 설치했습니다."
"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그럼 진입합시다. 하윤 씨는… 어떻게?"
"저도 같이 가죠."
그렇게 간부를 선두로 건물에 들어가자 로비는 텅텅 비어 있었다.
안내 데스크에 있을 직원은 어디 갔는지 텅 빈 의자만이 쓸쓸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공격이 날아올 것만 같다고 해야 할까.
그리 생각한 순간 우리가 들어온 문이 갑작스레 닫혔다.
나는 무슨 일인가 당황스러웠지만, 서아 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예상했던 것인지 태연하게 올라갈 방법을 상의하고 있었다.
"귀찮으니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싶은데, 역시 함정이 있겠죠?"
"아예 작동을 안 하거나, 저희들이 탔을 때 줄을 끊어서 떨어뜨릴 수도 있겠네요."
"쓰읍. 역시 계단으로 가야 하나."
"이렇게 고층 건물에는 의무적으로 비상 계단을 설치해야 할 겁니다. 문제는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을 상대겠군요."
"잡몹은 저희끼리 빨리 끝낼까요?"
"그러죠."
순식간에 우리들은 계단으로 올라가기로 결정되었고, 나는 인생에서 올라갈 계단을 오늘 걷게 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