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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116화 (116/154)

〈 116화 〉 포말하우트

* * *

비상계단으로 향하자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계단과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들어진 난간, 그리고 밖이 훤히 보이는 유리창으로 된 벽이 있었다.

직접 일일이 세어본 건 아니지만 서아의 표정이 다리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말할 쯤에 누군가 나타났다.

사람 세 명 정도가 나란히 서면 막힐 정도로 좁은 너비의 계단 위로 로브를 입은 불의 교단의 마법사가 둘이 수문장처럼 떡하니 지키고 있던 것이었다.

그들은 준비해 두었던 마법을 쓰려는 모양이었던 건지 아래쪽으로 팔을 뻗었지만 순식간에 하윤이에게 잡히고 말았다.

"뎃?"

"어라?"

그리고 나오려던 마법은 불발되고 팔꿈치 관절이 반대로 꺾였다.

엄청난 고통에 뇌가 엔도르핀을 분비한 것인지 그들은 괴로워하기 보단 마법이 나가지 않은 것에 의아한 모양이었다.

물론 그대로 들려서 바닥에 내리꽂히며 생각을 그만두게 되었지만 말이다.

벽에 기대며 쉬고 있던 서아는 그 모습에 감탄했지만, 금방 상황이 정리되면서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것에 절망했다.

그렇게 간간이 나타나서는 간단하게 퇴장하는 엑스트라들을 정리하고 십몇 분 정도를 빠르게 오르다 보니 순식간에 옥상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사람 한 명이 누울 수 있는 크기의 새하얀 제단이었다.

그 위에는 재단되지 않은 흰색 천을 둘러입은 사람이 시체처럼 가만히 누워 있었고, 세 명의 로브를 입은 마법사들이 그를 둘러싸고는 무언가 의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찾던 그들은 끼이익거리며 녹슨 경첩이 내는 소리에 이쪽을 바라봤다.

불의 교단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인지 새겨진 마법들도 그렇고 화려하게 자수를 넣은 로브는 마치 실제로 불에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흠. 예상보다 더 빠르게 왔군. 난 계속할 테니 자네 둘이서 막게나."

"예, 알겠습니다."

그중에서도 나이가 있는 마법사가 둘에게 명령을 내리자 우리를 상대하기 위해서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어차피 내가 상대할 게 아닌지라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특별한 건 없나 살펴봤다.

하지만 특별히 꾸며진 것 없이 구석에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심어진 화단 밖에는 별거 없었다.

가을이 찾아오긴 했으나 밤에도 그리 쌀쌀하지 않은데 나뭇잎을 전부 떨어뜨린 나무는 고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제단 쪽을 보자 두 명의 마법사들은 직접적으로 공격하기보단 불의 장벽을 세워 의식을 방해하는 걸 막아 내려고 했다.

뜨거운 열기는 물론 시야를 방해하는 빛으로 인해 장벽 너머에서 언제 마법이 날아올지 모르니 결사단원들은 섣불리 다가가기 보단 큰 한 방으로 완전히 파괴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들을 지휘하는 수현은 아무런 말도 없이 지켜보고 있었고, 하윤이는 지친 서아를 부축하면서 구경하고 있었다.

에반은 불의 장벽이 나타나자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더니 무슨 이끌림이라도 있는 것처럼 고개를 나무 쪽으로 돌렸다.

그런 모습에 그의 시선을 따라가자 앙상한 나뭇가지와 그 끝에 마치 열매가 매달린 것처럼 보이는 별이 빛나고 있었다.

참 신기한 우연이라고 생각하며 잠시 구경하던 나는 옆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마력에 눈을 돌렸다.

어느새 바닥에다가 마법진을 그린 결사단원들이 각자 위치에 서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들이 서 있는 작은 마법진과 그걸 연결하는 커다란 마법진.

그 중앙에는 마력이 모여들며 폭풍의 구를 만들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를 뚫기 위해 무언가 주문을 더했는지 살을 에는 듯한 냉기가 담긴 바람이 차곡차곡 압축되고 있었다.

주문을 외우던 결사단원 한 명이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하자 그들은 불의 장벽을 향해 완성된 마법을 발사했다.

그러자 저 너머에서 무언가 감지했는지 요격하기 위한 불의 화살이 날아왔지만 별 타격은 없었다.

그렇게 불의 장벽과 부딪친 폭풍의 구는 품고 있던 싸늘한 냉기로 열기를 식히며 불을 꺼뜨렸다.

시야를 가리던 방해물이 사라지며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손이 얼어붙은 불의 교단 측의 마법사들이었다.

불의 장벽에 가까이 서 있던 탓인지는 몰라도 이런 기회를 놓칠 머저리들은 이곳에 없었다.

약해진 사냥감을 노리는 사냥개처럼 재빠르게 달려드는 결사단원들을 향해 그들은 마법을 날려 보지만, 어째선지 날아가던 불덩이들은 갑작스레 방향을 틀며 엉뚱한 곳을 때렸다.

그로 인해 접근을 허용하게 된 그들은 결국 바닥에 강제로 엎드려져서는 뒷목을 맞고 기절하고 말았다.

의외로 허무하게 쓰러진 그들을 뒤로하고 우리들이 천천히 제단을 향해 걸어가자 늙은 마법사가 맞이했다.

"어서들 오시게. 결사단의 방해꾼들이여."

"뭘 하려는 모양인지 잘 모르겠지만, 저항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겁니다. 저의 노인 공경은 언어적인 부분만 해당하거든요."

"크흘흘. 거참 노인네를 겁박하지 말아 주게나. 나는 그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라네."

"이야기? 시간을 끌려고 그러는 게 아닙니까."

"그렇다면 마법을 사용했겠지."

그는 뼈와 가죽만이 남은 듯한 팔을 움직여 수염을 쓸어냈다.

그러고는 열망으로 불타오르는 눈동자를 빛내며 말을 이어갔다.

"나 때는 말이야…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윤리라던지 그런 쓰잘데기 없는 것들은 신경 쓰지 않았어."

"국가의 발전을 위해 대통령과 정부가 눈을 감아준 게 아니고요?"

"예끼! 어딜 어르신이 말씀하시는데 말대꾸야! 요즘 젊은 것들은 바락바락 대들어서 문제여. 에잉, 쯔쯔쯧."

"허, 그럼 이어서 말씀해 보시죠."

수현은 화가 났는지 관자놀이 부근에 혈관이 삐죽 튀어나왔지만, 금방 평온한 상태로 되돌아가며 계속 말해 보라고 재촉했다.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많이 듣고 자랐지. 일본에 떨어진 원자 폭탄이나 육이오 전쟁 당시에 비처럼 내리던 폭격을 말이야."

"신 님. 저 사람 혹시 폭발 성애자는 아닐까."

"그건 모르겠지만 늙어서 곱게 미치지는 못한 모양이구나."

"순식간에 적들을 정화하던 불길은 내게 큰 영감을 주었지!"

나와 하윤이는 광기에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보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이야기했다.

"그래. 예로부터 불이란 것은 여러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지. 하지만 난 그중에서 한 신화를 떠올렸다네."

"호오. 그게 뭡니까?"

"제우스의 아들이자 반신인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몸을 불태워 인간의 육체는 사라지고, 신인 영혼은 올림푸스로 올라갔다고 하지."

그렇게 말하며 그는 제단에다가 불을 붙였다.

옷으로 쓰인 천에다가 기름이라도 먹여둔 것인지 화르륵 불타오르는 불꽃은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나는 다르게 생각해봤다. 만약 불완전한 부분을 불태워서 완벽한 인간을 만든다면?"

"이론상으로는 가능해 보이지만…."

"그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 탈출했던 실험체를 그나마 성공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야."

나는 조금 전에 봤던 폭발 현장을 떠올렸다.

불안정해가지고 터져 버린 것이 성공작이라니.

"원래 같았더라면 몇 달에서 몇 년은 걸릴 실험이었다네. 결사단, 그쪽에서 우리들을 잡으려 들지만 않았더라면 말이야."

"그 말은?"

"덕분에 실험체도 처리할 겸 그동안 구상했던 것들을 모조리 해봤지. 덕분에 오늘 이렇게 의식도 완성되었고."

늙은이는 슬쩍 고개를 돌려 불타오르는 제단을 보더니 황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참 초월하는 방법이 간단하기 그지없군."

"간단하다니. 우리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데."

"아무튼 들을 건 다 들은 모양이니 제압하겠습니다."

"그건 불가능할걸세. 왜냐하면—"

제단에서 갑자기 불길이 사그라들더니 타오르던 사람에게 모여들었다.

불타오른 신체를 대체하듯이 탄화된 피부 사이로 불꽃이 스며들면서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자그마한 폭발과 함께 검은 잿가루가 떨어지더니 바스러졌다.

하지만 그 사람은 죽지 않았다.

불꽃이 그의 육신을 대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손자 날 지켜 줄 것이기 때문이야"

"…손자?"

역시나 윤리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아서 그런지 태연하게 말하고 있었다.

자신의 이론으로 만들어진 의식이 성공적으로 마쳐져서 그런지 하늘이 떠나가도록 웃는 그의 옆으로 그의 손자가 다가 갔다.

"오오, 우리 손자! 몸은 어떠느냐?"

"새로운 느낌이야. 몸이 뜨거운데 뜨겁지 않아."

"그래. 적응만 한다면 괜찮으, 느, 느아악! 뭐 하는 게냐?!"

"그런데 성격도 바뀐 거 같아. 분명 전에 할아버지가 날 바위 같다고 했지?"

"끄, 끄아악—!"

"이젠 불처럼 화가 나. 불처럼? 불…태워?"

그가 늙은 마법사의 어깨를 잡자 순식간에 로브 전체에 불이 붙었다.

그리고 의식의 부작용인 것인지 점차 이성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뭐지? 내 이름은 뭐였지? 난 왜 불타고 있는 거지?"

"전원 전투 준비."

"예!"

"내 이름은 타버렸어. 기억도, 타오르고. 그럼, 나는, 도대체 뭐야?"

내 눈에는 불꽃에 반쯤 녹아내려가는 그의 영혼이 보였다.

자신이 인간이었다는 기억도 잃고 본질도 잃은 채로 그의 머릿속은 그저 불태운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였다.

"나는 불. 불은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두 명은 보호막 전개. 나머지 인원은 빙결 주문으로 온도를 낮춥니다."

"전부, 불타올라라!"

그렇게 옥상은 맹렬한 화염으로 가득 차고 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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