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IF 외전 평범한 일상을 포기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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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밝자 자동으로 눈이 떠진 나는 잠기운 때문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가게로 향했다.
옷을 한복으로 갈아입고 방석에 앉은 후 턱을 괴며 그저 빠르게 시간이 흘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멍을 때리다 보니 순식간에 시계가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인 덕분에 오전에 귀찮게 손님을 받지 않은 나는 점심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길거리를 휘적휘적 걸어 다니면서 눈을 빠르게 움직이며 어떤 곳이 좋을지 보던 와중 맡아져오는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에 발걸음은 어느 가게로 이어졌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메뉴를 시키고는 물을 벌컥 마시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폰으로 뉴스나 읽으면서 최근에 어떤 일이 일어났나 확인하며 음식을 기다리다 보니 종업원이 이쪽 테이블로 쟁반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
맛있게 드세요—라는 그녀의 말과 함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적당한 크기로 잘려진 돈까스.
바깥까지 풍겨진 기름에 튀겨진 고기의 냄새가 코를 강타했다.
그걸 포크로 찍어서 한입 먹으며 맛을 즐기던 나에게 문자가 왔다.
발신인은 서아 언니.
내용은 대충 이랬다.
어제 부탁했던 흑마법사의 수색의 건과 새로운 일거리.
자세한 이야기는 전화로 할 테니 점심시간이 끝나면 전화하라고 적혀져 있었다.
어차피 결사단도 여타 다른 회사와 비슷하게 점심시간이 있으니 내 가게로 돌아가서 연락하면 딱 맞을 거다.
한 것도 없는데 공복으로 가득한 배를 채운 나는 소화도 시킬 겸 산책을 하면서 사람들을 관찰했다.
급식이 맛없었던 것인지 몰래 학교 밖으로 빠져나온 듯한 학생들, 정장을 입고 어디론가로 바삐 가는 회사원.
이외에도 여러 모습의 군상이 보였다.
그중에서는 어제 만났던 영안을 가진 여자도 있었지만,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그쪽에서는 날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다.
어차피 일이 끝나면 내 가게로 찾아오라고 주소까지 알려 줬으니 몇 시간 후면 만날 사람을 굳이 귀찮게 하진 않았다.
높이 떠올랐던 해가 천천히 내려오며 그림자가 길어지는 시간에 나는 상가 깊숙한 곳으로 돌아왔다.
방에서 환복을 마친 나는 근처에서 전혀 느껴지지 않는 기척에 그냥 오늘 장사는 접을까 생각도 들었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옆에 붙어 다니는 신령이 오늘따라 말이 없기에 폰을 꺼내 인터넷이나 돌아다니려 하다가 서아 언니에게서 왔던 메시지를 떠올렸다.
바로 전화를 건 나는 약간의 수신음 이후 익숙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여보세요."
"서아 언니."
"어. 지금 한가해? 이야기가 좀 길어질 거 같은데."
"괜찮아요. 이러려고 사람도 별로 안 오는 곳에다가 가게 만든 거잖아요."
"그렇지. 그럼 일단 어젯밤부터 새벽까지 수색을 마친 단원에게서 올라온 보고서를 읽어 줄게."
그러고는 잠시 부스럭거리며 종이를 뒤적이는 소리가 났다.
"아, 찾았다. 미사여구는 생략하고 결과만 말할게. 도시 전체를 이 잡듯이 샅샅이 찾아봤지만 흑마법사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건물 안은 찾아봤대요?"
"불법 침입이 아닌 선에서 최대한 노력했는데도 마력흔이라던지 그런 건 전혀 찾지 못했다고 해."
"그럼… 결계를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응, 그러겠지. 하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야."
"그럼 이제부터는 제가 나설 차례겠네요."
"아니지. 내가 오늘 일거리가 있다고 문자 보내지 않았니?"
"아, 맞다."
곤란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는 서아 언니의 목소리 사이로 서현 언니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무튼 개인적인 일은 잠시 미뤄줘. 액운이 씌였다고 급사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
"불행이 찾아오는 정도로 그칠 거예요. 쓰읍… 이번 달에는 운이 좋을 거라고 말했는데."
"이번 일도 빠르게 끝낼 수 있을 테니까 괜찮을 거야. 아무튼 설명을 해줄게."
"넹."
나는 무언가 빠트리는 것이라도 있을까 봐 스피커에 귀를 기울였다.
"일주일 전부터 우리나라에 입국하는 마법사들이 많아졌어. 공항에 상주하는 결사단원들 알지?"
"알죠."
"가끔씩 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번엔 비정상적으로 많아."
"관광이 목적인 건 아니겠네요."
"그래. 하지만 우리들이 무슨 흥선대원군의 의지를 이어받은 것도 아니고, 외국인 마법사는 입국 금지! 이러는 건 아니잖아?"
"그러면 미친놈들인 거죠."
"푸하핫. 그래서 감시만 붙여두고 내버려 뒀는데, 두 명이 마법을 사용해서 사람들에게서 어떤 정보를 캐고 다녔어."
"우와. 선을 많이 넘었네요."
"그래서 감시 중인 결사단원이 개입하면서 전투가 벌어졌고, 결과는 대충 예상이 가지?"
웬만해서는 지령이 내려오지 않는 나에게 일거리가 떨어졌다는 것은 상대가 그만큼이나 까다롭다는 뜻이다.
"졌겠죠. 실력은 어떠던가요?"
"전투부가 나선다면 어느 정도 피해를 입고 제압하겠지만, 요즘 우리나라도 그렇게 전 세계가 많이 혼란스럽잖아?"
"그렇죠. 마을 한가운데에서 괴물이 소환되어 학살극이 일어난다던가."
"납치에 테러에 심지어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까지. 게다가 동해 쪽에서 올라오는 심해인까지 막느라 전투부를 함부로 빼낼 수도 없는 상황이야."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녀석들의 위치는 좀 있다가 밤에 전해줄게. 그때 시간 괜찮지?"
"딱 좋네요. 그럼 끊어요."
"어, 수고해."
뚝.
외국에서 온 마법사라.
어떤 마법을 사용할지 정말 흥미롭다.
저번에 마주했던 흑마법사만큼 강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전혀 본 적도 없는 괴물들을 소환해서 나를 꽤나 고전하게 만들었지.
'전력을 꺼낼 만한 상대면… 아니다. 그럼 큰일 나겠네.'
녀석들과 싸울 장소가 어디인지는 몰라도 전력을 꺼내야 할 상황이 온다면 그곳이 반파될 것은 분명하니까.
'이런 고민은 나중에 하자. 지금은 시간을 어떻게 때워야 할지가 문제야.'
폰으로 할 만한 게임은 벌써 바닥났고, 옆에 있는 신령은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중이라 방해하기도 뭐 했다.
결국 예전에 재밌게 봤던 영화나 재탕하기 위해 마력으로 받침대를 만들어 폰을 세웠다.
그리고 너무 몰입했을 때를 대비해 문에다가 열리면 신호가 오도록 주문까지 걸어 둔 후 관람을 시작했다.
…….
세 편째의 영화를 보던 와중 탁자 위에 있던 단검이 카페의 진동벨처럼 우웅—하고 울렸다.
이어서 들려오는 청명한 방울 소리.
나는 바로 폰의 화면을 꺼버린 후 곧바로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자세를 똑바로 하며 엄숙한 표정을 짓는데에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번엔 과연 어떤 손님이 찾아왔을지 잠시 기다리자 익숙한 얼굴의 여자가 들어왔다.
"저기… 아! 어제 그분이 맞으시네요!"
"어, 안녕하세요."
그 사람은 어제 스토커에게서 구해 준 사람이자 오늘 점심에도 봤던 영안을 가진 여성이었다.
제대로 찾아온 것이 맞는지 불안해하는 표정이 순식간에 안심한 것처럼 변하며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면서 방석에 앉은 그녀는 자기소개를 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는 경황이 없어서 제 이름을 말씀드리지 못했네요. 저는 김다인이에요."
"아, 전 이하윤이에요. 보시다 싶이 무당입니다."
"아하. 그래서 옆에 저런 분이 계셨구나."
"차림새만 보면 시대를 착오한 것처럼 보이긴 하죠."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내 옆에 있는 신령을 바라보더니 갸우뚱했다.
"어라? 뭔가 심각한 일이라도 있으신가?"
"잠깐만요."
나는 신령의 어깨를 살짝 치면서 정신 차리게 하려 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그런 그를 위해 조금만 더 다가가 귀에다가 마법의 단어를 속삭였다.
"항아리."
"허억! 그건 안 된다!"
"네?"
소스라치며 벌떡 일어선 그는 당황해하는 다인 씨의 눈빛에 다시 앉고는 헛기침을 했다.
"크, 크흠. 잠시 고민할 게 있어서 귀가 잘 안 들린 모양이군."
"무슨 고민을 하루 종일 하던데요."
"당연하지. 운명의 일그러짐이 대놓고 보이는데 어찌 안 그럴 수 있겠느냐?"
"네에? 그게 뭔가요?"
"세상을 어지럽히며 혼돈을 불러올 재앙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그런 거 일반인에게 알려 줘도 되는 거예요?"
"영안을 가진 사람이 일반인이더냐? 이들에게는 귀신이 꼬이기 마련이니 차라리 알아 두고 대비하는 편이 좋다."
신령은 부채를 탁 펴더니 입가를 가리면서 시선을 흐뜨렸다.
그러더니 무언가 끔찍한 것과 마주친 것처럼 눈가를 팍 일그러뜨리면서 괴상한 주문을 외웠다.
어떤 효과인지 몰라도 제대로 된 효과는 보지 못한 것인지 들고 있던 부채를 놓치며 고통스러운 듯한 신음을 내었다.
"끄으읍…. 역시 불가능한 것인가."
"방금 건 대체 뭔가요?!"
다인 씨는 영안을 가졌으면서도 이런 체험은 처음인 것인지 눈을 반짝이며 이쪽을 바라봤다.
"시선을 방해하는 주문이다. 불쾌하고 진득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두 쌍이나 있기에 시도해봤건만."
"두 쌍?"
하나였다면 신 님께서 보고 계시구나—생각했겠지만, 나머지 하나는 어떤 존재의 것인지 의문이었다.
맨날 항아리에 갇히는 신령이지만 능력 하나는 괜찮은데 주문이 실패했다는 것은 그보다 격이 높다는 뜻이었다.
불쾌하고 진득하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위대한 옛 존재이나 외신이겠지.
하지만 뭐가 좋다고 여길 관찰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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