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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121화 (121/154)

〈 121화 〉 IF 외전 ­ 평범한 일상을 포기했다면

* * *

나는 일단 시선에 대한 건 넘겨 버리고 김다인 씨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어제 보였던 반응을 보면 무고한 할머니에게 액운을 씌울 만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저렇게 순수한 척 가면을 쓰고는 기만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건 단지 최악의 가정일 뿐이지만, 아닐 거라며 대충 넘기다가 큰 사고로 이어진 역사가 많으니 조심하는 편이 좋다.

"음, 그래서 다인 씨. 제가 어째서 당신을 이곳으로 불렀는지 예상이 가시나요?"

"어… 스토커 때문인가요?"

"아뇨. 애초에 전 자경단도 아니고, 다른 것 때문에 미행하고 있다가 일이 커진 거예요. 제가 주소 알려드리면서 설명하지 않았던가요?"

"어제는 너무 흥분해가지고 기억이 잘 안 나서요. 잠깐, 미행…이요?"

그녀는 내가 미행했다는 소리를 듣더니 화들짝 놀라며 날 쳐다봤다.

"그렇게 말하니까 제가 나쁜 사람이 된 거 같은데,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하윤아, 거짓말하면 못쓴다."

"여기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게 맞아요."

"에헤이. 제가 찾는 사람이 있거든요. 최근 이곳으로 왔으면서 마법적 재능이 있는, 그런 사람 말이에요."

"…제가 그런 재능이 있다고요?"

"제 옆에 한복 입은 할아버지 보이잖아요."

"그렇죠."

"가끔씩 귀신도 봤을 테고."

"그거 때문에 굿도 해 보고 부적까지 받아봤는데 전혀 소용이 없던데요?"

"에이, 그건 걔네들이 사기꾼이라서 그런 거겠지."

일제 강점기에 한국 주술의 명맥이 끊기고, 몰래 숨어서 제자에게 전수한 곳이나 재능으로 신내림을 받은 경우를 제외한다면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무당은 없을 것이다.

사람의 불행을 이용해서 돈이나 빨아먹는 사회의, 아니, 세상의 쓰레기들.

그런 녀석들을 모조리 찾아서 사지를 부러뜨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기엔 세상이 많이 혼란스러워졌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가서. 일단 언제 여기로 이사 왔아요?"

"어…이주일 정도 됐을 거예요."

"으흠. 그럼 다니는 직장은?"

"이거 말해도 괜찮은 거 맞죠?"

"제가 어디에 떠벌릴 사람처럼 보여요? 그러면 여기 있는 신령을 걸게요."

"으응? 가만히 있는 나는 왜 거느냐?!"

"그럼 믿어드릴게요."

"너는 왜 그걸 받아들이는고?!"

옆에 있던 신령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탁자 밑에 있는 항아리를 다인 씨가 안 보이게 툭툭 치자 잠잠해졌다.

그렇게 방이 조용해지자 나는 재차 질문했다.

"그래서 직장이?"

"외국에서 사업하다가 한국으로 흘러들어온 곳이라 잘 모를 텐데, 베니바르라고 해요."

"음, 전혀 들어 본 적도 없어."

"아하하, 당연하겠죠…. 거기서 상담사로 일하고 있어요."

"상담사라…."

"사실 운이 좋았죠. 부모님이 계속 일하라고 난리여서 아무곳이나 이력서를 넣었다가 면접을 보러 갔는데…."

"갔는데?"

"사장님이 대충 듣더니 질문도 안하셔서 글렀구나 생각했는데 바로 채용하시더라고요."

"으응…?"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바로 뽑았다니.

인맥을 이용해서 들어가는 게 예정된 사람이었다면 겉보기식 면접을 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녀의 낌새를 봤을 때 양심에 찔린 듯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외국에서 한국으로 흘러 온 회사라고 했으니 그쪽 사장도 외국인이겠지.

'영안을 가진 사람을 콕 짚어서 채용한다라….'

수상한 냄새가 풀풀 풍겨서 그녀에게 회사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려 했지만, 내 주머니에서 전화가 울리면서 나는 나오려던 말을 집어삼켰다.

"미안해요. 잠깐 전화 좀."

"괜찮아요."

"여보세요?"

"서아야. 내가 전화를 좀 빨리 걸었지?"

"그러네요? 밤에 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감시를 하던 게 들켜서 2인조가 지금 도주 중이야."

"아이고, 그럼 빨리 가야겠네요."

"지금 쫓고 있다고 하는데,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대. 주소는 1분마다 갱신해서 보내줄 테니까 빨리 와!"

"알았어요."

전화를 끊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방에 들어가 빨리 옷을 갈아입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금방 외출복을 입은 나는 일단 다인 씨에게 설명을 해줬다.

"제가 지금 좀 바쁜 일이 생겨서요. 나머지 이야기는 내일 여기…가 아니라, 거기 회사로 가서 해도 될까요?"

"네. 무슨 일이시길래 그래요?"

"알면 다쳐요!"

다인 씨와 밖으로 나온 나는 문을 잠그면서 그녀에게 연락처를 남긴 후 빠르게 복도를 달렸다.

학생들의 무리를 지나쳐 금방 상가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택시를 불렀다.

그러고는 서아 언니에게 온 주소지를 확인하면서 거리가 얼마 정도 되는지 계산했다.

'으음…. 뛰어서 가도 괜찮겠지만 마력 소모가 걱정되네. 상대가 강하다고 했으니 최대한 아껴야겠지.'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문자로 오는 주소지가 점점 이쪽에 가까운 지역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감시로 붙은 단원들이 내가 있는 곳으로 그들을 몰라고 지시받았겠지.

저기 멀리서 오는 하얀색과 노란색이 섞인 택시가 점점 속도를 줄이는 걸 보면서 나는 손을 흔들었다.

내 앞에 멈춰 선 택시의 문을 열고 푹신한 시트에 앉은 나는 녀석들이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는 장소를 불렀다.

최대한 빠르게 가달라고 말하자 기사 아저씨는 고개를 돌려 뒤를 스윽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더블로 드릴게요."

"그럼 빠르게 가드려야지!"

그렇게 말한 그는 곧바로 엑셀을 밟았다.

관성의 법칙으로 몸이 뒤쪽으로 쏠린 나는 시시각각 변하는 주소지를 보면서 창문 밖을 바라봤다.

기사 아저씨의 몸에 가려져서 계기판이 보이지 않았지만, 배경에 잔상이 생기는 것처럼 휙휙 지나가는 걸 보면 속도가 어느 정도로 빠른지 예상이 갔다.

그러면서도 속도 위반 단속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는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서서히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다행히도 녀석들이 도주한 방향이 내가 예상한 곳과 일치한 덕분에 택시가 유턴하는 일은 없었다.

퇴근 시간이 지나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공장과 창고들이 눈에 보였다.

어려 보이는 여자가 어둑해지는 시간에 이런 곳에서 내리자 기사 아저씨가 걱정하듯이 물었다.

"아가씨, 여기서 내려 줘도 괜찮어?"

"걱정해주셔서 감사하지만 지인들도 금방 올 예정이라 괜찮아요."

"내 딸아이 같아서 그래."

그렇게 말하면서도 돈 계산이 철저한 걸 보면 저쪽 가족은 알뜰하게 잘 살 것만 같았다.

점점 가까워지는 기척에 나는 빠르게 택시에서 멀어지기로 했다.

"그럼 수고하세요."

굳게 닫힌 공장 부지 앞을 뛰어가며 잠들어 있던 마력을 일깨웠다.

그러면서 근방에 마력의 실을 깔아둔 나는 그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서아 언니가 보내던 문자는 녀석들을 쫓던 결사단원에게서 내가 도착했다는 걸 보고받은 것인지 방금 전부터 갱신되지 않았다.

일단 나는 외국에서 온 마법사와 대화라도 나눌 수 있으니 이전에 봤던 통역 마법을 귀에다가 사용했다.

"응?"

그러고 잠시 기다리자 저기 멀리서 점처럼 보이던 것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해가 저무느라 새까만 점으로 보였던 그것은 사람의 형상으로 변하며 자세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중동 쪽에서 온 사람들인지 짙은 피부와 눈썹, 수염, 그리고 평범한 옷을 입은 채로 무언가를 타고 날아오고 있었다.

바로 아라비안 나이트, 천일야화에 나오는 것처럼 양탄자를 타고!

속도가 꽤 빠른 것인지 금방 가까워진 그들은 나를 보자 방향을 틀어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미리 깔아둔 마력의 실을 움직여 결계를 만들어내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아 냈다.

미리 들은 대로 실력이 상당하다는 것이 맞는 건지 그들은 양탄자를 멈춰 세우고 내렸다.

그러고는 마력을 끌어올리며 전투 태세를 갖췄다.

"저 여자를 빨리 쓰러뜨려야 한다.

"나도 알고 있어. 우리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며 한 명은 양탄자를 회수해 등에다가 매더니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게 무엇인지 궁금해 구경이라도 하려는 찰나에 남은 한 명에게서 공격이 들어왔다.

간이라도 보려는 것인지 자그마한 폭풍이 눈을 가리는 동안 아래쪽으로 모래의 창이 날아왔다.

나는 보호막을 믿으며 손을 휘둘러 흙먼지를 날리는 소용돌이를 없애버렸고, 마법을 시전했던 녀석이 혀를 차며 다음 것을 준비했다.

하지만 뒤에 있던 녀석이 들고 있는 게 궁금했던 나는 심심할 때마다 만들었던 별을 소매에서 꺼내 던졌다.

앞에 있던 그는 응집된 마력과 마법진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경악하며 시전하던 마법을 취소하고, 곧바로 보호막을 보강하기 시작했다.

"큭! 아직 멀었어?!"

"됐다! 이프리트!"

뒤에 있던 녀석이 들고 있던 건 황금으로 만들었는지 가로등의 불빛을 반사하며 번쩍이는 램프였다.

그것에서 튀어나온 연기로 둘러싸인 거인은 계약자의 뜻을 이해했는지 앞으로 손을 뻗으며 보호막을 만들었다.

—!

그리고 이어지는 폭발.

이와 함께 발생한 먼지들을 바람을 일으켜 없애버린 나는 저들이 멀쩡한지 확인했다.

생각보다 이프리트라는 저 거인이 강력했던 것인지, 녀석이 만든 보호막은 약간의 금이 간 걸 제외하면 멀쩡했다.

나는 괜찮은 샌드백이 생긴 것에 기뻐하면서 소매에서 더 많은 별을 꺼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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