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위대한 존재가 되었다-122화 (122/154)

〈 122화 〉 IF 외전 ­ 평범한 일상을 포기했다면

* * *

다시 한번 폭발으로 일어난 흙먼지를 치우자 드러난 것은 상반신의 대부분이 날아간 거인이었다.

내가 던진 별들을 한 곳으로 모아서 보호막으로 감싸 폭발력을 상쇄시키려는 행동은 좋아 보였지만 상대가 많이 나빴다.

그것들은 모두 내가 만들어둔 주문.

손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제어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중심에 밀집된 마력을 둘러싸는 마법진을 풀어내 다른 것들과 함께 엮어 만들어진 하나의 거대한 별은 저 이프리트라는 거인이 생성한 보호막을 가볍게 깨뜨렸다.

금이 가는걸 보자마자 달려들어 자신의 몸으로 폭발을 막아 낸 주인을 위한 그의 행위에 박수를 쳐 주고 싶었지만, 저들은 내가 조롱하는 것으로 보일 테니 손은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결국 거인은 검은 연기로 변하며 다시 램프로 돌아가고 말았다.

저쪽은 아직 흙먼지가 날리고 있어서 그림자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당황스러워하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이번엔 뭘 보여줄까 기대하며 아직 잔뜩 남은 별들을 주머니 속에서 굴려 가며 기다리자 다시 소용돌이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방금 전의 것보다 크기도 커지고 풍속도 빨라진 그것은 흩날리던 흙먼지도 품고 있어서 맞으면 아플 거 같았다.

나는 마력으로 찍어 눌러서 없애버릴까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까지도 시선에 대한 고민을 하느라 날 따라오지 않은 신령이 떠올랐다.

'그래. 그렇게 낭비하기보다는 효율적으로 써야지.'

마법을 써도 잔소리할 사람, 아니, 신령도 없으니 나는 빠르게 마력을 배열시켰다.

만드는 것은 저것과 똑같은 소용돌이.

이쪽으로 빠르게 오며 시시각각 변하는 위치를 계산했다.

회전 방향은 역방향으로, 크기는 좀 더 크게 만들어 저걸 감싸는 식으로 만들어냈다.

그렇게 서로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더니 완전히 잠잠해져서는 바닥에 원형으로 약간의 흙이 깔려 그 흔적만 남았다.

마력을 많이 사용했더니 피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어 호전적인 눈빛으로 그들이 있을 장소를 바라봤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도망쳤어?"

어차피 결계도 있어서 빠져나가기 쉽지 않을 텐데 어지간히도 별의 위력이 상상 이상이었나보다.

'아니면 이프리트라는 거인이 부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녀석이었나?'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을 신경 쓰기엔 너무 귀찮았다.

내가 할 임무는 저것들을 제압한 다음 끌고 가는 것.

겸사겸사 뭘 하러 온 건지 심문도 하는 게 좋겠다.

나는 결계를 두들기는 게 느껴지는 방향으로 향했다.

얼마 걷지 않고 마주한 둘은 마법도 쓰지 않고 양손으로 보이지 않는 벽을 때리고 있었다.

"허이구, 너네 뭐 하… 응?"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생김새는 똑같은데 품고 있는 마력이 미세하게 달랐고, 옷으로 가려지지 않은 곳에 일그러진 피부가 보였다.

그런 모습에 경계하며 가까이 다가가자 양옆에서 마법이 날아왔다.

한쪽에서는 모래로 이루어진 시미터가 여러 개, 다른 한쪽에서는 날카로운 회오리가 나를 죽이기 위해 다가오자 위로 뛰어올랐다.

간단하게 공격 범위에서 벗어난 나는 착지하고는 자욱한 모래 먼지에 눈을 찌푸렸다.

이어서 어떤 공격이 올지 모르니 빨리 치우려고 팔을 휘두르려는데 갑자기 나타난 두 마리의 늑대가 나타나 덮쳐들었다.

각각 왼쪽 손목, 오른쪽 팔을 문 녀석들은 느껴지지 않는 피 맛에 의아해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근접전을 위해 피부에 거의 밀착하도록 보호막을 만들기 때문에 이빨이 파고들지 못한 것이었다.

"이게 미쳤나."

감히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다니.

나는 녀석들의 주둥이를 잡은 후 바닥에다가 내팽개쳤다.

"케헹!"

"깨갱 깽!"

콘크리트 바닥에 금이 갈 정도로 세게 했는데 비명만 살짝 지른 녀석들은 뒤쪽으로 도망쳤다.

'일반적인 생물이라면 갈비뼈가 부러지다 못해 으깨질 텐데?'

먼지구름 뒤로 숨은 녀석들의 그림자를 보자 답이 나왔다.

뛰어가던 늑대가 일어서더니 우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모습이 바뀌었다.

저렇게 변신술을 사용한다는 것은 뒤에 있던 마법사가 소환한 것들이겠지.

결계를 두들기며 내게 방심을 유도하고, 숨어 있던 둘은 나를 암살한다.

일반적인 마법사였다면 간단하게 당했을 전략이었다.

나는 일단 시야를 가리는 먼지들을 치우기 위해 발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내려찍으려는 찰나 살랑거리며 뺨을 간지럽히는 바람이 느껴졌다.

"응?"

그러더니 점점 먼지가 흐름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숨어 있던 녀석들도 찾을 수 있었지만 나는 혀를 찼다.

거대한 모래바람의 벽이 내 주변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폭풍의 눈에 갇히게 된 나는 위쪽에서 기척 같은 게 느껴지기에 고개를 올렸다.

그리고 눈에 띄인 것은 하반신이 소용돌이치는 구름으로 되어 있고, 피부가 파란 지니 같은 녀석이었다.

이 폭풍의 벽을 만든 장본인인 것인지 열심히 팔을 흔들던 여성체의 소환수는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미소를 지었다.

저년에게 번개를 퍼부어서 아래로 떨어뜨릴까 고민하며 천천히 마력을 움직이던 와중 변신을 마친 괴물들이 내게 덤벼들었다.

위쪽을 바라보느라 내가 방심했다고 생각한 건지 소리 없이 다가와 손톱을 휘둘렀지만, 나는 고개를 까딱이며 목을 노리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녀석의 손목을 잡고 으스러뜨리며 어떻게 생겼는지 관찰했다.

"쯧. 너네는 위에 있는 애를 반이라도 닮아라. 그게 뭐냐?"

"캬아악!"

지능은 있지만 말은 하지 못하는 것인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녀석은 반대쪽 손을 휘둘렀다.

"어이쿠야."

그런 모습에 잡고 있던 손목을 옆으로 끌어당기자 중심을 잃고 쓰러지며 그 공격은 빗나갔다.

이제 슬슬 장난은 끝내야겠다 싶어서 녀석의 머리를 으깨기 위해 발을 움직이려고 했다.

"어라?"

하지만 어디서 왔는지 모를 모래가 손처럼 뻗어올라서는 내 발목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뒤쪽에서의 기습.

나머지 하나가 내 등을 찌르려고 달려들었지만, 나는 허리를 비틀어 공격을 피한 후 녀석의 목을 붙잡았다.

"일단 하나."

—우드득!

손에서 느껴지는 질긴 가죽의 감촉과 함께 단단한 뼈가 저항하는 게 느껴졌지만 힘을 더 주니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죽어 버린 건 멀리 던져 버리고 고개를 아래로 내리자 부러지지 않은 쪽 손으로 내 발목을 잘라 내려고 노력하는 녀석이 보였다.

물론 보호막에 막혀 그런 시도는 물거품이 되었지만,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참 안쓰러워 보였다.

나는 빠르게 안식을 주기 위해 잡아당기는 모래에 저항하며 발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녀석의 머리 위에다가 올려놓고는 힘을 주자 수박 깨지듯이 터지며 안의 내용물이 튀어나왔다.

검은색의 구정물 같이 악취나는 것들이 몽글거리며 바닥을 뒤덮었다.

"으엑."

코를 찌르는 악취에 헛구역질을 하며 남은 한 마리, 폭풍의 벽을 유지하는 지니를 쳐다봤다.

그녀가 공격을 하나도 하지 않은 것이 의문이었지만, 밤이 점점 깊어져만 가므로 빨리 퇴장해 줘야겠다.

처음에 생각했던 벼락으로 공격하기 위해 마력을 배열하는 도중에 미소 짓는 얼굴이 보였다.

그게, 마치 비웃는 것처럼 느껴져서 마법을 빠르게 완성시키던 와중 무언가 움직이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은 무력화했는데 왜 안 사라지지?'

아까 전에 큰 피해를 입었던 이프리트는 연기로 변해 램프로 들어갔는데 말이다.

다른 방식으로 소환한 것이라면 이해는 간다만 무언가 찝찝한 느낌에 몸을 옆으로 피했다.

그러자 목을 덜렁거리는 녀석이 손을 휘적거리며 앞으로 기우뚱했다.

"역시나 살아 있었구나."

그런 녀석을 발로 뻥 차며 슬그머니 뒤로 이동했다.

이후 완성된 마법을 위의 지니가 아닌 목이 꺾인 녀석에게 떨어뜨렸다.

—쿠르릉!

빛의 기둥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커다란 번개가 내리꽂혔다.

그걸 맞은 녀석은 새까맣게 타서는 경련을 하며 쓰러졌다.

지니는 곁을 지나가는 번개에 깜짝 놀란 것인지, 아니면 피해라도 입은 것인지 폭풍이 잠시 약해졌다.

나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저기 쓰러진 두 녀석들에게 집중했다.

자리를 지키며 몇 분 동안 가만히 있자 저기서 움찔거리며 슬쩍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녀석들은 죽은 척을 하고 있다가 내가 가까이 다가오면 덮치려고 한 모양이었지만, 이미 내게 의심의 싹을 틔웠을 때부터 늦었다.

온몸이 타버린 녀석은 물론이고, 머리가 깨져서 하관 부분만 남은 녀석도 천천히 일어섰다.

'저래도 죽지 않는다면 방법이 있지.'

나는 녀석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쥐자 무형의 힘이 그들을 천천히 압박하기 시작했다.

팔을 휘두르거나 발길질을 하는 둥 최대한 저항하고 있었지만, 결국 완전히 압착되어 육편처럼 변하고 말았다.

"우와. 그렇게 되고도 움직여?"

녀석들은 뭉개진 사지로 어떻게든 기어오려 했지만 아무리 봐도 한참 걸릴 거 같았다.

역시 아예 움직이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리는 게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이제 남은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고개를 올리자 미소가 사라진 지니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다급히 손짓을 하며 폭풍의 벽을 점점 좁히기 시작했다.

믹서기처럼 나를 갈아버리려 다가오는 바람의 칼날들은 위협적이었지만 내가 더 빨랐다.

—콰릉!

하늘이 번쩍이며 뒤이어 천둥소리가 들려왔고, 지니는 눈을 까뒤집고 떨어지다가 푸른 연기로 변하더니 어디론가로 이동했다.

"저쪽인가."

그 말은 즉 슨 저게 가는 쪽에 소환사가 숨어 있다는 뜻.

꽤나 거슬리는 것들을 부리는 걸 보면 먼저 제압하는 편이 편할 거다.

나는 연기에 붙여둔 마력의 위치를 살피며 천천히 주문을 외웠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