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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123화 (123/154)

〈 123화 〉 IF 외전 ­ 평범한 일상을 포기했다면

* * *

나는 서서히 약해져 가는 바람의 벽은 신경 쓰지 않고 언제 붙여둔 마력이 멈출지를 기다렸다.

어느 정도의 위력으로 벼락을 내리치면 사람이 죽지 않고 기절만 하는지는 많은 실험 결과가 있었기에 제압용 마법을 떠올리며 기계적으로 마력을 배열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죽지는 않았으니까.'

화상을 입거나 신경계가 망가져 버릴지도 모르겠지만 무슨 상관인가.

남의 나라에 와서 헛짓거리를 하고 다녔으면서 대가를 치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리가 없겠지.

그렇게 마법이 완성되며 발동되기만을 기다리던 와중 움직이던 마력의 속력이 느려졌다.

그러고는 어딘가를 빙빙 도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이 마치 방금 봤던 램프에 빨려 들어가는 검은 연기와 비슷했다.

—쿠릉!

그리고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죽지 않는 괴물이나 지니에게 떨어졌던 것과 비교하면 지금 건 실처럼 얇게 보였지만, 사람 한 명을 쓰러뜨리기에 충분한 위력을 품고 있었다.

마침 금속으로 만들어진 램프도 들고 있으니 인간 피뢰침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운이 좋아서 기절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니 한 번만 더 떨어뜨릴까 고민하던 와중 저기 곤죽처럼 변한 괴물들이 점점 사라지는 게 보였다.

검은 재처럼 변하며 흩날리는 걸 보니 제대로 무력화된 모양이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마법사 하나.

위치는 잘 모르겠으나 결계 때문에 나가지 못할 테니 독 안에 든 쥐나 마찬가지다.

폭풍의 벽이 완전히 잠잠해지자 나는 길을 따라나섰다.

"흥, 흐흥."

녀석의 공포감을 배가시키도록 콧노래를 부르며 사뿐사뿐 걸어 다니던 와중 근처에 있던 공장 내부에서 무언가가 둔중하게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들어가면 어떤 함정이 날 반길지 모르겠지만 이럴 때는 방법이 있다.

나는 어떤 게임에 나오는 것처럼 결계의 범위를 점점 좁혀갔다.

반대쪽 구석에서 누군가 걸리면서 질질 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쪽은 아마 기절한 소환사겠지.

콘크리트 바닥에 피부가 쓸리면 매우 따갑겠지만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다.

결계가 좁아지며 저기 보이는 공장이 점점 범위에서 벗어나자 안쪽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정말로 저기에서 잠복하고 있을 줄이야.'

내가 무슨 공포 영화에 나오는 호기심 가득한 주인공도 아닌데 무작정 들어갈 리가 있겠는가.

결국 안에 숨어 있던 마법사는 거리를 좁혀 오는 결계에 벽을 부수며 탈출했다.

"안녕?"

"…그대의 마법 실력은 대단하군. 이만 항복하겠소."

"그렇게 말하면서 무언가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건 아니고?"

"어찌 그러할 수 있겠소? 시미터도 가지지 않은 그대가 구울을 무력화했을 때부터 항복해야 했던게지."

"구울?"

구울이라면 드림랜드에 거주하면서 무엇이든 먹는 괴물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하지만 그것들이 변신술을 쓴다고는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내가 아는 구울과는 많이 다른 거 같은데."

"당연하오. 애초에 구울이란 이름이 우리 쪽 전설에서 따온 것이니."

"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무력화는 해야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그에게 검지 손가락을 겨누었다.

—파지직!

그리고 푸른색의 번개 줄기가 날아가다가 보호막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이것 봐. 역시 이럴 줄 알았다니까."

"…이건 호신용이오."

"그건 모르겠고. 일단 맞은 다음에 이야기합시다."

"정말 야만적이군!"

일단 나는 무작정 달려들어 보호막과 함께 얼굴을 뭉개버리기보다는 마력을 배열하며 마법을 만들어갔다.

요즘 서아 언니가 나를 보는 시선이 마치 힘법사를 보는 것만 같아서 그랬다.

'가끔씩은 이렇게 고전적으로 싸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단순히 마력으로 이루어진 구체가 내 근처를 빙빙 돌아가며 날아오는 마법을 요격하길 기다렸다.

그리고 나는 녀석이 입을 달싹이며 주문을 외우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해야 전의를 잃게 만들 수 있을지 생각했다.

'아예 근처 땅을 전부 뒤집어 엎어? 그러면 뒤처리가 문제인데….'

전투 이후의 현장을 복구하거나 조작하기 위한 마법사들이 결사단에 있긴 하지만 내가 선호하는 전투 스타일이 속전속결인지라 한두 명만 남기고 모조리 퇴근했을 게 분명했다.

별 때문에 무너진 울타리라던가 커다란 폭풍 때문에 무너진 벽 정도야 그 정도 인원이면 충분하겠지만 더 이상의 파괴 행위는 그만둬야 했다.

'그럼 그곳으로 끌고 갈까? 거기라면 어떤 마법을 써도 괜찮을 테니까. 설마 신 님이랑 눈이 마주쳐서 미쳐버리는 일은 없겠지…?'

무한하게 뻗은 우주 같은 배경에 발을 디딜 수 있는 바닥.

내가 어릴 적에 단검을 가지고 놀다가 끌려갔던 공간이며, 이상한 괴물들을 소환하던 흑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해 갔던 곳이기도 하다.

신 님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기에 운이 좋다면 눈이 마주칠 수도 있지만 그건 문장을 가진 나에 한해서다.

다른 녀석들은 끌고 가 본 적도 없지만, 대충 미쳐 버릴 거라는 예상이 갔다.

저기 저 녀석도 경지는 잘 모르겠지만 비슷하겠지.

그렇게 깊은 고민을 하던 나에게 모래의 창이 여러 개 날아왔다.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저것밖에는 없는 걸까 생각하면서 나는 주변을 날아다니던 마력을 앞으로 쏘아냈다.

그러면서 동시에 배열을 변화시키며 순식간에 마법을 만들어냈다.

아무리 단단하게 뭉쳤다고 해도 결국 모래.

버틸 수 없는 충격을 받으면 흩어지기 마련이다.

주문을 외우던 그는 내가 만든 폭풍의 창에 그의 마법이 파훼된 것을 보고는 입을 쩍 벌렸다.

그러더니 마력을 움직이던 것도 멈추고는 천천히 양손을 높이 들었다.

"정말로 항복이오. 믿기지 않는다면 마법을 날려 봐도 괜찮소."

"흐음?"

내가 무언가 특별한 거라도 보여 준 건가 싶었지만, 별로 떠오르는 건 없었다.

'일단 확인이나 해 봐야겠지.'

나는 주변을 떠돌던 마력을 다시 그를 향해 날리면서 배열을 바꾸었다.

그렇게 완성된 대포알만한 얼음덩어리는 느릿하게 그의 복부를 강타했다.

"윽! 끄응…. 이제 안심하겠소?"

"뭐, 저항하지 않는 사람을 때리는 것도 싫으니까 그만할래."

그렇게 말하며 내 주변을 공전하던 마력을 회수하자 그는 안심하는 듯한 한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아직 내겐 할 일이 남아 있었다.

"휴우. 이제 난 어떻게 되는 것이오?"

"그건 나도 모르는데. 외국으로 추방된 뒤에 그쪽 결사단에서 알아서 하겠지."

"그렇구려."

그는 양팔을 내밀면서 나를 쳐다봤다.

"자, 어서 체포하시오."

"난 수갑 같은 건 없는데. 이거면 충분하려나?"

나는 마력의 실을 자아내 그의 손목을 옭아맸다.

무언가 허튼짓이라도 하려 한다면 이대로 잘라버려야지.

"그래서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웬만한 것은 모두 답하겠소."

"무슨 목적으로 온 거지?"

"으음,그건 의뢰라서 말하기 어려운데…."

"싫으면 머릿속을 읽어드리고."

"흑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소? 허어."

"그래서 대답은?"

"어쩔 수 없구려."

그는 투덜거리면서도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사실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사람 한 명을 사살하기 위함이오."

"사살?"

"최근에 지구 전체가 혼란스럽지 않소? 그 원흉이 바로 그 인물이오."

"그 새끼가 우리나라로 왔다고?"

"어떠한 연유인지는 모르겠다마는, 아무래도 혼란을 불러오기 위함이겠지. 한국도 최근 사건사고가 많아지지 않았소?"

확실히 그렇다.

애초에 전투부에서 나서도 될 일을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매일 같이 일어나는 사고를 막거나 괴물들을 처리하기 위해 일하느라 그런 거 아닌가.

"그게 어디 있는지는 모르고?"

"찾아보려 노력은 했으나…. 단서 하나만 가지고는 어려워서 많이 헤매고 있는 중이라오."

"단서? 그게 뭐지?"

"그는 운명, 정확히는 카르마를 바꿔 주며 돈을 받고 있소."

"카르마?"

"덕분에 세상의 흐름이 어그러지면서 혼란이 찾아왔지."

카르마, 업보라고도 부르는 그것은 사람이 일생 동안 쌓는 것이다.

봉사나 기부를 하면서 선업을 쌓은 이에게는 좋은 업보를, 범죄를 저지른 이에게는 보복과 같은 나쁜 업보를.

'그걸 뒤바꾼다는 건… 잠깐만. 뭔가 비슷한 일이 있던 거 같은데?'

이틀 전에 내 가게에 찾아왔던 떡집 할머니.

그 사람은 누군가에 의해 액운이 씌워졌다.

범인을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이렇게 우연히도 단서를 찾게 되다니.

이런 걸 하늘이 돕는다고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어떤 존재의 개입이라고 봐야 하는 걸까.'

나는 끈적하면서도 기분 더러운 시선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푸흐흐.

비웃는 듯한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지며 오한이 드는 것만 같았다.

"으으으. 뭔가 오싹하구려…."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눈가를 찌푸리고 있다 보니 어느새 별빛처럼 따스한 시선이 온몸을 감쌌다.

그제서야 나는 표정을 풀며 포승줄처럼 만들어진 마력의 실을 당겼다.

"그럼 이동합시다. 들을 건 다 들은 모양이니까."

"내 동료는 어디 있는지 알고 있소?"

"어. 아마 자고 있을 거야."

묶여져 있는 그를 이끌며 결계의 끝자락으로 향하니 온몸이 먼지 투성이인 사람이 보였다.

저쪽 너머에는 그가 굴렀던 흔적으로 램프나 등에 메고 있던 양탄자가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결계를 해제하면서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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