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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124화 (124/154)

〈 124화 〉 IF 외전 ­ 평범한 일상을 포기했다면

* * *

외국인 마법사들을 잡아 결사단에 신변을 넘긴 후, 집으로 돌아온 나는 금방 잠들었다.

그리고 눈을 뜨자 회색의 칙칙한 콘크리트 숲이 보였다.

이 상황을 금방 꿈이라고 자각한 나는 오랜만에 녹색이 보고 싶어서 배경을 바꾸려 손을 휘휘 흔들었다.

'뭐지? 지금 드림랜드에 들어온 건가?'

하지만 그곳에는 이런 건물들이 있을 리가 없는데 말이다.

의아해하며 일단 차량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도시를 걸어 다녔다.

몇 분 정도 걸어 다니며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나는 그제서야 내가 있는 장소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기… 내 가게가 있는 곳인데?"

건물의 외벽이 무너져 삐죽삐죽 철근이 드러나 있고, 창문들은 멀쩡한 게 하나도 보이지 않아서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인 건지 찾으며 돌아다니다 보니 멀리서 이상한 게 보였다.

검은 폭풍이 건물 하나를 휘감고는 그대로 분쇄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배고프다는 것처럼 옆으로 이동해 다른 것들도 탐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일단 저것부터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저것과 비슷한 크기의 토네이도를 만들어 서로 부딪치게 만들었다.

엄청나게 강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나를 공중에 띄웠지만, 옆에 있던 표지판을 붙잡아 날아가지 않을 수 있었다.

가끔씩 이쪽으로 오는 건물의 파편이나 잡동사니들을 족족 쳐 내며 어떻게 됐나 확인하려 눈을 돌렸을 때 기이한 걸 목격할 수 있었다.

약간 작아진 검은 폭풍이 점점 한곳으로 뭉치더니 사람과 비슷한 형상으로 변했다.

색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검은색에 발이 있을 자리에는 염소의 발굽이 대신하고 있었고, 뿔과 날개까지 달린 게 흔히 생각하는 악마의 모습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마법을 쓴 나를 쳐다보더니 순식간에 다가와서는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상상 이상의 속도에 놀라면서도 표지판의 기둥을 찢어내듯이 뽑아 그걸 막았다.

널찍한 철판에 주먹 자국이 남으며 멈추긴 했지만, 아직 반대쪽이 남아 있었다.

그걸 피해 뒤로 이동하면서 주머니 안에 별이 있을까 뒤적거렸지만 손가락에 걸리는 건 없었다.

나는 혀를 차면서도 녀석에게 효과적일 마법을 생각해 갔다.

'악마처럼 생겼으니까 불을 다루는 건 아닐까? 그럼 그대로 얼려 버려야 하나?'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주먹질 밖에 없는지 계속해서 덤벼오는 검은 악마를 아슬아슬하게 회피했다.

그러나 계속 이렇게 피하면서 체력을 낭비하기보단 아무런 마법이나 써 보기로 결정한 나는 술식을 짜올렸다.

그의 움직임을 예상해서 얼음 기둥을 만들어내자 녀석은 날개를 이용해 갑작스레 날아올랐다.

그렇게 공격을 피하나 싶었지만 아슬아슬하게 한쪽 종아리가 걸려서 얼어붙었다.

이대로 반으로 잘라 죽여 버리게 습관적으로 단검이 들어 있을 품속에다가 손을 넣었다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기에 주먹이라도 쥐었다.

그리고 머리를 부숴 버리기 위해 높이 뛰었는데, 녀석의 모습이 다시금 변했다.

머리가 아래로 쑤욱 파고들며 내 공격을 피한 그는 부정형의 검은 슬라임처럼 변신했다.

그러고는 황금색의 촉수가 튀어나오더니 날 후려쳤다.

"윽!"

양팔로 막아 내자 저릿한 충격이 전해지며 나는 어느 건물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충격으로 먼지가 일며 콘크리트 조각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 때문에 회색으로 변한 옷을 탁탁 털면서 나는 마력을 배열시켰다.

그리고 얼음 기둥 위에서 꾸물텅거리는 녀석에게 자그마한 불티를 날려 보냈다.

닿자마자 곧바로 불길에 휩싸인 녀석은 꿈틀거리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뭔가 고통스러워하는 듯한 모습에 충분한가 싶었지만, 확인 사살을 위해 마법 하나를 더 사용했다.

내 곁을 스쳐 지나가던 부드럽던 바람이 점점 격하게 변해가면서 한곳으로 모였다.

곧장 불타오르는 녀석을 휘감으며 높이 솟아오르는 폭풍에 불이 옮겨붙으며 마치 불기둥처럼 변했다.

그렇게 불이 언제 꺼지려나 생각하며 가만히 구경하고 있는데 안에서 녀석이 점점 덩치를 불리기 시작했다.

—퍼어엉!

그러더니 불기둥을 깨부수고는 거대한 괴물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다리가 셋에 머리가 거대한 촉수로 이루어져서는 거기에서 뻗어 나온 다발이 몸을 이루고 있었다.

혹시 몰라서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으로 녀석의 한쪽 다리를 잡아 으깨보려고 했지만, 워낙 단단해서 그런지 전혀 효과가 없었다.

"이런—"

차라리 넘어트려서 시간을 벌까 생각하고 팔을 당기려 했으나 녀석이 먼저 공격했다.

팔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이상한 촉수들로 날 강타한 것이다.

보호막을 뚫고 들어오는 충격에 많이 아팠던 나는 그대로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그러자 분명 푸른색의 밝았던 하늘이 어느새 어둑어둑해져서는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눈썹을 꿈틀거리며 이상 현상에 대해 고찰하려다가도 그냥 꿈이니까 넘기자고 혼잣말을 내뱉으며 저기 멀리서 다가오는 거인을 바라봤다.

나를 끝내기 위해 다가오던 녀석은 갑작스레 멈추더니 양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하늘이 무너졌다.

"아, 개꿈. 진짜."

가까이 다가오는 별빛이 가득한 밤하늘에 눈을 감았다 뜨니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옆에서 충전기에 연결된 채로 놓여져 있는 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하니 알람이 울리기 몇 분 전이었다.

나는 그냥 오늘은 쉴까 생각하면서 다시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렸지만, 금방 들려오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느새 최애에서 최악의 노래가 된 알람송을 끄며 바로 주방으로 가 아침 준비를 했다.

원래 같았더라면 걸렀겠지만, 어제 일을 마치고 시켜 먹고 남았던 피자가 땡겼기 때문이다.

식탁 위에 있는 박스를 열어 접시 위에다가 대충 두 개를 놓고 전자레인지에 넣어 타이머를 돌렸다.

시끄럽게 돌아가는 소리는 무시하고 최근 일어난 사고는 없을까 뉴스를 찾아보던 나는 눈에 띄는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거기에는 내가 사는 곳 근처의 공장 부지에서 몇몇 공장의 외벽이 무너지는 사고가 있다고 보도 되어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피식 웃으면서 어느새 뜨겁게 데워진 피자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렸다.

"응?"

그런데 내 눈에 신기한 게 보였다.

치즈가 부풀어 올라 터지면서 생긴 모양이 마치 꿈속에서 봤던 거인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쉬는 곳에서 왜 그딴 녀석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어제 싸움의 여파라고 생각하고 대충 넘겼다.

"설마 예지몽인가?"

그러고 보면 예전부터 어떤 일이 일어난 후 꿈에서 본 듯한 기시감이 든 적도 있었다.

"…에이, 너무 나갔다."

애초에 사람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건물이 파괴되는 일이 일어나겠는가.

꿈이 너무 인상적으로 남아서 그렇게 느끼는 것뿐이리라.

나는 피자를 모조리 해치운 다음 인터넷을 나와 홈 화면으로 돌아왔다가 메시지가 온 걸 볼 수 있었다.

서아 언니가 보낸 걸까 싶어서 확인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서 온 것이었다.

자기가 다인이라며 어떤 주소도 같이 보낸 문자를 보자 어제 전화번호를 줬던 것이 떠올랐다.

'어떤 회사인지 모르겠지만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했으니 한 번 만나 봐야겠다.'

일단 나는 대충 씻은 다음에 가게에 있을 신령을 데리러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반갑게 맞이하는 햇빛에 손으로 눈가를 가리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배차 시간이 짧아 금방 온 버스에는 출근 시간이라 그런지 양복을 입은 직장인이라던가 교복을 입은 학생이 가득히 들어차 있었다.

굳이 저렇게 불편하게 갈 바에는 걸어가는 게 낫겠다 싶어서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몇십 분 정도를 걸어 도착한 가게에는 신령이 부채를 부치며 앉아 있었다.

"어어, 왔느냐?"

"오늘은 가게 안 열거예요."

"으잉? 그럼 뭘 할 건데?"

"조사해야죠. 어제 왔던 사람 아시죠?"

"아, 그 처자 말하는구나. 영안을 가진."

"그 사람이 일하는 회사로 가보려구요."

그리 말하며 나는 그녀에게 왔던 문자를 다시 확인했다.

가깝지는 않지만 여기 근처이긴 했다.

나는 혹시 몰라 서아 언니에게 저번에 결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의 주소를 보내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러고는 느긋하게 일어나는 신령을 끌고 거리를 걸었다.

차량과 버스는 물론 사람들도 바쁘게 다니는 길 위에서 나만 여유로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여유로운 게 맞나?'

길 찾기 앱으로 금방 다인 씨가 다니는 회사에 도착한 나는 폰을 끄고 주머니에 넣다가 진동이 느껴져 다시 화면을 켰다.

그리고 온 문자에는 눈에 익은 주소가 적혀져 있었다.

"뭐지? 진짠가?"

나는 서아 언니와 다인 씨에게서 온 문자를 비교하며 다시 한번 읽어나갔다.

하지만 층수와 회사 이름만 적혀 있는 걸 제외하면 주소는 완전히 똑같았다.

일단 그녀를 만나기 위해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으음…. 뭔가 불길하구나."

"뭐가요."

"마치 꺼림칙한 존재가 근처에 존재하는 기분이 들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으잉?"

나는 발을 내딛기를 싫어하는 신령을 뒤로하고 엘리베이터를 나왔다.

그리고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문을 열자 나는 사람처럼 보이는 녀석을 마주할 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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