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위대한 존재가 되었다-125화 (125/154)

〈 125화 〉 IF 외전 ­ 평범한 일상을 포기했다면

* * *

회사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직 근무 시간이 아닌지 쉬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저기 소파에 앉아서 종이컵에 담긴 인스턴트 커피를 홀짝이는 익숙한 얼굴의 다인 씨와 다른 직원들도 잡담을 나누다가 갑작스레 들어온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을 관찰하자 역시나라고 해야 할지 마법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 뿐이었다.

어제 외국인 마법사에게 들었던 장본인이 만든 회사가 과연 이곳일까 추측하면서 사장이 어디 있는지 스윽 훑어봤다.

"아, 하윤 씨! 일찍 오셨네요?"

"어제 일 때문에 오늘은 쉴 생각이라서요."

"어제 하던 이야기, 마무리하려고요? 아직 근무까지는 좀 남았는데."

"그럼 잠시…."

나는 다인 씨와 바깥에서 이야기나 할 겸 들어왔던 문을 당기다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앉아서 쉬고 있던 모두가 그에게 인사하며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며 나는 눈을 찌푸렸다.

갈색 머리에 평범하게 생긴 얼굴, 하지만 가면을 쓴 것처럼 불쾌한 미소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분위기가 그에게서 맴돌았다.

"이, 이건…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어찌 외신이 이렇게 활개 치고 다닐 수 있는 것이지?!"

신령이 호들갑을 떠는 모습에 경계심을 높이며 천천히 마력을 방출해 위층과 아래층에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려다가 무언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미세한 그물처럼 촘촘하게 짜여진 마력이 벽 내부에 설치되어서는 이곳을 완전히 뒤덮고 있던 것이었다.

"저희 회사에서는 그러시면 안 됩니다."

"응, 싫어."

사람이 없었더라면 그에게 기습을 했을 텐데 제대로 감지하지 못해 안타깝게 느낀 나는 혀를 차면서 발을 굴렀다.

—쿠우웅!

그러자 마력의 파동이 나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며 결계를 찢어발겼고, 그와 동시에 다시 탐지가 가능해졌다.

'다행히도 주변엔 사람이 없네.'

이제 안심하고 싸울 수 있다고 판단한 나는 왼손으로는 마력의 실을 뿜어내 저기 앉아 있는 직원들을 이쪽으로 끌어당겼고, 오른손으로는 사장이란 녀석에게 별을 던졌다.

"우왓!"

"꺄아악!"

"이건 뭐야?! 실?"

그들은 갑작스레 공중으로 끌어당겨진 것에 비명을 질렀다.

그러면서 마시던 커피를 옷에다가 쏟는 경우도 있었지만, 폭발에 휘말리는 것보다는 나을 거다.

"이런. 지금은 마법을 못 쓰는데 말이죠."

녀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괴상하게 변한 양팔로 얼굴과 심장 쪽을 보호했다.

그리고—

"엄청난 빛이 쏟아질 테니 눈 감으세요!"

—퍼어엉!

폭발과 함께 건물이 진동했다.

그와 함께 피어오른 먼지가 섞인 검은 연기를 치워내자 시원하게 뻥 뚫린 벽이 보였다.

"이대로 죽어 버렸으면 좋으련만."

"아니. 녀석은 지금 길거리에 떨어졌구나."

하지만 그의 변한 팔이 얼마나 튼튼했던 건지 옷만 불타서 그을린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다행히도 폭발 소리에 대부분의 시민들은 대피한 것으로 보였지만, 여기저기에 숨어서 폰으로 영상을 찍고 있는 사람들도 몇몇 보였다.

"씨발 새끼들이. 왜 안 도망치고 저러는 거야."

"어허. 고운 말."

"저, 서아 씨?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일단 저 녀석이나 먼저 쓰러뜨리고 말할게요."

과연 저런 존재를 내가 이길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지만,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참으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사용할 마법을 미리 준비하며 뛰어내릴 위치를 확인하던 중, 녀석이 괴이하다못해 끔찍한 모습으로 변모했다.

마치 타이어처럼 검은 고무질의 피부에 다리가 있을 곳에는 여러 가닥의 촉수가 대신하고 있었다.

몸통과 머리에는 크고 작은 입이 여러 개가 나 있고, 안에서는 가시 같은 이빨이 촘촘하게 박혀 있거나 관절이 많은 팔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녀석은 마치 목이라도 푸는 것처럼 괴상한 목소리로 켁켁거리더니 순간 머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거대한 입이 열렸다.

———!

그리고 온갖 짐승의 단말마를 모은 듯한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으윽!"

고막이 찢어질 것만 같은 소음 공격에 양손으로 귀를 막은 나는 녀석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 모든 신경을 집중해 대비했다.

하지만 몇 초가 지나도 닫힌 입은 다시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녀석은 촉수로 기어 다니다가 불편했는지 입에서 튀어나온 기다란 팔로 일어섰다.

나는 주머니 안의 별의 개수를 헤아리며 얼마나 마법을 퍼부어야 녀석을 죽일 수 있을지 생각했다.

"끼에엑!"

"끄윽, 끄르륵…."

그런데 뒤쪽에서 광기에 차서 내는 짐승 같은 목소리와 함께 가래가 끓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 보니 다인 씨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마치 아귀처럼 서로 싸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눈에 핏발이 서서는 목을 조르고, 그걸 당하는 사람은 최대한 손톱으로 팔을 긁어내며 저항했다.

그러면서 피부가 벗겨지며 팔이 완전히 피투성이로 변했지만, 고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그저 죽이는 것에만 혈안이 된 것처럼 보였다.

바깥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운이 좋게 괴물처럼 변한 녀석의 모습을 보지 않은 녀석은 내 뒤의 사람들과 똑같이 변해서는 미쳐 버려서 히죽히죽 웃는 사람을 찾아서 죽이려들었다.

"아까 소음 공격 때문인가?"

녀석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여기 건물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려면 그것밖에는 의심 가는 게 없었다.

나는 일단 죽이려고 싸우는 이들의 뒷목을 쳐서 기절시켰다.

"응급 처치 같은 건 배워 본 적도 없는데. 쓸 만한 것 좀 알아요?"

그리고 심각하게 피를 흘리는 사람을 지혈하기 위해 신령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했지만, 그는 어디로 간 건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방금 공격을 버티지 못한 건가?'

아무리 주변을 둘러본다고 해도 눈에 띄는 검은 갓이나 펄럭거리던 흰색 한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컥, 커걱!"

하지만 바깥에서 들리는 누군가의 숨이 차는 소리에 나는 이어지던 생각을 끊었다.

그리고 대충 그가 입고 있던 정장으로 상처 부위를 세게 묶어둔 후 벽에 난 구멍으로 뛰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자 잠시 내장이 붕 뜨는 듯한 감각과 함께 중력이 온몸을 끌어당기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 같았더라면 스쳐 지나가는 바람을 만끽했겠지만, 지금은 양손으로 마력의 실을 뿜어내며 그걸 움직이는데 집중했다.

저기 눈에 혈관이 터져서 완전히 흰자가 완전히 빨갛게 변한 사람이 입에 거품을 물며 광견병에 걸린 것처럼 날뛰는 게 보였다.

그의 아래에는 목이 졸려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 사람이 깔려 있었다.

나는 올가미처럼 변한 마력을 던져 그의 목에 묶어 버린 후 힘껏 끌어당겼지만, 손이 무슨 목에 달라붙은 것처럼 떼어지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의 목을 졸라 뇌로 흐르던 혈류를 차단하자 금방 기절시킬 수 있었다.

"휴우."

다른 이성을 잃은 사람들을 마찬가지로 기절시키고 나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직 위험한 적이 하나 남아 있었다.

녀석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조금의 마력이라도 소중하기 때문에 기절시킨 사람들에게 묶어두었던 것들을 회수했다.

그리고 저기서 어기적거리며 나에게 기어 오는 괴물을 바라봤다.

생긴 것만 봤을 때는 역겹기만 하지 그다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또 소음 공격을 할지 몰랐다.

나는 일단 시험 삼아 별을 던지며 얼마나 피해를 입는지 확인하려 했다.

마력을 게걸스레 집어삼킨 마법진이 내뿜은 화염의 덩치가 점점 커지며 눈앞의 적을 불사르기 위해 다가갈 때, 그것의 입이 열렸다.

———!

그걸 보자마자 곧바로 귀를 막아서 끔찍한 소음은 피할 수 있었지만, 손이 없는 불꽃은 그럴 수 없었다.

엄청난 충격에 갈기갈기 찢어지듯이 흩어져 버린 별은 금방 식어서 사라지고 말았다.

'저렇게 강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하지만 저런 방식으로 공격하려면 중간에 빈틈이 있을 테니 두 개를 던지면 되려나?'

나는 주머니에서 별 두 개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면서 그리 생각했다.

그리고 켁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녀석의 입이 움찔거리기에 귀를 막았는데 예상치 못한 공격이 날아왔다.

"윽, 더러워!"

타르처럼 끈적거리는 점액질을 뱉은 것이었다.

그걸 피하자 녀석은 의외의 속도로 내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아래쪽에 위치한 촉수들로 구속하려 들었지만, 내가 그걸 모조리 피하자 아예 후려치려고 했다.

마치 채찍처럼 빠르게 휘둘러져오는 그것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던 중 녀석이 다시 점액질을 뱉었다.

이건 위험하겠다는 직감에 최대한 몸을 비틀며 어떻게든 회피할 수 있었지만 촉수는 아니었다.

"윽!"

온몸이 저릿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큰 충격에 대포알처럼 날아가며 벽에 처박힌 나는 잇따라 날아오는 점액질에 재빠르게 바닥을 굴렀다.

—치이익.

내가 있던 자리로 떨어진 점액질에 벽이 점점 검은색으로 썩어가는 것처럼 부식되더니 순식간에 녹아내리듯이 무너졌다.

그것에 소름 끼쳐할 틈도 없이 다시 날아오는 걸 보호막으로 막아 내며 나는 자리를 피했다.

방금 벽과 마찬가지로 금세 녹아버린 보호막을 본 나는 저건 맞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계속 원거리로 견제하면 곤란한데. 입도 많아가지고 어디로 발사될지도 모르겠고.'

지금은 내 주변을 둘러싼 보호막도 전혀 믿을 수 없었다.

'그럼 나도 원거리로 나서야겠네.'

나는 마력을 배열시키며 최대한 많은 마법들을 만들어냈다.

"자, 이것도 요격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들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녀석을 향해 날려 보냈다.

평소에 주먹질만 해서 그런지 미숙한 컨트롤로 인해 마법 몇 개는 점액질에 녹아버렸지만 괜찮다.

살아남은 것들이 더 많았으니까.

나는 녀석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다리의 역할을 하는 팔이나 입안에다가 마법을 퍼부었다.

괴로워하는 듯한 비명이 들리며 침이 줄줄 새는 것처럼 점액질이 녀석의 입에서 쏟아졌지만 공격을 막아 내기엔 이미 늦었다.

"응?"

그런데 녀석은 점액질로 자신을 완전히 감싸더니 고치처럼 변하고 말았다.

나는 시험 삼아 마법을 하나 날려봤지만 전혀 타격이 없었다.

이걸 어쩌나 고민하기도 전에 갈리진 그것에 안에서 더욱 괴상하게 변한 녀석이 튀어나왔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