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 IF 외전 평범한 일상을 포기했다면
* * *
튀어나온 녀석의 모습은 마치 나비처럼 생겼다.
반으로 갈라진 고치를 등에 있는 입에서 마구잡이로 튀어나온 팔들로 잡은 모습이 마치 날개처럼 보였다.
"무슨 게임도 아니고, 2페이즈냐?"
"끼, 끼아■■■■■!"
내가 그렇게 말하자 머리에 달린 입에서 끔찍한 비명과 함께 더듬이처럼 한 쌍의 팔이 튀어나왔다.
아름다운 백옥처럼 매끄럽고 새하얀 팔의 끝에는 지구상의 어떤 칼날보다도 날카로워 보이는 손톱이 달려 있었다.
'튀어나왔던 모든 팔들은 저 더듬이를 제외하면 날개를 붙잡는데 쓰이는 모양이네. 하지만 저 촉수가 더 문제야.'
생긴 건 흐느적거리는 게 많이 약해 보였지만, 다리 부분에 있는 촉수는 사람 한 명은 간단히 으깨버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입 밖으로 삐죽빼죽 솟아오른 가시 같은 이빨들도 찔리면 많이 위험해 보였다.
저것이 날개를 펄럭이자 아직 제대로 굳지 않은 점액질이 주변으로 튀면서 닿은 모든 물질들을 부식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녀석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뭐?!"
내가 그걸 보고 주변에 보호막을 여러 겹을 설치해 공격에 대비하자 옆에서 나타난 녀석이 몸통 박치기를 했다.
굳어 있어도 그 특성은 사라지지 않는 것인지 검은 날개에 닿는 순간 족족 부식시켜 녹여내면서 빠르게 다가왔다.
그런 모습이 기겁을 하며 멀리 떨어지자 다시 녀석이 날개를 펄럭이더니 모습을 감췄다.
'뭐지? 도대체 무슨 능력인 거지?'
이대로 상황이 흘러가면 위험하다.
상대는 보호막도 물에 젖은 종잇장처럼 만들어 찢어발기는데다가 속력도 빨랐다.
'일단 다시 한 번 오기를 기다려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주먹을 꽉 쥐었을 때, 옆에서 또 녀석이 몸통 박치기를 시전했다.
한쪽 날개로 자신의 몸통을 가리며 날아오는 모습은 내게 회피를 강요했다.
이번엔 보호막을 사용하지 않은 만큼 녀석의 속력도 줄어들지 않아서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다.
촉수로 공격받을까 봐 팔이 잔뜩 나온 등 쪽으로 피한 나는 날개라도 떨어뜨리려 주먹을 휘둘렀지만, 입에서 튀어나온 손으로 인해 붙잡혀서 막히고 말았다.
그리고 녀석은 날아오던 가속력으로 나를 공중을 향해 던져 버렸다.
이후 다시 날개짓을 하더니 사라지고 말았다.
그걸 보자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어디서 나타날지 계속해서 살펴봤다.
'또 사라졌어! 저 날개짓이 능력의 트리거인 모양인데, 어디서 오는지가 문제야.'
중력이 날 붙잡고 아래로 끌어당기는 것에 순순히 따르며 만일에 대비해 마법 하나를 준비했다.
눈은 계속해서 사방을 경계하며 머릿속으로는 계산을 해대느라 점점 피곤해지는 와중 아래에서 녀석이 나타났다.
아무런 날개짓도 하지 않고 위에서 누군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미사일처럼 날아오던 녀석을 쳐다봤다.
더듬이 같은 팔에 있는 손톱을 세우고, 다리처럼 달린 촉수를 금방이라도 휘두를 준비를 하는 놈에게 나는 중지를 들었다.
"이번엔 내가 공격할 차례야."
그리고 난 바로 아래에 순간이동했다.
녀석은 내가 사라지자 곧바로 날개를 움직이려고 했지만, 내가 만든 보이지 않는 손들이 날개를 지탱하는 팔을 붙잡아서 멈춰 세웠다.
'칫, 역시 단단하네. 부러뜨리기보다는 잡는 데에 집중해야겠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점액질을 계속해서 내뱉어보지만, 그런 뻔한 공격에는 당할 내가 아니었다.
주머니에 있는 별들을 이전처럼 하나로 뭉친 다음에 다시 한 번 좌표를 계산했다.
———!
그리고 녀석이 괴성을 질러 날개를 묶고 있던 손들을 모조리 파괴했을 때, 나는 녀석의 등 뒤로 순간이동했다.
보이는 것은 커다란 입 하나와 자잘한 것들 여러 개에서 팔이 튀어나와 굳은 점액질을 꽈악 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전에 내게 돌진했을 때처럼 다른 손이 튀어나와 저항하려 했지만, 나는 틈을 찾아서 별을 던졌다.
척추를 따라 일자로 쭈욱 나 있는 커다란 입에 들어가는 걸 본 나는 곧장 아래로 떨어졌다.
검은색 투성이의 녀석에게 붉은색이 추가되는 걸 보고 미소 지으며 나는 사뿐히 착지했다.
귀를 찌르던 괴성과 비교될 정도로 시끄러운 폭음이 공기를 흔들며 세상이 진동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쿵! 쿠웅!
그리고 폭발로 인해 으깨져서 잘려 나간 팔과 연결된 한 쌍의 날개가 떨어졌다.
빠르게 바닥을 부식시키며 아래로 꺼지던 그건 서서히 사라지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진 녀석의 살점들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후우, 해치웠나?"
마법의 단어를 입에 담아도 살아나지 않는 걸 확인한 후, 나는 근처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한쪽이 아니라 여러 방향에서 울려 퍼지며 공명하는 소리는 골목 사이사이를 타고 흘러다녔다.
"…뭐지? 폭발 사고가 일어나서 이쪽으로 오는 게 아닌가?"
하지만 사이렌은 점점 가까워지지 않고 한 장소에 멈추고는 계속해서 반복하고만 있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눈을 감고 청각에 집중하자 짐승처럼 울부짖는 사람의 괴성이 들렸다.
'아, 설마?'
나는 지금 건물 안에 기절해 있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싸움에 미쳐 버린 것처럼 서로를 죽일 듯이 목을 조르고, 팔을 긁어대던 모습을.
녀석이 지르던 비명 소리는 꽤나 컸으니 저쪽까지 닿는 것도 당연하다.
그나마 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해서 그걸 막으러 온 거겠지.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나?'
먼저 일어난 건 폭발 사고일 텐데 어째서 이곳으로 온 경찰차는 하나도 없는 걸까.
게다가 저쪽 너머에서는 치고 박는 소리밖에는 사람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곳에서 클리셰처럼 나오는 지원을 부르는 무전이라던가.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이성이 멀쩡한 사람의 절규는커녕 아수라장처럼 무언가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아무래도 저쪽을 빨리 진압하러 가야겠다 싶어서 준비하는 도중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윽!"
바로 몸을 틀어 옆으로 피하자 검은 가시가 옆구리 바로 옆을 찔렀다.
그건 아쉬워하는 기색 없이 천천히 되돌아가더니 구체로 변했다.
바닥을 보니 꾸물거리던 조직들이 기어가면서 하나로 뭉쳐지고 있었다.
점액질의 날개로 인해 녹아내린 구멍 안에서 튀어나온 팔들까지 완전히 합쳐지자 녀석은 점점 형태를 바꿔갔다.
작았던 구체의 크기에 맞지 않게 건물보다 더욱 커져가는 녀석은 꿈에서 봤던 머리 대신 촉수가 달린 거인으로 변했다.
"선 넘네 진짜."
—고오오!
녀석의 신체 전체가 진동하며 분노했다는 걸 알리고 있었다.
'꿈에서는 너무 튼튼해서 으깨지지도 않았지. 현실도 마찬가지이려나?'
나는 이쪽으로 휘둘러져 오는 촉수를 높이 뛰어 피한 다음, 건물 외벽에 있는 창문의 틈을 이용해 건물을 올라갔다.
그걸 본 녀석이 아예 내가 서 있는 곳을 파괴할 작정으로 양팔을 휘두르는 게 보였다.
나는 발판이 사라지기 전에 다른 건물의 옥상으로 회피하려는데, 녀석의 머리 부분에 있는 촉수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덩치가 너무 커서 그런지 옥상 바닥을 완전히 갈아버리면서 콘크리트 파편도 많이 튀었다.
보호막 덕분에 상처는 없었지만, 이제는 뒤쪽으로 밖에 도망칠 길이 없었다.
'너무 기분이 더러운데. 마치 몰이사냥 당하는 느낌이야.'
하지만 저 촉수 위로 뛰어서 넘어간다는 선택지도 많이 위험했다.
덩치와는 다르게 의외로 섬세해서 세밀하게 움직일 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아, 그 방법이 있었지.'
나는 뒤쪽으로 이동하면서 좌표를 계산했다.
그리고 갑작스레 시야가 변하면서 뇌가 혼란스럽다며 속이 울렁거렸지만 참아냈다.
"이럴 줄은 몰랐지? 어떠, 냐악!"
녀석을 비웃어 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가 갑자기 건물이 무너지는 충격에 혀를 씹었다.
무의식적으로 마력을 돌려 튼튼하게 만들어가지고 그다지 아프지는 않았지만, 비명을 질렀다는 게 많이 부끄러웠다.
특히나 이걸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을 신 님의 시선이 더욱 거세게 느껴졌다.
덕분에 내 얼굴은 거울을 보지 않아도 붉어졌다는 걸 예측할 수 있었다.
"후우우, 이게 대체 뭐 하는 거야."
부끄러움에 한쪽 손으로는 얼굴을 가리며 반대쪽 손으로는 열을 식히기 위해 부채질을 했다.
밖의 촉수 거인이 나를 찾기 위해 건물 잔해를 마구잡이로 파헤쳤지만, 우연의 일치인지 이쪽으로는 아무런 공격도 떨어지지 않았다.
어느 때를 기점으로 쿵쿵거리는 소리가 잠잠해지더니 먼지가 걷힐 즈음에 구두 소리가 들렸다.
'방금의 공격은 길을 닦기 위해서였나.'
또각거리며 존재감을 발산하는 녀석의 그림자는 방금 봤던 사장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나보다 키가 작고 하늘하늘거리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은 장발에 검은 눈동자, 거기에다가 검은 드레스에 구두까지.
검은색 일색인 그녀의 모습에 눈을 찌푸렸다.
'취향이 어떻게 생겨 먹은 거야.'
아무튼 며칠 전부터 나를 귀찮게 한 장본인을 만났으니 이야기하기 위해 얼굴을 마주쳤다.
그러자 보이는 어둠보다도 깊어 보이는 눈동자.
의식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몸이 나른해졌지만, 심장의 문장이 정신 차리라며 욱신거렸다.
"푸흐흐. 역시 소용없는 모양이네."
"거참.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어머. 어차피 '이번'만 고생하는 거잖니? 다음에는 평범하게 살 생각이 아니었나?"
"…무슨 소리인지."
저게 루프의 원인인 것일까.
어떤 마법을 써도 녀석에게는 전혀 닿지 않을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화풀이라도 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죽을 거 같았다.
"주머니에 있는 그건 던지지 말아 줄래? 난 네가 생각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거든."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데."
"그럼—"
"음?"
꿈에서 본 것처럼 어느새 밤이 찾아왔다.
아니, 그게 아니다.
"푸흐흐. 아무래도 날 혼내러 온 모양이네."
"신 님이랑 아는 사이야…?"
"글쎄?"
밤하늘이 점점 내려오며 무언가 재촉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난 아무래도 가야겠네. 다음에는 더 멋진 활약, 기대할게?"
"야, 야! 하, 참나."
그녀는 뒷걸음질 치며 그림자가 진 곳 아래로 들어가더니 사라졌다.
—푸흐흐.
바람 빠지는 듯한 비웃음 소리와 함께.
머리를 긁으며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고민하는 내 귀에는 사이렌을 제외한 어떠한 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신 님이 직접 찾아왔으니까 그럴 만도 하지.'
그렇게 고민하던 와중 갑자기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내 몸과 영혼이 분리된 듯한 느낌과 함께 잠시 후 손에 들린 단검과 작아진 손이 보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