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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128화 (128/154)

〈 128화 〉 옛날 옛적에

* * *

나는 사육장을 열어 기어 다니는 뱀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약간 서늘하면서도 비늘의 매끈한 감촉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뱀은 혀를 날름거리면서 먹이인지 확인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금방 내 손인 걸 알아차리고는 가만히 있었다.

"이렇게 보면 많이 똑똑해 보이는데."

"난 파충류는 별로."

"그래?"

이렇게 귀여운데 왜 그럴까.

얘의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면 마치—

"…헛!"

"왜 그래?"

"쓰읍, 기분 탓인가. 뭔가 잠에 취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

"어제 실험하느라 늦게 자서 그런 거 아니야?"

"내가 밤샘을 몇 년이나 했는데 그러겠어?

"어."

서현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무실 구석에 있는 냉장고에서 에너지 드링크를 가져와 내 앞에다가 내려놓았다.

피곤하면 마시라는 뜻이겠지.

아까는 그저 현기증 같은 것이니 나는 그걸 옆에다가 밀어뒀다.

그리고 사육장을 닫고는 나갈 준비를 했다.

옷걸이에 걸린 코트처럼 수선한 로브를 위에 걸치고 저기 있는 캣타워로 다가 갔다.

"으음…. 근데 어떻게 불러야 하지?"

"방법 몰라?"

"내가 먼저 부르는 게 아니고,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알아서 찾아오니까 당연하지."

"그럼 일단 느낌 가는 데로 해 봐."

나는 서현이의 조언을 듣고 뒹굴거리는 고양이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갸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눈웃음을 짓는 모습에 순간 표정이 녹아내렸다.

"우헤헤."

"뭐 해."

"앗! 이 무슨 엄청난 마력!"

뒤에서 들려오는 딴지에 금방 정신 차린 나는 눈을 감고는 심장에 새겨진 문장에 집중했다.

그래도 뭔가 특별한 느낌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말랑거리는 촉감만이 손에서 느껴질 뿐이었다.

"모르겠다. 일단 하윤이한테 같이 가냐고 물어볼 겸으로 해서 전화나 해 볼까?"

"지금 시간이면 수업 시간 아닐까? 오늘은 평일이야."

"젠장."

연구실에만 매일 틀어박혀 있더니 시간 개념이 이상해진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도움을 받지는 못 하겠지만, 나중에 와달라고 문자라도 보내야겠다.

발신기만 가지고 가면 결사단에 시시각각 위치가 기록되니까 알아서 찾아오거나 여기서 데려다주겠지.

나는 폰을 꺼내 간단히 문자를 보낸 후, 다시 한 번 시도하려고 했다.

—턱.

말랑하다 못해 몰캉한 육구가 내 이마에 닿기 전까지는.

고양이의 순수했던 눈빛이 이상한 사람을 보는 것처럼 바뀐 게 내가 알고 있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지금 뭐 하는 거냥."

"어디 좀 갈 건데, 보디가드가 필요해서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눈을 가늘게 뜨며 쳐다보는 게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고 묻는 것만 같았다.

"재미없으면 혼날 줄 알 거라."

"네에?!"

"저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다 서아가 생각한 거예요."

"서현이, 너마저!"

마치 비극의 주인공인 것처럼 팔을 뻗으며 말했지만 별 반응은 없었다.

그저 빨리 가자고 재촉하듯이 꼬리로 내 뒤통수를 이리저리 쳐 대는 것만 느껴졌다.

"에휴, 알았어요."

나는 그가 어깨 위로 올라온 걸 확인하고는 책상 위의 사육장을 들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많이 불편해 보였는지 서현이가 대신 들어줬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며 발신기를 챙긴 후 밖으로 나왔다.

인사하던 애들이 어깨 위의 고양이를 보고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일도 있었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온 나는 운전석에 앉은 후 요즘은 잘 안 쓰이는 전국지도를 꺼냈다.

"오, 뭔가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네."

"난 어릴 때 밖에는 본 기억이 없어."

"아무튼 지금 뱀은 어딜 보고 있어?"

"어디 보자…. 동쪽? 아니, 동남쪽인 모양인데."

"그럼 강원도인가? 일단 지도에 표시나 해야겠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볼펜으로 현재 위치에서 오른쪽 아래로 선을 쭉 그렸다.

그리고 대충 목적지를 정한 다음 네비게이션에다가 입력했다.

나는 안내에 따라 건물 밖으로 나와 도로 위를 달렸고, 몇 시간에 걸쳐 강원도로 향했다.

보조석에 앉았던 서현이는 차가 이동할 때마다 고개를 움직이는 뱀의 움직임을 관찰하다가도 결국 귀찮아졌는지 라디오를 틀었다.

진행자가 사연을 말하고, 퀴즈도 내고, 가끔씩은 노래도 틀어 주는 걸 들으면서 지루함을 어떻게 떨쳐 낼 수 있었다.

그렇게 점점 도시에서 멀어지며 시야에 들어오는 게 회색 건물과 번쩍이는 간판보다 초록색 산과 초목들이 많아졌을 때, 네비게이션이 갑작스레 이상해졌다.

전파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 것인지 화면이 치직거리며 고음의 이상한 소리를 냈다.

"이게 왜 이러지?"

"회로가 망가졌나? 일단 좀 쳐볼게."

사람과 기계의 공통점인 때려야 고쳐진다는 점을 이용해 서현이가 네비게이션을 툭툭 치자 화면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경로가 바뀌고 길을 안내하는 색상이 노란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한 것만 뺀다면.

무슨 흔하디흔한 무서운 이야기에 나오는 상황을 우리가 겪자 먼저 든 생각은 공포심보다는 황당함이었다.

간이 얼마나 부어서 몸 밖으로 나왔길래 마법사에게 이런 짓을 벌이는 걸까.

자칭 평범한 여고생, 하윤이에게 들은 바로는 아무리 귀신이라고 해도 죽일 수 있다고 했다.

물론 그녀의 기준에서 말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간단하다는 것처럼 말하는 걸 보면 나라도 가능하겠지.

뒤에 업보니 뭐니 복잡한 이야기가 더 있다고 했지만, 아무튼 물리칠 수 있다는 점이 공포감을 줄여줬다.

곰이 앞에 나타났는데 내가 총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고 비유해야 할까.

"이런 건 어떻게 추적할 방법 없어요?"

"있지. 여기 나온 대로 가면 된다."

"목적지에 낭떠러지가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런 소리 하지 마."

서현이는 아직 내성이 부족했는지 안색이 별로 안 좋아졌다.

"이걸 따라가면 원래 목적과는 다르게 되는데."

"목적이 무엇이길래?"

"요 뱀이 맨날 어디를 쳐다보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사육장에 들어 있는 뱀을 보자 자고 있는 것처럼 몸을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뭐… 이런 장난을 칠 정도면 간단하게 해결하겠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네가 알아서 해라냥."

도움을 바라고 슬쩍 옆을 봤지만 그다지 의욕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에휴, 알았어. 정말로 내가 알아서 해야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길을 가자 어느 터널이 보였다.

옆에 붉은색의 표지판이 보이긴 했지만 오랜 세월에 칠이 벗겨져서 뭐라고 적혀 있는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째선지 느껴지는 불길함에 주머니에 있는 발신기를 꽉 쥐며 점차 브레이크를 밟아갔다.

옆에 있던 누군가가 방해하기 전까지는.

"어, 야! 뭐 하는 거야?!"

"이게 재밌을 거 같구나."

그건 바로 라플라스의 악마, 아니, 라니아였다.

보이지 않는 힘이 내 발목을 잡더니 브레이크를 밟는 걸 막더니 세게 엑셀을 눌렀다.

"으아아!"

"꺄아악!"

나는 갑작스레 느껴지는 속도감에 핸들을 잠시 삐끗했고, 덕분에 차량은 벽을 향해 질주했다.

그걸 본 서현이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꼭 감았다.

여기서 이렇게 죽는 걸까 주마등이 눈앞을 스치는 것처럼 보이더니 핸들이 저절로 움직였다.

그리고 내가 정신을 차렸을 무렵에는 터널 밖에 나와 있었다.

아직까지도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옆에 앉아 있을 그에게 화를 내려 고개를 돌렸지만 기절한 서현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의아함에 문을 열고 나와 주변을 둘러보자 뭔가 이상했다.

터널을 나왔으니 도로가 깔려 있어야 정상일 텐데, 내가 지금 밟고 있는 바닥은 흙바닥에 주변에는 나무 투성이었다.

게다가 사람이 다니지도 않는 것인지 자연스레 생기는 산길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오, 금방 깨어났구나."

"제가 얼마나 식겁했는지 알아요?"

"죽지 않았으면 되는 거 아니냐."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뒤쪽을 봤다.

거기에 무언가 있을까 싶어 나도 그를 따라서 고개를 돌리자 이해할 수 없는 게 보였다.

우리가 통과했을 터널의 넓이 만큼의 구멍이 바위로 꽉 메꿔져 있던 것이었다.

나는 가장 의심되는 용의자를 바라봤지만 그는 전혀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자, 그럼 빨리 서현이나 깨우고 저쪽으로 가 보자꾸나. 재밌는 걸 볼 수 있을 거다."

"너가 재밌는 거라고 하니까 너무 불안한데."

그러면서도 나는 서현이를 깨우려고 보조석 쪽 문으로 다가 갔다.

그걸 열고 어깨를 흔들며 일어나라고 말하던 와중 그녀가 안고 있던 사육장이 보였다.

그 안에는 활기차게 움직이며 무언가 기뻐하듯이 혀를 날름거리는 뱀이 있었다.

"어휴, 나는 이렇게 심란한데 말이지. 너는 산에 오니까 좋니?"

이렇게 말하자 녀석은 내 말에 화답하듯이 머리로 사육장의 뚜껑에 힘껏 부딪쳤다.

덩치가 작으니 아무런 일도 없을 거라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뚜껑은 간단하게 위로 날아갔다.

상상도 못한 괴력에 벙 찐 나는 뱀이 반쯤 탈출했을 때 정신을 차렸다.

"…헉! 이럴 때가 아니지."

급하게 녀석의 모가지를 잡아 사육장 안으로 쑤셔 넣은 다음에 아래로 떨어진 뚜껑으로 덮었다.

하지만 방금처럼 탈출할지도 모르니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여기에다가 쓸 주문을 떠올리며 고민하는 와중에 손에 충격이 느껴졌다.

뱀이 계속해서 머리로 뚜껑을 두들겨서 그런 것이었다.

저러다가 머리가 깨져서 죽지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녀석은 그저 기계처럼 그 행동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나는 일단 실험에서 자주 쓰던 고정 주문으로 사육장이 열리지 않도록 만든 다음에 녀석의 움직임도 고정시켰다.

그제서야 조용해진 걸 느낀 나는 다시 서현이를 깨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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