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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129화 (129/154)

〈 129화 〉 옛날 옛적에

* * *

서현이를 깨운 후 사육장을 들고 저기 멀리 그늘진 곳에서도 눈에 띄는 검은 고양이를 따라갔다.

바닥에 튀어나와 있는 돌부리나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다행히도 뒤에서 잡아 준 덕분에 어디 하나 다치지는 않았다.

얼굴을 긁으려는 날카로운 나뭇가지를 마법으로 잘라 내면서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어느 절벽에 도달했다.

사방이 산으로 틀어막혀져 있고 중간에 있는 평평한 땅에 세워져 있는 마을이 보였다.

무슨 몇백 년 전으로 돌아온 것처럼 커다란 기와집과 짚으로 지붕을 만든 초가집들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온 시냇물을 끌어다가 만든 논에 자라난 초록빛의 벼가 바람이 흐르는 것에 따라 살랑거리는 것이 현실이라는 걸 일깨우는 것만 같았다.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가?"

"서아 너는 평범한 꿈은 못 꾸지 않느냐."

"뭐, 그렇죠."

"그럼 난가?"

서현이는 자기 양손을 움직여 뺨이 붉어질 정도로 세게 쳤는데, 많이 아팠는지 얼굴을 감싸고 웅크렸다.

"으으, 이렇게까지 아픈 걸 보면 꿈은 아닌 모양인데."

"그럼 방금 네비게이션에 장난질을 한 놈이 여기 있다는 건가?"

"하지만 이 정도면 상황이 많이 심상치 않은 모양인데."

마법사가 된 지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았지만, 이렇게 마을 하나를 만들어낸다는 게 얼마나 힘들지는 예상이 갔다.

나는 방금 있었던 뱀의 난동과 이 마을의 정체에 대해 고민하다가 하윤이가 이야기했던 걸 떠올렸다.

"어쩌면 여기가 이 뱀이 바라보고 있던 곳일지도 모르겠어."

"엥?"

"저번에 하윤이가 쓰러뜨렸던 뱀 있잖아. 그걸 회수한 곳이 강원도였거든."

"하지만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 옛날로 떨어진 걸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일단 저기 마을로 내려가 봐야지."

"이런 옷을 입고?"

"으음…. 그것도 그러네."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는 모르겠지만 외부인이 서양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면 경계할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해야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와중에 옆에서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이 느껴졌다.

"왜 그렇게 쳐다봐요."

"아니, 그리 겉모습이 신경 쓰인다면 마법을 쓰면 되는 거 아니냐."

"아."

"그런 방법이 있구나!"

손바닥을 탁 내리치며 감탄을 하던 와중에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모습에 손을 뻗어 볼을 잡아당기려 했지만 당연하게도 실패했다.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실망하지 않은 나는 어떤 마법을 써야 할지 고민했다.

투명화 마법을 쓴다면 마을에 잠입하는 건 간단한 일이지만,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 어려워질 거다.

그렇다고 변장 마법을 쓰자니 외형만 바뀌고 옷은 바뀌지 않는 게 문제였다.

물론 옷 정도야 만들 수 있지만 현대 의복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전통 의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니 어떻게 만들려고 해도 이상한 것들만 나올 거다.

"역시 투명화가 답인가?"

"가 보려고?"

"이 일의 원흉이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으니까. 그리고—"

"잠깐. 뒤에 무언가 있구나."

"네? 뭐가…?!"

우리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그는 뒤쪽을 쳐다보더니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절벽 아래로 도약하더니 뭔가 웃음을 지은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 뒤에 뭐가 있길래 저러는 걸까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자 여러 쌍의 빛나는 무언가가 있었다.

지금 사육장에 들어 있는 뱀과 똑같이 세로로 갈라진 눈동자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던 녀석들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빤히 보더니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다.

많이 위험하겠다 싶어서 옆에 있는 서현이의 옷소매를 당겼는데 어떤 반응도 오지 않았다.

왜 이러나 싶어서 옆을 봤더니 마치 메두사와 마주친 사람처럼 굳어서는 덜덜 떨고 있어서 그랬다.

도대체 뭐가 무서워서 그런가 싶기도 했지만, 내 심장에 새겨진 문장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수풀 속의 녀석들의 눈빛에 정신적인 영향을 주는 힘이 담겨 있는 모양이지만 내게는 전혀 효과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렇게 가만히 있기만 하면 녀석들의 뱃속을 구경하게 될 뿐이다.

나는 점점 다가오는 어둠과 눈빛들을 바라보다가 서현이의 팔을 당겨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아래에 있는 공기를 모두 고정시킨다면…!'

마법을 쓰자 마력이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것과 함께 아래쪽에서 저항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을 만큼 속력이 줄어들진 않았다.

지금은 그저 코트에 새겨진 방호 마법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서현이를 끌어서 내 위쪽으로 옮기고는 최대한 몸을 웅크려 떨어지는 부위가 등 쪽으로 한정되도록 만들었다.

뒤이어 따라올 충격에 대비하여 눈을 감고 몇 초가 지나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떨어지는 속력이 감소하더니 눈을 떴을 때는 완전히 멈춰 있었다.

"어라. 이게, 꺄악!"

무슨 상황인지 살피기 위해 주변을 살피다가 갑자기 느껴진 부유감에 비명을 질렀지만, 낙엽처럼 사뿐히 바닥에 떨어져서 다치는 일은 없었다.

그저 저기서 내가 비명 지르는 걸 보고 웃고 있는 고양이 녀석이 짜증 날 뿐.

어차피 응징도 못하고, 하마터면 어디 다칠 뻔했는데 도와주기도 했으니 화풀이를 위해 손을 뻗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아직까지도 굳어 있는 서현이가 더 걱정되었다.

나는 내 위에 엎어져 있는 그녀를 바닥에 눕힌 후 어깨를 두드려봤다.

"야. 야! 괜찮아?"

하지만 긴장해서 뻣뻣해진 근육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점점 호흡이 가빠지는 게 보였다.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다가 한 주문이 떠올랐다.

서현이가 이러는 이유는 공포감이든 뭐든 정신적인 이유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정신 안정화 주문을 사용하면 된다.

나는 서현이의 이마 위에 손바닥을 올린 후 익숙한 주문을 외웠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황에 빠졌던 눈동자가 점차 안정적으로 되돌아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괜찮냐?"

"아니. 무슨 공포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부분을 계속해서 보는 기분이었어."

"그래? 그건 좀 싫겠네."

"넌 어떻게 멀쩡하냐?"

"뭐, 스승님을 잘 둔 덕분이겠지."

"그렇게 말해도 뭔가 떨어지는 건 없단다."

순식간에 머리 위로 올라온 그가 그렇게 말했지만, 서현이의 눈동자에 비친 모습을 보면 미소 짓는 게 보였다.

'말은 그렇게 해도 츤데레라니까.'

나는 머리를 누르는 육구의 감촉을 만끽하면서 웃었다.

그걸 본 그가 냥냥펀치를 하기 전까지 말이다.

"말로 하지 그랬어요?"

"퍽이나 그러겠구나."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맞은 부위가 부어오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아픈 머리를 어루만지며 슬쩍 복슬복슬한 그의 앞발로 손을 옮겼다.

그러자 콧방귀를 뀌면서도 다시 때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정도까지는 허락하는 모양이다.

'역시 조종하지 않을 때가 더 귀엽네. 지금도 츤데레 같은 맛은 있지만.'

나는 사건을 마무리하면 마음껏 만질 수 있다고 다짐하면서 마음속으로 열의를 불태웠다.

그렇게 몇십 분을 걷다 보니 마을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앞에는 장승이 세워져 있던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머리 부분이 뜯어지다 싶이 떨어져서는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글씨가 써진 부분은 피가 뿌려져서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을을 지켜야 할 수호신이 이렇게까지 망가졌으니 내부의 모습 또한 심상치 않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이제 투명화 쓴다?"

"일단 손 좀 잡자."

"그래."

전투 쪽으로 특화되거나 뛰어난 마법사라면 상대방이 품은 마력을 읽어서 어디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겠지만, 그 정도로 훈련을 받지 않았던 나는 서로 손을 잡기로 했다.

왼손에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걸 확인하면서 주문을 외웠다.

순식간에 온몸이 투명해지는 걸 보면서 나는 눈동자를 올려 그에게도 적용되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도 검은 털 뭉치는 보이지 않는 게 제대로 된 모양이다.

"그럼 가 볼까? 놓치면 안 된다?"

"너야말로."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민속촌에서나 볼 법한 것들을 구경하면서 나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절벽에서 봤을 때부터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뭔가… 기계 같은 느낌인데.'

논에서 자라는 잡초들을 뽑던 저들은 가끔씩 일어나면서 굳었던 허리를 풀어 준다던가 하지 않았다.

물론 오랫동안 해서 고통에 익숙해진 걸지도 모르겠지만, 너무 인간미가 없는 듯했다.

의심의 눈초리를 계속 보내며 가던 와중에 서현이가 손을 꼭 잡으며 신호를 보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앞을 바라봤더니 이쪽으로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얼굴이 없는 달걀귀신 같은 사람이.

누렇게 변한 옷을 입고 상투를 튼 모습은 여타 다른 이들과 차이점이 없었지만, 필수적으로 자리 잡아야 할 눈, 코, 입이 없었다.

저걸 보자 내가 느꼈던 위화감을 알아차리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다시 논에서 잡초를 뽑고 있는 사람을 보자 이쪽으로는 등 밖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귀가 없다는 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마을 전체가 달걀귀신 천지라는 건가? 그럼 뱀이 난리를 친 이유는 뭐지? 게다가 숲에서 나왔던 그것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난 의문은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지만, 눈앞에 나타난 사람 덕분에 그건 잠시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다른 것들과는 다른 의복, 정장을 입은 남성이 이지를 잃은 듯한 눈빛을 하고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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