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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130화 (130/154)

〈 130화 〉 옛날 옛적에

* * *

여느 직장인에게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정장을 입은 그는 매우 이상해 보였다.

피부는 창백하다 못해 혈관이 보일 정도였고, 목 아래쪽으로 옷에 가려진 부분에는 뭔가 멍이라도 든 것처럼 보랏빛이 도는 듯했다.

그리고 눈동자는 마치 죽은 생선의 것처럼 생기가 하나도 없이 흐리멍덩할 뿐이었다.

"저거 말이라도 걸어야 할까?"

"많이 이상해 보이는데. 이미 죽은 거 아니야?"

"그럼 어떻게 걸어 다니는 거지?"

"누가 좀비로 만들었나 보지."

아무리 봐도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몰골에 많이 꺼려진 우리는 가까이 다가가기 보다는 멀리하기로 했다.

비척거리며 거리를 걷는 그와 부딪치지 않을 정도로 거리를 벌린 후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는데 갑자기 옆에서 충격이 느껴졌다.

"꺄앗!"

"으악, 뭐야?!"

코트가 막아줘서 아프진 않았지만, 충격으로 인해 옆으로 넘어진 나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사육장을 놓치고 말았다.

투명화가 걸려 있어서 어디에 떨어져 있는지는 몰라 바닥을 더듬거리며 찾는 동안 쿵쿵거리는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금방 뱀이 탈출해서 땅을 기었다.

분명히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주문을 걸어 놨을 텐데—라고 생각하기도 잠시, 녀석은 쏜살처럼 빠르게 기어가서 손 쓸 틈도 없이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 모습에 어안이 벙벙한 것도 잠시.

소리를 듣고 반응한 좀비 같은 그가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왔다.

다행히도 서현이의 손을 놓치지 않았던 나는 그녀를 끌고 가다 싶이 해서 도망쳤다.

"허억, 휴우. 다행히 우리들을 눈치채지는 못한 모양이야."

"그런데 뱀이 도망친 건 어떡해?"

"어쩔 수 없지.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 모르는데."

지금의 실책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그렇기에 일단 수색을 계속하기로 하며 이동하려는 와중 위화감이 느껴졌다.

잠시 숨을 고르고 긴장감이 풀려서야 머리 위에 있던 무게감이 사라진 걸 알아차린 것이었다.

나는 어디에 던져놔도 괜찮을 그보다는 보호 수단이 마법 몇 가지 밖에 없는 지금 상황이 걱정되었다.

혹시라도 하윤이가 쓰러뜨렸던 뱀처럼 거대한 괴물이 우릴 죽이려 덤벼든다면 저항도 제대로 못 하고 죽을게 뻔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의 성격을 떠올려 보면 어디선가 몰래 지켜보고 있을 게 분명하니, 괜히 서현이만 불안하게 만들지 않도록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방금 뛰어오느라 지친 몸을 잠깐의 휴식으로 달랜 우리들은 다시 마을을 탐색하기 위해 걸었다.

대충 나뭇가지들을 엮어 만든 울타리 너머를 살펴본다던가 하면서 돌아다니던 나는 이상한 점을 눈치챌 수 있었다.

마을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달걀귀신처럼 생긴 것들이 아닌, 현대복을 입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방금 봤던 정장을 입은 남자처럼 모두 창백한 피부를 하고 있었다.

약간의 본능은 남아있는 것인지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던져 소리를 내자 고개를 돌리더니 그쪽으로 움직였다.

그 틈을 타서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자 저쪽에 기와를 얹은 돌담이 보였다.

혹시 저기에 무언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관아로 향했다.

포졸처럼 입은 달걀귀신들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자 갓을 쓰고 화려하게 입은 녀석이 보였다.

마찬가지로 얼굴이 없는 녀석은 그저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흉내내고 있을 뿐이었다.

이외에 보이는 것은 없어서 우리는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그런데 저것들은 그냥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는 건가?"

"관찰이라도 하게? 마력이 얼마나 남았는데?"

"웬만한 일이 없으면 저녁까지는 괜찮을 거 같아."

"그럼 여기 돌담 위에서 하자. 너무 오래 걸어서 다리가 아프기도 했거든."

서현이의 마법으로 도약해 기와 위에 앉은 나는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쐬면서 녀석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마을 외곽에도 있던 걸 보면 솔직히 아무런 규칙도 없이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거의 한 시간 가량을 앉아서 구경한 나는 느릿느릿 걸어다니는 녀석들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너무 느린데."

"그러게. 그래도 규칙성이 보이는 거 같기도 해."

"진짜?"

내가 너무 대충 봐서 그런 걸까.

보이지는 않지만 꽉 잡은 손을 통해 느껴지는 서현이가 입을 열었다.

"일단 쟤네들은 각각 모습이 달라."

"모두 다른 사람이니까 그러지."

"그거 말고. 옷 아래쪽으로 보이는 보라색 말이야. 그게 어디까지 올라왔는지가 다르다니까."

"응?"

그 말에 나는 눈을 찌푸리며 그들의 모습에 집중했다.

그러자 손목 부근이나 목 위쪽으로 침범해오는 보라색의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저게 뭔지 모르겠지만, 많으면 많을 수록 저기를 빙빙 도는 경향이 있는 모양이야."

서현이는 그렇게 말하며 움직인 듯했다.

하지만 투명화 때문에 전혀 보이지 않아서 나는 어디냐고 물어야만 했다.

"그러니까… 어디지? 투명해서 안 보이는데."

"아, 미안. 저기 빨간 깃발이랑 하얀 깃발이 묶여져 있는데."

자세한 정보를 듣고 나서야 나는 저기 있는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서현이가 말한 것처럼 깃발 여러 개가 달린 기다란 깃대가 있는 그곳에는 높은 담벼락이 있어서 안쪽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저 깃발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무당이네."

"정말 의심스럽지 않아?"

"그렇지. 일단 저곳으로 가봐야겠네."

나는 담벼락에서 내려오며 옷에 묻은 먼지들을 툭툭 털었다.

그러고는 저기 무당집으로 가려는데 갑자기 서현이가 멈춰섰다.

"응? 왜 그래?"

"그리고 안 한 말이 있어."

"뭔데?"

"저 보라색이 심하지 않은 사람들은 저곳에서 벗어나려는 거야. 우리가 처음에 마주쳤던 사람은 아마 최근에 여기로 온 사람이겠지."

"…그 말은 설마?"

"가능성은 남겨둬야 한다는 거지."

그 말을 끝으로 서현이는 빨리 가자는 듯이 맞잡은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그에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소리를 내서 주의를 끌지 않고 그들의 옆을 지나가면서 찬찬히 뜯어보듯이 그들을 살펴봤다.

마치 숲속에서 본 어둠처럼 옷 아래에서 일렁이는 보랏빛의 기운은 피부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무언가에 막힌 것처럼 머리를 완전히 뒤덮지는 못했지만, 몇몇 사람은 볼까지 올라온 게 보였다.

저게 만약 뇌까지 올라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면서도 불쌍하게 느껴졌다.

아무튼 무당집의 정문으로 온 나는 문을 슬쩍 밀어봤다.

그러자 끼이익거리는 경첩 소리와 함께 살짝 움직이더니 일정 이상으로 열리지 않았다.

소리에 반응하여 이쪽으로 오는 사람들을 피해 뒤로 간 우리들은 조용히 말했다.

"아무래도 잠겨 있는 모양이네."

"그럼 담이라도 넘어서 갈까?"

"그게 편하겠다."

마침 저 사람들도 문 쪽에 모였으니 저길 넘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나는 혹시나 결계는 있지 않을까 확인한 후 높이 뛰었다.

그렇게 안쪽으로 넘어오자 사람들이 문에 부딪치면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걸 막고 있는 걸쇠가 그닥 믿음직스럽게 생기진 않았지만, 어차피 이곳에서 별로 있지 않을 듯하니 상관 없을 거였다.

"어머, 불청객이시로군요."

순간 등을 차가운 혀가 핥는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의문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누군지 확인하자 한 여성이 있었다.

형형색색의 한복을 입고 얼굴에 하얗게 분칠을 한 모습 덕분에 나이를 알아보기는 힘들었지만 젊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잠시 그녀의 눈동자의 동공이 세로로 날카롭게 갈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기분탓이었는지 다시 정상적으로 보였다.

부채를 부치며 투명화된 우리를 압박하듯이 쳐다보는 모습에 나와 서현이는 보이지 않지만 서로 눈을 마주친 거 같았다.

마치 어떡하냐는 눈빛을 받은 느낌의 나는 어쩔 수 없이 투명화를 풀었다.

"어머. 왠 사특한 주문을 사용하나 싶었더니, 외부인이었군요."

"외부인? 저기 바깥의 사람들을 말하는 거야?"

"흐응, 제가 말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특별히 말해드리죠. 네, 맞습니다."

"우와, 진짜 말하기 싫은 상대다."

나는 아무리 봐도 눈 앞의 여자가 흑막으로 보여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방금까지 투명화를 유지하느라 많이 쓰이긴 했지만, 아직 싸울 여력은 남아있었다.

"어머, 그렇게 기세를 끌어올리다니. 이거 정말 슬퍼지는군요."

"난 네가 흑막이라고 생각되는데. 아니면 변명의 기회를 줄게."

"저도 피해자랍니다. 덕분에, 윽, 외부인들에게 감시당하는 중이죠."

"감시?"

말을 들어보면 일리는 있었다.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어보라고 권유하는 뱀처럼 속삭이는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방금의 뱀 같은 눈동자도 그렇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는 사람이다.

"후후후, 그 눈빛. 저를 의심하고 있군요?"

"너도 내 입장만 되면 이해하지 않을까?"

"글쎄요…. 지금은 머릿속이 어지러워서 그러기도 힘드네요."

부채를 부치던 그녀는 입가를 가리더니 눈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절규하는 것처럼 입매가 일그러졌을 게 눈에 보이는 이유는 뭘까.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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