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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133화 (133/154)

〈 133화 〉 옛날 옛적에

* * *

사다리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자 코를 찌르는 피 냄새는 더욱 짙어졌지만 불빛이 하나도 없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앞으로 걸어가다간 발을 헛디딜지도 몰라 주문을 외우며 불을 피우려 준비했다.

하지만 뒤따라 내려온 하윤이가 순식간에 손바닥 위로 전등처럼 하얗게 빛나는 구체를 만들었고, 나는 말하려던 주문을 삼키며 앞을 바라봤다.

지하를 최근에 만든 것인지 벽에 박혀 있는 나무 기둥을 만져 보자 꺼슬꺼슬한 감촉이 느껴지면서 나무 냄새가 약간 느껴졌다.

그리고 끝부분이 검게 타버린 횃불이 일정하게 박혀 있었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키며 앞으로 나아가자 넓은 공간이 나왔다.

"윽, 이게 무슨 냄새야."

피 냄새에 익숙해져서 둔해진 코로 새롭게 역겨운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마치 예전에 깜빡하고 바깥에 며칠 동안 방치해 둔 돼지 고기에서 맡았던 것과 비슷했다.

나는 순간 변색된 고기를 뚫고 나오는 수십 마리의 구더기를 떠올렸다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곳을 한 번에 밝히기 위해 하윤이가 빛나는 구체를 중앙 쪽으로 날려서 빛의 세기를 높이자 끔찍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구체가 날아가면서 드문드문 보인 창백한 팔과 다리들을 봤을 때, 사람이 토막 났을 거라고는 예상하긴 했지만 내가 상상했던 걸 훨씬 뛰어넘었다.

엽기 살인마나 저지를 만하게 훼손된 시체에는 마법적인 처리가 된 흔적이 보였다.

어떤 사람은 하반신이 잘려 나가서는 척추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는데, 일반적인 사람보다 더 많은 척추뼈가 뱀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다른 사람은 마찬가지로 다리가 없었지만, 이번엔 피부에 초록색과 짙은 갈색이 섞인 듯한 비늘이 빼곡하게 나 있었다.

방금 무당이 변했던 뱀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그들은 신체 변형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이미 죽어 있었다.

그들의 마구잡이로 일그러진 표정에서 얼마나 통증이 심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뱀신이 조종하고 있었다고 해도 기억하고 있으니, 저걸 직접 하면서 들었던 비명 소리와 손으로 느껴지는 감촉 때문에 미쳐 버리지 않는 게 용하다.

나는 이 끔찍한 곳의 중앙, 불가능해 보이는 각도로 꺾인 선들이 이리저리 그려진 마법진의 중앙에 놓인 사람이었던 걸 봤다.

온몸에는 아까의 시체에 났던 것과 비슷한 색의 비늘이 빈틈 없이 돋아나서 원래의 피부는 보이지 않았고, 하반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뱀의 꼬리 부분이 달려 있었다.

게다가 머리도 완전히 뱀의 것처럼 변해서는 닫히지 않은 세로 동공의 눈동자도 보였다.

말 그대로 '뱀 인간'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이 생긴 시체는 무언가의 의식을 위한 재료인 것처럼 보였다.

"흐음, 이거 설마…? 에이, 아니겠지."

"뭐가?"

"그 무당이란 사람이 말하기로는 마법을 부리기 위해 축복 받으려고 했잖아요?"

"그렇지?"

"근데 이걸 보면… 아예 여기에다가 강림시키려 한 모양인데요?"

"뭐?"

나는 그 말에 마법진을 다시 한 번 살펴봤다.

하지만 내가 지금 가진 지식으로는 전혀 알아보기 힘든 경지의 것이었다.

오히려 그걸 해석하려고 할 때마다 머리가 아파지려다가도 괜찮아지는 걸 반복하며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어떻게 이런 걸 그 무당이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뱀신이란 녀석이 오래 살았을 테니 그럴 수도 있다고 대충 넘겼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무당이 아직도 뱀신의 조종을 받던 거라면?'

물론 그 고양이가 보는 앞에서 그런 짓거리를 벌이다가는 곱게 죽지 못하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우리라는 방해꾼들을 처리하기 위해 지하실로 보내려는 생각으로 구역질을 하며 말하기를 꺼려 했다면….

"내가 너무 민감한 건가?"

"왜요?"

"만약 그 뱀들의 아버지라는 존재를 여기에다가 강림시킬 생각이었다면, 우릴 여기에다가 보낸 이유가 뭐겠어."

"자기 손으로 죽이긴 힘드니, 높으신 분의 힘을 빌리겠다는 거겠죠."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 아하하!"

"그거 플래그예요."

하윤이가 말을 끝마치자마자 여기 있는 횃불에 전부 불이 붙었다.

이상하게도 불빛은 모두 사방에 퍼지지 않고 아래에 있는 시체들을 비췄다.

이런 곳에 있으면서도 전혀 부패하지 않은 시체들은 모두 배가 갈라져서 장기가 특이한 문양처럼 배치되어 있었다.

피가 하나도 묻지 않은 그것들은 막 같은 것으로 싸여 있었는데, 불빛이 그로 인해 반사되면서 중앙을 향했다.

바로 누워 있는 뱀 인간을 향해.

빛을 받자 근육에 힘이 들어오는 것인지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그것의 눈동자는 이리저리 굴러가다가 이쪽을 바라봤다.

그 순간 심장에 문장이 새겨진 후로는 느낄 수 없었던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머릿속을 지배했다.

다리의 힘이 빠져서는 엉덩방아를 찧은 나는 뱀 앞의 쥐처럼 얼어 붙어 있다가 가슴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에 정신을 차렸다.

"허억—!"

"언니, 괜찮아요?"

"어? 어어…. 하윤이 너는?"

"전 멀쩡해요."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음을 짓는 하윤이의 모습에 나는 동성이면서도 반할 뻔했다.

'정신 차려!'

양 뺨을 세게 때리며 천천히 일어나려고 노력해 보지만, 갓 태어난 새끼 사슴처럼 떨리는 다리를 제어하기가 힘들었다.

어떻게든 간신히 일어나 의식이 얼마나 진행된 건지 확인하려고 앞을 보자 팔로 바닥을 짚으며 일어나려는 뱀 인간이 보였다.

저것이 완전하게 강림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 결과가 끔찍하리라는 건 틀림 없기 때문에 나는 주문을 외웠다.

죽은 사람을 모욕하기는 싫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따진다면 망설여선 안 된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의식을 방해할 수 있는 거로…!'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하윤이라면 나보다 빠르게 마법을 만들 수 있을 텐데, 어째서 아무런 방해도 하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 세상이 진동했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요동치는 땅에 간신히 서 있던 나는 다시 넘어졌고, 덕분에 영창하고 있던 주문도 실패하고 말았다.

게다가 강림 의식을 위한 마법진은 어떤 보호라도 받는 것인지 아무런 영향도 없이 뱀 인간은 점점 일어서고 있었다.

희망이 없어진 인간이 신을 찾기 위해 하늘을 올려다 보는것처럼, 나도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이곳은 지하.

청명한 하늘은커녕 어두컴컴한 흙 천장만이 보일 뿐이었다.

"어라? 잠깐만…?"

어째선지 천장이 점점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원형의 틈이 생기면서 그곳으로 빛이 새어 나왔다.

"…헐."

점차 멀어지는 땅 덩어리를 보며 감탄을 하다가 지진 같은 게 멈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윤아! 혹시 네가 한 거야?"

"아뇨. 가능은 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저런 걸 왜 하겠어요."

"그렇다면…."

"애옹."

거대한 땅 덩어리가 날아가며 밝은 햇빛이 이곳 아래를 비췄다.

그와 함께 저쪽 끄트머리에 작은 그림자가 보였다.

자그마한 몸집에 세모낳게 튀어나온 한 쌍의 귀.

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건….

"불경하다냥."

"네? 아무 생각도 안 했거든요."

내가 변명을 하자 귀엽게 날 올려다보는 것이 내 양심을 쿡쿡 찔렀다.

하지만 저런 귀여운 모습에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 다짐하지 그가 혀를 차며 어깨 위로 올라왔다.

"아! 그것보단 저기 강림 의식이…!"

"이미 끝났다."

"어?"

그의 말에 고개를 돌려 마법진을 살피자 완전히 일어선 뱀 인간이 이쪽을 살펴봤다.

그러다가 한 번 움찔하더니 서서히 엎드리며 죽은 척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왜 저러지?'

완전히 바닥에 엎드린 녀석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내 옆에 고정되더니 눈을 크게 떴다.

그러더니 무언가를 시도하려다가 간단하게 저지당했다.

"어딜 도망가려고."

—고오오!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뱃고동 같이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는 세계가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공간이 깨지기 시작했다.

허공에 선을 여러 겹 그은 것처럼 마구잡이로 퍼져나가던 균열은 점차 커지더니 구멍을 만들어냈다.

공간의 조각들이 하나씩 안으로 빨려 들어가며 나타난 것은 우주 같은 배경이었다.

별들이 내게 인사하듯이 천천히 점멸했고, 뱀 인간은 저항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날개가 솟아나며 변신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사람 하나는 간단히 삼킬 만큼 커진 구멍은 녀석의 꼬리 부분을 붙잡더니 점점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저 너머로 사라진 녀석은 꿈이라도 꾼 것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죽은 건가?"

"죽이지는 않았다."

"네?! 나중에 뱀들이 또 저런 짓을 벌이면 어쩌려고요?"

"그건 네가 해결해야겠지."

그는 그리 말하고는 위로 뛰어올랐다.

나도 일단 올라가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나오자 구멍이 뻥 뚫린 마당이 보였다.

"저건 또 뭐야?!"

"아무래도 무당이 말한 뱀신인 모양인데요?"

그리고 저기 구석에는 커다란 뱀이 목이 잘린 채로 죽어 있었다.

저번에 하윤이가 잡았던 녀석보다는 확연히 작긴 하지만 일반적인 생물의 규격에서 벗어난 건 마찬가지였다.

무당은 저것이 강제적으로 시킨 의식 때문에 기절했는지 집 앞에 쓰러져 있었다.

"아무래도 사건은 끝난 모양이네."

"그러게요."

그럼 일단 이 이상한 공간을 빠져나가야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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