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 바다에서 불어오는 불길한 바람
* * *
결사단의 건물로 돌아온 나는 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지금이 비상 사태도 아니라 내가 중직을 맡고 있진 않아서 개인 활동은 가능했지만, 발신기를 가지고 나갔다가 한 시간 이상을 신호가 사라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어떻게 써야 그 깐깐한 사람이 만족하며 읽을까 고민하며 한 글자씩 입력하며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렸다.
인형처럼 가만히 있던 사람들은 결국 보랏빛의 썩은 피를 토하고 죽었고, 마을 외곽 부근에서 그나마 멀쩡한 사람 한 명밖에 구하지 못했다.
'그 사람도 지금 병원 침대에 신세를 지고 있지만.'
의사들이 엑스레이와 혈액 검사를 하더니 그를 끌고 급히 수술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많이 다급해 보였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장기가 녹아내려서 사진에 하얗게 나와야 하는 부분이 거뭇거뭇하게 나왔다고 하던가.
덕분에 그는 여러 기계가 주렁주렁 달려서는 호흡기를 찬 채로 누워 있는 상태였다.
"에휴, 입맛이 씁쓸하네."
한숨을 내쉬며 모니터를 봤다가 내용이 삼천포로 새는 걸 보고 백스페이스 키를 꾹 눌렀다.
그러고는 정신 차리기 위해 찬물을 마시고 나서 다시 그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하윤이가 무녀를 안고 나와 서현이는 나가기 위해 터널이 있는 쪽으로 향하다가 찾은 사람을 부축하고 산을 올랐다.
처음과는 다르게 바위가 막고 있는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 동굴의 앞에는 우리가 타고 왔던 차가 그대로 있었다.
뱀신의 영향이었던 건지 이번에는 시동이 잘 걸렸고, 차를 끌고 안으로 들어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빛이 보였다.
드디어 저곳을 빠져나왔다는 생각에 속도를 올리다가 저 빛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쯤 하윤이가 말했다.
자기는 여기 올 때 결사단이 보낸 차를 타고 왔다고.
그제서야 저 불빛이 전조등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걸 깨달은 나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익 소리를 내며 터널 입구 쪽에서 멈춘 차는 다행히도 어디 부딪치거나 하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던 결사단원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후 위에다가 보고를 올리고는 빨리 가자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엑셀을 밟으려다가도 잠깐 뒤를 돌아봤다.
우리가 빠져나왔다면 저 터널은 어떻게 변했을까 싶은 호기심도 있었고,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들어내는 마법이 궁금하다는 마법사적인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안에는 별거 없었다.
희끄무레한 사람의 형체가 손을 흔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제 역할을 다했다는 것처럼 무너지는 터널 때문에 자세히는 보지 못했다.
"으음, 이 정도면 충분하려나?"
나는 어느새 완성된 보고서를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이상한 부분은 없나 확인했다.
"뭐, 괜찮겠지."
구석에 있는 인쇄기가 지이잉—하며 종이를 뱉었다.
따듯하게 나온 종이 여러 장을 가지런히 두고 클립을 꽂은 후, 나는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러면서 오늘 할 실험을 고민하다 보니 최상층에 도착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높은 직함과 어울리지 않는 수수한 문에 노크하려 하자 손이 닿기 전에 자동으로 열렸다.
내가 당황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자 창밖을 바라보는 간부가 보였다.
눈은 뜨고 있지 않지만 무언가 고민하고 있는 게 주변을 둘러싼 분위기에서 느껴졌고, 또 다른 사건의 냄새가 맡아졌다.
"여기 보고서요."
"아, 빨리 가져오셨군요."
"이런 건 빨리해야 편하죠."
"흐음…. 이건 나중에 자세히 읽도록 하죠. 지금은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야기요?"
그는 들고 있던 보고서를 책상 위에다가 올려 둔 후, 이야기를 이어갔다.
"최근 동해에서 심해인에 대한 많은 목격담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건 언제나 있던 일 아니에요?"
"그렇죠. 하지만 최근 들어 빈도가 많아졌습니다. 심지어 낮에도 돌아다녀서 SNS에 퍼질 뻔하기도 했죠."
"어우…."
신화 속 괴물에 대한 정보는 최대한 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론 완벽한 정보 통제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괴물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그들의 선택은 두 가지였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죽거나, 살아남고 두려워하며 침묵하기.
그들은 자신의 목격담을 올려도 헛소리 취급받을 것을 알기에 증거를 만들려고 탐색한다.
그러다가 괴물과 다시 조우하고, 준비되지 않은 탐색자는 죽는다.
살아남은 자들은 때때로 그것들과는 비교할 수도, 가늠할 수도 없는 존재를 알아차리고 미쳐 버리거나,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신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문다.
특히 심해인의 경우 인간과의 혼종이 곳곳에 녹아들어 생활하기에 정체를 아는 사람을 납치하기도 간단했다.
결국 그들은 혼종을 만들기 위한 공장으로 전락하겠지.
"그것들은 조심성도 없어졌나 보네요."
"아니면 지상을 정복하기에 충분한 힘을 모았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죠."
그가 불길한 말을 내뱉으며 손을 펼치자 책상에서 사진 여러 장이 날아왔다.
거기에 찍힌 것은 물고기와 인간을 기괴하게 섞은 것처럼 보이는 괴물과 초록빛을 내는 점액질이었다.
"저건 누가 봐도 심해인이고, 저건… 뭐지?"
"쇼거스입니다. 끔찍한 괴물들이 기록된 마도서의 한 페이지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죠."
"그러면 다른 사진은… 어라?"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어서 눈을 비벼도 사진에 찍힌 것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고도비만 환자가 된다면 저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싶은 사람이 심해인의 앞에 서 있었다.
"이거, 제가 아는 그 사람인가요…?"
"겉모습은. 하지만 그 안에는 끔찍한 본성의 괴물이 들어 있지만요."
"그나마 질량 보존의 법칙을 무시하지 않는 거에 감사해야 할까요? 그래도 대통령이 저렇게까지 비만은 아니니까."
"그렇죠. 다만 놈들이 어떤 주술을 부릴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자면, 스트레스를 일으켜 폭식하도록 만든다던가."
"그럼 청와대 경호 인력에 결사단원들을 추가해야겠네요."
"이미 연락을 마쳤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사진을 돌려놓더니 무언가 말하려는 걸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뭐, 더 할 말은 없고요?"
"으음, 어제의 일로 피곤하겠지만 부탁하고 싶은 게 있군요."
"동해 조사요?"
"그렇습니다. 이미 한 명을 미리 보냈으니, 인수인계만 하고 조사를 이어가면 됩니다."
"연구 정도야 미뤄도 상관없으니까 오늘 바로 출발할게요."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나는 동해로 가기 위해 서둘러 아래로 내려왔고, 사무실로 돌아와 코트를 챙겼다.
그리고 서현이에게 같이 가자고 연락하려다가 번호를 누르려는 손가락을 멈춰 세웠다.
'…걔도 어제 많이 힘들었을 텐데, 그냥 나 혼자 가자.'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피로할 것이 분명한데, 또다시 그런 위험이 도사리는 곳으로 끌고 가기에는 양심이 찔렸다.
폰을 끄고 저기 캣타워에서 노닥거리는 고양이를 챙긴 나는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이번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몇 시간에 걸쳐 도착한 바닷가는 피서철이 아니라 그런지 사람들이 넘쳐나도록 있지 않았다.
도시의 냄새에 섞여 은은하게 맡아져오는 소금기 가득한 바다 냄새의 사이로 무언가 역겨운 악취가 느껴졌지만, 근처 수선시장에서 썩은 생선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넘겼다.
여기서 잠깐만 놀다가 수사를 시작할까 고민이 들었지만, 그러다가 먼저 온 결사단원가 마주치면 쪽팔릴 거 같았다.
일단 인수인계부터 마치자고 생각한 나는 모래사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앉아서 그, 혹은 그녀가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발신기도 챙겼고, 간부도 내가 오늘 출발했다고 연락했을 테니 날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수평선까지 넓게 펼쳐진 푸른 바다를 감상하며 가만히 있을 때, 옆에 누군가가 풀썩 앉았다.
이제야 결사단원이 찾아온 건가 싶어서 고개를 돌리자 왠 술에 취한 남자가 맥주 캔을 든 채로 있었다.
"딸꾹! 아가씨 혹시 혼자야?"
"일행 있거든요."
"에이, 몇십 분 동안, 딸꾹! 여기 혼자 앉아 있었으면서."
"안 가면 제가 갈게요."
"에헤이! 아무래도 남친한테 차인 표정인데, 나랑 술이라도 마시면서 잊는 건 어때?"
그는 맥주 캔을 내 옆에다가 두면서 스리슬쩍 허벅지에 손을 스쳤다.
더러운 감촉에 내가 표정을 일그러뜨려도 그는 태연하게 맥주를 한 모금 하더니 씨익 웃었다.
제 딴에는 멋있는 척이라도 하려는 모양이었지만, 이미 나빠질 대로 나빠진 내 기분은 주먹에게 소리쳤다.
지금이야말로 네가 나설 때라고.
하지만 나는 지성인답게 마법으로 해결하려 했는데, 뒤에서 어떤 인기척이 느껴졌다.
드디어 결사단원이 온 걸까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자 코트를 입은 외국인이 서 있었다.
나는 우리나라 결사단에 이런 사람이 있던가 생각하던 와중 그가 입을 열었다.
"Hey."
그가 그렇게 말하며 내 옆에 앉은 주정뱅이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자 녀석은 많이 아팠는지 몸을 비틀며 일어났고, 금방이라도 싸울 것처럼 욕지거리를 내뱉다가 주변의 분위기를 살피고는 도망쳤다.
덕분에 귀찮은 상황에서 벗어난 나는 감사를 표하기 위해 일어나서 인사했다.
"땡큐."
내가 그리 말하자 그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길을 떠났다.
마치 해야 할 일을 끝 마친 것처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