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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135화 (135/154)

〈 135화 〉 바다에서 불어오는 불길한 바람

* * *

그로부터 몇십 분 정도 지나서야 결사단의 배지를 매단 사람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파일에 담긴 여러 장의 서류를 넘겨주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경찰과 협력해서 실종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늦었습니다."

"뭐, 괜찮아요. 이렇게 오랜만에 바다 구경도 하고."

"실종자 명단에는 개인 정보와 특이사항이 적혀 있으니 웬만하면 혼자 있을 때 보시길 바랍니다."

"뭔가 눈에 띄는 특이한 점은 없었어요?"

"실종자의 70퍼센트 정도가 비만 환자더군요."

"흐음…. 비만이라."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수고하시길."

"네. 당신도 수고하셨어요."

짧은 대화를 마치고 일어선 그는 옷에 묻은 모래들을 털더니, 거리를 거닐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듯이 떠나버렸다.

나는 받은 서류를 읽기 위해 차로 이동하려고 일어서는 와중에 저쪽 구석의 바위들 사이에서 꾸물텅거리는 점액질 같은 것이 보였다.

혹시 잘못 본 건가 싶어서 눈을 비벼봐도 스르르 움직이는 슬라임 같은 게 계속 보이자, 나는 그곳을 향해 발을 옮겼다.

가까이 다가갈 수록 시야에서 사라지려 하는 모습에 마음이 조급해진 나는 급하게 뛰어서 어떻게든 바위 너머에 도달할 수 있었다.

"꺄악?!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밀회를 나누고 있는 커플이 있을 뿐이었다.

발에 밟힌 단단한 바위와는 전혀 다른 부드러운 감촉에 고개를 내리자, 눈에 들어온 검은 옷가지가 내가 착각했다는 걸 일깨워줬다.

몇 번의 연애 경험은 가지고 있지만, 저렇게까지 진도를 많이 나가보지 않았던 나는 부끄러움에 뒤로 돌아 도망쳤다.

바다에서 느껴지던 시선과 등 뒤에서 불길하게 발광하는 초록빛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얼굴을 마치 홍시처럼 붉게 물들인 채로 차 안에 들어온 나는 가지고 있던 파일로 부채질하며 열을 식혔다.

잊어버리려고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계속되어 오버랩되는 음란한 장면에 계속 움직인 손이 뻐근해질 정도가 돼서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후우…. 일단 서류나 읽자."

숨을 죽이고 천천히 서류를 읽어나가자 차 안에는 사락거리며 종이를 넘기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글자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꼼꼼하게 읽다 보니, 전부 읽었을 때는 이미 어둑어둑해져서 가로등이 켜지고 있었다.

나는 여기에 적힌 특이사항의 공통점을 떠올리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추측해나갔다.

'일단 모든 실종자는 바다가 부르고 있다고 했어. 그렇다면 정신 계열의 주술일까?'

저번에 미국에서 봤던 늙은 심해인을 떠올리자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혼자서 섬 전체를 감싸는 폭풍우를 일으키는 위용을 보면 그런 마법들은 너무나 간단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심해인 주술사는 죽었지만, 아마 따로 가르키던 제자가 있겠지. 일단 그들도 괴물이긴 하지만 문명을 가졌으니까.'

지상을 정복하는 것이 아닌, 공존하는 길을 선택했다면 서로 좋게 살아갔을 텐데 참 안타깝다.

'아니, 일단 겉모습부터가 아웃인가?'

옆집에 사람 하나는 간단히 잡아먹을 것처럼 생긴 괴물이 산다면 많이 꺼림칙할 거다.

'게다가 생선 썩은 내가 매일 풍겨올 테니… 우웩.'

저번에 맡았던 역겨운 냄새를 떠올렸다가 코끝을 스쳐 지나가는 비슷한 악취에 헛구역질이 나올 뻔했다.

덕분에 식욕이 없어져 버린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여기에서 계속 추리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흠, 실종자들은 모두 해변가의 관광객들과 주민들이 목격했다라. 헤엄을 별로 못 칠 거 같은 실종자가 부표를 넘어가려고 해서 막으려고 했다는 사람도 있네.'

나는 많이 차가워 보이는 바닷물이 철썩대는 해변가를 보며 오늘 낮에 사람이 얼마나 있었는지 떠올렸다.

그리 많지도 적지도 않은 사람들이지만, 그들 대부분이 관심을 가졌다는 건 바다로 들어가면서 뭔가 특이한 일이라도 벌였다는 뜻이다.

혹시 자살하려는 사람처럼 평상복으로 들어가려 한 것일까.

'잘 모르겠네. 아무튼 막지 못한 사람들은 어느새 사라졌고, 막아 내서 부표 너머로 가지 못한 사람들은 바위로 가득한 곳으로 향했다…?'

나는 또다시 떠오른 살색으로 가득한 장면을 떠올리고 부끄러워하다가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그땐 너무 당황해서 빨리 고개를 돌렸는데… 결합 부위가 뭔가 그림자라도 진 것처럼 검지 않았나?'

그러고 보면 밟았던 옷의 감촉도 이상했다.

그냥 물에 젖은 감은색 옷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물컹거리는 느낌이 강했었다.

어쩌면 내가 쇼거스라는 괴물을 놓친 건 아닐까 자책하며 머리를 감싸 쥐던 중, 저쪽에서 해변으로 향하는 어떤 그림자가 보였다.

서류에 적힌 공통적인 특이사항이 떠오른 나는 혹시 심해인이 부린 주술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아닐까 걱정되었다.

어쩔 수 없이 차 밖으로 나와 그 사람을 찾으려고 앞으로 가자 모래사장에서 돌아다니는 관광객들과 방금 본 그림자의 주인이 있었다.

오늘은 달이 밝기도 하고, 관광객들이 길거리 상인이 파는 폭죽을 터뜨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생김새를 관찰할 수 있었다.

코트를 입고… 어라?

뭔가 익숙한 생김새에 눈을 찌푸리며 자세히 살펴 보니 낮에 내게 도움을 줬던 외국인이었다.

그는 폭죽을 터뜨리는 사람들을 뒤로하며 조심스레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나는 서류에 적힌 것과 다르게 바로 바다로 향하지 않고 은신하는 그의 행동에 주술에 당한 것이 아닌, 나와 같은 것을 조사하기 위해 저러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일단 따라가 볼까?'

굳이 마법을 쓰지 않고 저렇게 숨는 걸 보면 그는 마법사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러니 투명화를 쓴다면 대놓고 뒤를 따라간다고 해도 알아차리지 못하겠지.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없는 틈을 타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온몸이 공기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것처럼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손을 이리저리 흔들며 마법이 완전히 적용됐는지 확인한 나는 그대로 모래사장을 걸어가려다 잠시 멈췄다.

투명화 마법은 모습을 말 그대로 투명하게 만드는 것뿐이지, 존재 자체를 세상에서 감춰서 현실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 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고민했다.

마력으로 발판을 만들며 나아가기엔 내가 가진 양이 부족했고, 고정 마법은 큰 충격을 받으면 쉽게 풀렸다.

'음… 그냥 갈까? 어차피 어두워서 잘 살피지도 못 할 텐데.'

그렇게 나온 내 결론은 간단했다.

사박거리는 모래가 밟히면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바위로 가득한 곳으로 향했다.

누군가가 일부러 진득한 어둠을 깔아둔 것처럼 점차 어두워지는 주변에 살짝 무섭긴 했지만, 보호막을 한 겹 설치하자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빛조차 희미해져서 마법으로 불을 켜고 싶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해졌다.

'살짝만 켰다 끄면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어둠 너머에서 괴물이 덮쳐올 것만 같은 느낌에 마력을 움직이려다가 저기 멀리서 빛이 번쩍였다.

그리고 동시에 엄청난 굉음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마치 저쪽 뒤에서 터뜨리는 폭죽들을 한 데 모아서 동시에 터뜨린다면 저런 소리가 나지 않을까.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다가 정신이 퍼뜩 들었다.

이것이 만약 심해인 주술사가 부린 마법이라면 그 외국인이 위험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다급함에 마력을 엮어 불빛을 만들어내서 바닥에 난 발자국을 찾아냈다.

그러고는 그걸 따라서 달려가니 바위들 위에 서 있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위험해요!"

"What the…?!"

그리고 그의 옆에 있는 심해인을 보고 내가 소리치자 당황한 그가 이쪽을 돌아봤다.

도깨비불처럼 허공에 떠 있는 불을 보고는 당황해하는 그를 향해 녀석이 달려들자 나는 눈을 가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썼을 때, 나는 차라리 귀를 막아야 했다고 생각했다.

방금과 똑같은 굉음이 들려오며 그의 손에 들린 권총에서 불이 번쩍였고, 호기롭게 달려들던 심해인은 그걸 맞고 쓰러졌다.

나는 삐—하며 귓속에서 울리는 이명에 허우적거리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면서 모랫바닥에 자국이 남았고, 그걸 알아본 그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이제는 숨길 수 없겠다 싶어서 난 투명화를 해제했고, 권총을 겨누고 경계하며 다가오던 그는 내 모습을 보더니 낮에 만났던 걸 기억한 모양이었다.

내가 도움을 준 사람에게 해코지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은 모양인지 그는 다가와서 괜찮냐고 물었다.

"Are you okay?"

"Yes. 아오… wait a second!"

최근 영어를 쓸 일도 없었고, 있어도 통역 마법으로 해결하느라 영어 울렁증이 도진 나는 잠시 기다리라 말하며 허공에 마법진을 그렸다.

하지만 마법사가 아닌 그에게는 허공에 손짓하는 거로 보일 테니, 넘어지면서 머리가 다친 건 아니냐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아무튼 빠르게 만들어진 마법진을 그를 향해 날려 보내고 한 번 말을 걸어 봤다.

"들려요?"

"네. 흠, 뭔가 신기한 마법이군요."

"응? 마법을 알아요?"

"제가 좀 많은 경험을 해 봐서 말입니다. 아하하, 이번에도 누군가의 의뢰 때문에 강제로 온 거죠."

"누군가…?"

"저도 정확히 누군지는 모릅니다. 아니, '누구'라고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요."

그의 표정에서 엿보인 감정을 봤을 때, 많은 사연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인연이 닿아서 다행이군요. 혹시 결사단의 마법사입니까?"

"예?! 결사단은 어떻게 알아요?"

"저번에 미국에서 사건을 함께 해결했거든요."

"아! 혹시 그 소문의 탐정?"

"벌써 여기까지 소문이 퍼진 건가요."

그는 멋쩍은 듯이 뒤통수를 긁다가 여기까지 퍼진 소문에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살짝 돌렸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자기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존 왓슨, 영국에서 탐정을 하고 있습니다."

"존 왓슨이요? 저는 한서아라고 해요. 그냥 편하게 아무렇게나 부르세요."

"그럼 미스 한이라고 부르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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