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 바다에서 불어오는 불길한 바람
* * *
점차 어둠이 흩어지며 달빛이 우리들을 비추자 나는 제대로 주변을 살필 수 있었다.
복잡한 마법이 새겨진 권총을 존 왓슨이란 탐정과 가슴팍의 작은 구멍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져 있는 심해인.
그리고 철썩이며 바위들을 때리는 검푸른 파도가 보였다.
서로 자기소개를 마친 우리들의 사이로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어색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일단 나는 지금의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어… 혹시 지금, 이쪽을 탐색할 생각인가요?"
"아뇨. 그냥 이곳에 무언가 있을 것 같은 직감 때문에 왔거든요."
"직감이요?"
"네. 제가 괴물들과 많이 엮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런 감각이 생기더군요."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래…?"
"꿈속 저택에서 광인에게 목을 졸린다거나, 무덤 아래의 괴물들과 이야기를 나눈 일이나, 아니면 그림 속 괴물에게 납치당한 것까지 다양합니다."
"인생이 참 파란만장하시네요."
나도 20대에 이런 세계에 반쯤 발을 들였다가 완전히 자리 잡으면서 꽤나 특이한 일을 많이 겪었다고 생각했지만, 눈앞의 상대와 비교하기엔 초라해 보였다.
"그러면 숙소로 돌아가실 건가요? 지금 어디에 묵으세요?"
"저기 호텔에 하루 잡아놨습니다. 미스 한께서는?"
"어우, 잠깐만요."
뭔가 오글거리는 호칭에 나는 그에게 걸어두었던 통역 마법에 약간 손을 봤다.
"그냥 이름으로 불러 주세요. 성만 불리는 건 좀 어색해서."
"그렇군요. 그럼 서아 양이라고 부르죠. 그래서 서아 양께서는 어디에?"
"저는 그냥 차에서 자려고요."
"그렇군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내일 함께 수사하지 않겠습니까?"
"저야 좋죠. 그럼 연락처라도 드릴까요? 휴대전화는 있으신가?"
"의뢰인에게 받은 게 있습니다. 여기요."
나는 그에게서 건네받은 폰으로 내 번호에다가 전화를 걸어본 후, 연락처에다가 남겨뒀다.
그러고는 다시 그에게 돌려주면서 난 여기서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여기요. 저는 할 일이 좀 있어가지고 먼저 가시겠어요?"
"네, 그러죠."
"아! 맞다. 잠깐만요."
나는 그가 호텔로 돌아가기 전에 걸어두었던 통역 마법을 해제했다.
보아하니 한국말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낮에 접수했던 외국인이 밤에 돌아와서 유창하게 말한다면 이상하게 보이지 않겠는가.
"휴우, 이제 됐어요."
그는 내가 뭘 했는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내 말을 듣더니 뭘 했는지 알아차린 모양이다.
내가 손을 흔들자 그도 똑같이 손을 흔들며 저 멀리 떠나갔다.
"휴우, 드디어 혼자네."
그리고 그의 모습이 점처럼 보일 정도로 멀어지고 나서야 나는 무릎을 꿇으며 쓰러져 있는 심해인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이상한 별종처럼 보일까 봐 시선이 이쪽으로 향하는 걸 참는 게 얼마나 고역이었는지.
나는 역겨운 비린내를 풍기는 심해인의 사체를 뒤집으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은 총을 아무렇게나 쐈지. 그런데 얘는 그걸 맞았고.'
그의 총에는 복잡한 마법이 새겨져 있었으니 그것 덕분이겠지—라고 추측하며 관찰을 이어갔다.
총알이 질긴 근육과 단단한 뼈에 걸려서 관통하지 못한 건지 심해인의 등에는 아무런 구멍도 없었다.
지느러미가 걸리적거려서 녀석을 똑바로 눕히긴 어려웠지만, 비스듬히 눕게 만들어서 어떻게든 관찰하기 쉽도록 만들었다.
"흐음.가슴팍엔 구멍이 하나, 아니, 두 개네?"
끈적한 피를 고름처럼 흘리는 구멍을 자세히 살펴보면 동그란 구멍 두 개가 거의 비슷하게 겹쳐진 걸 볼 수 있었다.
내가 이쪽으로 올 때 총성이 두 번 울렸으니 개수는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여기 위치면 아마 심장이겠지. 심장에 총을 맞았으면서도 살아 있었다니. 엄청난 생명력이네."
나는 아직까지도 생기를 잃지 않고 반짝이는 심해인의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마법을 준비했다.
웬만하면 해부용 도구를 사용했겠지만, 이렇게 거의 멀쩡한 사체를 금방 얻을 줄은 몰랐다.
아무리 낮에 돌아다닌다고 해도 그걸 죽이기란 쉽지 않기도 하고, 만약 사살했다 치더라도 그걸 신선하게 옮기려면 필요한 장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사단의 인원이 가장 많이 투입될 만한, 음모를 꾸미는 심해인들을 잡는 작전에서나 얻으리라 생각했었다.
녀석들의 작전이 담긴 기억을 추출하고 껍데기만 남은 몸뚱어리를 실험용으로 쓰라고 분배할 테니 말이다.
나는 마력의 칼날을 움직여 천천히 녀석의 피부에 갖대댔다.
그러자 느껴지는 비늘의 저항감에 마력을 마치 전기톱처럼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점점 갈려 나가며 그나마 부드럽다고 할 만한 근육 부분을 자르는 감촉이 느껴졌다.
손을 천천히 움직여 아래쪽으로 향하자 심해인의 흉부와 복부가 반으로 갈라졌다.
그와 함께 풍겨지는 엄청난 악취에 나는 한쪽 손으로 코를 쥐며 해부를 이어갔다.
"음, 역시 장기는 사람들이랑 거의 똑같네. 다른 점이라면 약간 더 큰 간과 부레 정도이려나?"
나는 확인한 장기들을 바다에다가 버리며 거의 짓이겨진 심장을 바라봤다.
갈비뼈와 총알이 부딪치면서 서로 쪼개진 건지 주변 근육이 완전히 작살나 있었다.
"흉부는 아무래도 힘들겠네. 그럼 머리만 마무리하고 끝내야지."
나는 저쪽 해변의 관광객이 이곳으로 올까 싶어서 빠르게 손을 놀렸다.
아까까지는 이 심해인이 쓴 거라고 추정되는 마법 덕분에 총성도 들리지 않은 모양이지만, 죽은 시체는 마법을 부리지 못하니 그 효과도 사라졌을 게 분명했다.
방금 낮처럼—그 커플이 정말 사람이었는지는 의문이지만—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찾아오는 커플들이 있을지 모른다.
나는 재빠르게 해부를 끝마쳐서 뇌와 눈, 그 둘이 이어진 시신경과 의문의 돌까지 확인한 후 모두 바다에다가 버렸다.
만일 이곳을 찾아올 사람들의 정신을 위한 조치였다.
돌에 핏자국이 남아 있긴 했지만, 파도에 씻겨 금방 사라지리라 생각한 나는 사람들이 많은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방금까지 폭죽을 터뜨리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가고, 멀뚱히 서서 바다를 구경하거나 누군가를 찾는 듯한 경찰들이 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건지 궁금해하다가 옛날에 바다로 놀러 왔을 때가 떠올랐다.
'아, 여기서 폭죽 터뜨리는 게 불법이던가?'
물론 법으로 지정한다고 해서 안 하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지만, 저렇게 경찰들이 순찰하고 있는 앞에서 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나는 금세 차로 돌아와 서류를 다시 읽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시간이 정각을 지나지 않았지만, 사람만큼 커다란 걸 해부하다 보니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점점 눈이 감기며 읽던 서류 내용도 점점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는 게 빨리 자야겠다.
나는 시트를 뒤로 눕힌 후 뒷좌석에 있던 담요를 가져오려다가 위에 누워 있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어라? 아, 맞다."
"애옹."
자고 있던 건지 입을 크게 벌리며 하품을 하던 고양이는 기지개를 펴더니 내 위로 올라왔다.
"아직 관심이 없나? 하긴, 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에 나는 안심하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따듯하게 데워진 담요를 가져와 덮었다.
그리고 배에서 느껴지는 무게감과 따스함을 느끼며 천천히 잠에 들었다.
***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보석처럼 생긴 유리들이 매달려 화려하게 빛을 반사하는 샹들리에였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그것에 불안했던 내가 일어난 곳은 식당 같은 곳이었다.
실크인지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지는 새하얀 식탁보에 길쭉한 식탁, 그리고 위에 놓인 은촛대와 가지런히 정렬된 의자까지.
나는 금방 이곳이 꿈의 저택이란 걸 자각할 수 있었다.
"어휴, 맨날 이런다니까."
심장에 새겨진 문장 때문에 그럴 일은 없지만, 만약 정신이 불안정해진다면 예전에 투명한 요리사 같은 괴물이 튀어나올 수도 있었다.
이제 정신 차렸으니 뭘 하고 놀까 생각하던 나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응? 창문에 뭔가…?"
—와장창!
그리고 그걸 확인하려 가까이 다가가던 와중 창문과 벽이 부서지며 날아가고 말았다.
나는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잔해들에 양팔로 얼굴을 가렸다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자 슬며시 움직였다.
그러자 보인 것은 드넓은 바다.
저 멀리 수평선까지 펼쳐진 수면은 어째선지 어떠한 활기도 띄지 않고 있었다.
명백한 이상 사태에 나는 꿈을 바꿔보려 노력했지만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대, 이곳으로 오라.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며 꿈속 전체에 울려 퍼지듯이 들려왔다.
"으윽!"
어째선지 정신을 뒤흔드는 목소리에 내가 양쪽 귀를 틀어막고 괴로워하자 심장의 문장은 나를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바다에서 올라온 괴물들로 인해 실패했다.
사람만한 것들부터 거의 고래보다도 큰 심해인들이 바다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마치 경배하는 것처럼 어딘가를 향해 절했다.
—■■■■■!
도대체 뭐가 튀어나오는 건지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그쪽으로 향하자 그 어떤 심해인보다 거대한 괴물이 튀어나왔다.
그 녀석은 이쪽을 쳐□□더니 □□ 죽□□□ 것처럼 다가□□ 있□□□□
"—허억!"
잠에서 깨어난 나의 몸에는 식은땀이 가득 흐르고 있었다.
마치 뱀들의 아버지가 강림한 것과 마주했던 것처럼 형용할 수 없는 마력과 공포에 흥분한 신체는 산소를 갈구했다.
진정하기 위해 머리를 감싸 쥐던 나는 몇십 분이 나서야 무언가 이상한 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 손가락의 마디 끝이 검게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