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화 〉 바다에서 불어오는 불길한 바람
* * *
내가 그를 빤히 쳐다보자 당황해하더니, 이윽고 내 손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빠르게 어딘가로 도망치듯이 가 버렸다.
도대체 왜 저러나 싶어서 고개를 내렸다가 나는 검게 변한 손을 그대로 드러낸 채로 나왔다는 사실을 곧장 깨달았다.
누가 보진 않았을까 재빨리 손을 주머니에 넣으며 일어선 나는 마력의 실을 짜올려 손을 감쌌다.
그러고는 인식 저해 주문을 더해서 모르는 이가 본다면 장갑으로 착각하도록 조치했다.
'이런 계절에 장갑을 끼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대놓고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낫겠지?'
나는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사람들이 어떻게 쳐다보는지 확인하며 방금 그 호텔리어를 떠올렸다.
심해인의 특징이 두드러진, 마치 혼종처럼 보이던 그는 내 손을 보더니 경악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었다.
물론 일반인도 이상하게 보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세워주려 뻗었던 손을 거두며 도망치기까진 하지 않을 거다.
겉보기엔 대부분의 빛을 흡수하는 도료에다가 손을 푹 담근 것처럼 보이니 행위예술가라고 생각하겠지.
'정말로 혼종인가? 뭔가 숨기고 있는 건 분명한데….'
아직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은 하나도 없으므로 무작정 잡아들여 수색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곳 호텔 이름을 기억 한 켠에 새겨둔 후 나중을 기약하기로 했다.
내가 이러는 동안 어느새 체크아웃을 마친 왓슨 씨는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와 할 이야기는 일반인들이 알아선 안 될 것이니, 나는 따라오라고 손짓한 후 주차해 뒀던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운전석에 앉은 나는 보조석에 앉은 왓슨 씨에게 통역 마법을 걸어 주고는 말을 걸었다.
"어제는 잘 주무셨나요?"
"글쎄요. 악몽을 꿨는데 기억나지 않아서 그런지 찝찝합니다."
"악몽이요?"
"네. 뭔가 희미하게 떠오를 거 같으면서 잡히지 않는 게, 정말 짜증 나네요."
"혹시 바다가 나오고 그러지 않았나요?"
"바다요?…아! 확실히 그랬던 느낌이네요."
"막, 이곳으로 오라고 말한다던가…?"
"으음, 뭘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그런데 서아 양께서는 어떻게 아시죠?"
"저도 비슷한 꿈을 꿨거든요."
나는 꿈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대략적으로 그에게 설명해줬다.
"…그렇군요."
"그래도 왓슨 씨는 운이 좋았던 모양이네요."
"으음, 그런 괴물과 마주했다면… 상상도 하기 싫군."
"저는 실종자들이 사라진 원인이 꿈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서아 양은 이 사건을 어떤 방향부터 파헤칠 생각입니까?"
"일단 실종자 가족부터 찾아가 봐야겠죠? 잠시만요."
어제 자기 위해 뒷좌석에다가 뒀던 서류를 가져온 나는 대충 가까울 듯한 주소를 찾아냈다.
그리고 네비게이션에 입력한 후 안내를 따라 바로 출발했다.
창문을 열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운전하던 나는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서 왓슨 씨에게 질문했다.
"아, 그러고 보니 호텔에 이상한 점은 없었어요?"
"이상한 점이요?"
"뭐랄까. 호텔리어가 수상하다던가. 아니면 무언가 낌새가 이상했다던가?"
"흠…. 직원들의 눈이 약간 컸던 거 같군요. 하지만 한국은 성형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그러려니 하고 넘겼습니다."
"밤에 문밖에서 수상한 기척이 느껴지거나 하진 않았고요?"
"그런 시간에도 고객들이 부를 수 있으니, 그다지 수상하게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의심이 확신으로 변해가는 가운데,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호텔의 특성을 이용해 의심 받을 만한 시간대에도 자연스레 돌아다니며 저주를 걸고 다닐 녀석들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을 풀기 위해 엑셀을 세게 밟아 속력을 높인 차량은 몇십 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나는 페인트 칠이 벗겨져 겉으로만 봐도 세워진 시기를 알 만한 빌라를 바라봤다.
여기서 실종자가 살던 곳을 찾아올라가다가 뒤따라 오는 왓슨 씨와 눈이 마주쳤다.
지금부터 형사인 척을 할 예정인데, 아무리 봐도 외국인인 사람과 동행하면 수상하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나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한 층만 아래에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도 함께 있으면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가 아래층에 있는 걸 확인한 후, 초인종을 누르고는 어떤 말을 할지 생각했다.
'일단 강력계 형사라고 소개해야 하나? 아니면 실종자 이름을 대서 신뢰하도록 만들어야 하려나?'
그렇게 고민하던 와중 찰칵하고 문이 열렸다.
경계심이 많은지 안전고리를 걸어두고 얼굴만 보이도록 열린 문의 틈으로 보인 사람은 어떤 여성이었다.
나이를 증명하듯이 잔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의 그녀는 나를 슥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뉘시오?"
"아, 안녕하세요. 저는 형사과 소속 한서아 경장입니다. 혹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저희 아들은 이틀 전에 돌아왔어요."
"어! 잠깐만요!"
그녀가 매정하게 문을 닫으려고 하자 나는 급하게 발을 문틈으로 쑤셔 넣었다.
"그, 돌아오셨다고 해도 진술을 들어야 해서요."
"애초에 형사 나리는 맞아요? 동네에서 본 적 없는 얼굴인데."
"맞다니까요!"
"그럼 그 뭐시냐. 형사가 가지고 다니는 그거라도 보여줘야지."
나는 그녀의 말에 조작된 신분증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걸 보고도 여전히 문을 당기는 힘을 유지하는 그녀의 뒤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어, 어어. 상훈아! 아무것도 아니다."
그걸 들은 그녀는 어째선지 두려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최대한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 했다.
그러면서 당기는 힘을 더 줘서 슬슬 발이 아파올 지경이었다.
나는 그녀가 왜 이러는지 점점 궁금해졌는데, 방에서 나온 실종자였던 아들을 보자 알 수 있었다.
초고도비만인 몸매에 털이 하나도 없는 머리.
그리고 녹색이 일렁이는 듯한 눈동자의 속으로는 광기가 도사리는 게 보였다.
어머니인 그녀는 첫눈에 녀석이 자신의 아들이 아닌 걸 알아차렸겠지.
그걸 눈치챈 쇼고스는 정체를 드러내며 말하면 죽이겠다고 협박했을 거고.
그녀가 겪었을 일을 생각하자 약간 분노한 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잡고 있던 철문이 우겨지며 걸려 있던 사슬도 끊어지고 말았다.
상상도 못 한 광경에 멍해진 어머니의 어깨를 잡고 끌어당긴 나는 밑에 있을 왓슨 씨를 불렀다.
"왓슨 씨!"
"무슨 일입니까?!"
나는 그를 향해 그녀를 던지다 싶이 넘겼고, 그걸 받은 그는 당황해하며 날 바라봤다.
"일단 차에 태우고 오세요!"
쇼고스는 죽이기 어려운 괴물이니, 잠시 시간만 끌고 도망치기 위해 주문을 외우려고 했다.
하지만 금세 검은색의 점액질로 변한 녀석이 내게 달려들려고 하기에 나는 계단으로 뛰었다.
—쿵!
"아잇! 시끄럽게… 우왁?!"
"테켈리리!"
쇼고스가 돌진하면서 소화전에 부딪치자 커다란 소리가 났는데, 그게 너무 시끄러웠는지 옆집 사람이 나왔다가 쇼고스와 마주하고 말았다.
녀석은 어째선지 그를 먼저 으깨버려서 죽이더니, 아예 옆집에 들어가서 학살극을 벌였다.
"꺄아악!"
"살려주세요!"
마치 내가 사람들을 죽일 건데 이대로 도망칠 거냐고 묻는 듯한 비명 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나는 저기로 들어가서 승산 없는 싸움을 해야 할지, 아니면 이대로 도망가야 할지 고민했다.
"끄응…."
"서아 씨? 왜 그러십니까?"
"아, 왓슨 씨."
그러던 와중 실종자의 어머니를 벌써 차에다가 데려주고 온 건지 왓슨 씨가 올라왔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얼굴을 굳히더니, 안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고는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래. 사람은 살려야지.'
나는 그런 모습에 마음을 굳히고 같이 따라갔다.
복도를 피범벅으로 만들고 연분홍색의 내장을 쏟은 시체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우리들은 마주할 수 있었다.
여자아이의 얼굴을 따라한 채로 비명을 지르는 쇼고스와.
얼굴의 주인은 이미 죽은 것인지 녀석의 몸 아래로 바닥에 스며들어가는 피가 보였다.
"꺄아악! 어머? 들켰네에—?"
녀석은 얼굴을 기괴하게 구기며 점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탕! 타앙!
왓슨 씨는 그걸 보고는 총을 몇 발 쐈지만, 쇼고스는 고통스러운 기색 없이 활발히 녹색의 빛을 내뿜고 있었다.
"칫! 도망갑시다!"
"알았어요!"
내가 보호막을 설치하고 밖으로 나오자 금방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질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재빨리 계단을 타고 내려온 나는 차에 타고 빠르게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어느새 바로 뒤까지 쫓아온 쇼고스가 촉수를 휘둘러 차를 망가뜨리려는 그때, 내 팔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러자 녀석도 못에 박힌 것처럼 움직이지 못하더니 당황스러운 것처럼 빛을 내뿜었다.
그리고 내 손이 콱 쥐어지자 쇼고스도 한점으로 뭉쳐지더니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어라?"
"서아 씨가 어떻게 하신 건가요?"
"네? 아니, 그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당황스러워하며 내 팔을 바라보다가 어떤 시선이 느껴졌다.
"애옹."
"허."
"어라? 차에 고양이가 있었어요?"
"네. 제가 키우는 고양이에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면서 날 쳐다보는 것이, 아무래도 그가 날 조종해서 벌인 모양이었다.
그가 직접 죽인 것이라면 내 마력이 소모될 리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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