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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141화 (141/154)

〈 141화 〉 바다에서 불어오는 불길한 바람

* * *

해가 떨어지고 밤이 찾아올 때까지 계속해서 집을 찾아다닌 우리들은 오직 핏자국만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게 몇 번째 집이었죠?"

"글쎄요. 스무 번째는 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말 미쳐 버리겠네."

실종자들의 집을 스무 번이나 넘게 돌아다니면서 찾은 생존자가 하나도 없다면,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다음 집에도 생존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저찌 숨어서 쇼고스의 눈을 피한 누군가가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런 생각에 나는 피로한 몸을 이끌고 다음 주소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번 집도… 역시라고 해야 하나."

심해인과 쇼고스는 텔레파시로 소통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녀석을 죽일 때 썼던 마법 때문에 알아차리고 만 것일까.

나는 돌아다니면 다닐 수록 점점 식으며 굳어가는 게 보이는 핏자국을 만져 봤다.

긁으면 부스러지며 떨어지는 그것은 마치 넌 이미 늦었다고 조롱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아…. 이제 슬슬 그만두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군요."

나와 마찬가지로 핏자국을 확인하던 왓슨 씨는 고요한 집안에서 홀로 소리를 내는 벽시계를 보더니 그렇게 말했다.

밖으로 나온 우리들은 평소와는 다르게 불길한 붉은빛으로 빛나는 달을 볼 수 있었다.

저걸 보자 피로 물든 집들을 상기시켜서 기분이 더러워진 나는 세게 엑셀을 밟았다.

"어제 묵었던 호텔 앞에서 내려주면 되죠?"

"피곤할 텐데 근처에서 내려줘도 괜찮습니다."

"에이, 괜찮아요. 어차피 확인하고 싶은 것도 있었고."

"그럼 부탁드리죠."

오늘 아침에 부딪혔던 호텔리어가 떠오른 나는 바다 앞에 있을 그 호텔로 향했다.

멀리서부터 높이 솟아오른 건물이 보였지만,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지금 밤이 되긴 했지만 깨어 있는 사람도 있을 터.

하지만 호텔의 모든 방들의 불이 꺼져서 어두컴컴했다.

'설마… 아니겠지?'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불길함을 지워내며 더욱 속력을 높인 차량은 몇 분 만에 호텔 앞에 도착했다.

새벽까지도 켜져 있어야 할 로비의 불도 꺼진 채로 활짝 열린 정문은 어떤 거대한 생물의 목구멍처럼 보이기도 했다.

왓슨 씨도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안주머니에서 권총을 뽑은 다음에 차에서 내렸다.

나도 안을 수색하기 위해 그를 따라가서 호텔로 들어가자 어떤 악취를 맡을 수 있었다.

바다의 물 냄새, 썩어가는 생선의 비린내, 이외에 불쾌하다못해 역겹다고 할 만한 냄새가 마구 섞인 채로 코로 흘러들어왔다.

나는 코를 쥐며 마력을 움직여서 마스크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정화 마법을 부여하고 나서 다시 손을 떼자 신선한 공기를 맡을 수 있었다.

"휴우….왓슨 씨, 냄새가 참기 힘들면 도와 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혹시 모르니까요."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그런 모습에 감탄하며 천천히 뒤를 따라갔다.

1층에 멈춰있는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함정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계단을 올라가던 나는 난간 손잡이를 잡았다가 곧바로 손을 뗐다.

"윽, 이게 뭐야."

축축한 물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걸 손가락으로 찍어서 정화 마법의 내부로 가져와서 맡자 로비에서의 악취와 똑같은 냄새가 풍겨져 왔다.

'구와악!'

익숙해지기 어려운 역겨운 냄새가 점막을 찌르자 나는 곧바로 손가락을 빼내며 소리 없이 헛구역질을 했다.

그러면서 태연하게 숨 쉬고 있는 왓슨 씨를 바라봤다.

어디선가 적이 나타나진 않을까 경계하며 방아쇠 위에 손가락을 올려 둔 그는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2층으로 올라갈 때까지 마주한 적은 하나도 없었고, 나는 활짝 열려 있는 방문들을 볼 수 있었다.

안쪽을 살펴보면 몇몇 사람들은 저항하려 했는지 바닥에 무언가 깨진 파편들이 흩어져 있었다.

혹시 숨어 있는 사람들은 없을까 일일이 살펴봤지만, 이곳으로 들어온 괴한도 마찬가지로 생각했는지 벽장이나 화장실처럼 숨을 수 있는 곳은 모조리 열려 있었다.

2층의 모든 방을 확인한 우리들은 위로 올라가기 위해 계단으로 가다가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걸 발견했다.

그걸 본 나는 왓슨 씨와 눈으로 대화를 나누고는 곧바로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멈춰서는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르 열리자 기절한 채로 구석에 있는 사람들과 당황해하는 심해인이 보였다.

호텔리어 복장을 입은 녀석은 곧장 날카로운 손톱을 세우며 우리들을 쓰러뜨리려 했지만 상대가 나빴다.

—타앙!

커다란 총성이 호텔 전체로 울려 퍼짐과 동시의 심해인의 가슴팍에 자그마한 붉은 구멍이 생겨났다.

녀석은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줄줄 새는 피를 막기 위해 상처에다가 손을 갖다 대보지만, 피는 옷을 붉게 물들이며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뒤늦게나마 의지를 불태우며 손톱이라도 한 번 휘두르려고 한 심해인은 권총 손잡이로 머리를 얻어맞으며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호텔에 있을 모든 심해인들이 총성을 들었을 거 같은데요…?"

"그걸 노린 겁니다. 한국은 총기 소지가 불법이니 경찰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아하!"

"그렇게 녀석들이 확인하는 동안, 저희들은 이걸 타고 내려갑니다."

"왜요?"

"엘리베이터로만 갈 수 있는 비밀층이 있지 않을까요?"

"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일리 있는 그의 말에 곧바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나는 빠르게 닫힘 버튼을 눌렀다.

혹시 순서대로 버튼을 눌러야 하거나 숨겨진 버튼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내려가기 시작한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곳은 대충 속력과 시간으로 계산해봤을 때 지하 2층 정도로 예상되었다.

문이 열리자 보인 것은 기다리고 있던 심해인 두 명이었다.

사람들을 운반하기 위해 있던 건지 아무런 무기도 없이 있던 그들의 심장으로 뾰족한 얼음 송곳이 날아갔다.

—푹! 푸욱!

심해인들은 심장이 꿰뚫린 고통에 비명을 지르려 입을 열려고 했지만,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냉기에 성대가 얼어붙으며 실패하고 말았다.

그대로 쓰러진 그들을 옆으로 치우며 나는 이곳을 둘러봤다.

칙칙한 회색 콘크리트 벽에 여러 파이프가 뚫고 나와 있었고, 보일러인지 모를 어떤 기계가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옮기기 위한 수레와 깨어난 사람을 묶기 위한 용도로 보이는 밧줄도 보였다.

"킁킁, 소금 냄새가 나네요. 아무래도 여긴 바다와 이어진 모양이로군요."

"심해인들이라면 그럴 만도 하네요. 사람들을 어떻게 옮기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앞으로 쭉 나 있는 길을 따라서 걷다 보니 저기 멀리에 그림자가 보였다.

"잠깐만요."

그들에게 들릴까 왓슨 씨에게 소근소근 말하며 나는 한 번 멀리 있는 걸 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눈을 찌푸렸다.

그러자 망원경에 눈을 갖다 댄 것처럼 작게 보이던 그림자가 사람만하게 커졌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네.'

나는 이렇게 변한 몸이 신기하면서 간편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살폈다.

마법진 위에 있는 한 마리는 로브를 입고 얼굴에 주름이 접혀져 있는 것으로 보아 주술사로 보였다.

그리고 호위하듯이 총을 들고 양옆에 서 있는 둘은 아직 사람 같은 면모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완전히 변이되지 않은 혼종인 모양이었다.

저기 뒤쪽에 있는 엘리베이터와 여기는 거리가 있어서 저 주술사가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지만, 내가 지금 마법을 쓴다면 걸릴 확률이 매우 높을 것이다.

이걸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던 나는 왓슨 씨가 들고 있는 권총이 눈에 들어왔다.

"아."

"서야 양, 왜 그러십니까?"

"혹시 저기 멀리 로브를 입은 심해인이 보여요?"

"네? 누가 서 있는 것까지는 보이지만, 그게 로브를 입었는지는 잘…."

"그럼 그 권총으로 못 맞추나요?"

"글쎄요. 목표가 명확하다면 어디 있던지 간에 가능하겠지만…."

"조금만 더 가까이 가야 한다?"

"일단 그래야겠죠."

나는 다시 한 번 심해인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우리가 이곳으로 온 건 꿈에도 모른 채로 멍하니 있는 게 알아보기 힘든 거리에 있을 때에는 안전할 거 같았다.

'문제는 가까이 다가갔을 경우인데….'

이건 왓슨 씨의 시력이 좋길 빌어야 하는 걸까.

일단 나는 그들이 무슨 반응을 보이는지 계속해서 확인하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혹시 주술사가 보이면 바로 멈추세요."

그렇게 한 걸음 씩 천천히 걷다 보니 저쪽에서 우리를 본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혹시 들킨 건 아닐까 요동치는 내 감정에 따라 천장에 달린 전등도 점멸하다가 픽하고 꺼져 버렸다.

덕분에 그들이 우리들의 모습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모양인지 심드렁하게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어라? 이거 잘만 이용하면 괜찮겠는데?'

나는 걸음을 유지하면서 위에 달린 전등에 집중했다.

완전히 꺼진다면 의심 받을 게 분명하니, 빛의 세기가 약해지도록 빌면서 노려보자 안에서 스파크가 튀더니 생각대로 되었다.

그렇게 슬슬 저들의 윤곽이 제대로 보일 쯤 다가가자 왓슨 씨가 멈췄다.

그러고는 권총을 겨누더니 방아쇠를 당겼다.

—탕!

미리 보호막을 준비했거나,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만들어내는 게 아닌 이상 막을 수 없는 죽음이 주술사에게 다가 갔다.

심장에 총알을 맞고 비틀거리는 녀석의 옆에 있는 경비들은 당황해하며 이쪽을 바라봤다.

"늦었어."

그러나 그들에게는 총을 쏠 시간이 없었다.

벽을 이루던 암석이 손처럼 변해서 그들을 으깨버렸기 때문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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