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 바다에서 불어오는 불길한 바람
* * *
으적, 으드득.
혼종들의 온몸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며 바닥에 엄청난 양의 피가 쏟아지는 게 보였다.
나는 저 사체를 마법진 너머로 보이는 바다와 이어진 구멍에다가 버릴까 생각했지만, 저 아래에 있을지도 모를 심해인이 알아차릴까 봐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설마 벽을 캐려는 놈은 없겠지.'
으깨진 덩어리를 쥐고 있던 암석의 손이 다시 벽으로 되돌아가며 약간의 핏자국만 남긴 걸 제외하면 눈에 띄는 흔적은 없었다.
"왓슨 씨. 여기로 내려온 지 한 10분 정도 지났죠?"
"네. 슬슬 위에 호텔에 있을 녀석들도 이상한 점을 눈치챘을 시간이로군요."
"마법진만 간단히 기록하고 바로 도망칠까요?"
"그러죠."
나는 빠르게 심해인 주술사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곳으로 다가 갔다.
총알 한 방에 즉사했는지 미동도 하지 않으며 서서히 식어가는 녀석의 몸을 들어서 뒤로 던졌다.
팔이 변한 걸 깜빡하고 힘을 세게 줬다가 사체가 천장과 부딪치며 매달려 있는 전등들이 흔들거렸지만, 녀석의 상처가 작아서 그런지 다행히도 피가 튀거나 그러진 않았다.
"어디 보자…. 어라?"
오늘 급조했는지 갓 만든 티가 나는 마법진은 방금까지 사용했던 걸 증명하듯이 미세하게 마력이 남아 있었다.
이게 작동되지 않을 정도로 마력을 불어넣으며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하던 나는 어째선지 이걸 이해할 수 있었다.
"뭐지…?"
이 마법진이 어떤 용도인지, 마력은 얼마나 드는지, 그리고 이어진 좌표는 어디인지.
마치 내가 무슨 마법의 천재라도 된 느낌이었다.
"저, 서아 씨?"
"네? 왜 그러세요?"
"엘리베이터가 움직입니다. 아무래도 녀석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군요."
"강행 돌파라도 할까요?"
"상대방에게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니 너무 위험합니다."
"으음…. 하긴, 만약 주술사라도 있으면 큰일이겠네요."
왓슨 씨는 마법진을 관찰하던 내 어깨를 두들기더니 우리가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려 줬다.
아무래도 가만히 있기 뭐 해서 한 번 확인했던 모양인데, 덕분에 우리가 총알 세례에 벌집이 되는 꼴은 면했다.
그렇다면 여길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까.
아무리 내가 세져서 철문을 종잇장을 찢어 버리는 것처럼 뚫을 수 있다고 해도 아직 변하지 않은 부위는 연약할 것이다.
"흐음…."
그렇다면 이 마법진을 쓰는 건 어떨까?
어째선지 지금이라면 이것과 이어진 좌표를 바꿔서 탈출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저기 기절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아."
그렇다.
우리가 도망친다고 해도 주술사는 다시 좌표를 바꿔서 사람들을 옮기는 걸 계속할 거다.
'그리고 추격자도 몇몇 붙겠지.'
뭔가 최선의 방법은 없는 걸까 고민하던 나의 머릿속으로 벼락이 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
"좋은 생각이라도 떠올랐나요?"
"네. 이제 곧 오는 녀석들도 좋아할 거예요."
나는 암석 벽을 툭툭 쳐가며 미리 작업을 했다.
그리고 이곳 지하를 가득 채우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걸 들으며 왓슨 씨를 끌어당겨서 마법진 위로 올라섰다.
"너희들에게 도망갈 길은 없다!"
"엥? 무기도 없잖아?"
"그게 어쨌다는 거지? 우리에겐—"
"커헉!"
"끄학!"
—탕! 타당!
녀석이 무언가 말하려고 한 모양이었지만, 심장에 총알이 박히면서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침묵하고 말았다.
왓슨 씨는 가장 앞에 있던 세 명을 쏴서 죽이더니 방아쇠를 당기는 걸 멈췄다.
"녀석의 총알이 전부 떨어졌다!"
그러자 이제 승산이 완전히 저쪽으로 넘어갔다고 생각했는지 이쪽으로 돌격하고 있었다.
"죽이진 마라! 쇼고스가 말을 안 들어서 제물이 부족하니!"
"…뭐라고?"
녀석의 말에 잔혹한 일을 당한 일가족이 떠오르면서 감정이 격양됐다.
그러자 이 공간 전체도 나처럼 분노했다는 듯이 점점 흔들리고 있었다.
점점 흙먼지가 떨어지며 전선이 끊어졌는지 내 감정에 따라 점멸하던 전등도 픽하고 꺼졌다.
"씨앗들아, 뿌리를 내리고 피어나라."
내가 그렇게 말하자 벽 안에 심어두었던 마력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졌다.
그러더니 씨앗에서 나오는 뿌리처럼 여러 갈래로 뻗어 나오며 땅을 비집으며 움직였다.
그 결과로 점점 벽과 천장에 금이 가기 시작하며 흙먼지보다 더 큰 것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달려오던 심해인들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인지했는지 멈춰 섰지만 이미 도망칠 곳은 무너뜨려놨다.
"끄에엑!"
"으악! 내 다리!"
"이런…! 저 마녀를 잡아!"
거대한 바위에 짓눌려 우스꽝스러운 단말마를 내뱉으며 죽거나, 다리가 깔려서 으깨져 버린 녀석이 지르는 비명이 감미로웠다.
이 사태의 원흉이 나라는 사실을 누군가가 알아차리고 다시 달려들려고 했지만 내 발밑의 마법진에서 점점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떨어지는 바위 때문에 알아서 망가지겠지.'
나는 생매장 당할 녀석들에게 손을 흔들며 부디 오랫동안 고통스럽길 빌었다.
그리고 점점 강해지는 빛에 몸을 맡기자 잠시 동안의 부유감과 함께 공기가 바뀌었다.
"앗."
"여긴… 어디죠."
익숙한 책상과 명패, 그리고 구석에 있는 캣타워와 뒹굴거리는 고양이.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좌표, 바로 결사단에 있는 사무실이었다.
거기에다가 차를 두고 왔는데 어떻게 다시 가야 하나 고민하던 가운데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 서아야. 너 출장 간 거 아니었어?"
"어라. 서현아!"
그건 바로 서현이였다.
이틀 전에 나와 함께 외출할 때처럼 마법이 새겨진 코트를 입은 그녀는 사무실에 엉거주춤 서 있는 나를 보더니 의아하다는 것처럼 쳐다봤다.
"그게… 순간 이동 마법진을 썼는데, 기억나는 좌표가 여기 밖에 없어서. 아하하."
"그래? 그럼 옆에 있는 외국인은 누구야?"
"출장 가서 만난 탐정이야. 미국에 있던 테러 사건 기억나지?"
"아아, 설마 그 탐정?"
"안녕하십니까. 존 왓슨이라고 합니다."
서현이는 소문으로 들었던 사람이 눈앞에 있어서 그런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러다가 이곳에 왜 왔는지 떠올렸는지 곧장 책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서랍을 뒤적거리다가 내게 무언가를 던졌다.
"응? 지팡이?"
"간부 님이 큰 싸움이 있을 거라고 해서. 다들 표정이 비장하더라."
"그럴 만도 하겠네."
나는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지팡이를 안주머니에 넣으며 왓슨 씨를 바라봤다.
"뭐 필요한 건 없으세요?"
"혹시 총알은 없습니까?"
"…있나?"
"없을 걸."
"그렇지?"
현대 무기에 관심이 많던 한 괴짜가 떠올랐지만, 그가 주로 연구하는 부분은 크고 거대한 것들이니 총알은 찾기 힘들 것이다.
"뭐, 내일 아마 군대에서 지원을 할 테니까 그때 한 번 물어봐요."
"그러도록 하죠."
"이제 빨리 내려가자. 내가 마지막이거든."
"누구누구 있는데?"
"간부 님이랑 전투부장님."
"인선이 화려하네."
그렇게 말한 후 서현이를 따라 내려가자 검은색 승합차가 보였다.
내가 거기에 올라타자 다들 당황해하더니 침묵 속에서 출발했다.
"…제가 느낀 마력이 서아 씨의 것이였군요."
"수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글쎄요. 저는 서현 씨가 마법이라도 쓴 줄 알았죠."
운전석에 앉아 있던 간부는 내게 그렇게 말하더니 슬쩍 눈을 떴다.
그러면서 내 뒤쪽을 바라보길래 뭐가 있나 싶어서 고개를 돌렸더니 고양이가 누워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사무실에도 따라왔었구나.'
왓슨 씨가 있어서 그런지 말을 별로 하지 않아서 존재감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후아암."
"서아 씨는 오늘 고생이 많으셨겠군요. 그 많은 집들을 돌아다녔을 테니."
"네. 게다가 심해인들이 제물을 조달하는 것까지 막고 왔거든요."
"많이 피곤하시겠군요. 타고 있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 의자를 뒤로 눕혀도 괜찮습니다."
"그럼 도착하면 깨워주세요."
의자를 최대한 뒤로 눕힌 나는 서현이가 건네준 코트를 이불 삼아서 덮고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양을 셀 틈도 없이 곧바로 의식이 수면 아래로 끌어당겨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점차 몽롱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 몇 분도 지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었을 때, 눈을 뜨자 보인 것은 서서히 올라오고 있는 태양이었다.
만물을 밝히며 아침이 되었음을 알리는 붉은빛의 하늘은 점차 푸르게 변하며 안개가 낀 것처럼 멍한 머릿속을 일깨웠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꿈속 저택에서 눈을 안 떴네.'
나는 기지개를 펴다가 옆에서 자는 서현이와 뒤쪽에서 약하게 코를 고는 왓슨 씨도 발견했다.
수현 씨는 운전석에서 눈을 감고 있었는데 평소에도 눈을 감고 다녀서 그런지 자고 있는 건지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응? 한 명이 어디 갔지?'
보조석에 타고 있던 전투부장까지 있어야 할 차의 안에는 네 명뿐이었다.
나는 뻑뻑한 눈을 비비며 고개를 돌리다가 창밖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얼마나 일찍 일어났으면 저러는 걸까 생각하며 멍하니 있다 보니 점점 움직임이 느껴졌다.
"음? 어제 일찍 주무셔서 그런지 일찍 일어났군요."
"네. 저희 이제 뭐 해요?"
"조금만 더 이동해서 배에 탈 예정입니다."
"세상에나."
곧이어 전투부장이 스트레칭을 마치고 차에 올라타자 이동한 나는 멀리서도 보이는 거대한 배를 볼 수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