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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144화 (144/154)

〈 144화 〉 바다에서 불어오는 불길한 바람

* * *

세상에 있는 모든 심해인들이 이곳으로 몰려오는 것인지 공격을 계속 퍼부어도 그 수는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손을 보태기 위해 주문을 외우려고 했지만, 바다 아래에 있을 주술사들의 수작인지 날씨가 점점 험악해지면서 배가 파도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혀를 씹으면서 나의 시도는 무로 돌아가게 되었고, 입에서 느껴지는 아려오는 듯한 고통과 함께 느껴지는 피 맛에 나는 눈물을 찔끔 흘렸다.

"으으…."

"괜찮아?"

"너무 아파서 주문은 못 외우겠어."

"그럼, 우와앗!"

서현이는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거대한 해일이 배의 옆을 덮치면서 이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선체가 급격하게 기울어지면서 균형을 잃게 된 조타실의 대부분이 넘어지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기계를 조작하는 승무원들은 모두 앉아 있어서 뭔가를 잡고 버틸 수 있었지만, 선장님이라던지 서서 구경하고 있던 우리들은 거의 구르다 싶이 쓰러졌다.

"끄응…. 다들 괜찮아요?"

"전 괜찮습니다만… 세상에! 선장님!"

방호 마법이 새겨진 로브를 입은 나와 서현이, 그리고 엄청난 반사신경으로 넘어지지 않은 왓슨 씨는 멀쩡했지만 선장님은 달랐다.

어느 모서리에 머리라도 부딪친 건지 살갗이 찢어진 채로 피를 흘리는 그는 기절한 것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무슨 묘기를 부렸는지 방금 상황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은 간부와 전투부장은 그걸 보더니 재빠르게 벽에 있는 구급상자에서 붕대를 가져왔다.

그렇게 선장님의 응급 처치를 마치는 동안 정신을 차린 승무원들은 다시 레이더를 살피거나 기계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이런…! 적들의 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줄어들지 않습니다!"

"뭐라고요?!"

그 말에 내가 잠시 배의 상태를 살펴보자 심해인들의 수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방금 해일의 영향 때문인지 공급되는 마력이 이전보다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몇몇 마법사들이 버텨줘서 아예 술식이 꺼져 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결국 심해인들이 전함에 접근하는 걸 허용하고 말았다.

나는 저곳에서 일어날 학살극을 막기 위해 공격 방향을 전환하려고 했지만, 방금과는 다른 또 다른 충격이 우리들을 덮쳤다.

"으윽!"

"이번엔 또 뭐야?!"

이번엔 그래도 넘어질 정도로 강한 충격은 아니어서 잠시 휘청거렸던 나는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창가로 향했다.

그리고 고개를 내리자 바닷속에 거대한 심해인이 빠르게 가속하며 배를 둘러싼 보호막을 향해 돌진하는 게 보였다.

또다시 느껴지는 충격.

전함의 포격이 잠시 멈춘 사이에 가까이 다가온 모양이었다.

나는 저것들에게 쓸 시간이 아까워 마력을 퍼부으며 마법을 사용했다.

"후우우…."

심장으로부터 나온 마력이 팔을 타고 손 위로 뻗어 나오며 배열되는데 마치 남이 조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으며 제멋대로 움직이는 걸 내버려 두자 순식간에 마법이 완성되며 심해인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약한 움직임으로 시작된 흐름은 점점 거대해지며 배 주변의 해류를 소용돌이치게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격류에 심해인들이 점점 휘말리다가 믹서기에 넣은 고기처럼 다짐육으로 변하고 말았다.

'…뭐지? 내가 생각한 규모가 아닌데.'

어디선가 마력이라도 가져온 건지 집어넣은 것 이상의 결과를 가져온 마법은 잠시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변화로 인한 것이겠지—라고 넘기며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이는 전함에서의 학살극.

심해인뿐만 아니라 쇼고스들도 사람들을 죽이는 모습에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

나는 곧바로 바닥에 손을 대며 배의 술식에 접근했다.

"으읏!"

그러자 나처럼 술식에 간섭하려는 사람을 막기 위해 숨겨져 있던 저주들이 내 몸을 갉아먹으려 들었지만, 이전보다 높아진 항마력 덕분에 약간의 고통만 받고 넘어갈 수 있었다.

이후 느껴지는 복잡하게 얽혀진 수많은 마법들 사이에서 쓸모없는 것들에 들어가는 마력을 전부 공격용 마법진에 쏟아부었다.

여기 있는 창문으로 빛이 들어올 정도로 엄청난 크기의 빛무리가 만들어졌고, 나는 적들을 찾아 일일이 조준하고는 발사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뇌에 과부화가 걸렸는지 코피가 엄청나게 나왔지만 버틸 만 했다.

"우웁. 브웨엑!"

아니, 괜찮지 않았던 모양이다.

목에서 비릿한 냄새가 느껴지며 칼로 찌른 것처럼 쑤셔오기에 그대로 뱉었더니 검은색 피가 쏟아져 나왔다.

체내의 마력 회로가 멀쩡한 걸 보면 무리하게 술식을 건드린 대가라기보단 저주로 인한 것이겠지.

"꺄악! 서아야!"

"이런, 괜찮습니까?!"

할 일이 없어서 쓰러진 선장님을 간호하던 서현이와 왓슨 씨는 내가 토혈하는 걸 보자 비명을 지르며 다가왔다.

'수현 씨와 전투부장은… 나간 모양이네.'

어느새 사라진 두 사람의 부재를 느끼며 나는 잠시 고통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잠시 쉬려고 했지만, 이놈의 세상은 나의 불행을 바라는 모양이다.

"저, 저게 뭐야…?"

"힉, 히히히힉!"

"종말이, 바다의 종말이 찾아왔다!"

전함이 거대한 팔에 서서히 들려지며 꿈속에서 봤던 존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는 급하게 서현이와 왓슨 씨의 시야를 가려서 둘이 광기에 빠지는 걸 막을 수 있었지만 다른 승무원들은 아니었다.

단단한 책상 모서리에다가 자기 머리를 찧으며 자해를 하거나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그들을 가만히 볼 수 없었던 나는 수면 마법을 사용했다.

"서아야, 나 왜 이렇게 졸리…지…?"

"윽, 설마…."

—풀썩.

그뿐만 아니라 서현이와 왓슨 씨도 재운 나는 점점 고통이 사그라지는 걸 느끼며 천천히 일어났다.

이쪽을 바라보는 다곤과 눈싸움을 하다가 천장을 뚫고 밖으로 나오고는 나는 하늘을 바라봤다.

그러자 하늘을 가득 메우던 먹구름이 점차 흩어지며 청명한 하늘을 보여줬다.

"……."

하지만 따스한 빛을 뿜던 태양이 점점 어둠에 잡아먹히더니 별들이 나타나며 밤하늘처럼 변하고 말았다.

그리고 점점 어두워지는 시야에 나는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걸 느끼며 침잠하는 느낌에 순응했다.

***

'…여기는?'

눈을 뜨자 보인 것은 후드 안에 있는 패트리 접시에다가 스포이트로 무언가를 떨어뜨리는 내 손이었다.

어제 야근하고 늦게 자서 피곤했는지 실험하다가 졸았던 모양이다.

마법사가 되는 꿈이라니.

어린애도 아니고 이게 뭔가.

빠르게 실험을 마무리한 나는 잠에서 깨기 위해 옥상에 올라가서 신선한 바람을 쐬야겠다고 생각했다.

"서현아, 나 잠깐만 옥상 좀 갔다 온다."

"엉, 그려."

반대편에서 다른 실험을 하고 있던 서현이는 대충 대꾸하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한산한 복도를 나와 계단을 올라가서 금방 옥상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이나 휴식 시간이 아니라 그런지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이곳은 바람이 쌩쌩 불었다.

곧바로 난간으로 다가가서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하늘을 바라봤다.

"어라?"

그런데 하늘이 점점 검어지는 게 아닌가?

밤이라도 다가온 것처럼 점점 별로 가득 차던 하늘은 점점 무너지듯이 내려오는 것처럼 보였다.

"어, 어어…?!"

아니, 정말로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의식이 암전됐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우주 공간을 표류하고 있었다.

"으으, 꿈속의 꿈인가? 도대체 뭐였지…."

호접지몽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평범한 연구원인지, 결사단의 마법사인지 의문이 들은 나는 지금 입고 있는 옷을 확인했다.

"응. 로브네."

그러자 새하얀 연구복 대신 결사단의 로브가 보였다.

"그런데 방금 꿈 같은 건 뭐였을까…? 여긴 도대체 어디고."

주변을 둘러보자 우주 공간처럼 새까만 배경에 별들이 박혀 있는 게, 이전에 라니아의 본체와 만났던 곳이 떠올랐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그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다른 공간인 듯했다.

"으음,저기 문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네.…문이라고?"

눈을 비비고 다시 봤지만 갈색의 평범한 문은 여전히 존재했다.

나는 헤엄치는 것처럼 팔을 휘두르며 그쪽을 향해 다가 갔다.

그리고 손잡이를 돌리고 잡아당기자 내부가 보였다.

의자 두 개와 탁자, 그리고 벽을 가득 메운 책들까지.

자그마한 도서관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왼쪽 의자에 앉아 있는 건 어떤 사람이었다.

무료한 표정으로 책을 읽어나가던 그는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이쪽을 바라보더니 여기 앉으라는 것처럼 손짓했다.

적대적으로 보이진 않아서 순순히 의자에 앉자 그가 입을 열었다.

"이런 곳에 멀쩡한 인간이라니, 신기하군요. 당신은 누구십니까?"

"어… 저는 한서아라고 하는데요."

"이런, 먼저 제 소개를 했어야 하는데. 저는 이디안의 한 일원, 부끄럽지만 이스의 위대한 종족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그게 뭔데요."

"모르시다면 됐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까?"

"그냥 정신 차리니까 여기던데요?"

"흐음."

그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금방 내게 질문했다.

"그렇다면 제게 질문 같은 건 없습니까?"

"이 공간은 뭐예요?"

"아하, 좋은 질문입니다. 여긴 워커 시공간 방정식을 이용해서 만든—"

괜히 물어본 걸까.

내가 모르는 공식들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하는 걸 듣는 건 꽤나 고역이었다.

하지만 괜찮은 수확도 있었다.

"그러니까… 당신의 이전 몸이 수명을 다해가고 있어서 정신을 전이했다고요?"

"그렇습니다."

"이후에 차원의 틈에 있는 대도서관으로 돌아가려고 준비하던 와중에 재앙이 터졌고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분명히 미래에 이런 일이 일어났던 적은 없었는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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