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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145화 (145/154)

〈 145화 〉 바다에서 불어오는 불길한 바람

* * *

"…미래라고요?"

"네. 저희들이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그럼 그, 뭐시냐. 타임 패러독스 같은 건 안 일어나요?"

"그것과 관련된 이론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아뇨."

어차피 들어봤자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도 어려울 테니, 나는 이 우주 같은 공간에 대해 질문하기로 했다.

"제가 궁금한 건 한 가지에요. 여기 바깥의 공간이 무엇인지."

"방금 이야기한 거, 기억나십니까?"

"우리들은 시공간 따위 상관 없다는 자랑이요?"

"예, 뭐. 자랑은 아니지만…."

그는 멋쩍은 것인지 머리를 긁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법칙을 무시하는 존재가 몇몇 있습니다."

"그게 누군데요."

"우주의 바깥, 외우주에 기거하는 외신들."

"그럼 여기는 그 외신의 손바닥 위라는 건가요?"

"예? 아뇨. 그것보다 더 끔찍한 장소죠."

"도대체 어디길래 그렇게 뜸을 들여요?"

"부디 듣고 미쳐버리지 않길 바라겠습니다. 여긴… 외신의 내부, 간단하게 뱃속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나는 그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난 왜 이곳으로 이동된 걸까.

지금 이상한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야가 깜깜해지기 전에 뇌가 과부화돼서 코피를 흘리기도 했고, 저주 때문에 썩은 피를 토했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꿈속에서 나타난 그레이트 올드 원으로 인해서 저택이 파괴돼서 그런지 어젯밤도 일반적인 꿈을 꿨고.

"아얏!"

나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꿈인지 확인하는 방법, 바로 볼을 세게 꼬집어 봤다.

그러자 찌릿한 느낌이 볼을 타고 흐르면서 얼얼해졌다.

'음… 이걸론 뭔가 부족한데.'

생각해 보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꿈은 얼마든지 있었다.

누군가의 저주로 인해 악몽 속에 갇혀버린 상황이라던가.

어쩌면 배의 술식을 보호하는 것 중에 그런 종류의 것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나는 마력을 움직여 손바닥 위로 자그마한 얼음 조각을 만들어냈다.

"잠시만요."

팽이처럼 생긴 그걸 탁자 위에다가 돌린 후 잠깐 쳐다보자 휘청거리던 그건 금방 쓰러졌다.

"으음…."

"리얼리티 체크로군요."

"네. 아무래도 현실인 모양이네요."

나는 한숨을 쉬며 이곳으로 떨어진 이유를 한 번 추리해봤다.

'내가 기절하고 다시 눈을 뜨기 전에 이상한 꿈을 꿨었지.'

만약 평범한 삶을 살았더라면 그랬을까.

마법과 관련된 것이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 없었던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모습이 대학원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물론 설비가 새로 설치한 것처럼 깨끗한 걸 보면 과거의 기억과 착각한 건 아닐 거다.

그 꿈의 마지막에서 무너지던 밤하늘은 도대체 무엇인가.

머리가 어째선지 아팠다.

나는 더 이상 생각하지 말라는 것처럼 꼬챙이로 머리를 찌르는 듯한 고통에 생각을 돌렸다.

'그리고 바다에서 나온 그레이트 올드 원을 상대하려고 나왔을 때, 해가 사라지고 밤하늘로 변했지.'

그렇다면 라니아가 무모하게 덤비려 드는 날 안전한 곳으로 보낸 것일까?

'외신의 뱃속은 안전한 곳이 아니지 않나? 자기 뱃속에 넣기라도 한 것도 아닐…테고?'

어라?

나는 잠시 멍해진 머리를 휘휘 젓고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문으로 다가가 벌컥 열자 광활하게 펼쳐진 우주가 보였다.

그러자 보이는 눈에 익은 풍경.

저기 멀리서 반짝이는 별들이 마치 인사하는 듯했다.

***

아래를 내려다보자 본체의 것처럼 밤하늘처럼 별이 박힌 새까만 팔이 보였다.

하지만 봉긋하게 튀어나온 가슴이 이 육신이 여성체라는 걸 알려줬다.

'서아의 몸이니까 당연하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영혼이 서서히 변해감에 따라 함께 변하는 그녀의 육체는 내가 강림하기 좋은 그릇이었다.

물론 강제적으로 들어갔다간 아예 정신이 무너질 테니 여러 조치를 취했지만 말이다.

나는 화신체보다도 제약이 심한 육체를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팔을 움직여봤다.

'뭔가 갑갑하네. 빨리 끝내고 다시 나와야겠다.'

속전속결로 끝낼 생각을 한 나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가만히 있던 별들이 움직이며 점점 어떤 형상을 만들어갔다.

가만히 멀뚱멀뚱 서서 구경하던 다곤은 그걸 보더니 서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가 들고 있는 전함만한 물의 송곳이 솟아오르더니 나를 향해 찔러왔다.

'지금 가능한 최대 출력이 어느정도일려나?'

나는 그걸 막아낼 보호막을 만들어내기보단 한 번에 얼마만큼의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

—퍼어엉!

손을 휘둘러 마력을 터뜨리듯이 방출하자 거대한 물의 송곳은 산산조각이 나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하지만 다곤이 손짓하자 물방울끼리 점점 뭉치더니 여러 크기의 비수가 되어 또 다시 내게 날아왔다.

그걸 막기 위해 삼중으로 보호막을 만들자 어찌저찌 막아낼 수는 있었다.

'저걸 회전시켜서 관통력을 높인 건가? 견고하게 만들었는데 뚫고 들어왔네.'

이렇게 공격만 맞아주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기에 난 반격할 준비를 하려 했다.

나를 완전히 가려버리는 그림자가 보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라?"

고개를 들어올리자 다곤이 전함을 양손으로 휘두르려는 것처럼 높이 든 모습이 보였다.

이대로 피해버리는 것이 가장 간단한 선택지였지만, 아래의 배에는 나를 섬기는 결사단원들이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쯧."

질량이 질량이니 만큼 보호막을 만들어봤자 깨지는 건 금방일 거다.

그렇다면 저걸 완전히 박살내야 할 텐데….

'좀 새로운 마법을 써 볼까?'

나는 내게 떨어지는 강철 덩어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것에 칠해진 페인트가 벗겨지며 점점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부패의 바람 주문을 변형시켜 금속을 빠르게 부식시키도록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괜찮은 것처럼 보였다.

완전히 녹이 슬어버린 전함은 다곤이 휘두르는 힘 만으로도 부스러져서는 내게 닿기도 전에 이리저리 흩어졌다.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지만, 대부분은 이미 죽어있어서 굳이 잡아주진 않았다.

어차피 내가 다가가기만 해도 미쳐버릴 테니.

슬쩍 하늘을 올려다 본 나는 얼마나 시간을 끌어야 할지 가늠했다.

'대략 5분 정도이려나? 그런데 이렇게 싸우는 거 재미 없네. 그냥 제약만 걸어두고 싸우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차라리 본체로 현현해서 압도적인 힘으로 쓸어버리는 편이 더 재밌을 것 같았다.

'다음에는 서아가 힘을 제어하도록 해 볼까?'

쓸데 없는 상상을 하면서 가만히 있자 다곤은 공격을 이어나갔다.

방금 내가 배를 지키는 걸 보고 이게 내 약점이라고 생각한 건지, 녀석은 이 근방의 해류를 장악하고는 바닷물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손을 휘두르며 내가 마법을 사용하려는 걸 방해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는 듯한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녀석과 나의 크기 차이 덕분에 사람의 손을 피하는 모기의 입장이 된 나는 멀찍이 뒤로 이동하고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녀석으로 하나 준비했다.

마력이 차오르는 속도보다 빠져나가는 속도가 더욱 빨라서 마력의 총량이 적은 이 육체는 마법을 실패할 뻔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성공했다.

"별아, 떨어져라."

내가 그렇게 명령하자 하늘에서 꼬리가 달린 혜성이 날아더니더니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스스로를 불태우던 운석은 다곤에게 명중하며 그대로 바다 아래로 끌고 들어갔다.

—투콰아아앙!

그러면서 생긴 충격파로 인해 해일이 생기면서 결사단의 배를 뒤덮었지만, 보호막 덕분에 휘청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아까의 여파로 바다 아래에 있던 심해인들은 피곤죽이 되어서는 바다에 둥둥 떠다녔고, 쇼고스들도 버티질 못 했는지 기름이 뜬 것 마냥 둥둥 떠있었다.

"이 정도로 죽진 않았을 텐데."

"■■■■■■■—!"

말이 씨가 됐는지 상반신의 절반 이상이 날아간 녀석은 분노와 두려움이 섞인 모순된 표정을 지으며 다시 튀어나왔다.

터지고 부서졌던 뼈와 근육들이 빠르게 재생되며 그 위를 단단한 비늘이 뒤덮는 모습이 생선 손질을 역재생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놀이는 이제 끝이다.

방금 공격으로 인해 녀석이 장악했던 해류도 잠잠해졌으니 내가 사용할 시간이었다.

"이것만 버티면 인정해주마."

일단 결사단의 배를 마법으로 들어올려서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도록 한 다음, 해류를 움직여서 다곤을 중심으로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녀석도 마력을 움직여서 내가 만든 것의 속도를 줄이려고 하길래 나는 크라켄의 다리처럼 생긴 물줄기로 녀석의 상체를 아래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금방 아물어서 아직 여린 비늘들이 뜯겨져 나가며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고통에 울부짖는 모습이 불쌍해보였지만, 아직 공격이 하나 더 남아있었다.

"음, 이제 완성됐네."

하늘을 올려다 보자 마법진처럼 배치된 별들이 보였다.

별자리를 그리는 것처럼 하나하나 선이 이어지더니 완성된 그것으로부터 거대한 빛의 기둥이 내려왔다.

—쿠우우우웅!

잠시 팔로 눈을 가리고 빛이 사그라들 때까지 기다리자 거대한 구멍이 보였다.

싱크홀처럼 깊이 파인 저 아래로 움찔대는 다곤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어떻게든 버틴 모양이었다.

그곳으로 바닷물이 들어가자 점점 재생하는 걸 보며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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