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 꿈속에서 꿈틀거리는 끔찍한 광기
* * *
재생을 끝마친 다곤은 아직까지도 바닷물이 쏟아지고 있는 거대한 구멍에서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인사하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수해서 남쪽으로 향했다.
그걸 본 다른 딥 원들도 처음에는 당황해하더니 일사분란하게 바다 깊은 곳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들이 헤엄치는 걸 바라보다가 갑갑한 몸에서 빨리 나오기 위해 저기 멀리 있는 결사단의 배로 이동했다.
그리고 내 본체처럼 변해버린 서아의 몸이 점점 원래대로 돌아오는 걸 구경하며 고양이의 화신체로 돌아왔다.
내가 그녀에게 강림하면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멍하니 있던 서아는 파도에 휘청거리는 배 덕분에 넘어지고 말았다.
"아이고! 으으, 내 허리…."
"그렇게 정신을 팔고 있으니 당연하지."
"끄응…. 지금 이건 현실인가?"
"무슨 헛소리냥."
서아는 허리를 두들기다가 이상한 소리를 내뱉었다.
혹시 내가 그녀의 몸에 강림하는 과정에서 정신에 무언가 영향이라도 끼친 걸까.
마법으로 자그마한 얼음 팽이를 만들어낸 서아가 그걸 돌리길래 나는 순간 장난기가 돌았다.
보기 힘들 정도로 얇은 마력의 실을 뽑아서 데구르르 돌아가는 팽이가 넘어지지 않도록 만들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변해가는 서아의 표정이 볼 만했다.
"뭐지…? 정말 꿈인가?"
"그걸 속냥?"
"어라? 으엥?"
내가 마력을 더 불어넣어 실이 보이도록 만들자 서아는 손을 부들대더니 나를 향해 휘둘렀다.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이 뒤로 스르르 이동한 나는 배를 이루는 철판이 일그러지며 손바닥 자국이 남은 걸 힐끗 보고는 서아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것처럼 뻔뻔하게 눈을 마주치는 것이 놀리는 맛이 줄어들었다.
나는 혀를 차면서 입을 열었다.
"칫, 아무튼 이제 돌아가자꾸나. 상황도 끝났으니."
"…그러네요."
서아가 배를 나오면서 뚫은 천장의 구멍을 통해 우리들은 조타실로 돌아갔다.
아직 수현과 전투부장은 아래에서 뭘 하고 있는지 모든 이들이 기절해 있는 이곳은 매우 조용했다.
나는 광기에 빠졌던 승무원들이 다시금 자해라도 할까 싶어서 그들을 일일이 묶는 서아를 구경하며 가만히 있었다.
***
제임스가 쓰러지고 나서 며칠이나 지났을까.
이 저택에서의 유일한 친구가 없어져서 무료했던 나는 읽고 있던 마도서를 덮었다.
"에휴…."
이브와는 나이 차이도 많이 나며 성별도 다르니 마법과 관련된 게 아니면 그다지 통하는 이야기도 없었고, 이곳의 사용인들은 사람에게서 중요한 것이 빠진듯한 인형 같았다.
저택의 주인인 라니아 님은 어째선지 가까이 다가가면 위험할 거 같다는 직감이 느껴져서 먼저 말을 걸기도 힘들고 말이다.
"그나마 너가 괜찮은 말동무이려나."
"인간, 왜 그럼?"
외국어를 이상하게 번역한 것처럼 말하는 게 단점이긴 했지만, 얘가 이야기하는 건 대부분이 내가 모르는 것들인지라 흥미로움이 불편함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진 못했다.
불의 정령이 지식이 무한히 솟아나는 샘이 아닌 이상 알고 있는 것에 한계가 있을 테니, 시간이 지날 수록 내게 얘기할 만한 게 점점 줄어들었다.
이러다간 지루해서 죽어버릴 것만 같았던 나는 백설공주처럼 잠든 제임스를 깨우기 위한 주문을 찾아다녔다.
처음에는 수면 마법을 뜯어고쳐서 효과가 반대로 발동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제임스의 눈만 움찔거리도록 만들었을 뿐이었다.
다음으로 나는 꿈과 관련된 책을 읽어봤다.
혹시 드림랜드에 갇힌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곳에서의 아득히 기나긴 시간도 현실에서는 그저 찰나와도 같다고 적혀있으니 이건 아닐 것이었다.
그렇게 여러가지 가능성을 도출하다가 가장 높은 확률의 것은 이거였다.
스스로를 꿈속에다가 가두는 것.
평소에 하던 걸 보면 튼튼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을 것만 같은 그가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기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정령아, 만약 내가 위험해보이면 손을 지져서라도 깨워줘."
"알겠음."
나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서 보험을 만들고 난 후, 천천히 분필로 마법진을 그려나갔다.
그러고는 그 위에다가 제임스를 올려놓고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점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에 나는 의자에다가 편안히 몸을 기대고는 입을 멈추지 않았다.
서서히 사지의 단말로부터 감각이 사라지고, 주문을 끝마치자 의식이 누군가가 끌어당기는 것처럼 쭈욱 늘어나며 아득해지는 것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자 어두컴컴한 어딘가에 나는 서 있었다.
이곳이 만약 악몽이라면 어떤 괴물이 튀어나올지도 모르니 광원도 없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똑바로 걷는 게 맞겠지?'
이런 어둠 속이라면 방향 감각이 이상해져서 한쪽 방향으로 빙빙 돌지도 몰랐다.
차라리 벽이라도 만져졌다면 그걸 따라서 갔을 텐데.
안타까움에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난 걸음을 이어갔다.
그렇게 몇 분 정도 지났을까.
희미한 빛이 내 눈에 들어왔다.
혹시 심해어처럼 먹이를 사냥하기 위한 미끼는 아닐까 의심하며 조심스레 다가갔지만, 그게 발광석이란 걸 알아차린 나는 헛웃음만 지었다.
'너무 긴장했나?'
어두운 주변 환경만 보고 악몽이라고 지레짐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일단 나는 길을 표시하는 것처럼 바닥에 박힌 발광석을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또다시 걷기 시작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갈림길을 발견한 나는 직감을 따라 먼저 왼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점점 길을 따라가면 갈수록 짙어지는 피냄새에 나는 언제든지 공격에 대비할 수 있도록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뭐야.'
하지만 저기 멀리 컨테이너처럼 보이는 구조물의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에 비친 시체 두 구를 보자 나는 급하게 달려갔다.
혹시 그게 제임스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싸늘하게 식은 시체의 얼굴이 보이도록 돌리자 괴상하게 생긴 그것이 보였다.
분명히 사람의 것이 베이스긴 한데, 물고기와 양서류의 얼굴도 약간이지만 섞여있는 거 같았다.
'심해인은 아니고, 혼종인가?'
나는 제임스가 이런 일을 겪었는지 생각하다가 그의 과거도 제대로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부터 차근히 알아가면 된다고 혼잣말을 한 나는 옆에 쓰러진 녀석도 한 번 확인했다.
'목이 꺾어져서 죽었군. 표정을 보면 자기가 죽었다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야.'
방금 확인한 시체에는 옷을 들춰보면 타박상의 흔적과 뼈가 부러진 곳이 있었으니, 이 녀석을 먼저 암살했다가 쓰러지는 소리에 들켜서 싸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제임스였다면 소리가 나지 않도록 천천히 내려뒀을 텐데.
사람을 처음 죽이는 것에 망설임이라도 있던 걸까?
과거라도 볼 수 있으면 모를까, 이미 지난 결과물을 보고 추리한 것으로는 진실을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면 되겠지.'
나는 시체를 내버려두고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아 기습당할 걱정 없이 문을 벌컥 연 나는 발에 채이는 가방을 살펴봤다.
쓸모 없는 잡동사니들과 이것의 주인이 누군지 알려주는 신분증과 여권.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닐까 기억을 뒤져가며 사진과 대조해봤지만 모두 모르는 사람의 것들이었다.
'그런데 모두 국적이 다르네. 여권이 있는 걸 보면 여행이라도 왔다가 납치당한 건가?'
그렇다면 제임스가 어디 있을지 얼추 감이 잡혔다.
사람들을 이끌고 이곳을 탈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겠지.
하지만 그가 스스로를 꿈에 가둔 것을 보면 결국 실패하고 만 게 아닐까.
'그럼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은 한 가지겠네.'
그가 탈출하는 것을 도와서 트라우마를 극복하도록 만드는 것.
그걸 위해서는 빨리 제임스와 합류하는 게 좋아 보였다.
나는 서둘러 컨테이너를 나와 갈림길이 나올 때까지 뛰었다.
그러고는 내가 안 갔던 방향으로 조심스레 향하기 시작했다.
아까와 비슷한 시간 동안 걷자 나타난 또 다른 컨테이너로 들어가자 끔찍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사람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밧줄에 묶인 채로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갗이 벗겨진 것인지 새빨간 근육이 겉으로 드러나서는 내장과 피를 줄줄 흘리며 죽어가는 비명을 지르는 꼴이 끔찍했다.
저런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있는 건지 의문스러워하던 나는 뒤로 발걸음을 치다가 뒷꿈치를 문틀에 부딪치며 순간 균형을 잃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손에 닿는 아무거나 잡고 그쪽으로 몸을 당기자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터어엉!
철문과 몸이 부딪쳐서 난 소리에 시체처럼 보이는 것들이 머리로 추정되는 걸 이쪽으로 돌렸다.
그러더니 더욱 꿈틀거리면서 내게 다가오려고 하기에 나는 도망치고 말았다.
발광석 길을 따라서 숨이 찰 정도로 뛰어온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아래에서 올라오는 은은한 빛과는 다른 불빛이 보이는 게 아닌가.
불에 이끌린 나방처럼 그걸 향해 천천히 다가가자 또 피냄새가 맡아져왔다.
제임스가 죽인 혼종이겠거니—하고 여기저기 횃불이 깔린 의식장으로 보이는 곳으로 가다가 무언가 발에 밟혔다.
—잘그락.
허리를 숙여 이게 무엇인지 살펴보니 엄지 손톱만한 비늘이었다.
이런 게 수십 개가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시체에게 다가가 확인하자 턱 아래에 남은 비늘과 똑같았다.
이렇게 잔인하게 죽일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기도 잠시.
저기 어둠 속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 제임스?"
그건 바로 내가 찾고 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단 한 가지만이 담겨져 있었다.
광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