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 〉 꿈속에서 꿈틀거리는 끔찍한 광기
* * *
눈에 핏발이 가득 선 그의 눈빛은 사람의 것이라기 보단 짐승의 것이었다.
그것도 흉폭한 맹수의.
"크아아!"
"큭! 정신차려!"
이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는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는 달려들었다.
그러면서 명치나 인중과 같은 급소를 노려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 이게 정말로 광기에 빠진 사람의 판단력인가 싶었다.
만약 나였더라면 시야가 흐려지고 죽여버리겠다는 일념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서 팔만 붕붕 휘둘렀던 거 같은데 말이다.
마법을 사용할 틈도 주지 않아서 그를 기절시킬 방법은 물리적인 것 밖에 없었기에 나는 휘둘러져 오는 주먹에다가 손을 갖다 대고 옆으로 흘리면서 붙잡으려고 했다.
"어라?"
하지만 역으로 손목이 잡혀버린 나는 공중으로 뜨더니 등에 엄청난 충격이 느껴졌다.
"커헉!"
페에 있는 공기가 모조리 빠져나간 것만 같은 느낌에 정신이 아득해지며 금방이라도 기절할 거 같았지만 어떻게든 정신을 붙들었다.
그러는 사이 제임스는 내 위에 올라타 마운트 자세를 취하고는 주먹을 높이 치켜들었다.
—쿵!
그리고 내가 재빠르게 만들어낸 보호막과 주먹이 부딪친 건 순식간이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안면이 함몰되었을 거라고 생각이 들자 간담이 서늘해졌다.
나는 이제 안심하고 주문을 외우려 했지만, 제임스는 포기를 모르는지 계속해서 주먹을 내리쳤다.
살갗이 찢어지고 피가 나며 뼈가 부러져도 계속.
그걸 보고만 있을 수 없던 나는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저항하는 힘이 거세긴 했지만 마법이 완성되자 기절하면서 금방 힘이 빠졌다.
나는 내 위로 널브러진 제임스를 옆으로 치운 다음 일어섰다.
"어휴,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아직까지도 저릿저릿한 허리를 툭툭 치며 나는 일단 그의 정신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마법을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느껴지는 섬찟한 느낌에 보호막을 전개하며 뒤로 뛰었다.
그러자 날카로운 발톱이 삐죽빼죽 튀어나온 거대한 앞발이 내 상체가 있던 자리를 지나갔다.
"무슨…!"
발톱이 내게 스칠 정도로 많이 길었지만, 보호막이 있었기에 안심하고 녀석을 공격하려고 준비하던 나는 봉변을 당하고 말았다.
가슴팍에 생긴 세 갈래의 기다란 상처를 꾹 눌러 지혈하면서 방금 일어났던 일을 떠올렸다.
'이건… 공간을 뛰어넘은 건가?!'
녀석에게 마법을 무효화하는 능력이 있었다면 보호막에 발톱이 닿는 순간 흩어지거나 깨져버렸을 터.
하지만 방금 내 눈에 보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통과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방어를 무시하는 녀석의 능력에 경악하면서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를 떠올렸다.
'그럼 피하면 그만이야.'
상대가 방패마저 뚫어버리는 창이 있다고 한다면, 방패를 버리고 회피하면 된다.
물론 저 정도로 거대한 괴물과 싸워보는 건 처음이라 어느 정도의 속도를 내는지 모르겠지만—
"뭐야. 왜 내 팔이…?"
어떠한 마법도, 심장에 있는 불꽃도 꺼내지 않았는데 갑작스레 타오르는 팔을 보자 많이 당황스러웠다.
일단 이걸 꺼버리기 위해 손으로 툭툭 치거나 흔들어봤지만, 오히려 어깨로 올라오더니 온몸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예전에 화염 마법에 미숙했을 때 느꼈던 작열감은 전혀 없이 그저 고고하게 타오르는 불꽃은 익숙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점차 온몸이 나른해지며 눈을 감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간. 인간, 일어나라."
"으음…."
꿈에 들어가기 위해 잠드느라 비몽사몽했던 나는 흐릿해진 눈을 비비며 정신 차리려고 했다.
그런데 자그마한 무언가가 내 가슴팍을 때리자 느껴지는 고통에 나는 강제로 각성하게 되었다.
"으윽!"
"인간, 괜찮음?"
"아니."
어째선지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쓰라림에 손으로 만져보자 옷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고개를 내리자 검붉게 물든 게 보여서, 혹시나 싶어 들춰보자 꿈에서 난 것과 똑같이 세 갈래의 기다란 상처가 보였다.
"정령아, 이거 때문에 네가 깨운 거야?"
"맞음."
"꿈에서 난 상처가 현실에서도 똑같이 생기다니. 이건 평범한 악몽이 아니잖아?"
이건 누군가가 걸어둔 마법인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 원흉은 대체 누구일까?
'일단 이브는 아니야.'
가끔씩 제임스의 병문안을 오긴 했지만, 항상 내가 같이 왔었고 특별히 마력을 움직이는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택의 시종들일까?
마법을 쓰는 모습은 본 적이 없지만, 마력을 느낄 수 있는 걸 보면 가능성은 있었다.
게다가 하루의 두 번씩 몸을 닦아주러 오기 때문에 그 사이에 무언가 저질렀을지도 몰랐다.
'아니, 그건 아닌가.'
제임스는 이미 악몽 속에 갇혔는데 왜 다시 마법을 걸어두겠는가.
현상 유지를 위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내가 시종이 간호하던 와중에 찾아왔을 때에는 그다지 수상한 점은 없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단 한 명 밖에 없다.
이 저택의 주인, 라니아 님.
마법의 경지가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그가 가진 힘이 점점 까마득해 보이니 이런 마법은 간단하게 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대체 무슨 이유로?
제임스가 원한이라도 살 만한 일을 저지르기라도 했던 걸까.
"후우…. 일단 치료나 해야겠다."
나는 손을 뻗어서 탁자 위에 장식된 화분을 가져왔다.
거기에 싱그럽게 자라나 있는 식물의 녹색 이파리를 하나 잡았다.
그리고 짧게 주문을 외우자 가슴팍의 상처가 점점 아물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간의 흉터만 보일 정도로 완치됐을 때, 내가 잡고 있던 식물은 푸릇하던 색을 잃고 갈색으로 시들었다.
"쯧, 완전히 아물진 않았네. 상처가… 응?"
나는 잠시 의자에서 일어나 마법진 위에 누워있는 제임스를 살펴봤다.
상처나 흉터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
단단한 보호막을 마구 내려쳐서 부러진 손가락도 멀쩡했다.
'나만 다치는 건가? 내가 침입자라서?'
다시 의자에 앉아 팔걸이를 톡톡치며 고민하던 나는 다시 꿈속에 들어가서 확인하기로 했다.
등을 편하게 기대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 나는 옆에 둥둥 떠있는 정령을 쳐다봤다.
그러자 믿으라는듯이 춤추는 것처럼 보이는 움직임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시 몰려오는 수마에 몸을 맡기며 난 눈을 감았다.
"끼요옷!"
"…응?"
그리고 눈을 뜨자 보인 것은 의문의 남성이었다.
온몸을 검은색 천으로 꽁꽁 감싸고는 한쪽 손으로는 일본도를 든 모습이 마치 닌자 같았다.
왜 제임스의 꿈에 저딴 게 존재하나 싶었지만, 예전에 만났던 강적을 무의식적으로 투영한 건 아닐까 추측했다.
"내가 무슨 전문가도 아니고. 에휴,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길래 닌자도 만나는 거야?"
"넌 못 지나간다!"
녀석은 마찬가지로 검게 칠해져서 광택이 없는 검을 역수로 쥐며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나는 최대한 소리에 집중하며 녀석이 어느쪽으로 다가오는지 알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닌자답다고 해야 할지, 숨소리는 물론 발소리마저 완전히 죽여버린 그의 기척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보호막을 전개하며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도록 긴장하고 있던 나는 몇 분이 지나도록 가만히 있었다.
'뭐지…? 혹시 도망친 건가? 어두워서 전혀 알아볼 수 없네.'
시야가 확보되지 않으니 너무 불편했던 나는 잠시 손바닥 위로 불꽃을 만들려고 했다.
—채앵!
그러는 순간 내 뒤쪽으로 나타난 닌자가 검을 휘두르더니, 막히는 걸 보고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다행히도 이전의 괴물과는 다르게 특수 능력이 없는 것에 안심하며 불꽃을 만들어서 공중에 떠올렸다.
그러고는 점점 크기를 키우며 빛이 닿는 범위를 늘리자 순간 빠르게 움직이던 그림자가 보였다.
사람이 아무리 빠르더라도 번개보다는 느릴 터.
손바닥 위에서 발사된 벼락 한 줄기가 그림자에 명중했다.
바닥을 구르며 쓰러진 닌자에게 다가간 나는 발로 툭툭 건드려 보며 죽었는지 확인했다.
그러자 녀석은 천천히 일어서더니 두건을 벗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얼굴을 보여주려 하나 싶었지만, 녀석의 생각은 그런 게 아니었다.
"…씨발."
"내 본모습을 드러내게 하다니,엄청난 수치….용서하지 않겠다…!"
두건으로 감싼 것처럼 보인 머리는 사실 촉수들이 뭉쳐있던 것이었고, 녀석은 이제 숨길 생각도 없다는 것처럼 옷소매에서도 촉수를 꺼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는 장난이었다는 듯이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녀석이 촉수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보호막에 균열이 생겼고, 그 틈으로 검을 쑤셔넣으며 날 찌르려고 했다.
"큭!"
찔린다고 해서 바로 죽진 않을 테니 정령이 깨워주겠지만, 이곳으로 돌아온 목적인 제임스도 만나지 못하고 도망치기는 싫었다.
나는 심장 속에 잠들어 있는 불꽃을 천천히 깨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점차 몸이 후끈해지는 게 느껴지며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힘이 느껴졌다.
녀석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잠시 뒤로 빠지며 날 살펴봤다.
그리고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수리검과 표창을 던지며 견제하려 했다.
하지만 그걸 본 내가 불길을 내뿜자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쇳물로 녹아버리고 말았다.
"후우우…."
거기에 그치지 않고 나는 아예 주변을 완전히 불바다로 만들어버리며 공격하기 용이하게 환경을 바꿨다.
"그럼 2차전을 시작해볼까?"
나는 화염구와 불로 이루어진 무기를 만들어내며 닌자에게 겨누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