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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존재가 되었다-148화 (148/154)

〈 148화 〉 꿈속에서 꿈틀거리는 끔찍한 광기

* * *

일촉즉발의 상황.

먼저 움직인 것은 닌자 쪽이었다.

불의 무기가 가장 적은 곳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녀석은 튼튼한 몸을 믿은 것인지 불로 뒤덮인 바닥을 성큼성큼 밟았다.

나는 일단 녀석의 속력을 늦추기 위해 견제용으로 주변의 화염구를 던졌고, 녀석은 검으로 그걸 베어냈다.

반으로 갈라질 때마다 펑펑 터지며 녀석의 시야가 가려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가 불의 무기를 날려보낼 때마다 사방에 눈이 달린 것처럼 모조리 피했다.

"쳇, 그럼 이건 어떠냐?!"

다시 한 번 공격을 날리며 녀석이 회피하기 위해 동작을 취하는 순간, 내가 발을 구르며 마력을 움직였다.

그러자 녀석의 발 밑의 불길이 일렁이더니 가시처럼 솟아오르며 빈틈을 찔렀다.

종아리와 허벅지, 복부까지 제대로 들어간 불의 가시는 폭발하더니 공격이 먹혀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뭐야…?"

옷에 뚫린 구멍에서 촉수가 튀어나오더니 입고있던 걸 갈가리 찢어버리고는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저걸로 가시를 잡아 으깨버린 건가?'

검게 탄 그을음이 남아있는 촉수가 얼핏 보이긴 했지만, 연약한 부위인 건지 그걸 안쪽으로 숨긴 녀석은 중앙에 몸통으로 보이는 부분의 눈알들을 빛내며 맹렬하게 다가왔다.

일단 접근을 막기 위해 불의 벽을 세워봤지만, 몸통 박치기로 간단히 깨부수며 가까이 온 녀석이 커다란 촉수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아무리 보호막이라도 저건 막지 못하겠다 싶어서 뒤로 피하려고 했는데, 빨판 대신 달린 눈알들이 나를 노려보자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어, 커헉!"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마력을 움직일 수는 있어서 보호막을 만들긴 했지만, 내 생각대로 간단히 부서져서 약간이나마 속도를 줄이는 것에 그쳤다.

나는 무작정 가시를 만들어서 녀석이 멀리 떨어지도록 만든 다음 옷을 들춰서 피멍이 잔뜩 든 배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못했더라면 아예 내장이 전부 파열되지 않았을까.

나는 입속에 상처가 났는지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며 일어섰다.

'쯧. 눈에 띄는 상처는 없을 테니, 정령이 깨워주지 않겠네.'

아마 어디 하나 사지가 부러지거나 으스러져야 알아차리지 않을까 싶었다.

'일단 저 녀석의 능력과 약점을 찾아야 해.'

다음에는 반드시 죽여버리겠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녀석은 내가 빈틈이라도 보이는 순간 달려들 것처럼 보였다.

나는 공격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녀석과 눈을 마주쳐봤다.

그러자 포식자 앞에 선 피식자처럼 순간이나마 몸이 굳어버린 나는 마력을 끌어올리며 괴물 녀석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건지 그저 멀찍이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내 주변을 빙빙 돌기만 할 뿐이었다.

'먼저 오라는 거냐. 더럽게 싸우네.'

녀석의 빠른 속도를 이용해서 역으로 공격하려는 생각을 했던 나에게는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날 죽여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야겠네.'

나는 남은 마력량을 가늠하면서 지금의 불의 장판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 계산했다.

'지금 범위라면 대략 한 시간, 이곳 전체를 뒤덮으려면 그 절반 정도인가. 거기에다가….'

—화르륵!

내가 불의 장판에다가 마력을 불어넣자 불꽃이 붉은색에서 점차 노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눈이 따가울 정도인 흰색으로 변하자 바닥을 이루던 바위가 녹아내리며 용암이 되었다.

괴물 녀석은 자신의 촉수마저 태워버리려는 불길에 일단 후퇴하려고 했지만, 내가 불의 장판을 넓혀버리며 도망칠 곳을 없애버리면서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이제 그나마 안전한 곳이라고는 내 근처 밖엔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밟고 있는 불은 내가 마력으로 제어하고 있어서 스스로에게 해를 끼치거나 하진 않지만, 열기로 생긴 용암 같은 부산물은 어찌 막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촉수로부터 올라오는 작열통에 괴로워하며 빠르게 이쪽으로 다가왔다.

'젠장할.'

마력만 충분했다면 녀석을 속박해서 그대로 오징어 구이로 만들어 버릴 수 있겠지만, 단 한 번의 공격에 사용할 양을 제외하면 불의 장판을 유지하는 데에도 부족했다.

어쩌면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마력이 바닥날 수도 있어서 장판의 범위를 줄이고 싶었지만 녀석이 그쪽으로 도망칠지도 모르는 일이니 어쩔 수 없었다.

'후우…. 분명 안쪽에 몸통이 약한 부분이겠지?'

나는 방금 검게 타버린 연약한 촉수를 떠올렸다.

그걸 몸통 쪽으로 넣고는 가리는 모습이 이곳이 약점이라고 광고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의심이 들었지만, 그렇다면 전부 태워버리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심장 속의 불꽃을 모조리 오른쪽 주먹에다가 모았다.

청백색으로 뭐든지 태워버릴 것처럼 이글거리는 불꽃은 먹을 게 어디있냐는 것처럼 불길을 날름거렸다.

녀석과 눈이 마주쳐서 몸이 굳어버리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눈을 감아버린 나는 대신 다른 감각을 이용했다.

'대략 2시 방향, 아니, 1시 쪽으로 틀었군.'

예전에 도시에서 했던 것처럼 불의 기척을 읽어가던 나는 녀석이 다가오는 방향을 알아낼 수 있었다.

촉수의 끄트머리에 용암이 붙었다가 굳어버린 건지 속력이 아까보다 느려진 녀석은 내가 눈을 감은 게 보였는지 곧바로 이쪽으로 다가왔다.

오른손의 불꽃이 위협적으로 보인 것인지 점점 왼쪽으로 이동한 녀석은 가까이 다가와 촉수를 들어올렸다.

붉게 달아오른 바위들이 달라붙은 촉수가 마치 피가 덕지덕지 묻은 철퇴처럼 보이지 않을까—라며 시답잖은 생각을 한 나는 왼쪽 발을 들어올렸다.

—쿵!

진각을 밟고, 허리를 비틀며, 그대로 오른손에다가 회전력을 더해 녀석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주먹을 내지르자 젤리를 파고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물컹한 감촉에 역겹다고 느끼면서 불꽃을 그대로 퍼뜨렸다.

"끼에에에엑!"

"크윽!"

그러자 고통에 찬 비명 소리가 귀를 강타하며 동시에 배를 얻어맞았다.

뒤로 날아간 나는 다행히도 용암에 떨어지진 않았지만 괴물 녀석은 달랐다.

가끔씩 부글거리며 기포가 올라오는 그곳의 위로 녀석이 쓰러지면서 고통에 몸부림치더니 점차 움직임이 멎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걸 보며 안심하면서도 완전히 체내가 완전히 텅 빈 듯한 공허감에 잠시 철퍼덕 누웠다.

마력 탈진은 이브와의 대련으로 익숙해서 참을 만했지만, 심장 속의 불꽃을 완전히 소모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 느낌이 이상했다.

혹시라도 다시 차오르지 않으면 어떡하나 싶은 불안감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휘저었다.

'뭐, 없이도 잘 살았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어느 정도 마력이 차오를 때까지 휴식한 나는 천천히 일어섰다.

저기 보이는 촉수 괴물이 아직도 살아있어서 날 기만하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지만, 용암이 굳어서 움직이기도 어려울 테니 대비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벌려서 이동했다.

'정말로 그럴까? 저 새끼가 금방이라도 달려들어서 네 목을 뜯어버릴지도 모르는데?'

"윽! 씨발, 뭐야?!"

그런데 갑자기 내 목소리를 닮은 환청이 들려오며 불안감이라는 불에다가 부채질을 했다.

광기, 이제는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오랜 친구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어둠 속에서 시선이 느껴지며 금방이라도 목소리가 말한 것처럼 내 목이 날아갈 것만 같다는 생각에 나는 곧바로 도망쳤다.

­꺄하하!

­키히히히!

소름 끼치는 웃음 소리에 귀를 틀어막으며 발을 헛디뎌 넘어질 때까지 달리던 나는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급하게 움직여서 그런 게 아닌, 심리적인 불안감으로 인해 심장이 마음대로 뛰고 숨 쉬는 걸 제어할 수 없었다.

"허억, 큽."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촉수가 내 목을 휘감자 나는 그것에 저항하며 한손으로 떼어내려고 했다.

그러다가 손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손으로 스스로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붉게 남은 자국을 보며 나는 뺨을 두들겼다.

"후우, 뭐하냐…. 정신 좀 차리자."

이제는 자기자신도 믿을 수 없고, 무엇이 환상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제임스도 나와 같은, 아니, 나보다 더욱 심각한 상태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서 어색했을 뿐, 금방 익숙해진 나는 들려오는 목소리를 무시하며 다음 괴물을 상대할 방법이나 떠올렸다.

'방어는 소용 없으니 보호막에 쓸 마력을 신체 강화에—어차피 넌 죽을 텐데?—조금만 닥쳐봐!'

계속되는 목소리의 방해에 잠깐만 쉬기로 한 나는 벽에 기대고는 주저앉았다.

"그러고 보니 여긴 어디지? 바닥에 발광석도 없네."

이제서야 눈치챈 것이지만, 정신 없이 뛰느라 어느새 전혀 모르는 곳에 도착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져서 보이는 윤곽으로 어디가 벽인지 구분할 수 있었지만 어느쪽이 왔던 길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달려왔을 때 계속 앞을 바라봤으니까 뒤쪽인가?'

그렇다면 나는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마를 탁 치며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돌아가려다가 코가 이상한 냄새를 감지했다.

소금기가 섞인, 바다 내음과 비슷한 냄새.

코를 킁킁거리며 그걸 따라가던 나는 거대한 구멍을 발견했다.

안에서 출렁거리는 물을 손가락으로 찍어서 맛을 보자 느껴지는 짠맛에 이게 바닷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다와 연결된 건가? 그럼 해저 동굴…?"

그렇게 이곳이 어디인지 추리해나가고 있을 찰나에 무언가 반짝이는 걸 발견했다.

흐리멍덩한 눈알에 흉측한 이빨, 그리고 낚싯대에 걸어둔 미끼처럼 빛나는 발광체.

심해어가 저 아래에서 천천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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